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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보다는 젯밥에 눈독들이는 언론학자
김동민 SBS 사외이사의 주장에 대한 반론
 
양문석   기사입력  2003/03/04 [19:28]
"SBS 사외이사 임기를 시작하며 -운동은 영원히 책상머리나 길거리에서만 해야 하는가? "는 김동민 교수의 최근 오마이뉴스 기고문을 읽으면서 '사람이 이렇게 망가질 수도 있구나'하는 심정이다.  

운동을 영원히 책상머리나 길거리에서만 하려고 김교수가 SBS에 '부역(附逆)'하는 것을 말린 적은 없다. SBS의 부자세습을 기도하는 윤회장 일가의 권력을 최소한으로 제한하고, 방송민주화를 제대로 관철시키기 위한 애정 어린 충고를 '비난과 몰이해'라고 매도했는데 이는 참을 수 있다.

[관련기사] 김동민, "SBS 사외이사 임기를 시작하며 -운동은 영원히 책상머리나 길거리에서만 해야 하는가? 오마이뉴스(2003. 3. 2)

한데 운동 운운하며 '영원히 책상머리나 길거리에서만 해야 하는가?'라고 주장한다면 이것은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찬바람 부는 길거리에서 운동하는 것이 김교수 주장을 듣고 보면 어째 시대에 뒤떨어지는 투쟁방식처럼 느껴진다. 책상머리에서 SBS보도태도나 비대신문들의 사실왜곡 및 악의적 선전선동을 비판하는 작업이 어째 '쪼잔하게' 보인다.

사외이사는 꿰차야 선진적 운동방식?

시대가 변했으니, 멋들어지게 '사외이사'정도는 꿰차야 선진적 운동방식이고 길거리나 책상머리 운동은 운동 같잖은 운동인 모양이다. 오늘도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싸우고 있는 수많은 이 땅의 노동자와 매일같이 '지겨운' 텍스트를 분석하며 밤을 지새는 지식인들의 작업을 향해서 사외이사가 된 김교수는 '헛되고 헛되도다'며 비웃는다. '영원히 그런 짓이나 해라"는 뜻으로 들리는 것은 지나친 비약인가.

윤회장 일가로부터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길거리로 쫓겨나 한 겨울을 온통 길거리에서 지내고 있는 'SBS 미디어 넷' 해고노동자들의 피눈물나는 고통의 상처에 김교수는 소금을 뿌리고 있다. 누가 노동자를 길거리로 내몰았는지, 지식인을 책상머리에 앉혀 두고 돈 안되는 글쓰기에 집착하게 만들었는지에 대해서 김교수는 정녕 모른단 말인가.
…언론개혁의 개념과 목표, 방법 등에 대해서는 논자에 따라 이견이 있을 수 있다. 하나의 정답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자기 생각을 고집하면서 다른 의견을 들으려하지 않는다든지, 나아가서 다른 의견을 타당한 논리를 결여한 채 공박하는 것은 현명하다 할 수 없겠다. 또 한 사람이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으므로 제각기 선택한 길을 열심히 가면 될 일이다. 그런데 장 교수는 자기 생각을 고집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에 대해서 근거 없는 비방을 서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런 점에 대해 한두 번 지적을 했는데 답이 없어 다시 하기로 한 것이다.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가운데 좋은 의견이 형성됨으로써 언론개혁에 보탬이 되겠다는 생각에서다. …

이 글은 "장호순 교수의 이상한 언론개혁론"이라는 제목으로 2002년 5월 29일에 김동민교수가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이다. 현 시점에서 똑같이 김교수에게 돌려주고 싶은 글이기도 하다.

소유문제가 본질이 아니다?

또 그 동안 수없이 되뇌였던 자신의 주장을 한 순간에 뒤집어엎는 용기는 만용이라는 지적도 덧붙인다.

…이론적인 측면에서 보더라도 소유문제가 본질이 아니라는 점은 신문개혁과 관련해서도 누누이 밝힌 바 있다. 이것은 나의 지론이다. 소유문제가 해결되면 만사가 해결되는 것처럼 주장하는 이론적 배경에는 마르크스의 거시적 이론을 미시적으로 해석하며 왜곡시켜놓은 영국의 미디어 정치경제학이 있다.…

김교수의 지론은 믿을 바가 못된다. 특히 소유문제가 본질이 아니라는 점에 대해서 누누이 밝힌 바가 있다는 것도 이것이 지론이라는 주장도 들어 본 적이 없다. 또 마르크스의 거시적 이론을 미디어정치경제학이 미시적으로 왜곡시켰다는 점에서도 동의하지 못한다. 미디어정치경제학이 한국의 언론현상에 대해 상당히 많은 설명력을 갖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미디어정치경제학이 '토대결정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보다는 우리 사회의 언론현실에 대한 설명력이 높다는 점에서 이 문제는 부차적인 것이었다. 한데 미디어정치경제학이 마르크스를 왜곡했다는 것과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천양지차. 도대체 김교수는 왜곡(歪曲)이라는 표현을 이렇게 아무데나 갖다 붙이는 버릇을 어디서 배웠을꼬.  

김교수가 한국 언론계에서 소유구조가 얼마나 핵심적인 사안이며 소유구조가 가지는 의미가 얼마나 중요한 지에 대해서 직접 설명한 글을 잠시 살펴보자. 2000년 3월2일 프레스센터 19층에서 "총선보도와 신문개혁(http://my.dreamwiz.com/wepia/journal/j2-1.htm )이라는 제목으로 김동민 교수가 발표한 논문에서 '소유구조'에 대한 김교수의 주장이다.

