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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적은 동지? 조선-한나라당의 오판
2003년 KBS 4월투쟁 및 정연주사장 취임 막전막후 조선일보와 한나라당
 
양문석   기사입력  2004/04/27 [15:09]

1995년부터 2004년 현재까지 지난 10년 간 조선일보가 'KBS노조'를 언급한 기사는 총11건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 'KBS노조'라는 키워드로 검색한 결과다. 그 중 9건이 김대중정권과 노무현정권에 대한 비판적인 '성명서'나 '투쟁과정'을 소개한 기사였다. 그리고 2003년 3월부터 4월 초순까지 '서동구사장 퇴진 및 방송독립 쟁취투쟁기' 관련 기사가 3건인데 이것도 새 정부에 대한 비판과 투쟁을 다룬 기사였다.

조선일보가 싫어하는 또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정치권력에 흠집을 입히는 그 어떤 행위도 조선일보의 눈에는 '우호적'으로 비치는 모양이다. 조선일보의 보도태도를 보면 '적의 적은 동지'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3건의 기사 중 KBS노동조합과 관련된 보도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KBS    
....KBS이사회가 KBS 신임 사장에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 언론고문을 지낸 서동구 전 한국언론재단원장을 임명 제청한 데 대해 KBS노조와 한나라당이 반발하고 있으나 청와대는 금명간 서씨를 KBS사장에 임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KBS 노사간에는 물론, 청와대와 한나라당간에도 한랭전선이 형성될 것으로 예상된다...한편 KBS노조는 이날 성명을 발표, "서씨는 대선 때 특정 후보를 위해 뛰었던 인물로, KBS의 정치적 독립성을 지켜낼 수 없다"면서 "서씨 제청을 철회하라"고 주장했다.…KBS 노조는 성명에서 "서씨는 대통령 최측근 인사의 인척이고 1978년 현대아파트 특혜분양 사건에 연루돼 도덕성에 문제가 있다"며 "그의 임명이 강행된다면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투쟁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청와대와 '한랭전선'이 형성될 것이라는 예상, 노동조합이 청와대가 임명한 사장을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투쟁할 것'이라는 사실을 전하고 있다. 

하지만 최소한의 반성마저 없는, 오로지 '적의 적은 동지'라는 정쟁의 관점만 고스란히 베어 있다. 수 십 년 동안 낙하산 사장을 임명해 온 한나라당의 전신인 공화당과 민정당 그리고 신한국당의 방송장악 기도와 실현 과정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던 조선일보. 이 조선일보가 방송노동자들이 '권력의 시녀'라는 오욕을 감내해 온 수 십 년, 그리고 이를 떨치고 일어나 방송독립을 위해 투쟁해 온 십 수년의 세월을 단지 정쟁의 수단으로만 이용한 것이다. 조선일보의 기사에 나오는 '투쟁'이라는 뉘앙스가 조선일보의 기존 노사간의 갈등 보도태도와 너무나 상이하다. '투쟁'이라는 개념이 이토록 '필요성'과 '당위성'을 느끼게 하는 문맥은 거의 본적이 없을 정도다.  

하지만 조선일보가 노동조합 적대 보도의 틀을 깨고 우호 보도를 보여줌으로써 KBS노동조합을 시민사회로부터 '왕따'를 당하게 하는데 기여한 것을 알고나 있을까. 수많은 네티즌들이 '왜 대통령이 적법절차에 따라 관행대로 사장을 임명했는데, 노동조합이 반대하느냐, KBS가 역대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할 때 노동조합은 뭘 했느냐, 폭력적인 권력이 사장을 임명할 때는 찍 소리 못하다가 노대통령이 임명하니까 왜 이렇게 지랄발광이냐' 등 시민사회와 노정권 지지자들로부터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정도의 혹독한 비난을 받는데 조선일보의 보도태도가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이다. 

분명히 밝히지만 조선일보는 당시 '팩트중심의 보도'를 했음을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조선일보가 KBS노동조합을 편드는 듯한 인상을 줌으로써 그 후 투쟁은 한편으로 여론의 불리함을 감수해야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청와대라는 거대권력과 투쟁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는다.

조선일보가 편들면 국민들과 네티즌으로부터 '적'이 되는 '적의 적은 동지'라는 공식이 역으로 적용되는 현실을 뼈저리게 경험한 것이다. 그냥 조선일보가 'KBS노동조합'을 평소 하던 대로 악의적으로 보도를 했더라면 2003년 KBS 4월 투쟁이 훨씬 쉽게 갈 수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조선일보를 통해서 본 한나라당의 입장도 '적의 적은 동지'다. 

