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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현판 뗄려다가 한글 죽일셈인가
[시론] 정치문제 아닌 순수 문화재복원이면 공개토론회에서 입장밝혀야
 
이대로   기사입력  2005/02/14 [12:31]
지난 1월 23일 문화재청(청장 유홍준)이 광화문 한글현판을 떼고 한자현판으로 바꿔 달겠다고 발표했다. 그 때 한글현판을 떼어내는 까닭으로 밝힌 것은 “문화재 복원은 원래 모습으로 하는 게 원칙이다. 한글현판이 경복궁의 공간 성격과 맞지 않고 글씨가 옛 현판처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한자로 써 있지 않기 때문에 정조대왕의 글씨로 짜깁기해서 달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에 대한 반대 여론이 들끓으니까, 유홍준 문화재청장과 정양모 문화재원회 위원장까지 나서서 여러 가지 변명을 하고 있으나, 말이 오락가락하고 무언가 속마음을 숨기고 있고, 서두른다는 느낌이 든다. 나랏일이 애들 장난이 아닌데 국민을 무시하고 멋대로 하는 거 같기도 하다.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따져 본다.
 
1. 1월 24일 “군사독재의 얼굴, 광화문 현판 바꾼다”는 제목으로 쓴 한겨레신문 보도를 보면 정조대왕의 글씨에서 짜깁기한 현판 사진까지 나와 있고 “정조 글씨를 택한 것은 그가 역대 임금 가운데 대표적 명필로 꼽히는 데다, 집자가 쉬운 비석글씨가 많이 남은 점도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새 현판 도안을 이 달 중 전통판각장 오옥진(중요 무형문화재 기능 보유자)씨에게 맡겨 현판 제작에 들어갈 계획이다.”라고 적고 있다. ‘이 달 중’이라면 1월 중에 판각장 오옥진씨에게 일을 시키겠다는 말인데 문화재위원회에서 최종 결정이 나지도 않고서 제작에 들어간다니, 이상한 일이다. 
 
2. 거기다가 경복궁과 깊은 관계가 없는 정조대왕의 글씨로 짜깁기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국민의 소리가 크니까, 정양모 문화재청장은 와이티엔 백지연의 뉴스큐에 나와서 원형대로 한자로 바꿔야 한다면서, “현판 교체 시기나 서체 등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 문화재청이 이 문제를 위원회에 회부한 이후 원점에서부터 구체적으로 심의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판각장 이름까지 들먹이며 결정된 거라고 하더니 한발 물러선 것이다. 그러면서도 문화재청장과 문화재위원장, 문화재위원까지 나서서 결정되지도 않았다는 내용을 가지고 방송과 신문에 나와서 현판은 한자로 바꿔야한다는 것만 힘주어 떠들고 있으니 앞뒤가 맞지 않아 알쏭달쏭하다. 
 
3. 박정희에 대한 정치 감정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아부성에서 그런 결정이 나온 게 아니냐는 여론이 일어나니까, 유 문화재청장은 김영삼 정권 때 결정한 일이고, 또 2003년에 공청회도 했다면서 자신이 결정한 것도 아니고 자신의 감정과는 관련이 없다고 말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걸 믿지 않고 있다. 그는 과거 신문칼럼 등에서 “박 전 대통령의 광화문 현판 글씨에 살기조차 느껴진다.??고 주장한 것이나, 문화재청장도 박정희가 쓴 건 잘못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유 청장은 현충사는 박정희의 기념관 같다고 말했다가 사과한 것을 보아도 박정희에 대한 감정에서 나온 결정임을 말끔하게 씻기 힘들다고 보는 국민이 많다.
 
