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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언론보다 더 잔인한 한국의 보수언론
[기자의 눈] 중국에 예속당한 홍콩언론 이용 농민매도, 국익은 어디갔나?
 
도형래   기사입력  2005/12/21 [15:59]
우리 속담에 “때리는 시어미 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라는 말이 있다. 최근 홍콩 反WTO 시위대에 대한 국내 언론의 보도태도를 보면 이 속담만큼 적절한 예를 찾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보수언론, 조중동은 말할 것도 없고 나날이 보수적 논조를 강화하는 YTN, 인터넷 포털의 댓글 등을 보면 홍콩 ‘시위 원정대’에 대한 비난 일색이다. 비난의 주된 이유는 ‘폭력시위’로 한국의 이미지, 나아가 ‘한류’산업 등에 막대한 타격을 가했다는 것이다.
 
보수층의 목소리 뿐 아니라 대기업의 입장을 대변하는 조중동은 아예 출발도 하기 전에 아예 ‘폭력시위’를 전제하고 '폭력시위는 말라'는 친절한 경고‘를 잊지 않았다.
 
11월 23일, 조선일보는 ‘홍콩을 떨게 만든 한국의 불법 폭력시위’ 제하의 사설을 통해 “시위로 날밤 지새우는 나라로 알려진 지 오래지만 이젠 폭력 시위를 수출까지 하는 나라로 지목되고 있는 것이다. (중략) 홍콩은 韓流한류 영향도 있고 해서 한국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는 곳이다. 폭력 시위로 홍콩 거주 동포들에게까지 누를 끼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농민들로 구성된 시위대를 아예 ‘폭력 시위대’로 단정하고 있다.
 
24일, 세계일보는 한술 더 떠 ‘홍콩으로 원정가는 한국 시위대’ 기사에서 “무분별한 시위로 한류 덕분에 동남아에서 부쩍 고양된 국가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자신들도 돌이킬 수 없는 낭패를 당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 바란다”며 “한국같이 국가경제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나라의 국민이 비행기 타고 해외 원정까지 가서 WTO 회의를 결사 반대하는 것을 이해할 외국인이 몇이나 되겠는가”고 충고아닌 충고를 늘어 놓았다
 
이들의 눈에는 왜 한국 농민 1500여 명이 절박한 농촌과 나락(벼)을 쌓아두고 비싼 비행기 값이며 체재비까지 물면서 홍콩까지 가야만 한 사정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한국의 농민들은 벼랑 끝에 몰리는 농업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전 지구적 차원에서 행해지는 ‘WTO 각료회의’ 저지가 중요하다고 판단, 아시아 나아가 전 세계 민중과 연대하기 위해 홍콩에 몸을 실은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농민들의 절박한 상황은 보수신문과 언론 어느 곳에도 눈에 띄지 않았다.
 
농민들도 홍콩의 반WTO 시위를 폭력적으로 이끌 생각은 없었다. 그동안 다양한 경험을 축적, 어느 곳에서든 그 상황에 맞게 시위를 펼칠 수 잇는 노하우가 축적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는 다른 말로 말하면 그만큼 한국의 농민들이 각종 시위를 해야할 만큼 피폐된 삶을 살았던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농민들은 도착부터 풍물을 앞세우고 질서정연하게 거리행진과 고 전용철 열사의 영정과 상여 등 사진 전시, 촛불집회 등을 통해 한국 농업의 실상을 알리고 홍콩 및 전 세계에서 모여든 NGO 활동가들과 연대와 교류를 통해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저지 의지를 확산시켰다. 그리고 다른 나라 시민운동가들이 상상도 못할 ‘바닷물 뛰어들기’ 및 ‘삼보일배’를 통해 홍콩 시민과 전 세계 시민운동가들을 감동시켰다.
 
한국의 보수언론은 딱 거기까지였다.
 
시위가 평화롭게 전개될 때는 홍콩 언론까지 끌어들여 칭찬해 대면서, 세계시장을 위해 한국농업을 희생시킬 수도 있다는 한국 정부대표의 말에 항의시위가 일어나면 안면을 바로 바꾸었다.
 
무엇보다 17일 밤 ‘WTO 각료회의’ 폐막과 동시에 날아든 홍덕표 농민의 죽음 소식에 농민시위대는 전원 연행을 감수하면서도 이역만리 홍콩에서 분노의 함성을 내지를 수 밖에 없었다. 무려 1100여 명이 홍콩 경찰에 폭력과 인권침해를 받으면서 속속 연행됐다.
 
그 다음날부터 보수언론의 대대적인 비난공세가 이어졌다. 이른바 ‘한류열풍’과 ‘국가이미지’등을 들먹이며 한국 농민들을 세계정세도 모르는 ‘청맹과니’로 몰아 부쳤다.
 
그러나 이들은 한국 시위대의 색다른 평화시위와 삼보일배 등으로 홍콩 시민과 전 세계 시민운동가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 것에 대해급하지 않았다. 곁들여 경찰의 폭력진압으로 두 명의 농민이 연이은 죽음은 아예 언급도 안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한국 보수언론이 홍콩의 현지 여론이라고 하면서 들이대는 홍콩언론의 이중성을 전혀 고려하지, 아니 아예 모르거나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홍콩은 지난 97년 7월 1일 중국에 반환된 이후 겉으로는 ‘일국양제(一國兩制)’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다른 것은 몰라도 언론 만큼은 철저히 중국 북경정부의 지시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중국은 ‘천안문 사태’ 경험 이후 시민들의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을 엄격히 했고, 홍콩 반환 이후에는 보다 많은 홍콩의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잠재우기 위해 상당한 압력을 가하고 있다. 특히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시민운동을 더욱 억제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한국 시위대에 관해 홍콩언론은 이미 북경정부가 정해준 ‘가이드라인’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시위와 구속상황을 <대자보>에도 소개한  김도형 씨나 김어진 씨의 기사에 따르면 “홍콩 미디어는 투쟁단의 폭력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한 개의 신문사가 수십 명의 카메라맨을 동원하고 무전기로 상황을 통신하는 등 왜곡을 일삼았다”고 한다. 또 홍콩언론의 이같은 기동성에는 “한국 경찰과 언론으로부터 제공된 격한 투쟁의 모습과 진압 노하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 시위대가 거리행진과 삼보일배 등을 할 때 마실 물과 치료를 해주며 격려를 아끼지 않은 홍콩 시민들의 모습은 홍콩의 언론에도 한국 보수언론에도 모두 실종됐다.
 
한국 보수언론은 홍콩 언론을 받아 쓰기에 급급했다. 거꾸로 말하면 사회주의 중국이 자본주의의 꽃인 홍콩의 언론을 압박해 나온 기사를 한국 보수언론은 무비판적으로 받아 쓰고, 그것도 모자라 ‘폭력시위’만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보수언론으로서는 연이은 농민의 죽음으로 한국 농업에 비판적 입장을 내 보일 수 없는 상황에서 홍콩 시위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한국 시위대가 홍콩 경찰에 의해 구타와 인권침해, 나아가 고무탄 까지 사용하며 과잉진압 한 것에 대해서는 애써 침묵하고 있다.
 
황우석 사태에서 그렇게 국익을 따지고, 노무현 정부를 ‘좌파’로 매도하는 보수언론이 ‘중국=홍콩언론’을 그대로 받아 쓰고 있는 현실, 정말 보수언론이 그렇게 떠들어대던 ‘국익’은 둘째치고 자존심도 없는지 묻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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