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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통령, 역사적 의미 보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인터뷰2] FTA 막기위해 온 몸을 던진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
 
지승호   기사입력  2006/06/23 [16:37]
*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 인터뷰 제2부입니다-편집자 주..

미국에 앞서 일본·중국과 먼저 협상해야
 
지승호 - 노무현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를 공식방문하면서 동포간담회에서 “한미 FTA는 동북아 허브로 가는 길”이라고 한 얘기를 형용모순이라고 지적하시지 않았습니까?

정태인 - 네모난 동그라미라고 표현을 했죠. 좌파 신자유주의와 같은 표현입니다. 로버트 젤릭이 얘기했던 미국 정책기조가 한국을 통해서 관철이 됐거든요. 이해 상관자론과 경쟁적 자유주의 두 가지인데, 앞의 것은 전략적 유연성을 받아들임으로써, 두 번째 것은 한미 FTA를 추진함으로써 미국의 전략에 그대로 복무를 하는 거고, 그 결론은 중국 포위론입니다. 중국을 포위해 놓고 동북아의 허브가 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죠. 오히려 아시아의 패권을 둘러싼 중국 대 미일의 대결구도에서 한국이 미일 편에 확실히 선다는 얘기고, 그렇다면 균형자 이런 역할을 완전히 포기한다는 얘기죠.
 
지승호 - 동북아의 패권을 두고 한미일과 북중러의 대립이 심화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것 역시 우리에게는 부담스러운 상황이 될 거라는 말씀이신 것 같은데요.

정태인 - 최악의 시나리오죠. 적어도 대통령이 그런 얘기를 한다면 아시아가 미국 주도로 지역주의가 되고, 경제가 바뀔 거라고 하는 예측에 근거하고 있는 거거든요. 참모들 중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데, 예컨대 이광재 의원 같은 경우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구요. 이미 대통령이 그렇게 얘기하기 전에 외부 쇼크에 의한 내부 개혁론을 주장했었으니까요. 그런데 그것은 대단히 잘못된 인식입니다. 왜냐하면 내츄럴 이코노미라는 발상으로 보면 한중일 분업구조가 무슨 정책을 어떻게 한다고 해서 역전이 되는 부분이 아니거든요. 그것에 기초해서 경제적인 관계가 형성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에 거스르는 것은 오히려 많은 부작용을 초래하겠죠.

이렇게 봐야 돼요. 미국 시장에서 마킬라도라라고 하는 아주 유리한 조건에서 생산한 멕시코 제품이 점차 중국산에 밀리고 있거든요. 그런데 그걸 단순히 중국산이라고 보면 안됩니다. 우리 정부의 잘못된 인식 중의 하나가 중국 때문에 양극화가 일어나고, 미국은 괜찮다는 건데요. 이건 말도 안 되는 얘기입니다.
 
멕시코산과 중국산이 미국 시장에서 대결하는 것은 한중일 국제분업 대 나프타 국제분업의 대결이라고 봐야 됩니다. 중국산이라고 해도 거기에 한국 부품이 얼마나 많이 들어갑니까? 일본의 기술이 얼마나 많이 들어가요? 이것은 더 우월한 현재의 경제적 성과를 내는 걸 포기하고, 반대쪽으로 가겠다는 얘기로 해석할 수도 있거든요. 경제결정론도 안 되지만, 경제의 기본적인 흐름을 거스르는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승호 - 한미 FTA보다는 한일 FTA나 한중 FTA를 먼저 해야 된다고 주장하시는 것 같은데요. 그 이유는 뭔가요?

정태인 - 한중 FTA나 한일 FTA는 미국처럼 높은 수준의 FTA가 될 수가 없습니다. 높은 수준의 FTA라는 것은 전 품목에 걸쳐서 대체로 90% 수준은 개방을 한다는 거거든요. 대체로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 정도의 FTA는 200여 개의 FTA 중에 스무 개 이내입니다. 미국하고 그렇게 강력한 FTA를 맺어버리면 한국 경제가 대단한 어려움을 겪을 거예요.
 
그런데 한중과 한일은 양자가 다 약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높은 수준은 안 됩니다. 서로 교환을 하게 돼요. 어느 정도 일본의 농산물 시장의 보호를 인정하는 대신, 한국의 기계산업 보호를 위해 관세를 오랫동안 유지시켜 준다든가 할 수가 있죠. 이렇게 해서 중간 수준의 FTA가 되는 건데요. 중국은 제조업에 문제점이 있기 때문에 관세가 굉장히 높습니다. 중국이 제조업을 다 열고, 자기네 농산물을 우리나라에 들여오겠다고는 못합니다. 그래서 중국과 일본은 어차피 낮은 수준이 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윈-윈(win-win)이 확실한 경제협력협정을 맺으면 되거든요.

그런데 미국은 그렇지 않아요. 거의 모든 부분에서 여전히 강력한 경쟁력을 갖고 있잖아요. 농업, 서비스업, 제조업 모두 그렇거든요. 제조업은 우리가 강하다는건 정말 이상한 신화입니다. 화학, 의료는 비교가 되지 않고, 우리나라가 몇 개의 분야, 자동차(그것도 고가가 아닌 중저가 부분)나 반도체 이 부분에서만 강점을 가지고 있죠. 나머지 제조업은 전부 미국이 강합니다. 지적재산권 같은 부분에서는 특히 강하구요. 전 분야에서 미국이 더 강하기 때문에 미국하고 높은 수준의 FTA를 맺는다는 것은 우리 경제의 산업발전 전략에서 큰 충격을 줄 FTA가 되는 거죠.
 