4. 한글이 빛나는 게 싫은 것으로 보인다. 유 청장은 “광화문에 한글현판이 맞을 수가 없다. 세종대왕 묘소인 여주 영릉에서 어떻게 기릴까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글을 만들고 공포한 곳이 경복궁이고, ‘광화문’이란 이름도 세종 때 지은 것인데, 어찌 광화문에 한글현판이 맞지 않는단 말인가? 또 한글을 기리는 일을 많은 국민이 보기 쉬운 서울 광화문이 아니고 세종대왕의 무덤에서 펼치겠단 말인지, 이해가 안 간다. 평소 한글이 잘 되는 걸 싫어하는 조순(한겨레신문 1월 24일치) 씨와 박석무(국민일보 2월 3일) 씨가 한자현판이어야 한다고 거든 게 그런 느낌을 준다. 조순 씨는 한국은행 총재일 때 국가기관 현판은 한글로 달기로 된 규정이 있는 데도 ‘韓國銀行’이란 한자현판을 고집한 사람이고, 박석무 씨는 14대 국회 때 국민들에게 한자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도 의원 이름패를 한자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이다.
 
5. 문화재청장과 문화재위원장은 국민을 우습게 여기는 거 같다. 처음엔 이미 다 결정된 것처럼 말하더니, 여론이 들끓으니까 아직 결정된 게 아니고, 문화재위원회 고유 권한이며, 문화재 복원은 원래 쓴 한자로 복원하는 게 원칙이라고 강조한다. 전문가도 아닌 국민이 이래라 저래라 말하는 건 건방지다는 소리로 들린다. 이 나라는 국민이 주인인 민주주의 나라요, 나라의 일을 하는 사람은 국민의 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는 기본조차 모르든가 무시하는 소리다. 김영삼 정부 때 결정된 일이고, 2003년에 그 문제에 대해 공청회를 했다고 하지만, 많은 국민은 일제의 옛 조선총독부 건물을 헐고 그 자리에 경복궁 건물을 다시 복원한다는 것만 알고 있었지, 한글현판을 떼고 한자현판을 달기로 결정했다는 건 까맣게 모른 일이다. 
 
6. 문화재청장은, 이 문제에 관해 공개 토론을 하자는 한글단체들의 주장을 못 들은 체 무시하고 있어 안타깝다. 한글단체는 지난 1월 29일 문화재청 누리집에 있는 ‘문화재청장과의 대화’ 창에 우리 뜻을 알리는 글을 올렸고, 또 자유게시판과 민원질의에도 올렸으나, 지금껏  아무 대답이 없다. 우리 문화를 생각해서나 한글단체와 문화재청을 위해서도  터놓고 이야기하는 건 뜻있는 일이라고 본다. 문화재청이 우리 문화유적을 본래대로 복원하는 게 좋다는 뜻은 한글단체도 충분히 이해하고 그 노력을 탓하는 게 아니다. 그러나 이번 광화문에 달린 한글현판을 떼는 문제는 서두를 일이 아니고 충분한 논의와 이해가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한글단체는, 오는 2월 21일 오후 6시 세종문화회관에서, 문화재청장과 문화재위원장을 초청해 공개 토론회를 열려는 것이다. 
 
7. 한글을 사랑하고 한글이 훌륭함을 잘 안다면서 일본 식민지시대부터 한글을 지키고 빛내고 살리기에 애써 이제 나라의 글자로 자리 잡게 한 국어독립운동의 상징물인 한글현판을 광복 60주년 기념으로 떼버리겠다니 가슴 아프다. 차라리 광복 60주년 기념으로 그런 일을 하지 말고 박정희가 죽은 날이나 군사독재 정권이 무너진 날, 한자가 이 땅에 들어온 날이나 중국 연호를 쓰기 시작한 날에 그러겠다면 모르겠다. 일제가 물러감으로서 우리 글자를 마음대로 살려 쓸 수 있게 된 광복절 기념으로 한글현판을 떼 내고 한자현판을 달겠다니 답답하다.
 
한글을 입으로만 사랑해선 안 된다. 한글 사랑 으뜸은 실제로 쓰는 것이다. 제 나라의 글자를 제 대접하는 일, 한글 사랑 실천이 언어 순결주의나 국수주의가 아니다. 한글을 널리 씀으로서 온 국민이 똑똑해지고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이 빨리 될 수 있었다. 한글은 한국인들이 자랑스럽고 은혜롭게 여길 글자이지 부끄러워하거나 천대할 글자가 아니다. 한글 쓰기는 우리 겨레와 나라의 참모습을 지키는 일이고 빛내는 일이며 바른길로 가는 일이다.  
 
