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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바다에 빠지게 한 '역도산'과 '침묵의 숲'
부산영화제, 화려한 대중영화의 잔치와 진지한 독립영화의 멋진 한마당
 
손봉석   기사입력  2004/10/20 [15:04]
지난 10월7일부터 15일까지 열린 부산국제영화제를 다녀왔습니다.

역대 최다라는 상영작과 이제는 ‘자원봉사자’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완숙미(?)를 더해 가는 진행요원들의 친절한 안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주말상영에는 남포동과 해운대에 있는 각 상영관에서 영화들 대부분 매진이 될 정도로 극장과 행사장에 열기는 뜨거웠습니다.
 
그 뜨거운 영화의 바다 속에서 9일 밤에 독립영화인들의 다큐멘터리와 단편영화가 중심이 되는 와이드앵글 부문의 출품작인 황윤감독의 <침묵의 숲>을 관람한 후 한 곧 이어서 한 호텔에서 열린 ‘역도산의 밤’행사에 참석하며 산업으로써 그리고 작품으로써의 영화의 의미에 대해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먼저 ‘역도산의 밤’ 파티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설경구씨와 포즈를 취해준 역도산의 아내 역을 맡았던 일본 여배우 나카타미 미키오.     ©손봉속

밤 11시부터 시작된 이 행사는 한 영화제작사가 재일한국인으로 ‘천황아래 역도산’이라고 불리고 ‘일본, 역도산’이라고 주소를 써도 바로 우편물이 배달이 됐다는 레슬러 역도산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로 그의 기일이라는 12월 15일에 개봉할 영화 <역도산>을 홍보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습니다. 큰 홀 한쪽에는 링이 설치되어 있었고 주연인 설경구씨와 일본 여배우 그리고 감독이 링에 올라 작품의 내용과 촬영 중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말했습니다.
 
이어서 영화 <역도산>의 몇몇 장편들이 관객(?)들에게 처음으로 공개되었습니다. 영화를 다 본 것이 아니라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도입부의 세트나 규모가 예상외로 웅장했고 레슬링 장면은 ‘사투’라는 단어가 피부로 느껴지기에 충분한 것 이었습니다.
 
이날 파티장 주변에는 한일합작이라는 이 영화의 성격과 세계영화계의 신흥강국으로 떠오르는 우리나라의 위상에 걸맞게 이와이 슈운지 감독을 비롯해 많은 아시아 영화인과 배우들이 참석했습니다. 공식행사가 끝난 후에는 진짜 프로레슬러들이 2인1조로 나와 시범경기를 벌였고 파티가 열린 홀 안 뿐 아니라 복도 여기저기서 영화제작자들 끼리 인사를 나누거나 정보를 교환하기 위해 북적거렸습니다. 전체적으로 화려하고 즐거운 분위기였습니다.
 
이제 ‘역도산의 밤’ 행사를 참석하기 전에 본 한 독립영화와 그 영화가 끝난 후 있었던 감독과 관객들이 가진 대화에 대해 소개하고 싶습니다. 
 
▲감독 혼자 고분분투하며 직은 영화, '침묵의 숲' 포스터 옆에서 포즈를 취한 황윤 감독     © 손봉석
황윤 감독이 6mm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말 그대로 ‘고군분투’하며 찍은 <침묵의 숲>은 제작단계에서 후원자나 재정적인 지원을 받지 못해 순전히 감독 개인의 돈으로 만든 다큐멘터리라고 합니다. 내용은 간단하게 정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산천은 호랑이, 표범, 산양, 반달곰에서 오소리까지 없는 동물이 없는 ‘동물의 왕국’ 이었지만 그런 동물들이 대부분 완전히 멸종이 됐고 이제는 연변과 길림 그리고 러시아 접경지역에 호랑이와 표범이 20여 마리씩 남아 있는 상태로 곧 이들도 중국의 산업화로 인해 사라질 위기에 있다는 내용입니다. 아마도 제작비의 부담 때문인지 영화는 대부분 감독 한사람의 ‘DIY’(DO IT YOURSELF)로 여겨질 정도로 엔딩 크레디트에 감독의 이름이 자주 나옵니다. 내레이션도 감독이 직접 했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이 영화가 상영이 된 후 객석에서 받은 울림은 그 어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도 따라오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 작품이 단순한 동물보호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이 세상에 하나의 ‘종’이 멸종되는 여정을 담담히 보여주며 그 원인이 자연스러운 생태계의 변화가 아닌 인간의 탐욕과 욕망이 빚은 결과라는 것을 직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해외여행에서 사는 강장제나 정력제(!)가 계속 수요를 창출하고 그 수요를 통해 이윤을 얻기 위한 기업들의 활동이 이어지면서 한·중·러 국경에 서식하고 있는 야생동물들은 말 그대로 ‘죽어나는 상황’이 됐음을 후반부에 차분하고 치밀한 구성으로 알려줍니다.
 
영상을 통해 하나의 희귀종이 사라지는(아마도 하나의 세상과 우주가 사라지는 것과 같은 의미일 것입니다!) 끔직 함 뒤에 숨겨져 있었던 자본의 냉혹한 논리를 보여 준 이 작품의 상영이 끝난 후 관객들은 말 그대로 지하철 막차시간 직전까지 객석을 지키며 감독을 붙잡고 영화에 보여 진 것에 머물지 않고 그 전과 그 후의 상황 그리고 이 영화 속에 한정되지 않는 인간과 자연 그리고 그 사이에 끼어든 도를 넘은 탐욕과 욕망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진지한 토론을 이어 갔습니다.
 
영화를 만든 황윤 감독 자신도 “세상과 사람이 변할 것을 솔직히 믿지 못 하겠다”고 토로했지만 그 자리에 모인 관객과 감독 사이에는 작은 영화와 한사람 한사람의 노력이 모여서 세상을 바꿀 수도 있을 것이라는 혹은 바꿀 수는 없지만 늦출 수는 있으리라는 희망을 공유하는 자리가 됐습니다.
 
글을 적다보니 ‘역도산의 밤’은 부정적으로 쓰고 <침묵의 숲>은 너무 긍정일변도로 흐른 듯도 합니다.
 
제가 진짜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화려한 대중영화의 파티와 진지한 독립영화의 토론이 모두 영화제라는 큰 테두리에서 하나로 연결이 된다는 기쁨을 전해드리고 싶었습니다. 
 
화려한 파티 구석에서 “오늘은 너무나 머리가 아프다”며 긴장과 초조 속에 서 있던 충무로 거물 제작자의 뒷모습이나 막차를 놓치고도 영화에 대해 열정을 가지고 토론하는 눈빛들이 결국은 영화 혹은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빚어진 공통점이 있고 그런 모습을 하루 종일 일상처럼 확인할 수 있는 영화제들은 진정 ‘영화의 바다’인 것 같습니다. 
 
그 장소가 부산이든 전주, 광주, 부천, 칸, 선댄스……. 어느 곳이든지 말입니다!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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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10/20 [15:04]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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