단순히 미국이 싫고, 일본과 중국이 좋고 이런 차원이 아니구요. 산업경쟁력 차원이나 다른 여러 가지를 고려해볼 때 미국과 높은 수준의 FTA를 맺는 것은 위험하다는 겁니다. 중국과 일본과는 높은 수준의 FTA를 맺을 수도 없어요. 그런데 그것도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미국이 원하는 대로 하면 정말 엄청난 충격일 겁니다.
 
지승호 - 생각하시는 동북아의 바람직한 경제 모델은 어떤 건가요?

정태인 - 글쎄요. 아무도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웃음) 민주주의는 점점 더 공동체적 민주주의, 참여 민주주의에 가까워질 것이고, 한국은 그 면에서는 아직도 굉장한 역동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경제는 이른바 이정우 선생이 처음 얘기할 때의 동반성장의 개념인데, 협력적 모델이고, 정부의 비대칭성을 최대한 줄여야 된다고 봅니다. 저는 그것을 밀착형이라고 표현을 했었는데, 산업에서는 클러스터라든가, 금융에서는 밀착형 금융이라고 해서 마이크로 크레디트라든가 이런 쪽이 보완이 되는 개념인데요. 이런 것들이 보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구요. 지금 제가 이론적 근거로 삼고 있는 것은 스티글리츠입니다. 조금 전에 얘기한 것들이 스티글리츠의 정보이론에서 유추가 될 수 있는 정책들입니다.

또 이제는 소득 분배가 아니라 자산 재분배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자산 재분배하면 몰수를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런 건 아니구요.(웃음)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다 자산의 문제입니다. 부동산 문제라든가, 교육, 이것은 사람에 체화되어 있는 자산이고, 금융도 마찬가지죠. 이 세 가지가 중요한 자산이고, 마르크스가 얘기한 유사상품입니다.
 
상품이 될 수 없는 것을 상품으로 만들어놓았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볼 수 있죠. 이 자산에 대해 얼마나 접근 가능성을 높이느냐, 자기가 가진 자산을 얼마나 전환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가 중요한데, 이 부분은 세습이 될 소지가 굉장히 큽니다. 초기부터 불평등하게 출발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접근가능성을 높여주는 것이 그 나라의 에너지를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정우 선생과 제가 2004년 말에 완성해서 보고했던 보고서가 그 기조에서 만들어진 겁니다.
 
참여정부의 미숙한 외교
 
지승호 - 시민사회의 반대의 목소리나 저항의 목소리를 오히려 협상의 지렛대로 삼아야 하지 않습니까? ‘봐라. 우린 들어주고 싶은데, 이렇게 반대가 심하니 어쩌겠느냐?’라면서 얻을 것은 얻어내야 되는데 우리 정부가 그런 면에서 상당히 부족했던 게 아닌가 합니다. 파병 때도 그랬고, 평택 미군기지 이전 문제도 그런 것 같고, FTA 협상 과정도 보면 그런 것 같습니다.

정태인 - 그러니까 걱정이 되는 거죠. 저는 우리 정부 대표단이 미국 대표단하고 제대로 협상을 할지 걱정됩니다. 지난 국회 토론회에서 ‘영어를 쓰지 말라’고 한 얘기에 대해서 빗대서 한 얘기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요. 실제로 영어를 쓰면 안 되요. 이상하게 우리 고위 관료들은 영어 못하는 걸 대단히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못하는 영어를 자꾸 하는데, 이건 정말로 한 구절, 한 구절이 다 국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거잖아요. 물론 통역을 잘하는 사람을 쓰겠죠. 그러니까 통역 얘기를 잘 들으면서 자기 생각도 정리하고, 통역이 잘못하는 것 같으면 고쳐주면서 이렇게 해나가야 되거든요. 그런데 영어 좀 들리고, 할 수 있다고 해서 섣부르게 하면 정말 큰일 납니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매달려서 협상하기 시작하고, 잘못하면 알아서 길 가능성이 많습니다. 미국 사람들이 운만 띄워도 ‘아, 우리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식으로 나갈 가능성이 많거든요. 제가 정부에 2년 있으면서 느낀 건데, 이 사람들이 경제를 모르는 것에 대해서 전혀 문제라고 생각을 안 해요. 외교는 외교라고 생각하고, 미국 정부가 요구하는 것을 어느 정도 깎으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게 되면 전체적으로 미국의 구도하에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우리 구도라는 게 명확히 있고, 그것을 지켜야 되는데, 우리 구도를 반영시켜야 되는데, 미국 구도를 깎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통상교섭본부가 어디에 있어야 되느냐도 문제가 되는데, 대체로 산유국같이 공급할 것들이 많은 나라에서는 통상교섭본부가 외교부에 있습니다. 다른 나라들은 산자부나 경제 부처에 있는데, 그건 지킬 게 많다는 거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왜 그렇게 되어 있는지 모르겠어요.
 
지승호 - 협상도 하기 전에 저자세로 미국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시작하는 것도 문제가 아니냐는 지적도 많습니다. 스크린쿼터 축소의 경우에도 ‘왜 협상도 하기 전에 선물처럼 던져주느냐?’는 비판이 많은데요.