더욱이 이번 광화문 한글현판 떼 내기는, 문화재 복원이라는 미명 아래 한자숭배자와 박정희 반대자들이 한 마음이 되어 짜낸 정책 추진이며, 중국 진시황의 분서갱유나 마오쩌뚱의 문화혁명, 연산군의 한글 죽이기를 떠올리는 일로 보는 국민이 많다. 나라 돈으로 한풀이 정치나 민족정기 쓸어내는 문화재복원을 하지 말고, 큰 정치, 민족정기 살리는 문화재복원을 하기 바란다는 소리도 있다. 우리 민족문화의 꽃인 한글을 살리고 빛낼 생각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짓밟고 있다는 소리도 높다. 참외밭에서 신발 끈을 매지 말고 배나무 아래에서 갓끈을 손대지 말라는 옛말이 떠올라 안타깝다. 이런 여러 가지 의혹을 풀고 그 일을 하는 게 순리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한자로 광화문 현판을 썼다면 떼어내지 말자고 했을까? 경복궁에서 창제된 한글은 우리 겨레가 길이길이 보존하고 자랑하고 즐겨 써야 할 으뜸 문화유산이며, 광화문이란 이름도 한글을 만든 세종 시대 지은 것이니, 그때 그 문화정신을 살리는 뜻에서, 우리 문화의 꽃인 훈민정음 글씨체로 다시 써서 달면 안 될까?  참된 민주정치와 바른 개혁은 세종대왕이 백성을 생각해 우리 글자를 만들고 쓰게 한 정치임을 오늘날 민주시대에 나랏일을 하는 정치인과 관리들이 깨달을 수는 없을까? 국민은 이 밖에도 궁금한 게 많고, 하고 싶은 말도 많다. / 본지 고문
 

유홍준 문화재청장님과 정양모 문화재위원장님을 초청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지난 1월 29일 유홍준 문화재위원장님께, 광화문 한글현판을 떼고 한자현판으로 다는 문제에 대한 공개 토론을 제안한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그에 대한 아무런 답변이 없고, 오히려 언론을 통해, 유 문화재청장님과 정 문화재위원장님께서는 우리들의 소리는 들을 가치도 없는 것으로 말씀하신 것을 보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우리의 뜻을 밝힙니다.

 오는 2월 21일 오후 6시에 세종문화회관 컨포런스홀에서, 유홍준 문화재청장님과 정양모 문화재위원장님을 모시고, 이 문제에 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바쁘시더라도 민주 국가의 공직자로서 국민의 소리를 직접 듣고 또 하고 싶은 말을 국민 앞에서 직접 한다는 뜻에서, 두 분께서 꼭 참석해 주시기를 바라며, 초청의 글을 보냅니다.
 
   토론할 때 : 2005년 2월 21일 (월요일) 오후 6시
   토론할 곳 : 세종문화회관 컨퍼런스홀
  
                            2005년 2월 14일
      한글현판 지키기 비상 대책위원회 드림
           전화 011-995-9190. 전자우편 idaero@hanmail.net [대변인 이 대로]
 
한글학회 회장 김계곤/ 외솔회 회장 김석득/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회장 박종국/ 한글문화재단 이사장 이상보/ 한글날국경일제정범국민추진위원회 위원장 전택부/ 한글세계화추진운동본부 회장 서정수/ 한국바른말연구원 원장 원광호/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이대로/ 한글문화연대 대표 김 영명/ 전국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 회장 이봉원/ 한국어정보학회 회장 최기호/ 한글문화원장 송현 / 짚신문학회 회장 오동춘/ 한글이름펴기모임 대표 밝한샘/ 한글사랑운동본부 회장 차재경 / 한글문자학회 회장 홍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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