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형식이 내용을 지배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를 테면 옷을 잘 갖춰 입고 외출하는 것과 아무렇게나 막 입고 나가는 것과는 우선 행동에서 차이가 나고 이어 마음 자세도 달라진다고 했다. 그래서 옷으로 사람을 평가하기도 한다. 첫 인상의 상당 부분이 옷에서 좌우되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이렇다하더라도 '경우에 따라서' 또는 '때론'이란 전제가 붙는다. 옷이 사람을 모두 결정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광화문 현판을 교체한다는 소리에 문득 옷, 아니 모자만 바꿔치우기 하고는 사람을 바꾸려 하는 걸로 보여 안타까움을 넘어 한심하기까지 하다.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나라 수도 한복판의 광화문 현판을 볼 때마다 박정희를 떠올리곤 하며 엄청 불쾌해 했던 나다. 박정희는 역시 독재로 연상되니 더욱 이 불쾌감은 우리의 후진적 역사와 맞물려 자괴감 또는 열등감마저 들었다. 이를 없앤다니 우선 무조건 반가웠다. 하지만 교체될 글씨체가 정조 임금의 것을 집자해서 짜깁기하여 만든다고 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보도에 의하면 정조 임금의 글씨체로 결정한 것은 현 문화재청장인 유홍준 씨의 몫이 큰 것 같다. 또 보도에 의하면 그는 작년 10월 노무현 대통령과 어느 고궁을 함께 오랜 시간 함께 산보했던가 보다. 그 때, 노대통령을 정조 임금과 비유했던 것으로 보도된 기사를 봤다. 이게 사실이라면 유홍준의 정신은 비틀어진 게 아니라 정신 나간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왜냐? 우선 우리의 과거 문화의 그르침을 지적하고 또는 새로운 비판 시각을 보였던 다름 아닌 소위 문화전문가라는 그가 아부성 정치적 발언(정조는 과거 인물로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는 정치인이고 노대통령은 현업에 종사하는 정치인으로 역사적 평가가 아직 내려지지 않은 사람이다. 더욱이 임기 2년 중 그가 약속한 어떤 일도 해놓거나 가능해 보이는 치적이 아직 없다. 이러니 아부성이란 말을 할 수 밖에.)을 하는 것 자체도 우습기도 하지만 이건 그의 개인적 성향으로 그냥 넘기기로 하자. 문제는 그의 다음 행동들이다.
그가 교체했다는 현판들이 정조와 관련된 것들이란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그가 정조처럼 보인다는 노대통령에 대한 사랑의 다른 표현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러면서 독재 청산을 운운한다? 유홍준의 이중적 행동은 차치해두고라도 그의 글에선 무지 논리적이다. 이런 그가 스스로 모순된 행동을 하고 있다는 건 논리가 지나쳐 논리의 비약으로 인한 자기 함정에 빠진 것인가?
아니다. 이번 현판 교체는 논리와는 전혀 상관없어 보인다. 사람에 맞춘 처세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럼, 그가 주장하는 독재 청산과 지금 한 권력자 쫓아 하고 있는 현판 교체와 무엇이 다를까? 다를 게 하나도 없다. 아니 숨기고 하는 짓이니 더 야비하다. 더욱이 현판이다. 그저 글자란 말이다. 형식이란 말이다. 겉모양만 바꾸려고 하는 짓에 어찌 독재청산이란 아름다운 구호를 붙이려 드느냐 이거다. 정신이 나갔다 함은 자기를 잊는 것과 같다. 즉 치매와 같다는 말이다. 그러나 의학적 치매는 자기의 정신과는 무관하게 온다. 그런데 정신이 온전한 걸로 보여지는 자가 치매적 행동을 한다면? 이런 경우, 우린 "겉은 멀쩡한 놈이 하는 짓거리 보니 완전 돌았군. 정신 나간 놈이 아니고서는 저럴 수 없지."라고들 말한다. 그가 다른 자리도 아닌 우리의 정신과 밀접한 자리인 문화재청의 수장으로 앉아 있다니. 정치인이 이러면 정치인이니까 하고 이 땅에 하도 흔한 일이라 무심코 넘길 수 있지만 그의 자리는 정치인 나부랭이들이 앉아 감 나와라 뭐 나와라 할 자리가 결코 아니니 그저 흘겨 넘길 수가 없다.
고작 유홍준을 욕하고자 이 긴 글을 쓰는 게 아니다. 그로 인해 아까운 내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도 않다.
비판은 대안을 내놔야 한다. 세 가지다. 이렇게 표피적으로 과거 독재청산 시작한 것, 역시 광화문의 독재 잔재, 이순신 장군 동상도 없애라. 이건 광화문 현판교체보다 더 의미있는 작업이다. 이순신 장군 동상이 누구에 의해서 세워졌는지, 그가 왜 이순신 장군을 더욱 역사적 인물로 강조했는지는 유홍준 씨는 더 잘 알 것이다. 그는 박정희다. 같은 군인을 부각시킴으로 군인정치 나아가 나라를 지킨 과거 군인과 자기(=박정희)를 국민에게 각인시키고자 한 저의, 유홍준이 모를 리 없다. 그런데, 왜 이순신 장군은 건드리지 못하나? 현재 뜨고 있는 드라마에다가 국가적 영웅을 건드리면 별 재미없을 것 같아서? 아님, 탄핵 후 직무정지 중 노대통령이 읽었다는 몇 안 되는 책 중 하나인 이순신에 관한 소설책이라서? 독재청산이란 대전제 앞에 앞의 이유들은 결코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보는 바, 독재청산의 의지가 그러하다면 이순신 동상도 자리를 옮겨야 한다.