정태인 - 분명히 그렇죠. 4대 선결조건이 있었잖아요. 그 중 쇠고기와 스크린쿼터는 즉각 해결하라는 요구가 있었구요. 약가 재조정이나 배기가스 문제는 성의를 보이면 되는 문제였죠. 지금 정부가 하는 게 완전히 거짓말은 아닌데, 실제로 이 네 가지 사안이 다 현안이었고, 관계 부처가 절대로 물러서지 않았던 사안입니다. 대통령이 중립적인 위치를 지키면 아무리 재경부라고 해도 일방적으로 몰아붙일 수 없는 사안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전격적으로 합의된 것은 대통령의 뜻이라고 하는 것이 명확히 전달되었다는 얘기예요. 그리고 이것은 대통령이 무슨 이유로든 한미 FTA를 임기 중에 하겠다고 하는 의지를 표명한 거거든요.
 
지승호 - 그 부분에 대해서 ‘임기 내에 뭔가를 만들어내려고 하는 조급증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그 조급함 때문에 결국 상황이 어려워진 것으로 보이는데요.

정태인 - 글쎄요. 그것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이유를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을 했는데, 이유를 찾지 못하겠어요. 가령 안보적으로 무슨 약점이 잡힌 게 아니냐고 하는데, 그렇다면 분명히 NSC(국가안전보장회의)가 개입을 합니다. 그러나 이번 결정에 NSC가 개입했다는 흔적은 없어요. 오히려 개입을 안 해서 문제죠. 이것은 대단한 외교안보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문제인데, 결정할 때까지도 NSC는 전혀 개입을 하지 못했고, NSC의 의견조차 물어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승호 - 그런 이유는 뭘까요?

정태인 - 일단은 한미 FTA를 추진하고 있는 김현종 본부장 같은 분이 한미 FTA의 외교안보적 의미 같은 것을 몰랐던 것 같구요. 또는 알았어도 미국 편에 서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것도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인데요. 대통령도 본인이 얘기하는 동북아 구상하고 부딪힐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지승호 - 보수언론에서 말하는 ‘말이 가볍다, 말이 많다’는 공격과는 좀 다른 이야기인데요. 저는 실제로 참여정부의 일부 관료들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함으로써 이해 당사자들을 자극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영화배우 최민식 씨가 ‘내가 이렇게까지 나서는 이유 중 하나는 관리들이 자신들을 이기주의자로 매도했기 때문’이라고 했고, 평택 문제에서도 국방부 장관의 말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까? 정치라는 것이 이해 당사자의 충돌이 있을 경우 보이지 않게 조율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데, 안 그래도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을 만한 사람들을 정서적으로 자극해서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든 부분들이 있어 보이거든요.

정태인 - 분명히 당사자들을 설득하고, 그 사람들이 합의하게 하는 점에서는 부족하죠. 그건 참여정부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외교안보적으로는 더욱더 그렇습니다. 무서워한다든가 알아서 기어야 된다는 뜻이 아니구요. 가령 한미 FTA에 대해서도 안보동맹에 이어서 경제동맹이라는 얘기는 할 필요가 없거든요. 안 해도 다 아는 문제잖아요.(웃음) 그런 얘기를 하는 건 외교적인 실수죠.
 
지승호 - 김선일 씨 피납되었을 때도 너무 당당하게 ‘파병 철회는 없다’고 말한 부분들이 국민들이 볼 때 ‘어, 국민이 잡혀갔는데, 국가가 지켜줄 수 없다고 선언하는 거네’라고 생각할 수 있거든요.

정태인 - 결론이 바뀌지 않는다든가, 테러리스트에 대해서 단호한 태도를 보이겠다는 의지가 강하더라도 관철시키는 방법이 여러 가지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런 점에서는 미숙하다고 얘기를 해야 되겠죠.
 
지승호 - 미숙한 점도 있었을 수 있지만, 도덕적 우월감 때문에 그랬던 것 같기도 합니다. 참여정부에서 나오는 얘기 중에서 개인적으로 제일 화나는 얘기 중 하나가 ‘집단 이기주의를 엄단하겠다’는 거거든요. 이게 무슨 군사정부도 아니고, 이기주의를 이기 1등급, 이기 2등급으로 나눠서 처벌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사람이라는 게 자기 이익이 침해당하면 자기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고,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걸 조율하는 것이 정치력이구요.

정태인 - 이기주의로 얘기하면 부처 이기주의가 제일 세죠. 아주 좁은 편협한 이기주의죠.
 
지승호 - 자기들은 그렇게 이기적이면서 국민들에게만 이기적이라고 호통을 치는 이유는 뭐라고 보십니까?(웃음)

▲노대통령이 역사의 강박을 벗고 지금이라도 자신감 속에 국민경제를 위한 재인식을 강조한 정태인 전 비서관     © 인물과 사상 문종석

정태인 - 스스로도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과거에 생각했던 가치와 지금 관료들이 얘기하는 것의 가치를 따라가다 보니까 과거에 생각했던 가치를 부정해야 되거든요. 그것을 합리화시키는 방법이 두 가지인데, 하나는 세상이 바뀌었다는 얘기구요. 세상이 바뀌어서 옛날에는 그러한 행동이 역사적 대세를 반영하는 것이지만, 이제는 집단 이기주의라고 하는 논리로 정형화된 것 같습니다. 김선일 씨보다는 여러 가지 지역 문제라든가 계급적인 갈등 문제를 이기주의로 파악하는 측면이 있죠.
 
