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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금리시대, 전세시장은 왜 멀쩡한가?
[비나리의 초록공명] 분양 프라임과 재건축 바로잡아야 부동산 왜곡막아
 
우석훈   기사입력  2005/09/23 [01:54]
우리나라 경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프라자 호텔 소위 JP 룸이라는 것을 조금은 이해해야 한다. 이 호텔 방에서 JP가 재벌 총수들 한 명씩 불러다가 세계은행 등에서 들어온 차관을 나누어주었다는 흉흉한 소문을 돌았던 적이 있었으니 한국 자본주의의 본원적 축적이니 혹은 국내 시장 형성이니 하는 것들이 결국은 어떤 모습으로 형성되었는지를 알 수가 있다. 이 시기를 교과서에서는 '차관경제'로 분류하기도 한다.
 
보통은 저개발 상태에서는 금리가 높다. 이론적으로는 여러가지 설명이 있지만, 어쨌든 결과는 거의 비슷하다.
 
80년대에서 90년대까지 우리나라 경제학 수업에서는 고금리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혹은 어떻게 풀 것인가가 대단히 중요한 문제였다. 정상 은행 금리가 15%를 상회하고, 사채시장에서는 2부이자니 3부이자니 하는 말이 흉흉했다. 하여간 내가 경제학을 처음 배우던 시절에 기준금리율은 15% 정도되었다. 이 정도면 숫자 계산하기가 편하다. 2~3%를 세금과 관리비용으로 제하고 나면 원래 금액의 1/100이 12달로 구성되어 있는 1년의 월 기대이득이라고 생각하면 딱 맞는다.
 
이렇게 이자가 높더라도 투자할 곳이 없으면 고금리 저성장으로 귀착되는데, 하여간 한국은 그 과정에서 고성장 기조를 만들었고, 어쨌든 돈만 동원할 수 있으면 새로운 기회가 생겨나는 특수한 시장에 해당한다. 그래서 '곗돈'이라는 전통 제도가 다시 동원되기도 하였고, '오야'(일본말로 책임자를 뜻함-편집자 주)라는 말이나 곗돈 1순위의 경제적 효과 같은 것이 대학교 경제학과 시험문제로 나오기도 했다. 파리로 유학가서 대학원 때 첫 번째 들었던 수업이 공교롭게도 발전경제학의 한국이었고, 그 첫번째 수업에서 처음 들은 얘기가 곗돈이 한국 경제의 특수발전에 미치는 영향이었다.
 
그 시대에 생겨난 제도가 바로 우리나라에만 있는 전세제도이다. 국민소득이 1만불을 넘으면 결국 이자율은 10%대 밑으로 내려갈 것이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전세제도가 사라질 것이라고 대부분 예측을 했었는데, 이 예측은 결국 어긋났다.
 
국제적으로 이자율의 척도는 리보(Libor)이다. 영국 중앙은행의 표준금리를 리보라고 하는데, 이자율의 국제간 비교 같은 것을 할 때 니보 플라스 원이나 니보 마이너스 원, 이런 식으로 표기를 해서 특정 국가의 금리가 니보보다 높거나 낮거나 하는 식으로 표기를 한다. 보통 6% 대에서 형성되는데, 니보 수준의 국가에서 전세제도라는 것은 존재할 수가 없다. 돈을 구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쓰는 방식이 문제가 되니까 결국 전세로 선금을 구하는 것보다는 월세 같은 임대로 선금을 투자하는 방식이 중요해지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IMF 이후에 금리가 니보 수준으로 내려갔고,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는 일이 부분적으로 벌어지기는 했다. 장기적으로 전세는 세입자에게 유리한 제도인데, 사회적으로 자금확보가 어려운 상황에서 구조적으로 잠깐 등장한 제도가 전세제도라고 배웠고, 또 그렇게 알고 있다.
 
금리는 내려갔는데, 전세제도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관습이 주는 제도경직성이 한 가지 있을 것인지만, 우리나라의 주택보유제도의 문제가 개입했다고 생각된다.
 
"전세끼고 집산다"는 이 제도 아닌 제도가 전세제도를 유지해주었을 것이라는 게 나의 어리석은 생각이다. 이자율이 전세제도가 존립하기 어려울 정도로 내려갔음에도 불구하고, 이 이자율 차이를 보존하고도 남을 지대소득이 기대되는 상황에서 전세사는 사람들도 전세끼고 집산다는, 자기 사는 집과는 상관도 없는 집을 사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꼭 여러 가구를 사는 사람들에게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닌 것 같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전세로 사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닌 걸로 알고 있다. 재계약 순간마다 전세보증금을 올려달라는 주인의 압력이 높아지게 되니까 몇 년마다 목돈을 지불할려면 숨넘어갈 것 같다.
 
