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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노무현' 고건, 또다시 인물 올인인가
고건을 소실점으로 한 정계개편론 아닌 진보정당과 정책정치 생각해야
 
황진태   기사입력  2006/09/30 [20:16]
한동안 잠잠했던 기성정당들 간에 정계개편론이란 두더지가 다시 고개를 슬며시 들고 있다.
 
한국정치에서 정계개편론이라는 단어에 결코 긍정적인 의미가 부과될 수 없다. 정계개편론에 대한 대체적인 언론의 태도는 월드컵 중계에서 배운 듯한 스포츠중계식의 흥미위주 보도로 정책정치의 판과 대립각을 세우기보다는 시뮬레이션 게임인 삼국지에 나오는 인물들을 본뜬 '유사(pseudo) 삼고초려'로 덧칠하면서 여론을 ‘파블로프의 개’로 착각하는지 흥미와 재미를 유권자들에게 선사, 자극시키고 있다.
 
한국정치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없는 정계개편론 출몰을 문제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면 경향신문 9월 28일치에 실린 기사들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경향신문의 역사적인 코너라고 할 수 있는 여적(餘滴)에는 양권모 논설위원의 ‘정계개편론’이라는 글이 실렸다. 작금의 정계개편론에 대한 짧지만 굵은 메시지를 잘 농축시켰다.
 
“작금의 정계개편론은 또한 예전에 비해 훨씬 염치가 없다. 정당의 대표와 대선주자, 중진·초선 가릴 것 없이 자기 정당을 허물고 없애자는 얘기를 대놓고 주창한다. 스스로 깨고 나온 정당과 다시 합치자, 지난 정권에서 그토록 싸웠던 정당과 공조하자는 주장을 거리낌 없이 말한다. … 한국 정당의 평균 나이는 3.2년이다. … 이런저런 ‘연합’이라는 것들의 거개는 결국 호남과 충청, 영남과 호남, 범서부, 반영남 결집 같은 지역주의에 기댄 득표 계산의 화장술일 뿐이다. 분명 퇴행이다.”
 
양권모의 지적에 동의를 표한다. 하지만 왜 다음과 같은 맺음말로 끝내야만 하는 가에 대해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 퇴행의 판에 분연히 맞서는 사람(세력) 하나 없이, 저마다 경쟁적으로 뛰쳐들고 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21세기 한국정치의 자화상이다.”
 
양권모는 왜 이 상황에서 탈출할 수 있는 구원투수가 없다고 보는 것일까. ‘지역주의에 기댄 득표 계산의 화장술’을 지우기 위하여 분투한 민주노동당의 장정을 무시하더라도 존재까지 없는 듯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대근 기자의 진보정당 빠진 야당관(觀)
 
이러한 양권모의 진보정당에 대한 맹점은 이대근 기자의 칼럼에서 보다 확고히 드러난다.
 
 ‘‘호모루덴스’ 한나라당‘이라는 제목의 기명칼럼에서 열린우리당의 실정은 다음 대선에서 심판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조로 시작한 그는 “민주정당이라면 깨끗이 정권을 넘겨줄 준비를 해야 한다. 지금 야당으로의 정권교체보다 실패한 정권의 재집권이 더 나을 이유는 별로 없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여당이 못할 때 야당이 그 바통을 이어받아야 하는데 그럴 야당이 없는 것이다.”고 짐짓 ‘쿨’하게 말한다. 다시 문구를 음미해보자. '그럴 야당이 없는 것이다.’
 
이대근 기자의 눈에 야당은 한나라당만 있고 진보정당은 안중에도 없다. 칼럼의 시작은 한나라당의 분투에 열린우리당이 자극을 받아야 한다지만 맺음말을 “여당은 매우 짧은 결정적인 시기에 사람들을 깜빡 속이는 천재적 재능이 있다. 한나라당은 그런 것도 없지 않은가.”라면서 기자가 보기에는 겉은 양비론적이지만 그 이면에는 열린우리당에 힘을 실어주는 칼럼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이대근의 이러한 진보정당에 대한 인식의 맹점에 대한 아쉬움은 28일치에 실린 경향신문 창사 60돌 기념으로 진행된 고려대 아세아연구소장 최장집 교수의 인터뷰가 실렸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최장집의 몇 가지 발언을 인용해봄으로서 문제점은 자연히 드러난다.
 
