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이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해서 반대의사를 표시했다고 한다. 한나라당이 밝힌 바에 따르면 김수환 추기경은 지난 13일 "국보법 폐지는 아직 시기상조지만 개정은 필요하다"고 국보법 폐지 반대 의사를 밝혔다는 것이다. 프레시안에 보도된 기사를 보면 다음과 같다 김 추기경은 이날 오전 혜화동 가톨릭대 주교관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 위와 같이 밝히고 "일부 언론에서 내가 국보법 폐지를 지지한다고 보도했는데, 이것은 본인의 뜻과 달리 전달된 것"이라고 전여옥 대변인이 전했다. 진영 비서실장도 "김 추기경이‘내 뜻과 달리 전해졌다’고 말했다"고 확인했다. 김 추기경은 "젊은 신부들이 국보법 폐지에 힘이 돼달라고 할 때 폐지는 시기상조라고 말했고, 명단에 고문으로 넣겠다고 했을 때 빼라고 했는데 의지와는 달리 그대로 뒀다"고 말했다는 게 한나라당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김 추기경은 또 이날 "(국보법 논란으로) 나라가 분열되고 편가르기가 되는 '남남분열'이 큰 걱정"이라며 "북한이 원하는 게 남남분열이 아닌가"라고 말했다고 한나라당이 전했다. 위의 기사가 잘 보여주는 것처럼 국가보안법 폐지에 관한 논쟁을 바라보는 추기경의 시선은 균형을 잃은 듯이 보인다. 국가보안법 자체에 대한 추기경의 생각이 어떤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추기경은 국보법 폐지를 둘러싼 논쟁을 나라가 분열되고 편가르기가 되는 '남남분열'로 인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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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 지난 70년대 이땅의 양심, 그리고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였건만 이제 달라진 그의 현실인식에 어리둥절 하기만 한다. © 뉴스툰 | 추기경의 현실인식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추기경은 "북한이 원하는 게 남남분열이 아닌가"라고 갈파하여 국보법 폐지와 관련한 일체의 논란을 이적행위로 둔갑시키는 신통력을 보여준다. 물론 국가보안법 폐지에 관해서는 찬반 양론이 있을 수 있으며 폐지를 찬성하는 입장과 폐지에 반대하는 입장 사이에 치열한 논쟁이 벌어짐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이 추기경의 염려처럼 '국론 분열'이나 '혼란'으로 치부되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오히려 이러한 논쟁은 다양성을 존중하고 토론과 대화를 통해서 합의점을 도출해 나가는 민주주의의 본령에도 부합하는 것이라 권장할만한 일이다. 따라서 추기경의 염려는 단지 기우(杞憂)에 불과하다. 또한 국보법 폐지에 반대한다는 김수환 추기경의 발언은 불과 몇 해전 국민의 정부 시기에 수차례에 걸쳐 국보법 폐지를 촉구했던 본인의 행동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남북관계 등을 고려할 때 국보법 폐지에 대한 추기경의 생각이 수년 사이에 급변한 이유를 도무지 찾을 길이 없다.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국민의 정부 시기와 비교하여 현재 남북관계의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거나 북한의 대남적화 야욕이 노골화되고 있다는 소식은 들어 본 기억이 없다. 또한 남한 내에 북한에서 남파한 간첩들이 대거 암약하고 있다거나 반국가단체들이 대거 구성되어 반국가활동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금시초문이다. 북한을 찬양하고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는 주사파가 남한 사회 주요부문을 장악하고 있다는 취지의 기사를 한국논단이나 월간조선 등지에서 어렴풋이 본 것 같은데 이런 기사가 사실이라면 국정원이나 대검 공안부에서 가만히 있을 리가 있겠는가! 추기경의 정치적 지향과 특정정당에 대한 호불호(好不好)에 대해서는 추기경의 전적인 자유일 뿐만 아니라 알고 싶지도 않다. 그렇지만 국보법 폐지를 바라보는 추기경의 인식은 최소한의 객관성과 균형감각도 상실한 듯 싶어 심히 안타깝다. 혹시 추기경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과거의 냉전의식과 남북대결 의식에 갇혀 박제(剝製)화 된 현실인식을 가지고 사물과 사건을 바라보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옛 선현들은 연치(年齒)가 늘어갈수록 스스로 삼가며 자신을 성찰하고 외부의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여 왔다. "요즘은 인터넷을 보지 않고 있다"고 담담히 말하는 김수환 추기경이 진정 배워야 할 태도가 아닐까? /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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