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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권형 대통령제’는 독재화할 위험성 크다
권력분산은 입법부와 행정부가 견제와 균형의 원리로
 
손혁재   기사입력  2003/02/20 [01:07]
‘제왕적 대통령제’를 ‘분권형 대통령제’로 바꾸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5년 단임제’를 ‘정/부통령(또는 대통령) 4년 중임제’로 바꾸고, ‘결선투표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있었으나 선거의 핵심 쟁점은 아니었다. 그런데 선거가 끝나자 쟁점이 내각제와 분권형 대통령제로 바뀌어서 논의가 지속되고 있다.

  분권형 대통령제 논의는 타당성이 크지 않다. 분권형 대통령제 논의는 이원집정부제(Double Executive)로 이어진다. 현 우리 정부형태에 이원집정부제적 요소가 있다. 대통령제이면서 국무총리를 둔 것이 대표적이다. 이원집정부제는 반(半)대통령제, 신대통령제, 제어(制御)된 내각제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1980년에 헌법학자 김철수 교수가 ‘권력분산형 대통령제’라는 명칭으로 처음 소개했다.

  이원집정부제는 대통령제와 내각제의 요소를 절충한 혼합정부 형태로 평시에는 내각제와 비슷하다. 수상을 수반으로 하는 내각이 행정권을 행사하며 의회해산권이 있고 입법부에게 책임을 진다. 그러다 비상시에는 대통령제와 비슷해진다. 입법부에게 책임을 지지 않는 대통령이 수상 및 각료의 임면권과 비상대권(또는 국가긴급권)을 지니고 행정권을 전적으로 행사하게 된다.

  대통령제보다 내각제의 성격을 더 많이 갖고 있는 이원집정부제의 대표적인 형태는 드골 헌법하의 프랑스 제5공화국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원래 이원집정부제는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발달했고 오스트리아, 핀랜드, 아이슬랜드, 아일랜드 등이 이원집정부제를 채택하고 있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이원집정부제는 직접선거로 선출되는 대통령에게 막강한 권력을 주었다. 대통령은 국가긴급권, 수상임명권, 의회 해산권, 국군통수권을 지닌 국가원수였다. 입법부는 정부불신임권이 있었으며 강력한 입법권을 가졌다. 그러나 히틀러가 수상이 된 뒤 수권법(授權法)을 통과시켜 대통령제를 총통제(Führerprinzip)로 대체시키고 국가 원수가 됨으로써 바이마르 공화국은 독재국가가 되고 말았다.

  프랑스 제5공화국의 이원집정부제는 내각제 요소를 채택하면서 수상 임명권과 수상의 제청에 따른 각료 임명권, 법률안 거부권, 하원 해산권 등 대통령에게 강력한 권한을 주었다. 또 중요한 법률안에 관한 국민투표 실시와 비상대권을 수상 동의 없이 행사할 수 있는 등 대통령은 지위의 장기성, 불가침성, 무책임성을 바탕으로 통치한다. 수상은 정부의 활동을 지도하고 행정 각 부 및 군대를 지휘감독하고 대통령이 정한 정책을 시행하고 이에 대해 입법부에 책임을 진다. 대통령 권한이 막강하고 수상 권한은 약하며 입법부의 지위와 권한도 약하다. 정부의 안정성과 능률성을 존립근거로 내세운 이런 집행부제의 이중 구조를 오를레앙형 내각제라 부르기도 한다.

이원집정부제의 기본원리는 첫째, 대통령은 국민이 직접선출하며 입법부에게 책임을 지지 않는다. 대통령은 국가비상시에 비상대권을 발동, 직접 행정권을 행사할 수 있다. 둘째, 수상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입법부의 동의를 받아 임명하므로 내각은 내각불신임권을 갖고 있는 입법부에게 연대 책임을 진다. 입법부가 내각을 불신임하면 대통령은 입법부를 해산할 수 있다. 셋째, 국가비상시에는 대통령의 권한이 확대되고 수상의 권한이 축소된다

  이원집정부제는 평시에는 내각제처럼 입법부와 정부의 대립에서 오는 정국불안을 막을 수 있고 비상시에는 대통령의 직접 통치로 효율적이고 안정적이라는 장점이 있다. 반면에 대통령이 국가 위기를 빙자해 비상대권을 발동할 경우 입법부나 내각의 견제권이 약하다. 게다가 국민의 대표기관인 입법부의 권한이 축소 제한되어 국민주권주의에 충실하지 못하고 독재화할 위험이 있다.

  중요한 것은 이원집정부제가 분권형 대통령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대통령에게 총리 임면권이 있는데 권력을 총리와 나눌 수 있겠는가. 대통령의 권한이 커서 문제라면 총리와 권한을 나눈다는 말도 안되는 논의를 할 것이 아니다. 권력분산은 국회와 나눠야 한다. 다시 말하면 대통령의 권한을 줄이고 국회의 권한을 늘림으로써 입법부와 행정부가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충실하도록 만드는 것이 올바른 권력분산인 것이다. / 본지 고문

* 필자는 참여연대 운영위원장/한국유권자운동연합 의정평가단 부단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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