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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보다 더 멀고 험한 네팔의 민주화
미영 지원받는 국왕 철권통치 강행, 마오이스트 등 저항거세
 
배정원   기사입력  2003/12/16 [10:38]
네팔은 1972년에 마헨드라왕의 뒤를 이은 젊은 비렌드라왕은 판차야트 제도의 개혁을 요구하는 학생·지식인의 반정부운동 등으로 인해 어려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90년 이전의 네팔 대의제도(代議制度)는 이른바 판차야트 제도(Panchayat system:평의회제도)에 의해 운영되었다. 판차야트는 소지역 판차야트에서 전국 판차야트까지 4단계의 피라미드 구조로 형성되었다. 전국 판차야트는 입법권을 장악하는 국왕의 자문기관으로서의 성격을 지녔으며, 아울러 판차야트 제도는 국왕이 주재하는 국가지도회의의 감독하에 놓여 있었다.
 
1990년 2월 이래 민주화운동이 격화되어 판차야트 제도(Panchayat system:평의회제도)가 폐지되고, 복수 정당제가 부활하였다. 1990년 11월 비렌드라왕은 국제여론의 압력과 네팔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에 굴복하고 드디어 신헌법을 공포하였다.
 
신헌법에 의하면 국왕이 국가 원수이며 군통수권을 행사하나 입헌군주제의 성격이 강했다. 행정권은 국왕이 지명한 각료로 구성되는 내각(內閣)의 보좌를 얻어 국왕이 행사하나 국정전반의 실권은 수상이 가진다.
 
▲ 네팔 국왕에 반대한 닙회가 열리는 가운데, 무장한 현지 경찰이 현장을 감시하고 있다     ©AFP
1991년 5월 총선 결과, 네팔 의회당((Nepal Congress party)이 하원 205석 중 110석을 차지해 단독으로 정부를 구성하고 네팔의회당(Nepal ongress Party) 지도자였던 ‘기리자 프라사드 코이랄라’(Grija Prasad Koilrala )가 초대 수상에 취임하였다. 그러나 같은해 4월 민주화를 위한 반정부시위대에 경찰이 발포함으로써 7명이 사망하고 50여 명이 부상하는 사건도 발생하여 민주화의 길이 순탄치 않음을 예고하였다.
 
1994년 11월 실시된 총선거에서는 어느 정당도 과반수를 넘지 못하였고 이후 정권이 자주 바뀌었다. 1999년 5월 총선거에서 네팔의회당이 과반수 의석을 획득하였으나 그후 수상이 계속 교체되어왔다.
 
2001년 6월 1일 왕궁에서 비렌드라왕과 왕비 등 왕가 일가가 사망하는 총격사건이 일어났으며, 총상으로 중상을 입은 디펜드라 왕세자는 2일 제11대 국왕으로서 선언되었다. 그러나 디펜드라왕이 이틀후 사망, 디펜드라왕의 숙부인 갸넨드라(Gyanendra Bir Bikram Shah Dev)가 제12대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이후 사건을 조사한 진상조사위원회는 고(故) 디펜드라 왕세자가 왕위 찬탈을 노려 참극을 자행한 것으로 결론내렸으나 많은 네팔국민들은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군부와 보수파의 지지를 받고있는 현 국왕인 갸넨드라는 2002년 10월 4일 의회를 해산하고 당시 수상이었던 네팔의회당(민주)의 데우바 수상(Sher Deuba)을 해임하고 로켄드라 찬드(Lokendra Bahadur Chand)를 새 수상에 임명하여 각료를 조직하게 했다. 5대 주요정당들은 이러한 국왕의 처사에 반대하여 항의시위와 정치집회를 통하여 강력히 반발하였다.
 
주요정당들의 이러한 저항에 염두를 두고 2003년 6월에 소수당인 RPP당(Rastriya Prajatantra Party)의 전직 수상인 수랴 타파(Surya Thapa)를 수상으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5개의 주요정당은 네팔의회당의 초대수상이었던 기리자 코이랄라를 만장일치로 추천하였으나 의외로 국왕은 타파를 새수상에 임명하여 민주화에 역행하는 정치수순으로 간주하고 주요정당들은 민주화를 위한 투쟁을 계속하기로 했다. 이로써 갸넨드라 국왕은  의회 민주주의를 무시하고 비헌법적인 절대 군주제로 왕권을 확립한다는 비난을 대외적으로 받고있다.
 
