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삼웅 신임 독립기념관장에 대한 조중동의 흠집내기가 치열합니다. 이에 대자보에서는 지난 2월 18일 이뤄진 김삼웅 교수 인터뷰를 다시 올려 김삼웅 교수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편집자 주.
최근 정치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친일파 문제’에 대한 독자들의 심층적인 이해를 위해서 <대자보>에서는 김삼웅 교수와 인터뷰를 추진했다.
김삼웅 교수는 오래동안 야당 기관지 주간 등을 담당하며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해왔고, 이 과정에서 기존 언론의 곡필 및 친일은폐 등에 통렬한 비판을 가하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친일파 문제와 '민간인학살', '제주 4·3학살' 문제를 공론화하는 데에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김삼웅 교수는 <대한매일신보> 주필 시절 당시 지면을 통해서 그 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친일파의 실체를 알려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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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7천권의 장서로 가득찬 김삼웅 교수의 서재 © 대자보 |
김삼웅 교수는 이 인터뷰를 통해서 ‘친일파’라는 용어 대신 ‘친일 민족 반역자’라는 용어를 쓸 것을 제안했으며, 일방적인 친일 친미적 태도의 문제점에 대해서 지적하였다. 그러면서도 세계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한반도의 평화적인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국제화된 민족주의적’ 사고가 필요함을 역설했다.
본 인터뷰는 2월 18일 저녁 6시부터 7시 30분까지 정릉의 김삼웅 교수 자택에서 진행되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 대자보 : 현재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이승연 '위안부누드' 사건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나?김삼웅 : 이번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은 한국사회가 파생시킨 사생아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개인적 일탈이 아닌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한계가 초래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단적으로 국회의원 154명이 서명을 한 ‘친일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에서 거부되고 있는 것이 현재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한 국가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 정치권이 이와 같은 잘못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므로 일반인들이 정신대를 통해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아닌가?
작년 초 친일관련법 공청회에서 나하고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한상범 선생하고 찬성쪽에서 의견을 개진했고, 나머지 두 사람이 법제정에 대한 반대 의견을 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친일파를 위한 변명’이라는 책을 쓴 김완섭이라는 사람이었다. 그 자리에서 김완섭은 "김구 선생은 충견이고, 이완용은 애국자"라는 망언을 하였다. 그 뿐만 아니라 일제로부터 해방된 것은 잘못된 것이고, 이렇게 잘살게 된 것은 일본 때문이라는 주장을 해서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이 말하기 전에 원고를 봐서 강도 높게 비판을 했다. 그런데 다음날 신문을 보니 그에 관한 기사는 한 줄도 안나왔고, 일부 언론에서는 오히려 김완섭이 한 얘기만 나왔다. 이는 일부 언론의 비판 기능과 자정 기능이 상실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임과 동시에 이들의 역사관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국회에서 다수가 서명을 했는 상황에서도 통과가 되지 못하는 현실을 보면서 이승연이 그런 일을 하게 될 정도로 한국사회가 민족정기 문제나 친일문제에 대해 무감각해 진 것이다. 그들은 잘못된 한국 사회가 낳은 사생아다.
▼ 대자보 : 친일파 청산이 안되는 구조적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김삼웅 : 그 이유는 친일 세력들이 한국 사회의 기득권 세력으로 강고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친일파가 1945년 해방으로 단절된 것이 아니었고 지금까지 친일 세력들이 한국 사회 곳곳에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통세력은 역사의 아웃사이더가 되고 친일에 앞장선 사람들은 주류가 된 것이 한국 사회다. 친일 기득권 세력들의 후세들과 거기에 추종한 아류들은 비슷한 사람끼리 동종교배 하듯이 2세 3세를 만들고, 수구신문, 대학, 종교단체, 기업, 정치세력이 서로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시켜 온 것이다.