…예전의 경향신문과는 엄청나게 달라진 모습이다. 전두환 정권 때는 서울신문에 이은 제2의 정부기관지였으며 그 후로는 한화 소유의 소위 재벌신문이었다. 무엇이 경향신문을 이토록 변화하게 만들었을까? 역시 소유구조의 변화가 가장 큰 요인이다. 한화가 IMF 이후로 부채와 누적된 적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손을 뗀 후,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언론으로서 자력갱생을 모색해오던 경향신문이 민의를 대변하는 바른 언론으로서 승부수를 띄운 것으로 해석된다. 재벌의 소유에서 일단 벗어남으로써만이 언론의 정도를 걸을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따라서 총선 후에는 신문사의 재벌 족벌 소유구조를 타파하는 방향으로의 개혁이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미디어정치경제학이 한국상황에서 대단한 설명력을 가진다는 의미는 김교수의 주장대로 "재벌의 소유에서 일단 벗어남으로써만이 언론의 정도를 걸을 수 있는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신문뿐만 아니라 방송도 마찬가지다. '재벌 족벌 소유구조를 타파하는 방향으로 개혁을 추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데 '미디어정치경제학'이 마르크스의 거시이론을 왜곡했다는 주장이 궤변이고 억지인 이유가 바로 여기 있는 것이다.

공공성과 공정성 실종은 이미 SBS가 증명

…현실적, 이론적 측면을 고려하여 나는 주로 보도의 공정성과 프로그램의 질적 제고 및 개혁성에 국한하는 요구를 할 것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김교수가 '현실적 이론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매우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다. 그런데 위와 같은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사실 김교수는 SBS를 "종합편성을 가장한 오락채널"이라고 비난해 왔던 장본인이다.

…경영은 기업의 논리를 최대화하여 경쟁력을 갖추도록 하면서도 소유는 공영으로 확고히 해야 공공성과 공정성이 온전히 발휘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민영화가 곧 경쟁력의 강화라는 근거는 없으며, 공영방송이 민영화되는 날로 공공성과 공정성은 영원히 실종될 것이다. SBS가 증명해주고 있다.…

이 주장은 오마이뉴스 2002년11월10일 "상업방송이 대안일 수 있는가?"는 글에서 김교수가 쓴 글이다. 민영방송에서는 '공공성과 공정성은 영원히 실종될 것'이며 'SBS가 증명'했다고 단언하고 있다. 분명히 아니다. 민영방송도 공공성과 공정성을 발휘할 수 있다. 한데 한국적 경험으로보건데 족벌신문사들이 이런 공익성이나 공정성을 거의 실현하지 못했기 때문에 김교수가 과도하게 주장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의 진위를 떠나 김교수 자신은 최소한 SBS를 구제불능으로 매도했다가 이제 와서 공정성이니 프로그램의 질적 제고니 운운하며 자신이 이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무리하게' 강변하고 있다.

제사보다는 젯밥에 눈독들이는 언론학자

…제사보다는 젯밥에 눈독을 들이는 언론학자들이 수두룩하다. 언론학자들에게는…짭짭한 자리도 많고 떡고물도 수북히 쌓여있다. 통합방송법이 통과되면 방송위원회를 비롯하여 KBS와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등의 선임이 줄을 이을 것이다. 그 밖에도 한국언론재단, 방송진흥원, 언론중재위원회, ABC협회 등에도 군침을 흘릴만한 자리들이 기다리고 있다. 사영(私營)이지만 삼성언론재단, LG상남언론재단, SBS재단 등에도 언론학자들 몫의 자리가 있다. 최근 정계에는 젊은 피 수혈이 화두가 되어 있다. 젊은 피의 수혈이 필요한 곳은 정계만이 아니다. 정부가 언론개혁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과제를 제시한다면, 사영재단을 제외하고 이들 기관에 진정으로 개혁적이고 젊은 언론학자들을 수혈하라는 것이다. 이들이 제도적인 힘의 뒷받침을 받을 때 언론개혁은 가시적인 진전을 보게 되리라고 믿는다.…

이글은 김교수가 쓴 "우리는 왜 조선일보를 거부하는가"라는 책195쪽과 196쪽에 있는 내용이다. SBS재단 등에 있는 자리에 눈독을 들이는 언론학자들이 수두룩했는데 김교수가 마침내 차지했다. 그것도 '사영재단을 제외하고' 젊은 언론학자들을 수혈해야 하다는 자신의 주장을 과감하게 뒤집어버리고, 숱한 사람들의 우려와 만류를 '비난과 몰이해'라고 매도하면서까지 그 자리를 차지해버렸다.

김교수의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스캔들'이라는 착란증거는 이 정도에서 마감하고자 한다. 기왕에 들어갔으니 안에서 할 일을 찾아야 하고, 더 이상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얼토당토않은 논리로 어줍잖은 비판은 삼가줄 것을 정중히 부탁드린다.  

강준만이 답해 주었으면

마지막으로 강준만교수에게 물어야겠다. 위의 책 348쪽에서 "김동민이 좀 이상한 길로 빠져들면 나는 과연 그를 공개적으로 비판할 수 있을까? 나는 확신이 안선다"고 강준만교수는 글을 남겼다. 강교수는 김교수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좀 이상한 길'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침묵하는 건지, 아니면 공개적으로 비판하기에 김교수와 너무 친한 건지를 밝혀주었으면 한다.

또 김교수의 주장대로라면 "강 교수는 한사코 말렸다. 그 취지는 좋고 해볼 만 하지만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공격을 받을 것을 염려했던 것이다."고 했다는 데, 정말 취지가 좋은가? 그리고 말린 이유가 단지 '감당하기 어려운 공격'때문이었는가도 밝혀 주었으면 한다.

* 필자는 언론학 박사로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전문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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