대기업 노조에 대해서도 일부 사실이지만, 사실은 그쪽을 껴안고 가야 사회적 대타협이 되는 거잖아요. 그쪽을 개혁에 동참하게 해서 같은 편이 되어야 하는데, 귀족노조니 하는 것은 관료들의 시각입니다.
 
관료들이 자기들의 기본적인 사고를 저쪽의 잘못으로 치환하는 것이 집단 이기주의거든요. 적어도 우리 노조가 멕시코의 노조 같은 것은 아니라구요. 그렇게 부패하고, 전혀 비전이 없는 상태는 아닙니다. 비전이 없다면 그것은 우리 사회 전체가 없는 거고, 같이 없는 건데, ‘우리는 있는데, 너희는 없고, 그래서 이기주의다’라고 얘기하는 것은 관료의 얘기에 자기 사고를 두들겨 맞추다 보니까 그런 무리가 나오게 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승호 -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과의 경제협력은 해나가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한다고 보십니까?

정태인 - 그 부분은 옛날에 EC(유럽공동체)가 만들어질 때와 지금은 다르거든요. EC를 만들 때는 바깥에 소련이라는 확실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소련이라는 적에 대항하기 위해서 EC 국가들이 자유롭게 자기의 집합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적이 그 안에 있거든요. 그 안을 어떻게든 분리해서 지배를 해야 되는 그런 상황이라는 말이죠. 그런데 그런 미국을 완전히 배척할 수 있느냐, 그건 아니고, 미국의 이익이 동아시아 지역주의에 합치되도록 해야 되는, 특히 국가의 이익보다는 개별 기업의 이익이 합치되도록 만들어서 국가가 그 이익을 따라서 동아시아 지역주의를 적어도 방해하지 않는 상황을 만들어야 됩니다. 말하자면 초국적 기업이 지역주의의 눈치를 봐야 되는데, 지금은 지역주의를 깨고 동맹으로 가서 초국적 기업이 훨씬 더 자유롭게 얘기를 할 수 있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한미 FTA는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거죠.
 
지승호 - 지금의 정치권을 친미파와 중국과의 새로운 관계를 통해서 국익을 도모하는 친중파의 대립으로 보는 사람도 있는 것 같은데요.

정태인 - 친중도 아니고, 친미 대 반미죠.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FTA 자체가 달라요. 일본이나 중국은 약점이 있기 때문에 낮은 수준의 FTA가 될 수밖에 없지만, 미국은 높은 수준으로 할 것이고, 그것은 너무나 급격한 변화를 요구하는데, 그 변화가 한국의 산업 발전 방향이나 동북아 공동체 형성에 도움이 될 것이냐 하면 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거죠.
 
지승호 - 역사적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일본이나 중국도 결국은 믿을 수 없는 것 아니냐, 결국 기댈 곳은 미국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신데요.

정태인 - 외교안보적으로는 일본하고 미국은 거의 하나라고 봐야 되구요. 경제적으로는 다릅니다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중국 편도 아니고, 미국 편도 아닌, 균형자라고 정부가 강하게 표현했습니다. 정확히 얘기하면 조정자라고 할까, 매개자라고 할까, 저는 캐스팅보트라는 표현을 좋아하는데요. 팽팽하게 대립할 때 중재안을 내고, 오히려 어느 쪽도 편들 수 없기 때문에 중재안을 따라가도록 하는 그 노선이 제일 합리적이고, 동시에 국익도 극대화할 수 있는 노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승호 - 미국의 패권을 견제하고, 거기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EU가 생긴 측면도 있을 거구요. 그래서 아시아도 경제블록을 만들어서 경쟁력을 갖자는 얘기가 나오는데, 이 지역이 가진 장점과 단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정태인 - 장점은 가장 빠른 경제 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거구요. 성장 잠재력이 제일 많은데, 지금은 경제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시장이 아니지만, 잠재성으로 보면 가장 큰 시장을 내부에 이미 보유를 하고 있잖아요. 러시아를 포함하면 자원도 제일 많은 지역이구요. 외교안보적으로도 유럽과 미국의 중심 내지는 매개자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이죠. 다만 미국이 중국을 잠재적 주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 부분에서 한국이 정확히 균형자, 조정자, 매개자 역할을 해야 되는데, 지금 한쪽으로 너무 치우쳤어요.
 
한미 FTA가 미국이 원하는 대로 맺어지게 되면 돌이킬 수 없습니다. 경제적으로도 그렇지만, 외교적으로도 다시 중간자 역할로 가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제가 중간 수준의 FTA 얘기를 했던 겁니다. 전술적으로는 정확히 국민들이 마지노선을 제기해서 그것을 미국이 못 받으면 빨리 끝내는 것이 비용을 줄이는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그것을 우아한 퇴각론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요. 브루킹스 연구소에 가 있는 임원혁 박사 얘긴데요. 그것도 일리가 있는 전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승호 - 추진 과정도 그렇고, 한미 FTA가 성사되면 남북 관계도 경색될 것 같은데요.