“기존 여당이 국민들의 기대와 신망을 잃어버린 상황에서 대선에 임하게 되었을 때 누군가 국민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새로운 인물을 찾게 됐죠. 따라서 정당의 중심에서 지도자를 선출하는 게 아니라 변방에서 뭔가 기대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상대적으로 미지의 인물을 선정하는 결과를 낳았죠. 그게 바로 노무현 대통령입니다. 한국 정당체제의 제도화 수준이 워낙 낮았기 때문에, 예측가능한 대통령이 나오지 못했습니다. 정당이 제대로 발전하지 못한 상태에서 선거에서의 기대와 정부에 대한 실망이 되풀이되는 현상이 아닌가 합니다.”
 
“대연정은 기본적으로 대통령이 민주정치의 기본가치를 부정한 겁니다. 정당이란 게 차이를 대표하는 것이고 좁게는 자신을 지지해준 지지자, 넓게는 스스로의 정당을 책임짐으로써 국민 전체를 책임지는 게 아니겠습니까.”
 
인터뷰 내용은 민주주의에 있어서 정당기능의 강조와 인물중심 정치에 대한 경고, 그간 저서와 강연에서 최장집이 재차 말했던 동어반복에 불과하지만 최장집 인터뷰를 맡았던 이대근 기자가 인터뷰 기사가 실린 당일 치 지면에 기고한 기명칼럼에서 드러난 진보정당 없는 야당관(觀), 기성정당 간의 그리고 인물중심의 흥행몰이 위주 정치칼럼의 한계, 결정적으로 현 정권이 무능력 판정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열린우리당에 힘을 실어주는 암묵적 논조까지 이대근 기자를 비롯한 경향신문에 아쉬울 수밖에 없다. 경향신문 창간 60돌을 맞아 최장집 교수가 인터뷰에서 말했던 다음과 같은 발언을 곰곰이 반추했으면 한다.
 
“창간 60년이라니까 경향신문이 한국민주주의를 위해 한 역할이 생각납니다. 이승만 정권에 맞서다 정간돼 큰 정치적 파장이 있었던 바로 ‘1959년 경향신문 폐간 사건’이죠. 50년 전 경향신문은 한국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신문이었습니다. 경향신문이 더 잘 돼서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더욱 기여했으면 좋겠어요.”
 
여기서 최장집이 강조한 ‘민주주의’는 기성정당 간의 국회에서의 정치게임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필요 없겠다.
 
고건을 소실점으로 한 정계개편론에 대한 경계   
 
최근 언론에서 한창 떠들어 대고 있는 정계개편론의 소실점에는 고건이 자리 잡고 있다.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먼저 고종석의 고건에 관한 칼럼의 일부를 읽어보는 것으로 풀어보도록 하자.
 
“고건 씨에 대한 지지는 단지 높은 데 그치지 않는다. 선친의 고향이 전북이고 그 자신 젊은 시절 전남도지사를 역임했던 것과 관련 있는 듯 호남 쪽의 선호가 다소 높긴 하지만, 그에 대한 지지는 다른 잠재적 대선 후보들에 견주어 지역적으로 한결 고르다. 유권자들이 그를 선호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에 견주어 안정감이 있다는 말도 나오고, 공직 생활 내내 청렴했기 때문이라는 말도 나온다. ‘행정가로서의 능력’도 거론되고, 오랜 관직 생활을 통해 축적된 ‘경륜’이라는 것도 회자된다.”(고종석, 신성동맹과 함께 살기, 개마고원, 2006)며 고건에 대한 좋은 여론의 이유를 짚어보면서 고종석은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호의적인 정계개편론 여론을 경계한다.
 
“고건 씨에 대한 비토 여론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은 그의 긴 행정가 이력이 서로 적대적인 정치세력들에게 차례로 떠받쳐져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경력은 일반적으로 증오의 연료가 되기 쉬운데, 고건 씨의 경우엔 외려 친밀감의 요소가 된 것 같다. 그것은 그가 서로 다른 정파에 고용되면서도 정치적으로 무색무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박정희가 임명한 도지사이자 청와대 비서관이었고, 전두환 정권의 장관이자 여당 국회의원이었고, 노태우가 임명한 서울시장이었다. 그는 또 김영삼 정권의 총리였고, 김대중 정권의 여당 출신 민선 서울시장이었으며, 노무현 정권의 첫 총리였다. … 그래도 고건 씨의 그 화려한 이력이 뭐 흠잡을 일이냐고 말할 수도 있다. 그래도 고건 씨의 그 화려한 이력이 압도적으로 굴신(屈身)의 결과라는 사실은 지적하기로 하자. 그리고 그가 몸을 굽힌 것은 국민들에게가 아니라 최고권력자에게라는 사실도 지적하기로 하자. 평생을 최고권력자에 대한 굴신으로 일관한 사람을 한 나라의 대통령감으로 여기는 여론이 나는 불편하다.”(볼드체 기자주) 
 
고종석이 지적한 어느 정당에서든 환영받는 고건의 ‘무색무취’함에 대해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의 주인공 그르누이의 무색무취함과 포개어지는 것은 기자의 과잉연상일까. 정치가로서 ‘이질성의 포용’이라는 미덕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포용성이 인간이라면 당연히 뿜어내는 각자 고유의 체취를 제거하는 ‘향수’(이미지 정치)에 기반 한 것이라면 과연 한 계층조차도 그를 믿고 따를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의문이 든다. 
 