우리사회가 해방민족으로서의 역사적인 의지나 과거청산에 대한 기틀을 만들지 못하는 상황에서 미군정, 자유당, 군사독재로 이어지면서 친일 세력들이 역사의 주류가 되고, 그들의 이데올로기와 그들의 영향력이 현재 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과거 청산이 제대로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대자보 : 이러한 문제는 언론도 나서야 하는데, 거대신문이라고 하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친일 문제의 원죄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진실이 알려지지 않고 있다. 보수정당이라고 할 한나라당도 많은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김삼웅 : 가장 교과서적인 답변은 선거가 임박했기 때문에 국민이 투표를 통해서 수구집단을 배격하면서 단절시켜야 한다. 그런데 선거결과는 낙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검찰이 뒤늦게 제기능을 하면서 수구 세력들의 불법정치자금을 파헤치면서 수구정치세력의 본질이 드러나고 있다는 점은 중요하다. 현실 정치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은 수구 세력들의 부정과 부패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지만 일반인들은 막연히 추측을 했을수는 있지만 그 본질에 대해서는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 검찰 수사를 통해서 수구 세력들의 검은 돈의 실체를 국민들이 제대로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일들이 제대로 국민들에게 전달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물론 최근에는 인터넷 언론등 대안언론이 급속하게 성장하면서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소위 개혁 진보진영의 영향력이 확장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흐름을 더욱 강화시키기 위해서는 시민단체의 좀 더 적극적인 활동과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2002년 8월 15일 항일민족운동 시민단체에서 ‘민족정기와 시민단체’라는 학술세미나를 할 때 주제발표를 했다. 시민단체가 정치, 사회, 환경 문제 등의 개혁에 있어서 기여를 하지만 한국 사회의 개혁을 위해서 중요한 언론개혁에 대해서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점을 지적했었다. 정치가 부패하고, 관료사회가 부패하더라도 언론과 검찰만 제대로 하면 그 사회는 제대로 할 수 있다. 그 만큼 언론의 역할은 국가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서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민주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진통을 겪었지만, 검찰이 제기능을 하고 있는 일은 바람직하다. 그런데 아직도 수구 언론이 오래된 낡은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서 역사를 오도하고 있는 일은 대단히 큰 문제이다. 얼마전 이라크 파병에 관한 언론의 보도 행태는 친미를 넘어선 숭미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미국 추종주의적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용산 미군기지를 한강이남으로 옮기는 문제에 있어서도 용산기지를 이전하게 되면 마치 대한민국의 안보에 큰 문제가 생기는 것처럼 보도하는 수구 언론의 모습을 보면서 개탄을 금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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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왜곡된 언론과 굴절된 역사 바로잡기에 매진하신 김삼웅 교수 © 대자보 |
▼ 대자보 : 미국 주도의 세계화 시대에 생존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들어서 이라크 파병안이 통과 됐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소니, 마일드 세븐 등 일본 것을 좋아하기도 한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위해서 네티즌들이 자발적으로 성금을 모으기도 하고 이번 이승연 파문에 대한 국민들의 적극적인 대응을 보면 민족주의적 흐름 역시 강하게 존재하는 것 같다. 이렇듯 국제화와 민족주의 문제에 대한 상이한 접근이 나오고 있는 현 상황에서 친일(파) 청산의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김삼웅 : 우선 동양에서는 정명(正名)사상이라는 것이 있다. 모든 사물과 현상에는 이름이 제대로 붙어야 하는데, 친일파 문제도 임시정부에서는 ‘친일 민족 반역자 처벌법’이라고 했다. 해방이후 1947년에 과도 입법의원에서도 ‘친일 민족 반역자 처단에 대한 법률안’을 미군정에게 제안을 했는데, 다른 것은 받아도 그것은 안받았다. 이는 미군정이 친일 세력들을 군정 친위세력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헌헌법 부칙에도 '친일 민족반역세력에 대한 처단'이라고 하였고, 1949년 9월 '친일 반민족 행위자 처벌 특별법'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근래에 ‘민족 반역자’라는 말은 없어지고, ‘친일파’로 용어가 변했다. 사람들이 이 점을 잘 모르고 있는데 원래는 ‘친일 민족 반역자’가 정확한 표현이다. 그런데 친일파라는 용어로 굳어졌는데 이렇게 되면 후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국가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 등등의 나라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해야 하고 그 중에는 그 나라의 중심 세력들과 잘 아는 사람들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게 보면 친일파, 친중파, 친미파가 다 있어야 하다. 이는 곧 국가 외교를 위해서 그런 것이다. 그렇게 되면 100년 후에 후세들이 친일파라고 이야기한면 뭐가 나쁜가 물을 것이다.