정태인 - 여러 변수가 있는데요. 제가 그렸던 최악의 시나리오 쪽이라면 좋을 수가 없죠. 개성 공단을 예로 들면 이래요. 한-싱가폴 FTA에서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원산지 인정이 제일 처음으로 됐는데요. 그건 동북아위원회가 나서서 추진을 한 겁니다. 동북아위원회가 S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었기 때문에 싱가폴 대사를 1주일에 한 번씩 만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가능성을 타진을 했고, 통상교섭본부장한테 얘기해서 ‘될 것 같으니까 인정을 받자’고 한 것이 첫 번째 전범이고, 그 다음에 아세안에서 그걸 인정을 했잖아요. 그런 식으로 해서 일본과도 하고, 마지막에 미국만 남으면 안 받을 이유가 별로 없는데, 그게 갑자기 앞당겨진 거예요.
 
미국한테는 이건 카드거든요. 한국이 원하면 원할수록 그걸 이용해서 다른 걸 얻어낼 수 있는 카드거든요. 외교라는 것도 이렇게 순서가 있는 건데, 미국이 앞서 나오는 것은 좋은 점이 전혀 없어요. 정부가 얘기하는 시장 선점의 효과도 없고, 외국인 직접 투자가 늘어날 이유도 없고, 외교안보적으로 우리가 주도권을 갖는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얘기구요.
 
지승호 - 호주의 협상기술을 배우라고 하셨는데, 호주의 어떤 점을 배워야 합니까?

정태인 - 호주는 투자자-정부제소권을 받아들이지 않았죠. 제가 보기에는 NAFTA 이후에 미국과 맺은 FTA 중에 유일하게 빠진 것 같아요. 정확히 모릅니다만, 농산물이 호주가 세니까 그걸 이용해서 뺀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투자자-정부제소권은 당연한 얘기는 전혀 아니구요.
 
가령 MAI(다자간 투자협정)라는 게 있었잖아요. 그게 유럽 나라들, 특히 프랑스의 반대에 의해서 무산이 되었는데, 그때 가장 큰 이유가 그거였어요. 투자자-정부제소권을 프랑스를 비롯한 EU가 받아들이지 않아서 무산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안 받아들이는 대신에 프랑스나 유럽이 뭘 준다고 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무산이 됐을 거구요. 우리 정부로서는 아까 얘기한 비대칭성 때문에 이걸 받아들이지 않는 게 좋고, 일단 우리의 목표로 안 받아들이는 걸로 해야 되는데요. 문제는 이걸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오히려 그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을 비판하고 있거든요.
 
이것은 협상의 기본적인 태도라고 할까, 기본적인 자세라고 할까, 목표 자체가 대단히 의심스럽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그게 글로벌 스탠더드인 것처럼 얘기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미국 시민단체도 아주 특이하고 특수한 발명품으로 표현을 하고 있거든요. 국가의 어떤 주권 사항을 제3의 민간기관한테 위임을 한  거예요. 국제기구라는 것을 이유로. 그런데 그 국제기구의 불투명성을 생각해 보면 도저히 신뢰할 수도 없고, 당장 국내법의 위헌 소지가 있고, 이런 면들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우리나라의 사법제도로 봐서는 그것의 위헌성조차도 헌법재판소에서 그렇게 판단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잘못하면 한미 FTA가 원래는 국내법보다도 하위 내지는 동등한 위치에 있어야 되는데, 오히려 헌법보다도 상위에 있게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것은 굉장히 큰 문제입니다.
 
협상 시한보다 국익을 먼저 생각해야
 
지승호 - 구체적인 데이터가 안 나온 상황에서 너무 졸속적이고 낙관적인 태도로 가는 것 같은데요.

정태인 - 그들이 말하는 낙관적인 상황은 미국 뜻대로 가는 상황을 말하는 거죠.(웃음)
 
지승호 -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된다고 보십니까?

정태인 - 그렇게 쉽지는 않을 거예요. 미국 뜻대로 간다고 하더라도 빠른 시간 내에는 할 수 없을 거구요. 국내에서 그냥 무조건 반대가 아니라 정확하고 합리적인 반대가 많으면 많을수록 정부도 협상하기 편해지거든요. 정부 협상 목표가 만일에 국익을 최대화한다든가 적어도 국민들의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는 거라면 여러 가지를 많이 생각해야 되는데, 지금 정부는 어떻게든 제 시간 내에 마치겠다고 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 있다는 게 문제죠. 오히려 지금은 국민들이 정보를 요구하고, 마지노선을 제시해서 최소한 속도를 늦추고, 우리 국민의 삶에 치명적이지 않도록 하는 그런 조항들까지도 미국이 못 받는다면 끝내야죠.
 
아마 첫 번째 들어가는 것은 투자자 정부제소권일 겁니다. 그리고 안티덤핑에 관한 미국의 보조, 비대칭성이 이런 데 나타나거든요. 미국은 농업에 보조금을 주면서 남의 나라를 못 주게 한다든가 하는 게 있죠. 또 완전히 무소불위의 안티덤핑의 슈퍼 301조 이런 것들에 대해서 통상협상에서 그것들을 제한하는 조항들이 들어가야 됩니다.
 
지승호 - 앞으로 문제를 어떻게 제기해 나갈 생각이신가요?