지난주에 기자가 참여정부의 혁신 클러스터 정책을 분석하는 학술답사를 경상남도에 다녀왔다가 마산자유무역지대 홍보관에서 인상 깊은 사진을 보았다. 바로 30년의 시간을 훌쩍 넘어 당시 최연소 도지사였을 시절에 마산을 방문한 고건의 젊은 시절에 빛바랜 흑백사진이었다. 박정희의 유산은 극우세력 뿐만 일까. 인적청산은 아닐지언정 박정희의 총애를 받았던 인적이 사진 속으로 사라진 게 아니라 여전히 현실에서 현현하고 정치적 파워를 머금고 있다는 것은 분명 문제적인 시선은 필요하다고 본다.
 
굳이 고건을 도지사로 뽑았던 박정희까지 소급하지 않더라도 그의 무색무취함, 혹은 카멜레온과 같은 화려한 보호색일지 모르는 그만의 색깔은 기자의 색깔에 비추면 극우정당이 집권하는 것만큼 (시사평론가에서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으로 국회의원, 장관으로 변신한 이조차도 이들 극우정당의 집권에 대해서 더 이상 위험하지 않다고 말했지만) 위험하다고 보진 않더라도 불편할 수밖에 없다는 점만큼은 숨길 수 없다.
 
얼마 전부터 기자가 인물 올인정치를 경계하면서 정책정치에 대한 틀을 짜기를 당부하는 관련 학자들의 저서들에 대한 서평과 기사를 쓰고 있지만 여전히 여론과 이를 조작하는 언론은 포스트 노무현, 고건을 소실점으로 한 두더지 게임에 동참하면서 게임의 흥을 돋구기에 바쁜 실정이다. 노무현 정권만으로는 인물 올인정치 실패의 사례연구(case-study)가 불충분한 건가.
 
“이라크 파병, 평택 대추리 사태, 한미FTA 협상 등에서 노무현 정권의 ‘무오류 집단최면 시스템’을 통한 현 정권의 오만과 엘리트 정치의 폐해는 수두룩하다. 홍세화의 주장처럼 ‘모든 지지는 본디 비판적 지지’여야 하는 이유는 진보정당 내부에서 아무리 좋은 인물이 나오더라도 제도, 정책의 불완전성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노무현 정권의 전철을 또다시 밟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정책개발이 유권자들의 눈에 ‘표(標)’가 나지는 않겠지만 이러한 정책의 축적은 곧 대선에서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표(票)’로 나타날 것이다.”(황진태, ‘진보정당, 인물 올인정치가 아닌 정책정치로 나가야 한다’. 월간<이론과실천>9월호)

정책정치에 대한 강조는 비단 진보정당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기성정당의 인물 올인정치로 인한 실패에 대한 대안으로서 진보정당이 정책정치를 강화하자는 것이다. 기성정당들은 정계개편이라는 ‘지역주의에 기댄 득표 계산의 화장술’로 지저분하게 단장하지 말고, 민중을 생각하는 정책개발과 FTA 처리에서의 민중의 관점을 확보하는 등의 실질적 민주주의를 고민하는 기초화장부터 차근히 준비해야 한다.
 
대추리 사태, 한미 FTA 등 수두룩한 한국사회 의제들을 볼 때 한가하게 두더지 게임을 하면서 동전을 축내고 있을 때가 아니다. 현재 고건을 소실점으로 한 정계개편론의 틀을 진보정당과 정책정치로 옮겨서 유권자들에게 야당에는 한나라당뿐만 아니라 진보정당이 ‘또 다른 선택권’을 제시해주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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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9/30 [20:1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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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퍼루키 2006/10/02 [13:11] 수정 | 삭제
  • 이건 제목질이 조중동 저리가라군...
    제목을 편집장이 뽑는건지 기자가 뽑는건지 모르겠지만 이런 야비한 짓은 하지 맙시다~ 조중동보는것도 지겹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