엄밀하게 이야기 하면 '친일파'라는 용어는 외교적인 용어로 보면 중립적인 성격이 있는 것이다. '친일 민족 반역자'라는 용어가 정확한 것이고, 이렇게 해야 후세 사람들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데 어느새 친일 민족 반역자라는 용어가 친일파라는 용어로 변경이 되어 버렸다. 아직까지는 알고 있지만 100년 정도 후까지 생각해보면 지금 친일파라는 용어 대신에 ‘친일민족반역자들’이라고 해야 한다. 이것이 정명이다.
일부 학자는 민족주의는 국제화에 거스르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국사해체론까지 나오고 있는데 이는 대단히 우려스러운 일이다.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고 한반도에 통일된 민족국가가 등장하기를 꺼려하는 주변 강대국들의 입장과 그로 인한 한민족의 고통을 생각해본다면 민족주의는 여전히 중요한 정치 사회적 가치이며 담론이다.
한반도를 중립화 시켜야 한다는 논란이 국제적으로 수차례 있었다. 그러다가 분단이 됐지만, 이런 작은 나라가 생존할 수 있는 길은 '국제화된 민족주의' 밖에 없다. 국제화된 민족주의 즉 열린 민족주의는 한민족의 정체성과 한민족의 주체성을 살려가면서 강대국들의 이해 관계가 첨예하게 얽혀 있는 현 상황을 자주적으로 그리고 능동적으로 해결해나가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사상적 좌표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보면 ‘영어를 제2외국어로 하자’는 것과 ‘국사를 없애자’고 하고 ‘역사는 쓰레기다’라고 말하는 사람이야 말로 가장 극복해야할 세력들이다. 한민족에게 필요한 것은 국제화된 민족주의이다.
▼ 대자보 : 최근 사회적으로는 친일문제 못지 않게 친미 문제 역시 논란이 되고 있다. 특히 사회 원로로 인정받은 분들이 친미 문제에 관한 발언으로 논란이 된 적이 있었는데 이 부분에 대한 견해는? 김삼웅 : 우리나라가 불행한 것 중에 하나가 국민들의 존경을 받는 원로가 대단히 부족하다는 점이다. 분단, 군사정권, 등의 역사를 겪으면서 존경받는 원로가 형성되지 않은 면이 크다. 그중에서 존경받는 원로까지도 군사정권의 가치관, 냉전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면이 있다. 미국과 대한민국을 일체화해서 사고하는 것은 마치 일본이 대동아 공영권을 구상할 때 당시 친일 반민족 세력들이 일본과 당시 조선을 일체화해서 사고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상대가 미국으로 바뀌었을 뿐 외세합일적이고 외세추종적인 사고는 뿌리가 깊은 것이다.
일본은 한국전 베트남전에서 엄청난 경제적 이득을 취했었다. 그렇게 해서 미국의 덕을 봤던 일본이지만, 이라크 파병 문제에 대처하는 것을 보면 자국의 이득을 위해서 끝까지 버티고 미국에 대해서 일본의 이익을 최대한 확보해나가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원로들이 일방적으로 미국의 말을 따르는 것이 마치 국익을 위하고 우방을 위하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그리고 10년 20년 후의 동북아 정세가 변할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해본다면 현재와 같은 미국 추종적인 태도는 국익에도 부정적인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미국에 대한 일방적인 추종은 근시안적인 자세라고 비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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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화 시대, 열린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김삼웅 교수 © 대자보 |
▼ 대자보 : 어떻게 보면 현재의 혼란은 새로운 가치관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리더십이 확보되지 않아서 발생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김삼웅 :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당대의 모순에 대한 진단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들이 있기 마련이고 이에 대한 사상적 틀을 시대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일제시대에는 민족의 자주적인 독립이 지상과제였는데 해방 이후 불행하게도 극소수의 외세에 영합한 친일 민족 반역자들이 국가의 중심이 되었고, 이승만 같은 이들이 극우냉전적인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단정노선을 관철시켜서 민족의 비극이 잉태되었다. 김구 선생이 남북협상을 위해서 평양을 방문한 것도 단정을 막고 통일된 민족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였다.