정태인 - 공대위가 알아서 할거고, 저는 초기에 문제를 제기했고, 국회가 관심을 가졌고, KBS 프로그램까지 나오면 국민들 관심은 조금 더 구체적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구요. 우리 국민들 구체적인 삶에 한미 FTA가 어떤 것을 가져올 것이냐에 대해서 좀더 정밀하게 조사를 해서 예측을 하고, 얘기를 하면 정부가 부정하거나 찬성할 거 아닙니까? 부정을 하면 좀더 얘기를 하고, 어차피 자발적으로 정부에서 내놓을 것 같지 않기 때문에 그런 역할을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지승호 - 학문으로서의 경제학과 정책으로서의 경제는 어떤 차이가 있던가요?

정태인 - 그건 뭐 제가 92년에 김대중 대통령 공약 만들 때도 참여했고, 민중당 공약도 만들었는데요. 이론하고 정책 사이에는 만리장성이 있어요. 이번에 와 보니까 현실적인 정책이라고 만들어도, 그 다음에 정치적 만리장성이 또 있습니다. 청와대 내부부터 시작해서 부처, 여당, 야당, 조중동에 이르기까지 어마어마한 정치적 만리장성이 있기 때문에 굉장히 많은 준비를 해야지 하나의 경제정책이라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지승호 - 참여정부의 지지율이 떨어진 가장 큰 이유가 사람들이 체감적으로 경제가 어려워졌다고 생각하는 부분인 것 같은데요.

정태인 - 빡빡해지긴 했죠. 객관적으로 심화된 부분이 있구요. 기대수준이 높아져 있기 때문에 그것을 만족시키는 것도 쉽지 않은 듯합니다. 성장률은 떨어지고 있는데, 기대수준은 높아진 상태이기 때문에 거기에 맞추려면 굉장히 힘들죠. 앞으로는 경제정책을 하기가 굉장히 힘들 겁니다. 참여정부가 인기를 잃은 것은 미숙함이나 이런 것보다는 개혁 기조를 놓쳐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실망해서 떨어져 나간 표가 너무나 많죠.
 
지승호 -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이셨는데요. 참여정부의 경제 정책을 전반적으로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정태인 - 인위적 부양정책을 안 썼고, 부동산만큼은 많이 후퇴하고, 돌아가고, 후퇴했지만 막으려 했고, 부분적으로는 차별 시정이라든가 분배정책이 보완이 됐었는데, 한미 FTA라고 하는 어마어마한, 그동안 조금 조금씩 해온 것을 한꺼번에 다 까먹고도, 훨씬 넘는 그런 정책을 한다 하고,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그 앞에 조금 조금씩 했던 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승호 - 비정규직이 너무 많이 생긴 것도 우리 경제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 같은데요. 고용 보장을 통해 생산성을 향상하는 것이 우리 경제를 살리는 길이라는 지적도 있지 않습니까?

정태인 - 한미 FTA가 되면 더 심각해지겠죠. 비정규직 늘어나는 것은 지금 전 세계적으로 일반적인 일입니다. 스웨덴도 많이 늘었을 것이고, 덴마크 같은 사회적 타협 모델에서도 굉장히 많이 늘어났을 거예요. 그런데 비정규직의 내용 자체가 문제가 되죠. 가령 저도 비정규직만 한 사람이지만, 전문가로서의 비정규직하고, 똑같은 노동을 하면서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정당한 대우를 못 받는 것은 확실히 다른 거죠. 동일노동, 동일임금 문제가 생기는 건데, 이거예요. 사람들이 내가 노력만 하면 남들보다 잘 살지는 못해도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다고 하는 희망, 확신 이런 게 있을 때 그 사회가 안정적이 되고, 생산성도 높아질 수가 있거든요.
 
그런데 만일 사람들이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최소한의 인간적 삶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판단이 되면 회의주의, 냉소주의에 빠지고, 생산성이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 부분들을 어떻게 노력에 비례해서 자기 삶이 개선될 수 있다는 확신으로 바꾸느냐, 희망으로 바꾸느냐가 앞으로의 정치, 정책의 과제가 되어야 할 겁니다.
 
제가 보기에는 YS도, DJ도, 참여정부도, 확실한 정책체계를 갖고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조금 가지고 있을 뻔했던 김대중 대통령인데, IMF 경제위기에 압도되어서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수행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이제 다음 대통령은 정말로 정책기조와 정책의 대강, 상당히 구체적인 핵심적인 정책들을 가지고 대통령이 되야 할 겁니다. 그렇게 안 되면 아무리 대통령이 똑똑해도 2~3년 지나면 여전히 관료가 지배하게 될 겁니다.
 
지승호 - 김대중 정부 때부터라고 쳐도 민주정부가 들어선 지 10년이 가까워지는데요. 사람들의 희망은 더 없어진 것 같거든요. 이런 상황에서 한미 FTA가 성사되고, 한나라당이 집권한다면 서민들이 희망을 가지고 사는 삶이 거의 파괴될 것 같구요. 그걸 돌릴 수 있는 에너지를 소위 개혁세력이 파괴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거든요.

