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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리 북한산 산행에서 본 용처럼 생긴 노송
노송, 운가사 돌탑, 태극기공원 등 산행
 
김철관   기사입력  2023/04/23 [12:05]

▲ 노송  ©


산행을 통해 발견한 용처럼 생긴 노송과, 태극기의 유래를 알게됐다.

 

서울 강북 수유리 근현대사기념관을 지나면 북한산국립공원 수유분소가 나오고 직진하면 아카데미하우스 정문이 나온다.

 

아카데미하우스 정문 우측에 두 개의 길이 나오는데 맨 우측 길로 가는 길인 신익희 선생 묘소 쪽으로 향하면 수유자연관찰로 입구이다. 이곳에서 대동문 쪽으로 향하다, 운가사 바로 직전에 한 사찰이  보인다.

 

대웅전과 잔디밭과 부속건물 그리고 그 밑에 과거 화장실(해우소)로 사용했던 걸로 보이는 허름한 건물이 하나가 있다. 이날 절 잔디밭에는 제비꽃과 민들레꽃이 피었고, 잔디밭 옆에는 붉은 철죽도 활짝 피어, 봄(春)을 노래하는 듯했다. 그런데 허름한 건물을 뚫고 용처럼 구부러진 노송(老松)이 위엄을 자랑하고 있어 눈길이 갔다.

▲ 산행길 등산객  ©


신기한 것도 신기한 것이지만 화장실 지붕을 뚫고 마치 용이 승천해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특히 뭔가 이 노송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져 한참을 관찰했다.

 

짙푸른 소나무 줄기가 길게 뻗어 사람이 다니는 도로 위를 가로질렀다. 마치 구름다리 처럼 느껴졌다 이곳 산행을 한 사람들에게는 잠시나마 더위를 시킬 수 있는 ‘그늘을 제공할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도 언뜻 들었다. 하지만 태풍에 노출돼 쓰러질 것 같은 위험도 연상됐다. 누군가 잘 관리해 명소로 자리매김했으면 하는 생각을 하며, 산행을 이어갔다. 이곳 주변에는 이승만 정권 때 부통령을 지낸 신익희 선생,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김병로 선생, 이준 열사 등의 묘가 있다.

 

이날 서양화가·판화가이며, 자연이 그린 그림의 작가로 활동했던 그와 그의 유치원생 딸이 함께 산행을 했다.

 

추운 겨울이 지나 봄기운을 느끼며 짙푸른 녹음 속으로 나무 냄새와 풀냄새를 맡으며 비탈길 나무계단을 올랐다. 초파일을 상징하는 연등을 따라가니, 대한불교 조계종 운가사(蕓伽寺)란 절이 나오고, 절 입구 팻말에 방하착(放下着)이란 글귀가 있었다. ‘욕심도 성냄도 어리석음도 모두 내려놓으시라’는 의미였다.

 

운가사를 지나 운가암 쉼터를 향해 돌과 흙을 하나둘씩 밟고 올라갔다, 운가암쉼터 바로 직전 ‘해발 275m’라고 쓴 표지판이 나왔다. 이곳에 도착하니 얼굴과 등에는 구슬땀이 흘렀다. 이날 갑작스러운 산행이라서 미처 물병을 준비하지 못해, 다시 돌아오는 길로 하산을, 마음 먹었다.

 

이날 오른 산행은 작가의 딸인 유치원생이 맨 앞에 갔고, 작가와 함께 그 뒤를 따랐다. 하지만 하산 길은 위험하기에 유치원생의 손을 꼭 잡고 내려가야만 했다. 하산 길에서 특히 목이 탄 작가는 운가암에 들려 시원한 물을 한 모금했다.

▲ 아가의 기도  ©


절에서 발길을 돌려 내려가는데, 절 입구에 돌로 쌓은 큰 돌탑이 서 있었다. 돌탑을 바라본 작가의 일곱 살 딸이 그 주변에 작은 돌을 주워, 큰 돌탑 밑에 2층 돌탑을 쌓았다. 그리고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아 소원을 비는 모습이 정겹게 느껴졌다.

 

그날 아이에게 ‘무슨 소원을 빌었나’고 물어보니, ‘비밀’이라고 답했다. 그런가보다 하면서 다시 발길을 옮겼는데, 울긋불긋한 옷을 입은 등산객들의 하산하는 모습이 보였다.

 

김병로 선생의 묘 쪽으로 향하니, 30m지점 앞에서 세 마리 개가 나타났다. 그리고 우리 일행을 발견하고, 잠시 쳐다보더니 인적이 드문 숲속을 향해 갔다. 세 마리 다 흰색 개였고, 어미 백구를 따라, 아기 백구 두 마리가 함께 다녔다.

 

귀엽게 생긴 개들이 향한 숲을 유심히 관찰했다. 개들은 숲속 개울가에서 물을 잠시 마시더니, 다른 숲을 향해 유유히 사라졌다.

▲ 숲속의 백구  ©


하산 길에 현재 대전국립현충원으로 이장을 했지만 무의독립군합동묘와 독립운동가 이시영 선생 묘소로 향하는 입구에 이름을 알 수 없는 노란 꽃들이 만개해 산행에 지친 등산객들을 반겼다.

 

천천히 발길을 옮기니, 한 산장식당 탁자에 둘러 앉아 막걸리를 마시는 등산객들이 보였고, 식당 지근거리에 있는 개울 웅덩이에는 산에서 흘러내려온 물이 모여 투명하고 맑은자태를 뽐냈다. 웅덩이를 보니 옹기종기 모여 돌아다니는 물고기들의 여유롭고 한가로운 모습이 내 마음을 평화롭게 하는 듯했다.

▲ 만개한 꽃  ©


하산 길에 태극기의 연혁을 알리는 공원이 있어 잠시 들렸다. 이곳에 설치된 먼지털이 에어컨 홀더를 들고, 산행으로 운동화와 바지와 옷에 묻어 있는 오물을 털어냈다. 이후 공원에 전시된 태극기의 연혁을 보고 평소 잘 몰랐던, 태극기 역사에 대해 알게 됐다는 점이다.

 

1882년 태극기(수신사 박영효가 일본을 방문할 때 배안에서 만든 태극기), 1890년 태극기(고종이 외교 고문으로 근무하다가 미국으로 가는 데니에게 하사한 태극기), 1921년 태극기(대한민국 임시정부 및 임시의정원이 신년축하식 때 쓰인 태극기), 1932년의 태극기(한인애국단 단원 윤봉길이 상하이 훙커우공원 의거 직전에 촬영한 태극기), 1949년의 태극기에 대한 설명을 해 놨다. 한마디로 1949년 이전까지는 각기 다른 태극기가 사용됐지만, 1949년 10월 15일 문교부 고시 제2호로 공표된 대한민국 국기가, 지금 형태의 태극기라는 점이다. 산행을 했기에 태극기의 역사를 알게 됐다고나 할까.

▲ 태극기공원  ©


단주 유림 선생의 묘 입구의 남루한 다리를 보며, 현재 독립운동가 김창숙 선생의 발자취가 전시된 근현대기념관을 지나 산행을 마쳤다. 유치원생 작가의 딸에게 다시 '아까 돌탑에서 어떤 소원을 빌었나'라고 묻자, 그 아이는 '두 사람 다 돈 많이 벌게 해달라"고. 그 말을 듣고 둘은 한 참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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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04/23 [12:0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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