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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민족주의자가 될 필요가 있는가
북쪽 여성 미모가 천연색으로 ‘우뚝 솟아’?
 
정문순   기사입력  2003/03/08 [00:35]
최근에 개국한 한 인터넷 방송을 틀어놓고 있자니, 마침 3·1 민족대회에 참가하러 온 북쪽 대표단 소식이 흘러나온다.

진행자는 일행으로 온 북한 여성들에게 관심이 많은 듯, 북한에서는 미인을 일컬어 ‘예쁘다’고 하지 않고 ‘미모가 우뚝 솟았다’라는 표현을 쓴다고 알려준다. 청취자에게 그런 정보를 전해주는 것까지는 괜찮다. 그러나 한 번이면 족할 말을 거듭 언급하니 탈이다. 용모라는 것이 대수가 아니지 않은가.

신문은 신문대로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북쪽 대표단 여성의 미모가 천연색으로 ‘우뚝 솟아’ 있게 마련이다. 진보적이든 보수적이든 매체들이 북한 여성을 다루는 방식은 별반 차이를 찾기 힘들다.

언제부터인지 북한의 ‘관급’여성이라면 다른 것 다 제쳐두고 외모가 별나게 취급되는 것은, 남북 교류가 활발해진 이후에 두드러진 현상 중 하나일 것이다. 제 목소리를 높여 가는 남한 여성과 딴판인 듯한 ‘북녀의 어여쁨’(유홍준, <나의 북한문화유산답사기>)에 반해버린 인사들의 방북담이나, 지난해 아시아경기 대회에 온 북한 응원단을 넋이 나간 듯 쫓아다닌 언론의 행태는 이것을 잘 말해준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북한 여성에 대한 친화감으로 해석되어 남북 관계 개선과 관련 있는 것처럼 포장되기 일쑤다.

여성이 언급될 때마다 용모가 빠지지 않거나, 북한 여성에게서 고분고분한 옛 여성에 대한 향수를 느끼는 남한 남성들의 정서는, 당연히 성차별 의식과 맞닿아 있다는 비판을 비켜가지 못한다.

이러한 약자에 대한 차별 의식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면 한국인의 의식을 휘감고 있는 민족주의 또는 국가주의가 한 몫 한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물론 차별이 만연한 사회가 굳어진 데는 좀더 직접적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민주주의가 지체되었고, 단기간의 급속한 경제 성장을 위해 약자를 외면하고 솎아냈으며, 지금도 성장 신화에서 놓여나지 못한 한국의 현실이 빼놓을 수 없는 원인으로 지목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아우르는 이념적 기반은 분명 민족주의와 혈연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민족주의는 자기 민족 사랑하기라는 의미로만 매겨지기는 부족하며, 한 집단의 단일성에 대한 집착과 결부시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러할 때 흔히 반민족적이라는 ‘오해’를 받는 박정희의 불도저식 근대화는 물론이고 독재 정권의 대척에 서 왔던 통일 운동의 주류에까지 폭넓은 포획 범위를 갖고 있는 민족주의를 이해할 수 있다.

독재자에게는 시민이, 통일운동세력에게는 외세가 단일성을 방해하는 주된 ‘오랑캐’였겠지만, 어느 쪽이든 사회적 약자가 배려되지 않는다는 점은 닮았기 때문이다.

대개의 한국인들은 태극기를 몸에 휘감는 것에 감격을 느끼며 한민족이라는 의식을 대단히 숭고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통합과 단결의 가치를 지향하는 민족주의는 분열과 반목을 배제하지 못하는 극심한 자기모순을 갖고 있다.

하나됨을 부르짖을수록 다수와 다르거나 하찮게 보이는 것의 가치는 인정받기 힘들어지며 이들은 내부통합을 위해 배제하거나 정복할 대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자신의 순수성을 위해 끝없이 ‘이방인’을 찾아내어 추방해야 하는 민족이라는 단일대오 속에서 약자인 여성이 곁방 신세를 벗어나거나 제 목소리를 내기는 힘들다.

마찬가지로 이주노동자들이 이 땅에서 받는 탄압이 보도되기라도 하면 도리어 적지 않은 한국인들이 드러내는 몰지각한 반응도,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는 데 인색한 민족주의의 얼굴일 것이다.

남북 관계를 보는 관점도 이제는 바꾸어야 할 필요가 있다. 약자에 대한 억압은 반통일 세력이라 지탄받는 쪽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미국에게 북한을 손봐주라고 호소하는 극우 민족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 민족끼리의 자주’를 강조하는 통일담론도 넘어서야 한다고 본다.

민족의 하나 되기를 위함이 아니라 시야를 넓혀 동북아시아의 평화 정착과, 분단이 약자에게 가한 억압을 풀기 위해 남북의 화해와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 필자는 문학평론가입니다.
* 본문은 '언론개혁을 바라는 시민들이 힘을 모아 만든 신문' 경남도민일보 http://www.dominilbo.co.kr/ 3월 5일자에 실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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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03/08 [00:3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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