그후 5.60년대는 전후회복이 시대에 가장 큰 목표였다. 이승만 독재 정권의 부정과 부패로 인하여 국민들의 삶은 피폐해져 갔었고 많은 사람들이 가난과 굶주림에서 고통을 당하는 시절이었다. 당시 조봉암 선생의 진보당과 4.19 에서도 이와 같은 일반 대중들의 삶의 문제 해결을 중요한 당면 과제로 내세웠던 것도 당시의 시대 상황을 반영한 것이었다.
그리고 7.80년대에서는 군사독재 정권이 가혹해지고 맹목적인 반공논리가 정권유지를 위한 수단이 되면서 민주화가 시대적 가치관이 됐다. 8.90년대 수평적 여야 정권교체를 실행하기 전에는 민주화가 시대정신이었다. 막상 김대중 정권이 출범하면서,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시대정신이 남북화해에 대한 정신으로 발전해 나갔다.
김대중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서 역사적인 6.15공동선언을 이끌어 내면서 지금의 시대 정신은 이와 같은 6.15공동선언을 통해서 형성된 민족 화해와 공동 번영의 기운을 확장시키고 이를 통한 평화적인 방법을 통한 통일된 민족국가 건설을 위해서 힘을 모아나가는 데에 있다. 이제야말로 해방 이후 실패한 평화적인 통일 민족 국가를 건설해나가 수 있는 기회를 한민족의 자주적인 힘으로 만들어 내었기 때문에 이를 힘있게 발전시켜나갈 수 있도록 모든 민족의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한다.
미국과 일본의 우익 세력들은 기본적으로 한반도가 분단되어서 남과 북을 적절하게 콘트롤 해나가는 것을 원하고 있다. 그러므로 미국과 일본의 우익 세력들은 한반도의 분단을 지속시키는 방향으로 정치력을 발휘할 것이므로 분단을 고착화시키려는 외부의 힘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한민족의 자주적인 힘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래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3단계 통일론에서 강조한 대로 1단계의 남북 연합 단계에 확고하게 진입해서 민족의 자주적인 힘으로 현재의 난국을 극복해나갈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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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역할을 강조하는 김삼웅 교수 © 대자보 |
▼ 대자보 : 25일이면 노무현 취임 1주년이 되는데 노대통령 1주년에 대해서 총평을 한다면?김삼웅 : 노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30% 초반이라고 보는데, 그보다는 더 주고 싶다. 그런데 민주당이 분당됨으로 해서 민주개혁 세력들의 힘이 분열된 것은 잘못된 일이었다.
우선 거대한 수구 야당이라는 정치적 환경과 수구언론에 비우호적인 환경속에서 노무현 대통령 아닌 어느 누구를 그 자리에 갔다 놓았어도 헤쳐 나가기 힘들다. 지극히 한계가 있었다.
거기에다가 북한과 미국과의 관계가 아주 어려웠던 상황임을 고려하면서 지난 1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다만 김대중 대통령이 어렵게 일구어논 민주세력을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으로 분열하게 한 점에 있어서 노무현 대통령이 책임이 있으므로 이 부분에 대해서는 비판받아야 한다.
지금 한국사회의 역사적 추동세력이 민주화 통일세력일 수밖에는 없는데 민주화와 통일 추동세력이 분열된 것에 대한 대통령의 역할과 책임이 소홀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만약 4.15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1당 및 과반수를 차지해서 역사 발전에 추동세력으로 된다면 모르지만 정통민주세력의 분열로 한나라당이 1당이 되든지 과반수를 차지해 내각제라든지 정치변화가 따른다면 열린우리당 창당 이유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될 수 밖에 없게 된다. 민주세력이 그 어려운 여건 속에서 16대 대통령을 뽑아준 것인데 정통민주세력의 분열은 노무현 정부에 큰 부담으로 남게 될 것이다. 대통령이 정치력을 발휘해서 연합공천이라도 해서 반한나라당 전선을 만들어 내야 하는데 지금은 시간적으로 많이 늦은 것 같다.
