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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로 중국 남방 개척을 다짐하다
[한글 살리고 빛내기 79] 중국 절강월수외대에서 한글문화큰잔치 열다
 
대자보   기사입력  2024/05/10 [21:37]

중국은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요 중국 동북 3성에는 우리 동포도 많이 살고 있다. 그리고  중국과 우리는 수 천 년 전부터 오가며 같은 문화에 젖어있다. 그런데 중국이 공산국가가 되면서 우리 남쪽과는 오가지 못한 장막 속의 먼 나라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88올림픽이 열린 뒤에 중국과 우리나라는 외교 관계가 회복되고 서로 오갈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 기업들이 품삯이 싼 중국으로 많이 옮겨가면서 우리 기업에 취직하려는 중국 학생들이 우리말을 많이 배우게 되었다. 중국과 우리가 수교하기 전에는 중국에  우리말을 가르치는 대학이 연변, 북경 상해 들 5개 정도였다는데 한국과 수교하고 10년이 넘으면서 중국 대학에 있는 한국어학과가 150개가 넘게 늘어났다.

 

우리는 자본주의 자유경제 체제여서 빨리 잘 살게 되고 한글로 자주문화가 피어났는데 중국은 공산주의 통제 경제 체제어서 우리보다 더 못살 게 되었다. 그래서 지난 수천 년 동안 우리가 중국말을 배우려고 하고 중국 문화에 빠졌지만 이제 거꾸로 중국인들이 우리말과 우리문화를 배우려고 했다. 그래서 우리가 세계에 우뚝 설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보고 나는 중국에 우리 말과 문화를 알리려고 중국 대학에 간 것이다. 그러던 2007년 중국에 가 있게 되어 처음으로 우리 대통령 선거에 참여하지 못했고 한가위에 생전 처음 집을 떠나서 그곳에서 보내게 된 날 그 대학에 함께 근무하던  박병천 교수와 연변 동포 유은종 교수, 셋이 회계산 아래 강가에서 보름달을 벗 삼아 술을 마시며 고국 생각을 하게 되었다. 

 

▲ 중국 이름난 서예가 왕희지(307~365) 가 흐르는 물에 슬 잔을 띄우고 시를 짓고 놀았다는 난정 유상곡수 터에 갔을 때 글쓴이 찍그림. 유상곡수를 보고 신라가 포석정을 만들었다.  © 리대로



그때 서예가인 박병천 교수가 10월에 한국서예협회 분들이 옛날 중국 서예가 왕희지가 살던 소흥에 오는데 우리학교에서 한글서예 전시도 한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한글서예 전시만 하지 말고 한글문화큰잔치를 합시다.”라고 제안을 했다. 나는 한글날이 국경일이 된 2006년 한글날에 한글날큰찬치조직위원회 사무총장으로 행사를 마지고 왔으며 이 기회에 중국에 일어나고 있는 한국어 바람을 더 부채질하자는 생각으로 그 제안을 했고 두 분도 좋다고 했다. 그런데 돈이 있어야 해고, 행사 준비 기간이 두 달도 남지 않아서 걱정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런 행사를 여러 번 해봤기에 내가 책임을 지고 시행하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 2007년 한가위 밤에 중국 회계산 아래 강가에서 보름달을 보면서 박졍천, 유은종, 이대로 세 사람이 한글로 중국 남방을 개척하자고 결의하고 다짐한 중국 소흥 대우릉 앞 물길.  © 리대로

 

그리고 2006년 첫 한글날이 국경일이 되었을 때에 한글날큰잔치조직위원회 정부 측 위원장을 맡았던 이상규 국어원장에게 내 뜻을 알리고 지원을 요청해서 500만 원을 받고, 유은종 교수가 전 중국 대학에 가 있던 연변 동포 한국어학과 교수들에게 “한국어 말하기, 노래하기, 한글 붓글씨와 연필 글씨 대회”를 열고 상금을 준다고 하니 많은 대학에서 참가했다. 학교에서도 좋은 일이라고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 행사를 아주 성공리에 마쳤다. 그때 한국 국립국어원과 중국 절강월수외대에 “세종학당 설립을 위한 업무협정”식도 했다. 그 이듬해부터는 중국 유학생을 필요로 하는 한국 대학들이 행사 지원을 해주어 계속했다.

 

▲ 2007년 첫 한글문화큰잔치 때 한국 국립국어원과 중국 절강월수외대가 세종학당 설립 업무협정식(왼쪽)과 붓글씨 대회 뽑힌 작품을 살펴보는 유은종 교수와 국립국어원 최용기 부장.  © 리대로


이렇게 중국에서 시작한 한글문화큰잔치는 그 다음 해부터는 한국 중원대학교와 대진대학교 들이 도와주어 성대하게 진행했다. 중국 광동외대, 중경외대 들들 중국 대학생들이 참여하고 강당에는 500여 명 학생들이 꽉 차게 모여 재미있게 지켜보며 한국 문화를 즐기고 배웠다. 처음에는 학생들만 대상으로 말하기 노래하기 글쓰기 대회만 하다가 몇 해 뒤부터는 한국과 중국 한국어과 교수들이 모여 한국어교육 학술대회도 했다. 한국 대학에서도 그렇게 크고 진지하게 한글문화큰잔치를 하는 일이 없었다. 이 일은 한류 바람을 부채질하는 일이었고 한국과 중국이 서로 문화를 교류하고 가깝게 지내는 데에도 이바지했다. 그런데 9년 째 추진하다가 미국 사드기지가 한국에 배치되면서 중국과 한국이 사이가 벌어져서 중단되었다.

 

▲ 한글문화큰잔치 개회식 찍그림(왼쪽)과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 한복을 입고 나온 중국 학생모습(오른쪽)  © 리대로


중국과 사이가 좋아지면 다시 중국 대학에서 한글문화잔치를 할 수 있기 바라지만 그때 그렇게 성대하게 한말글 잔치를 한 것은 매우 값진 일이었다. 우리 말글과 문화가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정부에 세종학당 사업을 힘차게 할 기회임을 알렸고 지금 세종학당이 세계에 수백 개로 늘어났으며, 서울에 한글역사문화관(한글박물관)을 짓자고 건의했는데 잘 추진이 안 되어 2009년에 귀국하여 용산에 짓게 했고, 서울시에 한글이 태어난 경복궁 앞 일대를 한글역사관광지로 꾸미지가 건의해 한글마루지사업도 잘 추진되었다. 그러나 국제 정치와 얼빠진 정부, 비뚤어진 한국 전문가들 때문에 모두 내 뜻대로 안 되어 답답하고 안타깝다. 그 이야기는 다음에 이어서 밝히겠다.

 

▲ 2008년 중국 월수외대 한글문화큰잔치 때 한글 손 글씨 쓰는 모습을 살펴보는 국립국어원 이상규 원장과 중국 월수외대 노세걸 부총장(오른쪽), 손 글씨 대회에 참석한 나와 행사 관계자들 모습(왼쪽)   © 리대로

 

▲ 한글문화큰잔치 때 학교 안 곳곳에 살치한 행사 안내판. 일본어학과나 영어학과 들 다른 외국어학과에서는 이런 행사를 한 일이 없는데 한국어학과만 이런 행사를 했다. 이런 좋은 행가가 국제정치문제로 할 수 없게 되어 너무 안타깝고 아쉽디. 빨리 자주독립국이 되자.  © 리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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