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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의 선과 악, '악'은 없어야 할 존재인가?
[이종우의 우문현답] 시공을 초월한 보편적인 공동의 선은 불가능해
 
이종우   기사입력  2009/05/16 [09:47]
[우문]
 
사회에서 자주 언급하는 단어 중 하나로 '공동선', '공동악'이란 게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공동선'은 독려의 대상이고, '공동악'은 지탄받아 마땅한 대상으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이러한 '공동선·악'은 인간이 상생하기 위해 여러 세대에 걸쳐 시행착오를 통해 형성된 것이란 견해가 있습니다. 이런 시각에선 '공동악'이 인간이 상생하는 데 불편을 끼치는 개념으로서, '악 자체'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 예로 대부분의 문화권에서는 사람을 먹는 것은 '악'이지만 식인종 문화권에서는 악이 아닌 하나의 관습인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시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도우리 단대신문 기자, 화학공학과 1학년)

[답변]
 
여러 사람이 모여서 사는 공동체에서는 질서가 필요한데 그것을 위하여 나타난 것이 바로 공동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와 상대적인 것이 공동악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공동체마다 다르게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 예로서 유교문화의 영향을 받은 공동체에서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부모는 자식에게 자애를 베푸는 것이 공동선입니다. 효도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이지만 부모를 직접 모시면서 좋아하는 음식과 옷을 제공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입니다. 그것이 공동선이지만 그와 반대행동은 공동악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보편적인 선이라고 단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보게타이 사람들은 부모를 죽이고 먹는 것이 아름다운 죽음이라고 합니다. 또한 에스키모는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사냥할 때 아버지가 부상당하면 아들이 순록의 힘줄로 아버지의 목을 졸라 죽이는 것이 훌륭한 의무라고 합니다.'(이엽, 악에 대한 윤리학적 이해, 악이란 무엇인가 도서출판 창, 1992년, 90-93쪽) 부모를 죽이는 행위가 그들에게는 공동선이고 그 반대적인 행위는 공동악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교문화권에서는 사보게타이와 에스키모인들의 행위는 공동악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보게타이와 에스키모에서는 유교문화권에서의 행위가 오히려 공동악이 될 수 있습니다. 이로 미루어 보았을 때 유교문화권에서 행해지고 있는 효도방법이 반드시 보편적인 공동선이라고 단정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보게타이와 에스키모에서 하는 행동이 반드시 공동악이라고 단정하기가 어렵게 되겠죠. 이처럼 공동선과 공동악은 공동체마다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간과 공간을 불문하고 통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공동선이 있는지가 문제입니다. 위와 같은 사례를 본다면 보편적인 공동선은 불가능하겠지요. 그러나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행동에 대하여 공동선 또는 공동악이라고 판단하기 보다 그 마음으로서 판단한다면 보편적인 공동선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부모를 모시면서 좋아하는 음식과 옷을 제공한다고 할지라도 진심으로 위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을 공동선이라고 하기 어렵겠죠. 반면에 사보게타이와 에스키모에서와 부모를 죽인다고 할지라도 진심으로 부모를 위한 것이라면 공동선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여하에 따라 공동선 또는 공동악이라고 판단하기 보다 마음을 두고 판단한다면 그것이 바로 보편적인 공동선과 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종우, 성균관대 유학동양학부 강사

이 글은 단대신문 5월12일자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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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5/16 [09:4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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