그리고 두 번째, 정조의 글씨체만 받아(집자) 바꾸는 정치적 또는 단순한 교체가 아닌, 경복궁이라는 우리나라 가장 중심지의 문화재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을 가져보면 어떨까 싶다. 정조도 정치인이다. 탕평책을 썼지만 실패하여 오히려 그 이후 나라는 더 혼란에 빠졌고 혼탁해졌다. 외척세도가 더욱 극심해졌고 결국 나라를 일본에까지 넘겨줘야 했다. 이러니 정치인의 글씨가 아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우리나라 서예가의 글로 바꾸는 것이 어떻겠냐는 것이다.
중국 서예가의 아류가 아닌 독자적이며 독창적인 서체를 창조해 낸 추사 김정희 선생의 글씨로 바꿀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덧붙여 박정희 씨가 쓴 지금의 글씨도 그대로 남겨두는 것이 좋다고 본다. 1395년 창건 당시의 글씨를 다시 재현해 만들어 이 현판들을 위에서 아래로 나란히 거는 거다. 다시 말하면 위로부터 1395년 당시의 현판과 1968년 박정희 씨가 광화문을 재건하며 쓴 글씨, 그리고 추사체의 광화문을 내리 걸면 어떨까 한다. 우선 색다르고 보기에도 좋다.(아마 평양의 어느 누각도 세 개의 현판이 걸려 있는 걸로 알고 있고 유홍준 씨는 직접 평양 가서 본 것으로 안다.) 그리고 비록 현판 세 개지만 그 안엔 광화문의 역사가 담겨 있어 좋다.
1395년 경복궁이 창건되고 일제에 의해 광화문의 자리는 옮겨지고 한국전쟁으로 모두 소실된 걸 1968년 박정희 씨가 다시 세웠다. 지금의 자리는 처음의 자리와 다르게 비틀려져 앉았다. 그리고 독재청산의 작은 일환으로 상징적인 박정희 현판 대신 제일 아래 현판으로 교체해야 했다며 교체된 추사체의 의미를 설명할 수 있으면 이것으로도 얼마나 문화적 가치가 있겠는가. 죽지 않은 국민정신을 이 세 개의 현판에서 볼 수가 있게 된다.
세 번째, 한글체는 고수해야 한다. 우리 문화의 중심에 중국 글씨가 자릴 차지하고 있는 건 국가적 망신이다. 이 좋은 한글을 두고도 남의 문자를 현판에 쓴다면 외국인들이 뭐라 할까? 지금, 중국만이 아니라 많은 외국 교과서에 우리나라는 중국의 속국으로 기록돼 있고 그걸 외국 학생들이 배우고 있다지 않은가. 박정희 씨가 한글로 쓴 건만은 잘 한 일이다.
무조건 비난만 하면 상대에게 더 허를 찔리게 돼 있다. 교체될 한글 '광화문'은 추사체의 한글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김영삼 씨나 김대중 씨의 경우, 외국 나가서 방명록에 몇 글 쓸 때나 선물로 족자를 줄 때 보면 거의 한자였다. 미친 짓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자들이 하는 짓거리가 이 수준이었다. 한자로 된 사자성어를 쓰면 알아보지도 못할 서양인들이 유식하다고 할 것 같아서 그랬나 본데 한심하다 못해 불쌍하다. 생각이 그리도 좁은가 싶어서다. 역시 서양인들이 뭐라 했겠나. 한국에는 자기네 글자는 없고 중국글을 쓰는구나 할 것 아닌가. 더욱이 대통령이 한자를 쓰는데... 자기의 짤막한 유식을 드러내다가 자기 글자도 없는 후진국가라고 홍보하며 나라 망신시켰다는 걸 지금은 알고나 있는지. 이런 자들이 우리나라 대통령이었다니... 한글로 써야 한다.