전세제도의 사회적 장단점이 각각 존재하는데, 세입자에게는 저금리 상태에서는 일반 임대보다 저비용으로 주택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장점을 단기적으로 주는 반면, 주택소유자에게는 전세끼고 집을 살 수가 있으니까 주택 구매 시점에 자금동원의 여력을 현저히 높여주는 일이 벌어진다. 가장 큰 폐해는 결국 경제능력에 비해서 다주택보유가능 세대가 늘어나게 되어서, 주택보급율과는 아무 상관없이 주택수요능력이 형성되고, 이로 인해서 "주택공급론"의 이데올로기적인 배경을 형성하게 된다.
 
전세끼고 집산다면 아무리 많은 주택을 공급하더라도 전부 소화할 수 있는데, 전세수요라는 것이 계절적 요인 등 여러가지 변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많은 공급을 하더라도 일부는 아예 미분양이 일어나지만, 전세수요가 형성될 곳에는 여전히 높은 프리미엄과 여전히 높은 전세를 통한 자금 동원이 가능하게 된다.
 
이 문제를 사회적인 통계로 잡아볼 수 있는 것이 "주택 공실률"이라는 통계인데, 우리나라에서 보통 사용하는 공실률은 일정 규모 이상의 건물 즉 사무실 공실률로 잡히니까 이 숫자를 가지고 논의하기가 쉽지가 않다 (통계청의 정부공식 통계에는 공실률 항목이 없다.)
 
건물 공실률은 잡기가 쉬울텐데, 주택공실률이라고 하면 정말 머리아픈 통계가 된다. 서울의 주거형태는 보통 4가지 기준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예전의 국민주택과 같은 단독주택이 있고, 빌라, 다세대, 다가구 등 이름은 다양하지만 건물양식은 똑같은 소위 빌라가 있고, 아파트가 있을 거고, 세법상으로는 이와는 전혀 다른 주거형태로 분류되는 오피스텔이 있다. 이 전체를 공실률로 잡으면 대체적으로 15% 정도가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인데, 이론적인 이유는 경험적으로는 없지만 보통 사회적 최적 공실률이 선진국에서 이 정도가 된다고 하니까 공실률만 놓고 본다면 이미 이 사회는 적정공급 수준에 있다는 견해들이 있다.
 
이보다 공급이 늘어나면 물론 아파트 미분양이 늘어나는 한 가지 경향과 어쨌든 이 사회에서는 평가절하되는 경향이 있는 빌라의 공실률이 높아지게 되는 경향이 생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지대수익은 어떻게 될까? 물론 공급이 높아지면 지대소득도 떨어진다는 것이 일반적 경향인 것은 맞지만, 문제는 서울의 주택시장이 소위 segmented market이라서 이렇게 일반적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오히려 첫 번째 분양자가 개발이익을 대부분 획득하게 되는 우리나라 선분양 시장의 특징상 이 프라임을 놓고 시장이 급격하게 요동치게 되고, 공실률과는 상관없이 유동 자금이 대부분 이 프라임 시장으로 집중되게 된다. 빌라의 경제적 가치가 없다는 것은 이미 증명된 바가 있듯이, 이 특별한 시장의 키포인트는 전체 공급과 전체 수요와 상관없이 분양 메카니즘에 집중되어 모든 유동자금이 프라임을 얻을 수 있는 분양시장으로 집중되고, 인근 아파트의 가격도 약간은 요상한 이야기지만 분양가의 함수에 의해서 움직인다.
 
그래서 분양가가 중요하기는 한데, 물론 한 군데 정도 분양가를 낮춘다는 방식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어쨌든 분양에서 벌어지는 프라임 시장을 놓고 나머지 요소들이 여기에 맞추어가는 이 시장은 공급이 있을 때마다 요동치고, 특히 대규모 단지가 생겨날 때마다 한 바탕 부의 재분배가 벌어진다.
 
이 과정이 사라지지 않는 한도 내에서는 전세 시장은 사라지지 않게 된다.
 
보유세를 1% 정도로 강화하더라도 프라임 시장에서의 기대수익이 워낙 높다면 별로 유효한 숫자로 작용하지 않을 것이고, 양도세를 충분히 높인다면 견제가 되겠지만 불행히도 이를 피해갈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은 너무 많아 보인다.
 