▼ 대자보 : 총선이후의 전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김삼웅 : 정신적인 여당이라고 자부하는 열린우리당이 최소한 수도권에서는 1당이 되고 부산 영남 반타작, 호남 반타작, 충청권을 포함 3지역에서 승리해야만 분당의 책임에서 그나마 자유로울 수 있게 될 것인데, 이것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만약 총선에서 민주개혁 세력들이 전체적으로 볼 때 16대 총선의 민주당보다 못한 결과를 얻었을 경우에는 분당 책임론이 나오게 되고, 이 문제에 있어서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대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게 된다.
이후 정국 운영은 과거사례를 보면 총선이후 유사한 당들은 통합이 된다. 이번 총선을 통해 한나라당도 교체, 일린우리당도 교체, 민주당 17대 의원도 괜찮을 것 같은데, 어느 당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전혀 판도는 달라진다. 3당이 정립됐을 경우, 선거과정에서 열린우리당이 민주당이 감정적으로 극단적으로 대립하게 되면 선거에서 낙선한 원외세력들이 작용을 해서 선거 이후에도 두 당의 통합이 쉽지 않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민주당 50, 열린우리당 50석 정도 되면, 원외 세력이 강해지면서 선거에서 진 세력들에게는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악’밖에 남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마도 두 당은 내각제 개헌, 분권형 책임총리제를 매개로 여러 가능성을 두고 정계개편을 시도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 대자보 : 대북송금 특검자들의 사면문제가 불거지고 있고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의 관계복원이 변수로 언급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한 견해는?김삼웅 : 우리나라 헌법에는 대통령은 평화통일에 대한 역사적인 책무가 있고, 국회의원도 조국의 평화통일을 위해서 공헌한다는 선언을 하게 되어 있다.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은 조국의 평화통일을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보면 국민의 정부가 남북 관계개선과 평화 통일을 위해서 통치 행위 차원에서 현대그룹의 '대북송금'을 허용한 것은 정당하다.
노태우 정부때 구 소련과 수교할 당시에 30억 달러를 지원한 적이 있었는데 이것을 문제삼는 경우는 없었다. 검찰이나 특검이 나서서 이런 국가간 문제에 있어서 실정법을 적용한 적은 없었다.
특검을 통해서 남북문제에 찬물을 끼얹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일이었다. 적대국가와의 관계에서도 핫라인이 있는데 하물며 동족끼리 한것을 가지고 실정법을 가지고 재단을 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 대자보: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는가?김삼웅 : 김영삼 총재는 4년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은 9년 모셨다. 두 분다 장점이 있고, 출신배경과 시대 인식에 대한 차이점도 있다.
김영삼 총재는 단순명쾌하면서도 용기가 있는 사람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대단히 사려가 깊고 철학적인 분이다.
밖에서 생각할 때는 대단히 래디칼(radical)하게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대단히 온건하고, 비폭력주의자이고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분이다. 그리고 섬세한 분이다.
김대중 만한 정치지도자가 앞으로 100년 이내에 한국인들이 배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앞으로 100년 이내에 김대중 만한 정치지도자가 나오기는 힘들 것이다. 구한말부터 나름대로 많은 인재들이 부상하고 침몰했는데, 철학 세계관 가치관이 다를 수 있지만, 김대중씨가 가지고 있는 철학, 세계관 학문적인 능력과 실천으로서 보여준 모습을 볼 때 한국근현대사 전체를 보더라도 김대중씨는 대단히 훌륭한 정치지도자로 평가받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 대자보 : 젊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김삼웅 : 함석헌 선생의 ‘뜻으로 보는 한국사’를 추천하고 싶다. 한때는 ‘뜻으로 보는 한국사’를 읽지 않는 사람에게는 1시간 이상 대화를 하지 않는다고 학생들에게 말했다. 적어도 대한민국의 젊은이라면 이 책은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백범일지' 역시 추천하고자 한다. 김구 선생은 참으로 존경할 만한 분이다.
