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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사회책임’ 회원들에게 보내는글
[논단] 당신들의 정치활동 위한 명분과 정당성 위해 기독교 이용 말아야
 
아름다운화원   기사입력  2004/11/26 [18:41]
'중도통합과 개혁'을 표방하는 '기독교사회책임'이 11월 22일 오전 9시 서울 명동 YWCA회관에서 출범식과 기자회견을 가진 것을 보고 저는 씁쓸한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발표하신 '성명서'를 보고 씁쓸한 마음은 실망감으로 변했고 여러분들의 기독교 사회윤리적 인식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교회의 사회참여와 예언자적 자세에 대한 언급을 보면서 우려의 마음은 사라지면서 반감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성명서'를 보면서 교회와 나라와 민족적 위기 앞에서 진정 기독교의 사회성과 책임성을 포괄하는 윤리적 성찰과 고백, 그리고 회개를 읽을 수 없었습니다. 기독교인들로 구성된 정치적 시국 성명서에 지나지 않음을 지적할 수밖에 없음을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더욱 유감인 것은 그 성명서가 지향하는 정치성과 시국인식이 과연 중도통합과 개혁에 이바지하고 한반도의 드리운 위기적 상황을 헤쳐 가는 데 기여할 수 있는 가에 대해 회의적인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밖에 없음을 안타깝게 여깁니다.
 
▲10월 4일 시청모임에 나선 기독교 지도자급(?) 인사들 중 진정 종교의 본연의 사명에 충실한 사람이 있을까?     ©대자보

 여러분들은 한국 사회의 위기를 다음과 같이 열거하면서 시급히 해결해야할 당면과제를 채택합니다. 한국 경제의 구조적 모순과 정치와 관치의 혼란이 위기의 경제상황을 초래하여 중산층 몰락, 절대빈곤층 급증, 대규모 청년실업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과 현 정권은 국민통합과 민생안정의 국민 염원과 달리 정략적으로 개혁과제를 밀어붙이고 있어 국론 분열과 이념적 양극화, 그리고 국가정체성의 위기에까지 이르도록 하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그리고 현 정치계의 여권과 야권에 대한 양비론을 바탕으로 자신들이 이렇게 나설 수밖에 없음에 대해 강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발표한 출범선언문은 4가지 당면목표를 내세우고 있었습니다. 첫째, 이념 갈등과 국론 분열 해소를 통한 국민 통합, 둘째, 경제 위기 극복과 민생문제 해결, 셋째, 한반도 평화와 사회 안정, 마지막으로 미래를 위한 비전 제시입니다.
 
시국인식과 당면과제를 보면서 '기독교사회책임'의 정치성에 대해 회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차라리 '기독교'라는 말을 떼어버리고 여러분들의 사회적 위치와 역할 속에서 사회적 책임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고 시국 선언을 하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들의 성명서를 읽으면서 과연 중도통합을 이루고 개혁을 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갖습니다. 여러분들의 정치적 스펙트럼과 개혁이 무엇인지 다시 되묻고 싶을 뿐입니다.
 
솔직히 이야기 해 봅시다.
 
현 정국을 주도하는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간의 대치구도가 각 분야에서도 이어지고 있고 그것이 우려할만한 수위에 이르러 있다는 여러분의 공동인식은 당신들의 정치적 위치가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은 본질적으로 보수 정당이며 오늘날 이들의 대결은 기득적 헤게모니의 개편과 재구성을 둘러싼 긴장입니다. 여러분들은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을 아울러서 평화와 안정을 꾀하며 점진적인 변화를 이루려는 온건한 보수로 규정할 수 있습니다. 그 온건 보수적 정치적 색채에 '기독교인'이라는 공통분모를 더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렇기에 여러분의 출범 성명서는 단지 여러분의 정치 활동을 위한 명분과 정당성을 위한 것이지 실상 '기독교 사회책임'과는 별개의 것입니다. 포괄적 의미에서 여러분들의 활동과 선언이 '기독교 사회적 책임과 소명'과 연결될 수 있을지 몰라도 본질적으로 당신들은 자신들의 정치활동에 대한 정당성 확보를 위해 '기독교'라는 정체성을 부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여러분들이 '기독교인'으로서의 사회적 책임과 교회의 역할, 그리고 예언자적 자세에 대해 말씀드려야 하겠습니다.
 
