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로우 선언 - 네이버로부터 이상한 메일이 왔다. 심심풀이로 가입한 점술 사이트에서 내보내는 월간운세정보인 줄 알고 지워버리려던 찰나 발신지가 낯선 데임을 발견했다. 네이버 고객센터에서 온 편지였다. 게시물을 임시 중단시킨다고.
살펴보니 ‘작년 봄’에 썼던 글 두 개가 명예훼손에 해당되어 임시 게시중단 조치되었다는 거였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의2(정보의 삭제요청 등)의 법령을 준수하기 위한 조치”라나.
좀 거시기한 일이 네이버에 삭제를 요청한 그 신문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목소리로 표현과 언론의 자유를 주장하는 곳이란 것이다. 오늘자 지면에서도 나와 아주 약간의 면식이 있는 어느 유명 사립대 로스쿨 교수의 기명칼럼을 빌려 인터넷 실명제 폐지를 역설하더라. 솔직히 지금까지는 실명제에 대해 확실한 찬반 입장을 정하지 못했는데 이참에 완전한 익명성 보장을 요구하는 걸로 생각을 정리해야 할 듯하다. 현재처럼 정정당당하게 이름 석 자 내걸고 의견 펴다간 매일 법원을 들락날락할 것 같기 때문이다. 내일부터 특정 진보신문사를 혹독하게 비판하는 익명의 글들은 모두 나의 소행으로 알아주시기 바란다. 믿거나 말거나.
신문사한테 법으로 단속당한 게 이번이 세 번째다. (방송사인 SBS까지 포함하면 네 번째로구나….) 그 중에는 검찰청에 소환돼 조사받다가 검사실에서 긴급 체포된 험한 경우도 있었다. 나를 향해 철퇴를 휘두르거나 휘두르겠다고 으름장 놓은 신문사들에는 보수와 중도와 진보가 골고루 망라돼 있다. 누구처럼 ‘히말라야 16좌 완등’의 위업을 꿈꾸는 것도 아닌 바에야 우리나라 유수의 신문들과 줄줄이 티격태격하면 결과적으로 나만 피곤해짐을 나 자신이 너무나 잘 안다. 꼬우면 출세하라는 말이 딱 맞다. 변변한 언론매체 하나 못 차리고 이곳저곳 웹사이트들을 전전하는 내가 등신이다.
그래서 이 건과 관련해서는 깨끗이 버로우 타기로 결정했다. 이른바 ‘놈현 관장사’ 기사 소동으로 말미암아 종로에서 뺨 맞고서 어딘가 분풀이할 눈 흘길 한강이 필요했다면 이 한 몸 기꺼이 대주겠다. 그 대가로 얻은 교훈은 정부 없는 신문을 선택하느니 신문 없는 정부를 선택하는 편이 차라리 낫다는 것이다. 자기는 남 욕해도, 남은 자기 욕하는 거 절대 참지 못하는 것은 보수나 진보나 모든 기자들은 조선에서는 똑같이 한겨레다.
- 영패가 뭐길래 -
“오늘날의 시장에서 우리는 유해한 속성을 박탈당한 일련의 제품들을 본다. 카페인 없는 커피, 지방 없는 크림, 알코올 없는 맥주…. ‘가상현실’은 그저 그 실제를 박탈당한 제품을 제공하는 이런 과정을 일반화활 뿐이다. 이것은 그 실체가 박탈된, ‘실재’의 단단한 저항적 핵이 박탈된 현실 자체를 제공한다. 카페인 없는 커피가 진짜 커피가 아니면서도 진짜 커피 같은 냄새와 맛이 나는 것처럼, 가상현실도 현실이 아니면서 현실로서 경험된다.” - ‘지젝이 만난 레닌’ 497페이지
내 입장에서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본다. 한겨레신문과의 법정소송에서 패배한 나는 아마 500만 원 가량의 벌금을 물게 될 것이다. 덤으로 전과도 하나 달고. 벌금은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누구처럼 인터넷 앵벌이 한 번 돌면 힘들지 않게 모금할 수 있다. 전과 14범도 대통령에 당선되는 세상이니 별 하나 단다고 앞으로 사는 데 별 지장은 없다. 이력서 내고 취직하는 정상적 삶의 경로는 코스닥 상장 앞둔 벤처회사에 사장 만류 무릅쓰고 사표 제출할 때인 지금으로부터 8년 전에 일찌감치 포기했다.