정부가 부동산 대책에 선의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사실 다 알고 있는 내용인데 정부 정책에 반영되지 않는 요소가 분양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프라임의 재분배 메카니즘과 전세를 통한 주택자금 동원장치가 있다는 점이다.
 
사실 시장대로 하자고 하면, 박정희 때 단기간에 주택을 공급하기 위한 일종의 프로젝트 파이낸싱 기법의 연장에서 도입된 선분양 제도부터 없애고, 전세를 대체하는 일반주택 장기임대 프로그램을 만들면 문제는 사실상 해결된다.
 
평당 1,500만이니 2,000만이니 하는 건 국제 수준으로 전혀 말이 안되는 높은 수준이다. 이 정도 자금이 몰려있는 거대 시장을 연착륙시키는 것은 약간의 입체적 분석이 필요한데, 정부는 주택 공급하면 되는거 아니냐는 좀 지나치게 단순한 논리에 시늉만 하는 보유세로 해결될 수 있다고 하는데, 별로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조금 지나면 또 미분양 사태니 뭐니 하면서 미분양 특혜와 건설사 긴급지원 프로그램이 나오게 될 것이다. 물론 그 때는 또 지역별 긴급조사 같은 거 하면서 공실율이 얼마나 하면서 "미분양 사태를 해결하지 않으면 경제가 죽고 서민이 힘들게 된다" 수 십년간 반복해온 시나리오가 또 반복되고 또 반복될 것 같다. 
 
전세제도가 아직도 존재한다는 것은 사실상 부동산 제도에 중대한 왜곡이 아직도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자율만으로 본다면 이미 사라졌어야 할 제도가 아파트 분양 프라임과 새로운 프라임을 만드는 재건축이라는 두 가지 사회적 제도에 의해서 지지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전세형 임대주택이라는 일부가 주장하는 제도가 현 상황에서는 나름대로는 괜찮은 대안인 것 같아 보인다. 현재의 전세값을 지불하고 20년 정도 장기임차가 가능하다고 하면 별로 나쁘지는 않다.
 
이자율을 올리는 것은? 물론 제일 효과적이고 빠르다. 물론 그만큼 코피 터지는 사람도 같이 늘어난다.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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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09/23 [01:54]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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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존주의자 2005/09/23 [14:13] 수정 | 삭제
  • 아파트만 지으면 사람이 살 수 있다고 보는 인간들이 우리나라 경제학자들이다. 이들은 시청, 경찰서, 소방서, 도로, 학교, 공원, 도서관 등에 들어갈 돈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안쓴다.

    공공임대주택은 공익시설과 편의시설을 짓거나 만들 돈(예산)을 먼저 마련할 수 있어야 가능한데 도대체가 여기에 대한 얘기는 하나도 없이 공공임대주택 지으라니 발끈해공주님 수준과 막상막하다.

    박근혜총재가 노통과의 연정 맞짱에서 8조원 드는 기초국민연금제 실시하라고 하면서 동시에 중소기업이 어려우니 중소기업을 위해서 세금을 7조원 깍아 주자는 얘기를 했다. 아 물론 합계 15조원의 세수 부족분을 어디서 메꿀지에 대한 대책은 없고 서민을 위해서라는 이름으로 거룩하게 주장했다.

    돈(예산)을 생각하지 않고 떠드는 우창훈씨의 글은 실천적 사회개혁에 눈
    감는 요즘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언어 유희를 떠오르게 한다.

    미국 정도의 상속세금 법안 만들어 실행하면 당장 부동산값 내리고 공공임대주택 만들 예산을 확보할 수 있다.

    상속 최고 세율 45%의 금액이 55억 이상인 울나라의 법률을 상속 최고 세율 55%에 300만불(30억)인 미국처럼 바꾸고 우리나라 수준에서 보면 빠져나갈 구멍이 거의 없게 법을 운영하는 미국처럼 악랄하게 세금 거두면 민노당에서 주장하는 무상의료, 무상교육 실시를 위한 돈도 상당히 마련될 것으로 본다.

    실천에 대한 고민도 없고 알맹이도 없는 주장을 우석훈씨는 이제 그만 둘 때가 되지 않았나.






  • 백성주 2005/09/23 [08:03] 수정 | 삭제
  • 경제학 박사님의 설명이라 불학무식한 백성주는 시원하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조금 더 쉬운 설명이었다면 노력해서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저는 아내모 회원으로서 아파트값을 내리는 방법을 찾아내려고 기초자료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우석훈 박사님의 글을 보니, 꼭 찾아뵙고 도움을 요청해야 되겠습니다. 전세문제를 푸는 방법도 알아야 할 것 같아서요. 나중에 나중에 뵙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