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자신을 형성하는 존재, 외모와 내면의 가치
[이종우의 우문현답] 외모는 마음이 표현된 것임을 깨달아야
 
이종우   기사입력  2009/04/11 [14:45]
[우문]
 
보통 지성인들 사이에선 외면보다는 내면의 가치를 더 중요시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외면의 모습으로 누가 내 어머니이고, 내 친구이고, 내 애인인지를 구분합니다. 또한 우리는 사람들 간의 상호 관계에서 우리의 모습을 형성하는 존재, 즉 외부의 잣대에 따라 나 자신의 모습을 바꾸기도 하는 존재입니다. ‘외면’에 대해 교수님의 생각은 어떠하신지 알고 싶습니다. (도우리, 단대신문기자, 화학공학과 1학년)

[답변]
 
다른 사람이 나를 대할 때 주로 외면을 보고 상대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외면은 내면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내면 즉 마음이 외면에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외면 즉 외모도 다르게 보여질 것입니다. 그 예로써 윤리적인 마음을 갖게 되면 외모도 그렇게 보여지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송나라 때 성리학의 집대성자 주희는 “마음이 몸을 주재한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인간 모두에게 해당되는 보편적인 것이라기 보다 선비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육체적인 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몸이 마음을 주재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몸이 피곤하면 윤리적인 마음을 갖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외면이 내면을 지배할 수도 있습니다. 그 예로써 남들로부터 못생겼다는 말을 듣고 성형수술을 했다면 그로 인하여 내면 즉 마음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전보다 아름다워졌다는 생각 때문에 자신감이 생기겠죠. 이 때문에 타인으로부터 호감을 갖게 됩니다. 물론 지나친 자신감으로 인하여 비호감을 갖게 될 수도 있겠죠. 또한 성형수술 전에 자연스러운 외모였으나 그 후에 부자연스러움 때문에 비호감을 가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름다운 외모를 갖는다는 것은 누구든지 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름다움이란 상대적인 것이 문제입니다. 나의 곁에 있는 친구가 나를 보았을 때 아름답다고 생각할지라도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보편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게 되겠죠. 그러한 보편적인 아름다움은 보편적인 윤리적 선으로부터 나온다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내면 즉 마음 속에 보편으로서의 윤리적인 선한 생각을 한다면 그것이 외모로 나타나기 때문에 그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 생활에서 흔하게 하는 말인 “얼굴 보다 마음이 고와야 한다”라는 것이 이에 해당됩니다. 이 말은 윤리로서의 선한 생각을 하는 것이 아름답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윤리적 선이 곧 아름다운 것으로서 선과 미의 일치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윤리적 선은 공동체의 질서를 위하여 나타나기 때문에 자연이라기 보다 인위적인 성향이 강한 반면에 미를 추구하는 것은 원초적인 욕구이기 때문에 자연적인 성향이 강합니다. 이 때문에 양자의 일치가 쉽지 않습니다. 더욱이 보편적 선이 성립할 수 있는지도 불확실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와 다른 공동체의 선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결국 나와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 즉 가족 또는 학교, 직장으로부터 아름답다고 인정 받는 중요합니다. 그것은 반드시 외면을 보고 그렇게 인정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내면의 아름다움을 느끼면서 그러한 생각을 할 것입니다.
 
내면의 아름다움은 보편으로서의 윤리적인 선을 생각함으로부터 나오기도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 않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을 때 그로부터 아름다움을 느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이 외면에 나타나게 되고 그로부터 아름다움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물론 최선과 집착은 구분해야 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면서 지나친 대가를 바란다면 집착이 될 수 있습니다. 반면에 그렇지 않고 열심히 한다면 최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내면과 외면은 서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외면이 내면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내면의 마음이 외면 즉 외모에 주는 영향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균관대 유학동양학부 강사 이종우 
(이 기사는 3월7일 단대신문에 실렸습니다)
국민이 나라의 주인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9/04/11 [14:45]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