정태인 - 최악의 경우가 심각한 경제위기를 통해서 또 한번 정권 교체가 되는 거거든요. 그게 상처가 너무 크기 때문에 그렇게는 안 돼야겠죠. 핵심은 자산에 대한 접근 가능성을 높여주고, 자산의 전환능력을 키워주는 식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공병호식으로 스스로 알아서 해야 된다는 건 말이 안 되구요. 스스로 알아서 할 만한 여유 같은 것이 주어지는 그 자체가 자산이기 때문에 자산의 재분배라는 측면에서 접근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구체적인 정책도 그 기조에서 충분히 만들 수 있구요. 영원히 노력해도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자산의 분배 상태가 나쁘고, 그게 소득에 의해서 개선되지 않는다는 거거든요. 그러면 체계적으로 노력해서 자산의 분배 상태를 바꿀 수 있는 상황이 주어져야 하는데요. 과거에는 그게 교육이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거꾸로 작용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 측면에서부터 풀어나가야 되겠죠.
 
지승호 - 지금은 변화를 이뤄내기 위한 동력들이 없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정태인 - 지금도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했던 그 심성이나 에너지는 그대로 있어요. 그 에너지를 정책으로 바꾸고, 실제로 삶을 개선하도록 반영한 것이 아닌 게 문제죠. 정말 노대통령을 틈틈이 국민들이 구해 줬잖아요. 나락에 떨어질 때마다 국민들이 동원되었는데, 그만큼 행운의 정치가였어요. 탄핵까지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살려냈는데, 그런 에너지를 정책화하는데 쓰지 않았다는 게 문제죠. 오히려 자기는 냉정하고 올바른 것을 택한다는 심성으로 그 에너지가 잘못된 측면이 있던 것처럼 했던 게 잘못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승호 - 이 시점에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당부드릴 말씀이 있으신가요?

정태인 - 뭔가 역사적인 대통령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좀 버렸으면 싶구요. 지금까지 한 일에 대해서 자신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한미 FTA 같은 외부 쇼크 이런 생각을 안 했으면 좋겠구요. 개혁이라는 것도 때가 있고, 사람이 있고 하는 건데, 생각하는 것만큼 못 가면 할 수 없거든요. 그 다음에 또 다른 사람이 하게 되어 있는 거구요. 그런 얘기도 하죠. 스스로도 말씀하셨듯이 구시대의 막차면 막차답게 해야 되는데, 지금은 잘못 가고 있습니다.
이회창 후보를 공격했을 때의 그 기조, 이회창 후보가 내세운 잘못된 기조로 가고 있거든요. 그건 잘못된 거죠. 그러면 그 전에 이회창 후보를 공격했을 때 내세운 논리가 잘못된 거라는 얘기거든요. 아니면 그때는 맞았는데, 불과 2~3년 만에 바뀌었다고 하면 한 치 앞도 못 봤다는 얘기구요. 그렇지 않습니다. 대통령이 잘못 짚은 거고, 초조해서 자신감을 잃고, 관리들이 하는 얘기들만 듣고 ‘어쩔 수 없이 이게 대세인가 보다’ 생각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어떻게 치장을 해도 원래 대통령이 처음 생각했던 게 옳은 거고, 실제 경제도 그렇게 흘러가고 있어요. 그게 역사의 흐름입니다. 그런데 그걸 지금 자꾸 뒤집어서 생각하고 계신데, 그러기에는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너무 막중합니다.
 
지승호 - 대통령의 모든 행동을 마음에 안 들어 했던 보수언론들이야 그렇다 쳐도 (요즘은 너무 좋아하긴 하지만) 지지자들의 입장에서도 연정 제의라든가 하는 것은 이해가 안 되는 것이었거든요.

정태인 - 개혁론 입장에서 보면 원래는 사회적 대타협, 아래와 위가 타협하는, 대통령이 그것을 중재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하려고 했는데, 그게 잘 안 된다는 판단을 하신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은 시도도 제대로 안 했습니다. 그런데 몇 가지 사안에서 노조에 실망을 하고, 안 될 거라고 지레 짐작을 하고, 옆으로의 개혁을 시도한 거거든요. 독일을 흉내낸 건데, 그것은 사회적 대타협이 있고 난 다음에 옆으로의 연합이 있는 건데, 그것 없이 옆으로의 연합을 시도했기 때문에 당연히 실패했구요. 오히려 굉장한 공격의 빌미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것조차 안 되니까 이제는 바깥에서의 혁명, 외부 쇼크에 의한 개혁을 생각하는 것 같은데요. 대연정부터 방향을 잘못 잡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승호 - 한나라당이 두 번이나 대통령 선거에서 실패하면서 패닉상태에 빠졌다가 지금 수습을 해가면서 저항을 넘어 포위를 해나가고 있는 상황인데요. 대통령이 그것에 저항할 수 있는 수단이 대통령으로서 아젠다 세팅 능력밖에 없어 보이기도 한데요. 어쨌든 대통령이 얘기를 하면 비판하기 위해서라도 기사화시키니까요. 그런데 그게 올바른 방향이면 문제가 안 되겠지만, 지금은 조선일보에서 극찬을 하는 방향이니까 문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정태인 - 요새 국정 브리핑 보면 조중동을 보는 건지, 청와대 얘기를 듣는 건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실제로 두 개를 떼어놓고 찾아보라고 하면 못 찾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멕시코 관료가 한 얘기와 미국 관료, 한국 관료 얘기를 섞어놓고 찾으라고 하면 못 찾을 겁니다. 얘기가 비슷비슷하니까요.
 