네팔 정치의 3대 주요세력은 국왕과 5대 주요정당들 그리고 마오이스트를 들 수 있다. 네팔 공산당(CPN: Communist Part Nepal)은 두개로 나눠졌는데 CPN(UML)와 CPN(Maoist)가 그것이다. CPN(UML)는 막스,레닌주의자(UML: Unfied Marx Lenninst)로 주요정당의 하나로 네팔의회당과 수차례 연립내각을 구성하기도 했다. CPN(Maoist)이 마오이스트(Maoist: 모택동주의자)로 1996년부터 반정부 무장투쟁을 벌여 현재까지 4000여명이 사망한것으로 알려졌다.
 
마오이스트는 의회제 민주주의의 부정, 왕정 특권 폐지, 공화제 확립, 사회주의적 경제사회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네팔의 70%정도의 영토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은 도시지역까지 서서히 활동범위를 넓히고 있으며, 네팔정부는 2001년 11월 비상사태를 선언하였다. 수개월전 정부측과 협상이 결렬된 직후 정부군과 대대적인 전투를 곳곳에서 벌이고 있다.
 
최근 들어 마오이스트들이 통치지역에서 납치, 고문, 살상들을 일삼아 일부 국민들의 반감을 싸고 있다. 그러나 정부군은 수시로 수색작전이란 미명하에 주민들을 고문하고 강간 살상 등도 일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군과 마오이스트는 국제사면위원회및 서방의 국제인권 단체들로 인권 침해의 비난을 받고있다. 특히 정부군에 의한 인권침해는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0일 인권의 날에 수백명의 행방불명자들의 가족이 행불자들의 사진을 들고 그들의 행방을 알려달라고 네팔 국방성 앞에서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현 정부는 총선거를 실시할 것이라고 천명하였으나 지금 상황으로선 당분간 선거를 실시할 의향이 없는 것으로 정치전문가들은 보고있다. 현정부는 마오이스트들과 협상도 중단하고 네팔정부군을 중심으로 경찰과 무장경찰을 하나로 통제하는 통합안보시스템(Unified Security System) 을 실시하는 등 마오이스트와 전면적인 내전도 불사하고 있다.  마오주의자의 미국대사관 네팔인 경비인 살해후 미국은 CPN(Maoist)를 테러단체로 지정했다. 내전중인 네팔은 미국으로 부터  상당한 군사원조를 받고 있다. 영국도 고문기구와 진압용 무기를 네팔에 팔아 국제적인 비난을 받고 있다.
 
현재 국왕은 5대 주요정당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국왕이 임명한 수상을 중심으로 정부를 구성하는 등 강력한 정치력을 행사하고 있어 앞으로 수년간은 의회없이  현체제로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전수상이자 네팔의회당의 창당멤버인 크리슈나 바타라이는 11일 "국왕이 정상적인 의회정치로 전환하기 위해 주도권을 잡고 먼저 행동해야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5대 주요 정당들은 정당간의 알력과 이해타산으로 단합된 정치력을 보여주지 못해 네팔의 의회민주주의의 취약점을 노출하고 있다. 마오이스트들은 정부측과의 협상이 결렬되어 대화를 포기하고 무장투쟁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주 CPN(UML) 리더인 마드라브 네팔(Madrhav Nepal)은 인도의 루크나우(Lucknow)에서 CPN(Maoist)의 지도자인 프라난다, 바부람 바타하리, 크리슈나 마하라나를 만나 회합을 가졌다. 이러한 네팔의 행동에 네팔정부는 불편을 심기를 드러내며 수상인 타파가 "이름있는 정치 지도자의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네팔을 비난했다. 그러나 네팔과 함께 루크나우 회합에 참석한 유바라지 그야왈리(Yubarj Gyawali)는 "루크나우 회합은 앞으로 마오이스트와 대화의 문을 열어놓은 중요한 모임이었다"고 언급했다. 
 
1990년에 시작한 네팔의 민주화는 23여년이 지난 지금심한 정치적 진통으로 의회 민주주의는 겨울의 동면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네팔 카트만두 = 배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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