▼ 대자보 : 선생은 '민주전선' 등 엄혹한 시기 야당 기관지를 만드는 데에 오랜 기간 동안 헌신하셨는데 어떠한 인연으로 그와 같은 활동을 하게 되었나?
김삼웅 : 60년대 중반에 사상계 신인논문상에 입선(논문명 : 공업개발 시대의 농촌문제)을 했다. 그 후 사상계가 박정권에 의해 문을 닫았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서 유진오 박사가 신민당 당수를 할 때, <민주전선>에 참여하게 되면서 당보를 만들게 됐다. 다른 사람들은 1-2달을 못 견디고 떠날만큼 당시 야당 당보를 만드는 일이라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힘든 일이었다. 그러다 80년 5.17 국보위에 위해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창작과 비평',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이 폐간됐다.
20년 동안 야당 기관지 '민주전선'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극소수의 사람이 했었다. 한 사람이 원고 청탁, 편집, 배포를 했다. 그러다가 쫒겨다니기도 하고, 구속, 압수수색, 고문을 당하면서 이 나라가 왜 저렇게 군사정권에 힘이 막강하고, 지식인들이 나약하고, 언론은 바른 소리를 내지 못하는가에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김지하 시인이 '오적'을 발표하고 그 내용에 대해서 한 페이지를 실었는데 중앙정보부에서 압수해 가고 하다보니 나중에 신문을 만들려고 하는데, 글을 써주는 사람이 없었다. 71년 6월 1일자에 함석헌 선생을 찾아가서 1페이지 인터뷰를 했고, 이병린·김재준 목사와 같이 '재야의 민주인사를 찾아서'의 시리즈로 민족 의식을 고취시키는 활동을 하였다. 그러한 과정을 보면서 언론인들의 곡필과 지식인들의 나약함에 한이 맺었다. 그러면서 남들이 하지 않으니 내가 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곡필사’, ‘변절자’도 쓰게 되었다.
[인터뷰 후기]
김 교수는 오랜 인터뷰에도 흐트러짐 없이 단아한 성품에 엄정한 자세를 유지하는 등 전형적인 선비의 풍모를 보여주셨다.
자택에 들어서면서 제일 놀란 것은 1만 7천권이나 되는 엄청난 분량의 서적이었다. 소장도서는 주로 한국사, 한국문학사, 사상사, 언론사 등 인문과학의 정수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었다.
김 교수는 사실 언론인이라기 보다는 학자가 더 잘 어울릴 분이시지만, 암울한 시대상황은 그를 '창밖의 창백한 지식인'으로 놔두지 않았다.
70년대부터 험난한 야당 기관지를 맡아 오면서 어느 누구보다 수구언론의 '곡필'과 권력의 수구정당의 추악한 이면을 파헤쳐 '곡필사'와 '변절자'라는 성과를 냈다. 그리고 그 뿌리가 '친일'문제의 미청산과 왜곡된 한국현대사에 있다는 것을 통감하고서는 친일파 연구에 몰두, 임종국 선생의 뒤를 이어 친일파 연구를 한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평생을 왜곡된 언론과 굴절된 역사를 바로잡는 험난한 일을 하시면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고 계시는 선생은 <대한매일> 주필을 거쳐 현재 성균관대 언론대학원에서 커뮤니케이션과 민족문화를 가르치고 있다.
(전) 민주전선
(전) 평민신문 주간
(전) 아태평화재단 기조실장
(전) 대한매일 주필
(현)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위원
(현) 제주 4.3희생자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위원회 위원,
(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자문위원
(현) 백범 김구선생 기념관 운영위원
(현) 민주공원건립 추진위원
(현) DJROAD 자문위원
(현) 친일파인명사전준비위원회 부위원장
(현) 광복회 이사
(현)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운영위원
(현) 독립기념관 이사 저서로는 <친일정치 백년사><통일론 수난사><한국 민주사상의 탐구>
<해방 후 양민 학살사><금서><한국필화사><곡필로 본 해방 50년><한국현대사 바로잡기><겨레유산이야기><보는 사람 없어도 달은 거기 있는가><왜곡과 진실의 역사><일제는 조선을 얼마나 망쳤을까><서대문형무소 근현대사><백범 김구 전집><박은식. 양기탁 전집>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