...한나라당은 이날 "노 대통령의 후보 시절 언론고문이었던 서동구씨를 KBS 사장으로 임명 제청키로 한 것은 방송을 권력의 도구로 악용하려는 불순한 저의가 개입된 것"이라며 임명제청결정을 철회하라고 거듭 요구했다...한나라당 조해진(曺海珍) 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임기가 이미 끝난 KBS이사진이 사내 여론조사에서 거명도 안 된 서씨를 이른바 '국민추천' 후보로 끼워 넣고, 다섯 번에 걸친 표결 끝에 억지 선임을 한 것은 방송장악에 대한 정권측의 집착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특히 이번 결정에 대해 KBS 노조가 철회를 요구하며 강력 투쟁을 선언하고 나선 것은, 상황에 따라서는 제2의 KBS 사태로 비화할 가능성까지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방송을 권력의 도구로 악용하려는 불순한 저의가 개입된 것'이라며 맹렬히 노무현정권을 성토하고 나섰다. 그러면서 'KBS노조가 철회를 요구하며 강력 투쟁을 선하고 나선 것'에 대한 전망을 '제2의 KBS사태로 비화할 가능성'까지 점친다.

'권력의 도구로 악용, 불순한 저의 개입'이라는 한나라당의 주장을 그대로 다시 한나라당에게 돌려줄 수밖에 없는 것이 역사다. '내가 권력의 도구로 이용하려는 저의'는 순수하고, '남이 권력의 도구로 악용하려는 저의'는 불순한 것이 한나라당식 방송독립이기 때문이다. 이후 한나라당이 KBS의 개혁적 방송태도에 불만을 품고 지난 해 초여름에는 'KBS2 민영화'를 선언하고, 가을에는 '수신료분리징수'를 입법화하겠다고 으름장을 낳았던 것이 바로 '방송을 권력의 도구로 악용하려는 불순한 저의'의 발로였기 때문이다. 굳이 지난 3월 탄핵정국에서 방송사에 항의 방문한 '한나라당 사람들'의 '카메라조작의 필요성 또는 간부들의 보도지침 하달' 주문은 언급하지 않겠다.

또한 '제2의 KBS사태' 운운하면서 '제1의 KBS사태'에 대해서 침묵하는 것도 좋은 모양새는 아니다. 1990년 4월 서기원을 사장으로 임명하고 이에 반발하는 KBS노동조합을 무력으로 진압했던 자가  당시 공보처 장관이었던 최병렬이라는 사실을 한나라당은 숨겼다. 또 그 최병렬이 '개 버릇 남 준다고' 2003년과 2004년 초반까지 KBS를 못 잡아먹어 안달난 사람처럼 KBS를 쉴 새없이 협박해 온 사실을 우리는 안다. 

이런 한나라당이 어느 날 갑자기 '방송민주화' 또는 '권력으로부터 방송독립'의 입장을 천명함으로써 KBS노동조합은 한편으로 수구언론의 비호를 받고 다른 한편으로는 수구정치세력의 지지를 받는 진퇴양난의 궁지로 몰려갔다. 참으로 기가 막힌 상황이었다. 전국언론노동조합과 KBS노동조합이 딜레마에 빠져버리는 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은 언론노조와 KBS본부와의 '기막힌 동거체제'를 길게 가져가지 않았다. 다행스런 일이었다. 이들이 '방송장악음모'운운하며 언론노조와 KBS본부를 옹호하고 지지했던 것은 '노무현정권을 흔들 수 있는 모든 행위'는 지지하고 옹호하는 노선의 고수에 다름 아님을 스스로 증명해 주었기 때문이다. 즉 서동구 전 사장보다 이들의 눈으로 볼 때 훨씬 더 위험한 인물인 '조폭언론'을 유행시킨 한겨레신문의 정연주씨가 사장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쓰레기차 피하려다 똥차에 치인 꼴이었다.

사족이지만, 2003년 4월투쟁은 어떤 권력도 언론을 장악하려는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확인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정치세력의 휘하에서 '시녀'로서의 삶을 택할 것인지 아니면 양심에 따른 언론활동을 펼칠 것인지를 두고 '타협'이냐 '투쟁'이냐는 갈림길에서 노동자들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할 지를 다시 한번 일깨워 준 사건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적의 적은 동지'라는 미명 하에 오히려 투쟁의 대의를 훼손시킨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을 보면서, 정도를 가려하지 않고 노동조합의 본래 투쟁의 대의인 '방송장악음도 분쇄 및 방송독립'을 정쟁으로 이용하려던 자들이 '똥차'에 치받치는 것을 보며 '정도와 대의'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시간의 흐름도 필요함을 깨닫는 사건이기도 했다.

그 동안 KBS노동조합과 KBS가 '방송독립투쟁과정'에서 국민들로부터 받은 그리고 다른 언론노동자들로부터 받은 지지와 연대투쟁을 하나 하나씩 갚아나가는 길은 '언론개혁'이라는 화두를 놓치지 않고 끊임없이 지속시켜 나가는 길이리라. '적의 동지'가 되는 불명예스런 경험을 극복하기 위해서 '언론개혁대상'을 깨끗이 청소하는데 빗자루를 내리지 않은 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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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04/27 [15:0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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