하여 난 걱정보다는 의문에 휩싸여 있다. 사이버공간에서는 태곳적이라고 할 만한 2009년 4월에 썼던 글을 느지막이 문제 삼는 의도가 무엇일지 몹시 궁금한 탓이다. 그 무렵 법률적으로 타격했다면 나는 엄청 불리하고 곤혹스러운 처지로 몰렸을 것이 확실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정국에서 나를 조갑제나, 지만원, 또는 B모 군과 한통속으로 묶어세우기는 별로 어렵지 않았을 테니까. 강남부자 일망타진 주장하고,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 강력 반대하며, 삼성그룹 이건희 씨의 사법처리를 요구하는 수구꼴통 보셨냐는 나의 항변은 추모열기 속의 법원에서 최소한의 정상참작조차 거두지 못했으리라.
나는 영남패권주의에 부역하는 듯한 한겨레신문의 반호남적 스탠스를 지속적으로 비판해왔다. 그와 같은 태도가 신문사의 논조를 좌우하는 편집국과 논설위원실과 정치부에 짙게 깔려 있는 것 같은 모습을 도저히 묵과할 수가 없었다. 특히 작년 4월 정동영 씨의 민주당 탈당과 전주 출마 과정에서 한겨레신문이 드러낸 형평성을 상실한 형편없는 이중 잣대에는 정말로 분통이 터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한겨레신문의 중견기자들을 당사자들이 인신모독이라고 느낄 정도로 맹렬히 성토했는데 이게 뒤늦게 사단을 빚은 것이다.
핑계 비슷하게 항변하자면 나도 남들한테 무지하게 씹힌다. 내가 작정하고서 법으로 걸면 웬만한 크기의 유치장은 너끈히 채울 수 있다. 그러나 경찰서나 검찰청 문을 두드리면 절대 안 되는 이유는 내가 남에게 씹히는 것은 내가 남들을 씹어대는 공정거래의 비용이자 대가이기 때문이다. 이게 싫거나 겁나면 키보드에서 손 떼고 그야말로 장사나 하는 게 상책이다.
나와 한겨레신문 기자들, 또는 한겨레의 고문변호사들이 법원에서 명예훼손 재판으로 마주치면 기묘하고 엽기적인 희극적 광경이 연출될 것이다. 나는 자신을 변호하는 증거자료로 한겨레신문에 무수하게 실린 ‘표현과 언론의 자유’를 옹호하는 칼럼들을 무더기로 갈무리해 들고 나올 터이고, 한겨레 측은 조중동 지면서 수시로 접할 수 있는 ‘개인의 명예와 인격권’을 중시하는 취지의 변론을 일관되게 개진하리라.
정당한 비판과 부당한 인신공격은 사실상 그 경계가 모호하다. 인터넷 시대에 접어든 이후에는 경계가 모호한 것을 넘어 거의 일체화 되다시피 하였다. 부당한 인신공격이 깨끗하게 거세된 비판은 슬로베니아 출신의 좌파 철학자인 슬라보예 지젝이 책에서 지적한 바와 같은 그 실체가 박탈된, ‘실재’의 단단한 저항적 핵이 박탈된 무기력한 가상비판에 불과할 뿐이다.
나는 2008년 7월의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한겨레신문이 사설로 정세균 씨를 노골적으로 지지하는 광경을 보고 한겨레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일말의 기대와 신뢰마저 완전히 접었다. 정세균은 한미FTA 체결과 쌍용차의 상하이자동차로의 매각을 주도할 만큼 대단히 보수적이고 우경화된 인물인 까닭에서였다. 한겨레의 공공연한 지원을 받으며 당대표로 선출된 그의 지시 하에 만들어진 소위 ‘뉴민주당 플랜’의 초안에서는 심지어 ‘통일’이라는 단어가 아예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을 지경이었다.
