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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복동 할머니, 천안 망향의 동산에 영면
인권운동가 김복동 할머니 장례식..2일 오전 박원순 시장 묘역 찾아 추모
 
김철관   기사입력  2019/02/02 [14:08]
▲ 영결식 만장     ©

 

위안부 피해자이면서 평화인권운동에 헌신한 고() 김복동(金福童) 할머니의 장례가 1일 오전 서울 종로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 시민장으로 치러졌다.

 

1일 오전 6시 고 김복동 할머니의 발인이 신촌세브란스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630분경 발인을 마치고 운구차는 생전 김 할머니가 머물렀던 연남동 평화의 우리집에 도착했고, 영정사진은 평소 지냈던 방 안으로 이동해 마지막 작별을 고했다.

 

이후 운구차는 다시 노제와 영결식을 할 서울 시청광장과 매주 수요 집회가 열렸던 엣 일본대사관으로 이동했다. 운구차가 850분경 서울 시청광장에 도착해 노제가 시작됐다.

 

이날 시민들은 고인의 나이를 상징한 94개의 만장을 들고 시청에서 광화문광장, 종로 옛 일본대사관으로 행진했다. 만장에는 당신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우리의 영웅 김복동’, ‘일본군 성노예 책임자 처벌’, ‘통일된 나라’ ‘일본은 조선학교 차별하지 말라등의 내용들을 적었다.

 

▲ 추모객 행진     ©

만장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상징하는 보라색과 연대를 상징하는 노란색으로 꾸며졌고, 노란색은 고인이 가장 좋아했던 색으로 알려졌다. 이날 시민들은 평화를 상징하는 노란 나비를 들고 만장 뒤로 행진했다.

 

특히 시민들이 들고 있는 피켓에는 일본이 다시 전쟁을 못 하고, 과거사를 반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증거를 내놓으라니 여기 증인이 살아 있지 않느냐’, ‘하루 빨리 잘못을 뉘우치고 사죄와 배상을 하라등 고인이 생전에 발언했던 내용들로 가득했다.

 

오전 1030분 경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고인의 영결식에는 1000여명의 추모객들이 참석했고, 추모사, 살풀이, 헌화 등의 순으로 이어졌다.

 

공동장례위원장으로 추모사를 한 권미경 연세대학교의료원노조위원장은 대장암 판정을 받고도 일본이 사죄할 때까지 살아야 한다고 했다이제 고통 없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보고 싶었던 어머니도 만나셨으면 한다이라고 말했다.

 

권 위원장은 SNS(쇼설네트워크 미디어)를 통해서도 평화운동가 김복동 할머니와 오랜 시간 함께했던 분이라 마음이 많이 아프다새해에는 폭력에 의해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영결식에서 또 다른 공동장례위원장인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대표는 추모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고, 진선미 여성가족부장관도 연신 눈물을 훔쳤다.

 

영결식에 참석한 박석운 진보연대 공동대표는 "'아직 해방이 안 되었다, 하루 빨리 사죄하라'는 할머니의 육성이 사무친다""14살 소녀가 겪었을, 그 참혹히 짓밟힘의 실상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인권운동가 고 김복동 할머니, 이제 인생의 한 모두 내려놓으시라""평화의 나비가 돼 훨훨 날아가셔서 편히 잠드시길 기원한다"고 전했다.

  

또 다른 영결식장 참석자인 문병일 서울노총 대외협력본부장은 고통과 인고의 세월을 보낸 고인이 훨훨 날아 따뜻하고 행복한 세상으로 가는 희망의 나비가 됐으면 한다생전 고인이 일본군의 만행을 세계 곳곳에 알린 용기에 다시금 고개가 숙여진다고 말했다.

 

▲ 고 김복동 할머니 안치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황의대

 

고인의 유해는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을 한 후, 오후 5시경 충남 천안 망향의 동산에 안치됐다. 망향의 동산은 고인에 앞서 영면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 51분도 잠들어 있다.

 

지난달 29일부터 2일까지 35일 간 중국 선전과 홍콩방문으로 영결식에 참석하지 못했던 박원순 서울시장이 2일 오전 공항에서 고 김복동 할머니가 잠든 천안 망향의 동산으로 이동해, 이곳에 안치된 장미묘역을 찾아 헌화와 분향을 했다. 박 시장은 묘역 방명록에도 김복동 할머니가 지키신 인간 존엄의 세상 우리가 지키겠습니다라고 적었다.

 

▲ 천안 망향의 동산에 고인이 안장됐다.     ©

 

한편 고인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평화운동가이다. 지난 19923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처음 알린 장본인이다. 생전 전 세계 전쟁 피해 여성들의 인권 신장과 지원을 위해 '나비기금'을 발족하는 등 인권 운동가로서 활발히 활동해 왔다.

 

 지난 1926년 경남 양산에서 태어났으며 14세이던 1940, 일본군에게 속아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다. 김 할머니는 이후 8년 동안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으로 끌려 다니며 일본군 성노예로 고통을 받았다. 그리고 1948815일 광복 후에야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지난 2017년에 개봉한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 고인 유골의 안치 의식 진행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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