당신들은 보수와 진보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칼 운동을 통합을 이루는 데 기여하고 예언자적 자세로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중도노선을 지향하고 통합을 이루어 개혁을 일구는데 기여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여러분들은 진정 복음주의적 전통이 무엇이며 개혁주의가 무엇인지에 혼동하고 있지 않나 하고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당신들이 이해하는 예언자 정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욱이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한 기독인의 윤리적 소명에 대해 여러분들은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 지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예언자적 정신과 복음주의가 결합하는 예언자적 복음주의는 예수의 복음과 사역으로 환원해서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독교인의 윤리적 소명은 두 가지입니다. 이웃을 형제와 자매와 같이 사랑하고 섬기는 "목회적 임무"가 그 하나라면, 복음의 사회적 차원을 역사 안에서 실현하는 일, 그것이 곧 "예언자적 임무"가 다른 하나인 것입니다.
 
▲한기총 주도 시청앞 집회는 권력유착과 성장위주의 한국 교회의 현주소를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대자보

 오늘날 한국에서 기독교의 위기와 기독교인이 속한 공동체의 윤리적 해이는 목회적 부름과 예언자적 부름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한 것에서 시작한 것을 깨닫고 예수가 지고 간 십자가 앞에서 회개와 통회하는 양심의 회복에 있는 것입니다. 기독인의 윤리적 소명과 종말적 생활 양식의 회복을 차라리 부르짖으며 교회 개혁과 공동체의 개혁에 대해 앞장서는 모습이 진정 기독인들이 취해야할 정치적 자세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시작한 복음주의 운동의 토대 속에서 시작한 새로운 시대와 나라를 향한 신앙운동이 바로 진정한 기독교적 개혁운동이며 저항의 시작인 것을 알지 못하십니까?
 
현실을 직시하십시오. 오늘날 한국 사회는 다양한 NGO 운동, 정치 개혁운동, 노동운동, 참교육을 위한 운동, 평화적 통일을 위한 운동 등등 여러 이해관계와 동기들이 뒤섞여있어 어떤 모색이 한국의 미래를 위해 희망과 비전을 줄 수 있는 것인지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모두가 자기들의 운동성이 보다 시급하고 옳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 사회는 민족 자주의 문제와 연관하여 통일 문제와 인권과 사회정의 문제, 공정한 소득과 분배의 문제로 마지막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을 바라보면서 여러분들은 각 단체와 기관으로 더 흩어져서 촉매제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 기독교인들의 사회적 책임과 소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의 실천적 영성의 진정한 가치는 비인격적인 힘과 부정의한 정치와 불공정한 경제 헤게모니 속에 저항하는 자세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과 자기비움 안에서 나와 너, 우리 안에 깃든 소망과 희망을 믿고 연대하며 따르는 것에 의해 그 영성은 빛이 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의 정치세력화를 진정 우려합니다.
 
시청 앞 광장과 종합 체육관에서 집회하는 그들과 다름을 보여주고 싶으셨습니까? 그들의 대중집회에서의 외침은 사회적 지탄을 받는 공허한 메아리요 세련되지 못한 천박스러운 대중집회이기에 사회-경제적 지위와 학식이 있는 여러분들은 보다 조직적이고 영향력 있는 연대를 과시하고 싶으셨습니까?
 
이렇게 묻고 있는 제가 여러분의 '진정성'을 곡해하고 있습니까? 그러한 정치적 집회로 한국 사회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고 오히려 개혁의 대상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는 것을 우려하셨는지요? 그러한 집회를 통해서 '기독교 사회적 책임성'에 응답하는 기독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보다 현실적인 대안으로 현실 정치 속으로 연대한 조직을 이루어 뛰어드는 것이 '사회적 책임성'을 다하는 것이라고 여러분들은 생각하시지 않으셨는지요?
 