고로 한겨레가 나를 법으로 손봐주는 사태를 하등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어차피 남이다. 나도 그들을 사랑하지 않는데 그들이 나를 사랑하기를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하는 얘기다. 영포회인지 쥐포회인지 하는 향우회 빙자한 이상한 양아치 집단에 대한 한겨레의 비판적 기사들은 그 강도가 아무리 격렬해도 결국에는 유해한 속성을 박탈당한, 즉 날카로운 저항적 핵이 제거된 가상비판에 지나지 않는다. 이명박 정권에 겨눠진 한겨레신문의 탄핵에는 반동적인 영남패권주의에 관한 진정한 문제의식이 근본적으로 결여되어 있다. 영패가 빠진 반MB는 카페인 없는 커피, 지방 없는 크림, 알코올 없는 맥주일 따름이다. 비판이 아니면서도 비판으로서 단지 경험된다고 해석해야 옳다.
영남패권을 비판하는 데서는 카페인 없는 커피, 지방 없는 크림, 알코올 없는 맥주를 내놨던 한겨레신문이 나를 위해선 카페인 많은, 지방질 가득한, 알코올도수 높은 메뉴를 선사해줬다. 감사한 마음으로 꾸역꾸역 잘 먹겠다. 그리고 이 후덕한 대접 평생 잊지 않겠다. 기사가 아니라 고소장 써대는 일이 더 즐겁고 보람찰 언론계 종사자가 B군만은 아닌 모양이었구나. - 홍세화, 박원순, 이외수, 진중권 外 -
한겨레 고문변호사 : 증인들은 “한겨레신문의 기자들이 영남패권주의에 찌든 역사의 쓰레기들”이라는 피고의 터무니없는 주장에 동의하십니까?
홍세화, 박원순, 이외수, 진중권, 강준만, 강금실, 김미화, 김선주, 고종석, 김형태, 오창익, 박래군, 김어준, 박노자, 우석훈, 박경신, 최문순, 정연주, 김제동, 손석춘, 김규항 조국, 박대성(미네르바), PD수첩 제작진 : (일제히) 아니요!
내 변호사 (없으면 내가 직접) : 증인들은 “한겨레신문 기자들이 영남패권주의에 찌든 역사의 쓰레기들”이라고 주장할 ‘표현과 언론의 자유’가 피고에게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홍세화, 박원순, 이외수, 진중권, 강준만, 강금실, 김미화, 김선주, 고종석, 김형태, 오창익, 박래군, 김어준, 박노자, 우석훈, 박경신, 최문순, 정연주, 김제동, 손석춘, 김규항 조국, 박대성(미네르바), PD수첩 제작진 : ……….
내 변호사 (없으면 내가 직접) : “나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그 의견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면, 나는 당신의 말할 자유를 위해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프랑스의 계몽사상가 볼테르가 이야기했던 내용입니다. 볼테르의 이 말은 누군가 한겨레신문과 그 기자들을 비판할 경우에도 동등하게 적용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판사 : 전기통신기본법과 명예훼손법 위반, 그리고 허위사실 유포죄로 피고인에게 벌금 500만 원을 선고합니다. 피고가 10여 년 전에 J일보에게도 고소를 당했던 전례가 있는데다가 개전의 정이 전혀 보이지 않음을 참작할 때 그 죄질이 몹시 불량하므로 엄벌에 처하는 것이 불가피함을 밝힙니다.