지승호 - 멕시코의 경우 부자와 정치세력, 기술관료 등이 FTA를 찬성하며, 그들이 미국의 USTR(미국 무역대표부)과 같은 생각을 한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우리도 미국식으로 사고하는 분들이 많지 않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이 감시하고, 저항하지 않으면 이대로 흘러가 버리는 것 아닙니까?

정태인 - 그렇죠. 만약에 공대위나 이런 쪽에서 노력을 덜했으면 과거의 운동이 될 수 있어요. 시작할 때 한 번 반대하고, 비준할 때 한 번 반대하고 끝날 수 있는데, 이번에는 그렇게 되면 안 됩니다. 아주 조급하게 뭘 하려고 하는 것은 기대가 너무 큰 거고, 꾸준히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해야 합니다. 이 맥이 승리하지 못하면 상당 기간 반동이 지속될 겁니다. 복원하는데 상당히 오래 걸릴 겁니다.
 
멕시코를 보면서 그것도 느꼈어요. 과거의 혁명세력이 안주해서 부패했을 때 그걸 다시 복원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를 봤죠. 수구라고는 할 수 없지만, 새로운 방향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을 때, 비록 사이비지만 구세력이 자기들의 한계를 생각하고 뉴 라이트 같은 이런 것들을 제시해서 국민들을 현혹하는데 다 이쪽에서 배운 거 아닙니까? 이 상황에서 뚜렷하게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면 상당 기간을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시 경제 문제에서 민주주의 문제가 겹치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방향이 어느 정도 통일이 되었다고 보는데,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정권에 점점 많이 갔어요. 그런데 여전히 힘이 부족하고, 이게 패퇴하고 무능한 것으로 찍히게 되면 한동안 반동의 시기를 겪는데, 그게 역사에서는 비용이 큰 단계를 겪게 되는 거죠. 한미 FTA 투쟁은 앞으로 오랫동안 그 비용을 치러야 될 거냐, 아니냐를 가늠하는 투쟁이 될 겁니다.
 
지승호 - 일부 관료들은 이 상황을 100년 전의 쇄국을 해서 당한 역사를 들먹이는데요.(웃음)

정태인 - 역사를 하나도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얘기죠. TV에서 토론을 좀 해봤으면 좋겠어요. 역사 공부를 하고 하는 얘긴지.(웃음)
 
지승호 - 우리한테 굉장히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시기이고, 이 결정에 따라 나라의 100년이 좌우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비슷한 상황 아닙니까?

정태인 - 굳이 구한말에 비유를 하자면 동학의 사상하고, 개방·개혁을 생각했던 김옥균적인 사상이 결합을 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한말에도 그 외의 방법은 없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게 개혁 따로, 개방 따로 이런 식으로 가게 돼버리면……. 보통 개방하고 이것은 언제나 같습니다. 시장이 들어왔을 때 재판농노제도 그렇고, 그게 아까 얘기한 자산 문제인데, 부자들의 사상이 어떻든 간에 잘사는 사람들이 더 잘 적응하게 되어 있어요. 그렇게 되면 봉건적인 게 더 오래갑니다. 시장이 봉건적 유제를 더 오래 지속시키는 역할을 해요.
 
지승호 - "기업을 규제할 수 있는 장치가 점점 없어져서 초국적 기업의 이익을 위해 주권과 민주주의, 인간적인 삶 자체가 훼손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하셨는데, 이렇게 진행이 되다보면 할리우드 영화처럼 국가가 아니라 회사가 사람들을 지배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국방이나 치안도 기업이 맡게 되구요.

정태인 - 극단적인 상상의 소산인데, 그렇게까지는 안 가겠죠. 저는 미국형이라는 게 그렇게 오래가지는 않는다고 생각해요. 정부가 어쩔 수 없다, 대세를 따르자고 하는 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대세는 그게 아닌데…….
 
지승호 - 난파선에 타고 나면 내리더라도 낙인이 찍힐 것 같은데요.(웃음)

정태인 - 대통령이나 그 측근과 운동이라든가 개혁세력을 동일시하는 것도 문제인 것 같아요. 그 사람들이 본류를 벗어나면 다른 사람이죠.(웃음) 동일시할 이유가 전혀 없죠.
 
지승호 - 그 이후에 대통령을 따로 만나거나 하신 적은 없으신가요?

정태인 - 1월 26일 이후에는 만난 적이 없습니다. 메시지도 받은 적이 없구요. 실제로 청와대와는 완전히 절연된 것 같아요.
 
지승호 - 마지막으로 해주실 말씀은 없으신가요?

정태인 - 지금도 너무 많은 얘기를 했어요. 속을 다 뒤집어놓은 것 같은데요.(웃음) 사실 저는 미술 하는 사람들이나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행복하거든요. 그런데 이걸 안 하면 안 되니까 금년 말까지는 여기에 휩싸여 있을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요즘 끊은 게 많아요. 술도 많이 줄였고……. 제가 드라마광인데요, 청와대 있을 때 그 바쁜 와중에도 새벽에 가서 드라마를 봤는데요. 요새는 드라마를 못 봤어요. 아는 드라마가 없습니다. TV를 안 본 지가 2개월이 넘은 것 같습니다. 행담도가 겹쳐 있을 때는 병원에도 입원하고 그랬었는데, 요즘 정신적으로는 좀 좋아졌습니다.
 
한미 FTA 관련 활동을 하는 동안 즐기는 건 안 될 것 같지만, 성실하게는 해야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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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6/23 [16:3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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