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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2인자’ 김종필 처세 닮아가는 고건의 중도론
[논단] ‘중도’라는 위장술은 ‘권력획득’에 유리한 ‘최대공약수’에 불과
 
각골명심   기사입력  2006/09/28 [13:07]
중도(中道)는 없다

중도(中道)란 “단멸(斷滅)/상주(常住), 유(有)/무(無), 고(苦)/낙(樂) 등 두 가지 대립·집착을 떠나 올바르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불교의 근본적 사상을 의미한다. 즉 삶의 단절이나 지속, 존재와 부재, 괴로움과 즐거움 등을 초월하여 살아간다는 다분히 철학적 개념을 담고 있는 말이다.
 
그렇다면 정치에 있어 중도란 무엇인가. 그것은 말 그대로 ‘좌익이나 우익 그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정치나 정치인’을 의미한다 양당제가 확립되어 있지 않은 다당제 하의 국가들에서 흔하게 보여지며 통상적으로 ‘권력 분점에 의한 연합’의 형태로 구체화 된다. 그럼 한국정치에 있어 중도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이것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우선 한국정치사회에 있어 그 정신적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이념의 역사’를 돌아 볼 필요가 있다.
 
사이보그(Cyborg)의 나라
 
주지하다시피 한국의 현대사를 처참하게 갈라놓은 ‘한반도 전쟁’(나는 6.25를 이렇게 부르고 싶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순히 남북간의 전쟁이 아닌 세계열강들 모두가 한바탕 한반도의 패권을 놓고 벌였던 ‘이념전쟁’의 성격이 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이후 무려 60 여년 동안이나 지속되고 더욱 고착화되어 온 ‘좌우이념 간 대립’은 서로간의 극단적 증오와 불신만을 증폭시켜 왔을 뿐 근본적으로 그 원인이 된 ‘이념’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나 성찰의 시간은 완전히 배제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모두가 그 ‘얼굴도 모르는 이념의 노예’가 되어 알맹이 빠진 껍데기만을 놓고 길고긴 이전투구를 계속하고 있다는 이 기막힌 현실을 먼저 정면으로 직시해볼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간들은 번번이 정통성 없는 군사정부와 보신주의 정치꾼들에 의해 굴절, 변형되어 오직 ‘조작된 허상’이 현실을 대체하는 심한 아이러니를 낳았다. 설령 누군가 그 ‘조작된 허상‘을 꿰뚫어 보았다 할지라도 그런 사회 환경 하에서 섣불리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은 곧 탄압과 이지메를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에 모두들 본능적으로 ’침묵의 서약‘에 충실했다. 모든 ’禍는 입으로부터 나온다‘는 금언이 되었으며 ’저항‘은 곧 ’주홍글씨‘로 낙인찍힐 충분조건으로서 인식되었다.
 
나는 안다. 한국사회에는 진정한 좌파도 우파도 없음을...단지 조작된 매트릭스(Matrix /자궁)에서 길러진 수많은 사이보그(Cyborg)들이 민주화 이후 갑자기 자신들에게 주어진 ‘자유’에 어쩔 줄 몰라 하며 ‘정지된 시간속'에서 웅성거리고 있음을...그리고 역시 조작과 이미지로 운 좋게 메인보드를 장악한 정치꾼들이 서로 자기들 구미에 맞게 프로그램을 뜯어 고치려 혈안이 되어 있음을...
 
정치권의 ‘중도통합신당론’의 허구
 
박정희 쿠데타 해인 61년 정관계에 뛰어들어 참여정부에 이르기까지 대통령 빼고 안해본 것 없는 ‘양지의 정치인’ 고건씨가 요즘 틈만 나면 주장하는 ‘중도실용개혁세력 통합론’을 보고 있자면 문득 어린시절 한 아이가 벌떡 일어나 ‘젤 쎈놈 빼고 다나와!’ 하던 치기와 영악함이 먼저 떠오른다.
 
‘중도’면 ‘중도’고 ‘실용’이면 ‘실용’이지 거기에 ‘개혁’까지 갔다 붙이니 참으로 요상스런 말이 아닐 수 없다. 우선 그가 말하는 ‘중도’란 그의 말을 빌리자면 "극좌와 극우 양 극단을 제외한 개혁적 보수세력(?)에서 합리적인 진보세력까지“를 지칭하는 듯하다. ‘개혁적 보수’라는 생경스런 용어도 웃기지만 어찌됐든 끌어 모을 수 있는 세력은 정체불문, 모두 다 오라는 ‘비굴한 구애’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이것도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여기다 ‘실용개혁’이란 말을 덧붙였는데 그렇다면 대통령되면 이 신조어를 만들어낸 ‘열린우리당’처럼 ‘변죽만 울리다 마는 개혁’하겠다는 말인가?
 
고건씨가 걸어온 길을 살펴보면 화려했지만 추악했던 ‘만년 2인자’ 김종필씨가 떠오른다. 그가 서슬퍼런 박정희 군사정권으로부터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정부에 이르기까지 한번도 큰 좌절없이 ‘승승장구’를 거듭해 올 수 있었다는 것에 그가 과연 다음 대통령으로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모든 답이 들어있다. ‘승승장구(乘勝長驅)’란 말 속에는 단순히 그 체제에 대한 ‘순응’을 넘어 ‘적극적 동조’내지는 ‘Partner-ship’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상식의 변증’이 포함되어 있다. 즉 한국 정치사에 있어 내내 지속되어온 ‘우파정부’들과 함께 '동반자'로서 승승장구를 거듭해온 고건씨가 아무리 우겨도 그는 절대로 ‘중도’일 수가 없다.
 
그 동안 한국정치사에서 고건씨처럼 ‘중도’를 표방한 정치인들은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곧 ‘중도’라서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침묵의 금언’에 익숙해져온 다수 유권자에 대한 교활한 ‘위장술(僞裝術)’에 다름 아니다. 그들이 ‘중도’라는 이름을 내걸고 ‘이합집산’을 꾀하는 것은 그것이 오직 ‘권력획득’에 유리한 ‘최대공약수’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인들에 있어 ‘중도’는 없다. 있다면 오직 표를 향해 비굴한 침을 흘리고 있는 굶주린 승냥이떼가 있을 뿐이다. ‘탈이념의 시대’에 아직도 유물처럼, 그것도 인식과 체험이 한참 결여된 껍데기뿐인 이념쪼가리를 끌어안고 국민을 갈갈이 찢어놓고 계속해서 ‘분열의 시대’를 연장하고 있는, 그리고 여전히 그것을 준비하고 있는 한국정치인들에게 있어 더 이상 한국사회의 밝은 미래는 없다.
 
그럼에도 유일한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보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 언제든 온몸을 내던져 저항할 수 있는 바로 ‘당신’, ‘행동하는 당신’, '사이보그이기를 거부하는 당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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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9/28 [13:0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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