재판에서 패소할 건 명약관화하지만 거기에 더하여 위에서 거명된 우리나라의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유명 인사들에게 본의 아니게 톡톡히 망신을 줘야 하는 것이 상당히 찜찜하다. 어쩌겠는가? 230여 년 전에 무덤 속으로 들어간 볼테르를 증인으로 신청하기는 불가능한 현실이니 한국사회에서 가장 소리 높여 사상과 양심의 자유, 그리고 표현과 언론의 권리를 말씀하셔온 분들을 대타로 데려올 수밖에. 문제는 그분들이 마치 사전에 입을 맞춘 듯이 법정에서 묵비권을 행사할 확률이 굉장히 높다는 점이다. 아예 출석을 거부하던지.
조선일보를 상대로 사상과 양심의 자유, 표현과 언론의 권리를 위해 싸우면 별다른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다. 상대가 한겨레신문이라면? 파장이 좀 커질 것 같다. 원래 뉴스란 것이 그렇다. 개가 사람을 물면 보도할 가치가 없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대중의 이목과 관심을 끌기 마련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어쩌면 사람이 개를 무는 희한한 사건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 한겨레여, 나를 능욕하라 -
조선일보, 한국일보, 한겨레신문. PC통신에서 인터넷으로 갈아탄 말을 이후에 마찰을 겪었던 신문사들 이름을 시간순서대로 나열해봤다. 이러다가는 나와 관련된 기록들이 우리 집안 족보 대신에 엉뚱하게 신문박물관으로 보내질지도 모르겠다.
현행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 2항(정보의 삭제요청)은 이용자의 명예를 훼손한 게시물을 포털이 30일 동안 임시조치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단다. 여기서의 이용자는 글을 올린 사람이 아니라 글을 쓴 사람이 비판한 개인이나 단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내가 딱 여기에 걸렸다. 네이버 고객센터에서 받은 메일에는 그와 같은 임시조치(게시물 차단조치)를 신청한 사람이 명시돼 있다. 임시조치 신청자의 신원을 글을 게시한 사람에게 통보하도록 법령으로 규정되어 있는지는 모르겠다. 별로 알고 싶지도 않고. 글 쓰는 인간이 망가지는 경로에는 세 가지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가 공부 안 할 때, 두 번째가 스스로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할 때, 세 번째가 사법고시생도 아닌 주제에 육법전서 가까이하게 될 때다.
지난 총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어느 조선일보 기자는 내 실명을 거론하면서 나를 참여정부 청와대 참모들한테 술이나 얻어 마시고 다니는 한심한 인간으로 묘사하였다. 현재 한국일보의 논설실을 책임지고 있는 모 중견기자가 나에게 가한 디스는 참으로 아햏햏하기 짝이 없었다. ‘공희준이라는 이’. 공희준이면 공희준이지 공희준이라는 이는 또 뭐란 말인가? 이왕이면 화끈하게 ‘공듣보’라고 불러주시던가.
그럼에도 그들에게는 별다른 억하심정이 남아 있지 않다. 글로 당하자 똑같이 글로 응수했으니까. 반면, 한겨레신문은 법으로 치고 들어올 기세다. 내가 그동안 한겨레를 독하고 질기게 비판해댄 것에 대해 쌓인 불편한 감정이 마침내 폭발한 모양이다.
허나 기분이 나쁘다고 하여 법이나 그와 유사한 ‘백도어’에 의지하면 그걸로 판이 깨진 것이다. 내가 한겨레에 아무리 불만스러운 기자들이 많아도 사장실로 “쟤 좀 빨리 잘라주세요!”라고 투서나 진정서는 안 보내는 이유다.
인터넷에서의 법리적 분쟁에 관한 문제라면 대한민국에서 제일로 정통하고 전문적일 젊은 대학교수님께 자문을 구해봤다. 임시조치로 인해 글이 삭제당한 진중권 씨가 다음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있단다. 어디를 둘러봐도 포털사이트의 게시물 일방삭제에 대한 문제제기는 진보진영 사람들의 전유물이다. 즉 자기가 진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포털사이트 관리자들에게 법령을 근거로 맘에 들지 않는 글들 지워달라고 요구하지는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가 있겠다.