구린 과거를 그저 시각적으로만 없앤다고 과거가 지워지는 게 아니다. 우리네 정치인들은 참으로 멍청한 짓으로 낭비를 한다. 구린 과거는 보존, 보전하여 귀감으로 삼아야 한다. 외국의 예를 들어보면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흔적이 아직 남겨져 있다. 잊지 말자 한다. 중국엔 세무서 직원이 기업인들로부터 돈과 여자를 상납 받던 건물을 당시 비리 세무원의 처벌과 함께 없애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이유 역시 잊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보다 후진국가로 우리가 여기는 아프리카 르완다의 한 성당엔 학살당한 민족의 유골이 그대로 보전돼 있다. 학살을 자행한 다른 민족(후치족)이 정권을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보존을 허락하고 있는 건 민족간의 갈등과 전쟁으로 인한 피해의 잔혹한 현장을 후세에 남겨둠으로서 똑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미래 지향에 그 이유가 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한 예로, 광화문 뒤엔 박정희가 자기의 심복의 총에 맞아 죽은 자리인 안가의 터가 있다. 김영삼 씨는 이 때도 과거청산이라며 이 안가를 다 철거해버리곤 공원을 세웠다. 무궁화동산이다. 동산이 생겨난 지 불과 10년도 안 된 일이지만 이곳이 어떤 곳인 줄 아는 시민은 거의 없었다. 왜, 공원 입구 안내석엔 김영삼의 민주주의가 어떻다느니 하는 애매모호한 자기치적만의 글이 적혀 있을 뿐이니 누군들 알아보겠는가. 비린 과거는 지워야 한다. 말끔히 지우기 위해선 우선 그 비린 과거를 알고 잊지 말아야 한다. 무조건 덮어둔다고 청산되는 게 아니라는 걸 문화전문가인 유홍준 씨가 모를 리 없건만 하는 짓은 김영삼 씨와 다를 바가 없다. 김영삼 씨는 아직도 이럴 것이다. "나 봐라. 철거시키고 시민공원 만들어 민주주의 글을 돌에 박았으니 나만큼 이 나라에서 민주주의에 기여한 사람 나와 봐라." 똑같은 닮은꼴을 우린 지금도 보고 있어야 하는가.
김영삼 씨 스스로 그의 가장 큰 치적으로 알고 있는 옛 중앙청 건물의 철거 당시로 잠시 돌아가 보자. 당시 우리 문화의 대표적 입이었던 유홍준 씨는 중앙청 철거에 대해 한참 동안 침묵(그 때 당시 철거와 철거 대신 다른 데로 옮겨 보존하자는 두 주장이 대립됐었다. 나는 유홍준 씨의 침묵을 눈치보기로 아직도 생각하고 있다. 왜냐면, 분명한 자기 목소릴 내는 사람이 자기 전문 분야에 대해 말이 없다면 남인 내가 뭐라 여길까?)만 했던 걸로 알고 있다. 이런 그가 그 큰 건물도 아닌 현판 하나 없앤다고 난리다. 왜 난리라고 하냐면, 독재청산이란 구호를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정조와 광화문은 아무 관계가 없다. 오히려 전쟁으로 다 타버린 광화문을 새로 세운 건 박정희다. 광화문과 무관한 정조를 유홍준 씨가 왜 끌어들여야 했을까? 노대통령을 정조에 빗대어 칭찬했다는 유홍준 씨의 말을 이러니 그냥 흘겨보낼 수가 없다. 연관이 없을 수가 없다는 말이다. 아부, 아첨이 아니고 뭘까? 개인의 아부, 아첨에 '독재청산'이 농락되어서는 안 된다. 노무현 정권의 가장 치적으로 여길 성매매특별법에도 저촉된다. 농락이 그렇다. 또 가까운 훗날 정권이 바뀌어 이 사실이 드러나면 또 현판을 갈아치울 게 우리 정치인 아니던가. 정치인이나 문화전문가라고 하는 자들의 지향이 고까짓 자기안위라니... 개혁을 외쳐대던 노대통령이 지금 뭘 하고 있는가. 개혁에 무관한 자가 아니라 개혁의 기대와 희망을 뭉게 버린 미래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 장본인이 아니던가. '또 개혁타령이냐?'고 치를 떨게 한 장본인이라는 말이다.
개혁이란 구호를 정략적, 전략적으로 쓰지 말라 충고 하듯이 독재청산을 그리 남용, 오용하지 말라 정중히 일러주는 것이다. 너희 같은 권모술수자들로 인해 개혁, 독재청산은 더 멀어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기대와 희망을 너희들의 정치적 권모와 처세적 술수의 방편으로 일삼으려는 너희 같은 자들은 오히려 박정희나 아니면 한나라당보다 더 사악한 자들이다.
하나 가르쳐주마. 가면을 벗고 이제 제 얼굴을 하고 국민의 심판을 받아라. 이게 한시라도 빨리 덜 죽는 법이다. 너희들의 좀만한 꼼수 들통 안 날 줄 아냐? 우리 국민이 너희들만 못한 줄 아느냐 말이다.
* 표지사진 출처 : '노컷뉴스'
오동명 작가는 1957년 생으로 경제학을 전공했고 중앙일보 사진기자를 지냈다. 직업인이 아닌 직장인으로서 신문사에 근무할 때 3년에 한 권 꼴로 책을 내겠다는 계획을 직장을 그만 두고 변경했다. 1년에 한 권은 꼭 내겠다고. 별 다른 재주가 없어서이기도 하다. 그 약속을 아직까지는 지키고 있다. 2000년엔 <당신기자 맞아> 증보판을, 2001년엔 <신문소 습격사건>을 냈고, 2002년엔 소설<바늘구멍사진기>, 2003년엔 사진취미 책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가 시중에 나와 있다. 2004년엔 여행책 <5만원 2박3일>을 펴냈다.(미디어오늘 작가소개 인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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