'기독교 사회적 책임'을 표방한 여러분들의 정치적 기만성과 허위성을 고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신들이 분열과 갈등 속에 긴장감이 고조된 사회를 하나로 묶고 치유할 수 있는 평화연대 중도 세력이라는 그 허위의식을 지적하여야 하겠습니다.
 
보수 기독교 세력이 오히려 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고 있는 점을 적시하시길 바랍니다. 진보적 기독교 단체들과 함께 사회개혁에 앞장서지 못했던 점에 먼저 자성하시길 바랍니다. 그래야 진정 여러분들이 허위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온건과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을 통합해서 오늘날의 정치를 개혁하시겠다는 기만의식 또한 지적하여야 하겠습니다.
 
정치적 기만성에 대해 말함은 여러분들의 오늘날의 모습이 차기 대선을 염두해 둔 정치적 정당성과 명분을 얻기 위한 정치적 행보가 아니냐는 것입니다. 제가 너무 앞선 것인가요? 새로운 정치세력화를 표방하는 시점에 너무 절묘하지 않습니까? 한나라당에 실망하는 보수층과 열린우리당에 실망하는 중도 보수층, 그리고 기독인들을 의식한 정치성 표출이 여러분들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조선일보의 쌍라이트가 된 기독교 사회모임과 자유시민연대. 조선일보의 엄청난 지면할애가 의미하는 것은?     ©조선일보 11월 23일자 PDF

 '기독교사회책임'을 향해서 이렇게 의혹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안타까움 속에서 감정 섞인 비판을 하는 것은 제발 "복음주의"를 제대로 하자고 촉구하기 위함입니다. 기독교 정당을 이루고 기독교적 정신에 입각한 현실 정치를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 시기상조라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대신 이를 위해서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기독교 내부 개혁부터 이루어 내는 것이 더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하기에 감정 섞인 항변을 여러분들에게 쏟아내고 있는 것입니다.
 
존경하는 여러분들이 각 교회와 기관과 단체에서 그러한 일을 지금껏 해 오셨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의 출범 성명서는 분명 '정치성'을 표방하신 것이었기에 시민사회의 정치적 비판을 먼저 받음이 마땅합니다. 그리고 기독교 신앙공동체의 신학적, 윤리적, 종교사회학적 비판에 응할 책임이 있습니다. '기독교사회책임'의 출범이 90년대 내내 복음주의 진영에서 고민해 온 '기독교인의 사회적 책임과 참여'의 본격적인 첫 걸음인지 주목할 것입니다.
 
[추신]

여러분에게 글을 쓰면서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다시 폈습니다. 기독교 사회주의에 대한 이상을 실천했던 행동가들의 사상과 삶에 관한 책이었습니다.

기독교 사회주의적 이념은 1세기 가까이 서구사회에서 논의되면서 현실 정치 속에서 나름대로 구현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정당을 이루거나 정치적 활동을 기독교의 이름을 걸고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행동하고 실천했을 뿐입니다. 제가 어린 시절 좋아했던 몇 몇 분들이 명단 안에 있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초라하고 부끄러운 커밍아웃이라 생각합니다. 냉철한 현실 인식, 역사적 성찰과 반성도 없는, 진지하고 깊은 기독교적 고민도 찾아보기 힘든 교만한 선언문에 지나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은 아픔이었습니다.
 
* 본문은 대자보와 기사제휴협약을 맺은 '정치공론장 폴리티즌'(www.politizen.org)에서 제공한 것으로, 다른 사이트에 소개시에는 원 출처를 명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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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11/26 [18:4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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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11/30 [01:32] 수정 | 삭제
  • 사회에 대한 기독교가 지탄의 대상이라도 된다는 걸 위안으로 삶고 경찰서10개보다 교회 하나 짓는게 낫다는 김구 선생님의 말씀이 실현 되도록 저 한 사람 부터 새롭게 거듭나겠습니다.
    질책은 새로운 기회라고 생각하며 나 부터 변화되는 참 기독교인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