‘식스 센스’와 ‘디 아더스’를 능가하는 반전의 묘미를 교수님께 맛보여드렸다. “임시조치 요청한 당사자가 한겨레신문 논설위원인데요.” 간단한 문자메시지의 교환만으로 이뤄진 짧은 대화일지언정 전화가 저편의 그가 얼마나 황당하고 뜨악한 표정을 짓고 있을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나는 네이버의 담당 직원들에게는 전혀 불만이 없다. 중앙일간지 논설위원쯤 되는 양반으로부터 갑자기 연락이 왔다고 가정해봐라. 즉시 오금이 저려온다. 해당 언론매체가 진보인지 보수인지는 특별한 차이가 없다. 제아무리 종이신문의 영향력이 과거와 견주어 떨어졌어도 기자들이 평범한 ‘양민’들에게 주는 공포심과 위압감은 여전히 그대로다.
한겨레신문은 차라리 떳떳하게 지면에서 나를 능욕해라. 노량진에 공희준이라는 녀석이 하나 사는데 이놈이 세상에 둘도 없는 악질 난닝구이자 천하의 망나니라고 1면에 사진까지 곁들여 큼지막하게 보도해주시라. 오히려 그게 대한민국 유일의 진보적 정론지를 표방하는 한겨레다운 처사일 것이다.
- 홍준표와 이광재를 트레이드하자 -
며칠 전 뜻밖의 장소에서 대학교 같은 과 동기동창생을 우연히 만났다. 동창은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홍준표 씨가 어떻게 될 것 같으냐고 묻더라. 그래서 난 청와대 의중에 어긋나는 후보자가 집권당 당권 잡는 경우 구경한 적 있냐며 안상수 씨가 승리할 거라고 응답해줬다.
내가 한나라당 정치인 중에서 비교적 호감을 가지고 바라보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 가운데 한 명이 홍준표다. 구체적 내용이 뭐건 그에게는 국민의 답답한 가슴을 시원하게 뻥 뚫어주는 재주가 있다. 서울 강북지역인 동대문에서 계속 금배지를 달아온 것이 우연과 재수 덕분만은 아니다. 대신에 왕년의 학생운동 스타 허인회 씨가 완전히 듣보잡 수준으로 전락했지만.
홍준표 씨가 무늬만 재외동포들 군대 보내자는 법안을 발의했을 적에 당시의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법의 디테일을 문제 삼았다. 참으로 무식한 짓거리였다. 디테일을 다루는 일은 관료들이 수행할 역할이다. 정치인은 큰 줄기만 잘 잡아주면 된다. 청와대에서 삭스핀 먹고 ‘임을 위한 행진곡’이나 부를 줄 알았지 뭐 하나 제대로 할 줄을 몰랐던 부류가 386 모사꾼들이었다. 이번에 운발로 지방자치단체장으로 대거 당선됐지만 장래는 불투명하다.
나는 6ㆍ2 지방선거에서 선출된 야당 자치단체장들의 성패는 한 달이면 결판날 거라고 예측한 바가 있다. 한 달이 조금 지난 지금 내린 결론은 싹수가 노랗다는 거다. 전남대 김상봉 교수의 칼럼을 인용해보겠다. 칼럼이 실린 경향신문은 한겨레처럼 나를 향해 암수를 구사하지는 않을 거라 믿기에.
“이건희 회장이 직무정지 상태에 있는 이광재 강원도지사를 승지원으로 초청하여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는 소식이다. 이 자리에는 이광재 지사뿐만 아니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및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을 맡고 있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등 여러 명이 참석했다 한다. 만남의 이유는 동계올림픽 유치라고 하지만 도지사에 당선되고도 비리혐의로 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아 직무정지 상태에 있는 이광재 지사에게 절묘한 시점에 우아하게 힘을 실어주는 ‘회장님’의 정치력은 남다른 데가 있다. 우리는 이제 ‘이명박 정부를 심판하겠다는 도민의 의지 표현으로’ 도지사에 선출되고도 정상적으로 집무에 임하지 못하고 있는 이광재 지사가 회장님의 음덕으로 직무정지에서 벗어나는 날을 조용히 기다리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김 교수의 칼럼이 아니었다면 나는 엽기적으로 유권자들 뒤통수치는 이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몰랐을 게다. 경향과 프레시안이 없다면 더는 들을 수 없을 중요하고 의미심장한 소식이다. 어느 면에서는 대통령 이명박 씨도 약간은 억울한 구석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른바 반MB 구도로 말미암아 한국사회의 다른 실력자들이 들어야 마땅할 비난마저 혼자서 다 뒤집어쓰니 말이다.
