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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의 전유물, '분식회계'는 부정부패의 뿌리
투명한 말글살이가 투명한 사회를 만든다
 
이대로   기사입력  2003/03/08 [00:26]
며칠 전 SK 최태원 회장이 검찰에 구속되었다. 부당 내부거래로 회사에 수천억 원의 손해를 보게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회사의 분식회계도 관여했다고 하고, 에스케이글로벌도 분식회계 혐의가 있어 손길승 회장을 수사할 것이란다. 몇 년 전엔 대우가 분식회계로 조작한 돈이 41조 원이나 되어 회사와 투자자에게 피해를 입히고 나라 경제까지 흔들리게 한 뒤 김우중 회장은 해외로 도피한 사건이 있었다. 위 사실만 봐도 '분식회계'가 국민과 나라에까지 피해를 주는 아주 잘못된 행위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많은 기업주들이 계속 그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얼마 전 금융감독원은 우리나라의 큰 회사 5개 중 1개는 분식회계를 하고 있다고 발표한 일이 있다. 현대상선이 북한에 불법으로 돈을 보낸 사건에서도 분식회계란 말이 나왔고 부정한 정치, 경제 사건이 터질 때마다 분식회계가 연관된다. 나는 왜 많은 회사들이 자꾸 그런 짓을 하고 있으며, 그 회사들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분식회계'란 낱말이 그 본인들은 말할 것 없고 우리 일반인들에게도 어려운 말이어서 그 말뜻이 바로 가슴에 닿지 않아서 잘못됨이 바로 드러나지 않는 원인도 있다고 본다.

나는 몇 년 전 대우와 동아 사건 보도에서 '분식회계'란 낱말이 신문에 많이 나왔을 때 처음 본 낱말이라 그 말의 분명한 뜻을 몰라서 인터넷 국어사전에서 그 말뜻을 검색해보니 국어사전에도 나오지 없는 말이었다. 다만, '분식'과 '회계'란 낱말 풀이는 있었는데, 분식(粉飾)은 '아름답게 또는 훌륭하게 보이려고 겉을 꾸밈. 겉치장' 이라고 올라 있고, 회-계(會計)는 '재산과 수입 및 지출의 관리와 운용에 관한 계산 제도'라고 써 있었다. 그런데 그 두 낱말풀이를 합해 봐도 '분식회계'란 뜻이 분명하지 않고,'분식'이란 말은 60년 대 쌀이 모자랄 때 밀가루 음식을 많이 먹자는 '분식 장려'가 떠올라서 더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오래 지난 뒤에도 자꾸 그런 사건이 터지고 또 그 말이 나와서 인터넷 검색창을 뒤지다가 백과사전에서 그 낱말 설명을 보았다. 한 백과사전에 "분식회계 [ 粉飾會計 , window dressing settlement ]: 기업이 자금융통을 원활히 할 목적으로 고의로 기업이 자산이나 이익을 실제보다 부풀리거나 줄여서 재무제표상의 수치를 고의로 왜곡시켜 행하는 회계를 말하며, 분식결산(粉飾決算)이라고도 한다."고 써 있었다." 기업주들이 자기 회사가 잘 돌아가는 회사로 보이게 하기 위해 돈을 잘 번 것처럼 부풀리거나 돈을 빼돌리기 위해 수입이 적은 것으로 줄이는 등 장부를 조작하는 것으로서 온갖 부정부패의 뿌리가 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분식회계'란 말은 기업주가 회계장부를 거짓으로 꾸미거나 속임수를 쓴 것이니 '조작회계'나 '꾸밈회계','거짓회계','눈속임장부'라고 하면 오히려 그 말뜻을 알아보기 쉽고 그 행위의 잘못이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기업주는 말할 것 없고 일반인들도 그 잘못을 자세히 알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기업주들도 잘못을 분명히 깨달을 수 있고 국민들 또한 그런 사건이 되풀이되지 않게 감시하게 되어 바른 사회를 만드는데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평소 지위가 높고 똑똑한 사람들이 자신에게 불리하거나 난처한 일이 있을 때 일반인들이 알아듣기 어려운 일제식 한자말이나 외국말, 외국말투로 슬그머니 넘어갈 때가 많아 불만이었는데 '분식회계'란 말도 그런 식으로 보인다. 나라 안 곳곳에서 어려운 낱말, 남의 나라의 말투로 꼬이고 뒤틀린 말글살이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런 투명하지 않은 말글살이가 사회까지 투명하지 않게 만들고 있다고 보았다.

앞으로는 이런 못된 사건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기 위해 '분식회계'란 어려운 말을 쓰지 말고 '꾸밈회계' 같은 쉬운 말을 쓰자. 그리고 겉으로는 세계화를 외치면서 회사 신용도를 높인다고 회사이름까지 외국말로 바꾸고, 속으로는 온갖 못된 짓을 해서 회사는 말할 것 없고 국가 신용도 까지 떨어지게 하는 부도덕한 기업주들을 엄벌하자. 그리고 다른 부정부패 사건도 정부의 감독과 법의 심판이나 회사 사장의 양심과 반성으로만 바로잡으려 하지말고 쉬운 말, 바른말을 써서 온 국민이 그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스스로 주의하고 감시하게 하자.

큰 부정부패 사건이 일어나면 언론에선 크게 보도하지만 괜히 어려운 낱말로 얼버무리니 일반 국민은 그 사건의 실상을 잘 알지 못하고 그냥 무슨 못된 일이 일어난 것으로만 짐작하고 두루뭉실 넘어가니 똑 같은 잘못이 되풀이되어 사건 불감증 사회란 말까지 나온다. 바르고 쉬운 말글살이가 바른 사회를 만들고 투명한 말글살이가 투명한 사회를 만든다.

* 필자는 우리말글 살리는 겨레모임 공동대표이자 한글인터넷주소추진 총연합회 본부장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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