참여정부의 잔당들처럼 삼성 문제에 의도적으로 눈감고 있는 개인과 세력에게 이명박은 편리한 알리바이를 제공하는 셈이다. 김용철 변호사의 인터뷰와 노무현 찬양의 글을 나란히 올려놓는 몇몇 자칭 진보적 웹사이트들을 방문할 적마다 나는 오른손에 든 성경을 열심히 읽으면서도 왼손으로는 수음을 헉헉대면서 하고 있는 전형적인 사이코패스들의 집단 서식처에 왔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렇다. 이광재 씨를 민주당에 계속 잡아두면 당도 불편할뿐더러 이광재 본인 또한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걷는 듯싶은 불안한 심정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가 강원도시자로서 품은 포부와 비전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그를 자유롭게 놓아주자. 이광재 씨가 김상봉 교수를 비롯한 진보적 지식인들로부터 사갈시되는 이유는 순전히 민주당에 몸담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으로 당적을 옮기면 더 이상 왈가왈부할 시빗거리가 사라진다.
삼성 총수의 은총에다가 여당 소속이라는 방패막이까지 보태진다면 그는 법원에서 직무를 재개할 유리한 판결을 받아낼 가능성이 크다. 그럼 강원도의 행정공백 사태도 자연스럽게 종식되고,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작업에도 탄력이 붙으며, 한나라당으로서는 광역자치단체장 한 자리가 늘어나고, 민주당은 삼성당이나 이건희당이라는 구설수에 휩싸일 여지가 원천적으로 제거될 터이니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임도 보고 뽕도 따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가 아니겠는가?
모든 트레이드에는 보상선수가 필요하다. 민주당은 홍준표를 보상선수로 요구해야 옳다. 홍준표 씨한테 솔직히 물어보자. 한나라당 주류가 당신을 현재보다 더욱 빛나는 자리로 올려줄 것 같은가? 그들이 보기에는 노무현이나 홍준표가 도낀개낀이다. 한나라당 안의 스펙 빵빵한 영감님들께서 생각하기에 홍준표는 우리네 대다수 서민대중과 마찬가지로 근본 없는 천것에 불과하다.
홍준표를 영입하기에 앞서 반드시 충족돼야 할 한 가지 전제조건이 존재한다. 홍준표 의원이 서민적 이미지로 얻는 게 열이면 그의 뼛속깊이 배어 있는 영남패권주의로 잃는 것이 백이다. 홍준표 씨는 대한민국은 진보든 보수든 영원히 경상도 출신들만이 정권을 잡고 흔드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그릇된 사이비 인종주의부터 탈피하고 오시기 바란다. 그러한 정화절차를 성공적으로 밟아간다면 말로만 호남인이라고 해야 어울릴 정세균 씨보다는 천배는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훌륭한 인물이 되리라.
홍준표-이광재 맞트레이드가 성사되는 즉시 이를 규탄하는 무수한 글들이 사방팔방 난무할 전망이다. 이광재 씨와 홍준표 씨 두 사람에게 약속하는 바이다. 최소한 포털사이트에 게시된 비판적 성격의 글만큼은 내가 고객센터의 관리자들에게 연락을 넣어서 글의 본문이 블라인드 처리되어 접근이 금지되게끔 만들어버리는 ‘임시조치’를 취하도록 하겠다. 변○○가 다음서 진중권에게 했듯이. 한겨레신문 모 논설위원이 네이버에서 나한테 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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