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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이후를 준비하자
[정문순 칼럼] 세월호 참사, 체제와 질서의 근본적 개혁으로 삼아야
 
정문순   기사입력  2014/05/06 [21:17]
대한민국이 앓고 있다. 전례가 없던 일이다. 해방 이후 이 땅에 일어난 숱한 대형 재난은 한 시대의 상징성을 띠지 않는 것이 없었다. 1960~70년대 당시 잦았던 탄광 매몰 사건이나, 공식 사망자 77명으로 기록된 경부고속도로 건설 ‘산업역군’ 들은 박정희 시대 압축 고속 성장의 짙은 그림자를 보여준다. 베트남전쟁에서 잃은 파월 군인 수천 명의 목숨은 고도 성장의 주요한 동력이 어디에 빚지고 있는지, 오늘날 박정희를 추종하는 자들이 박정희 정권의 치적으로 자랑하는 눈부신 산업화가 국민의 핏값과 교환한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70년대 이후 재난 규모는 더 커지고 빈번해졌다. 와우아파트 붕괴, 대연각 화재, 이리(익산) 열차 폭발은 근대 개발, 도시화라는 것과 재난을 떼어놓을 수 없게 되었다. 아파트, 호텔, 열차 같은 근대화의 상징들이 재난의 원흉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된 시대였다. 80년대에 일어난 아웅산 테러와 대한항공기 폭파는 정치적 상황과 밀착한 인재였고,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직후의 평화로움을 예고 없이 파고든 태풍 셸마는 시작은 자연재해였지만 당국의 구멍 뚫린 방재 능력이 태산 같은 피해를 키웠다.

90년대 이후 재난의 가속은 더 붙었다. 군부 통치를 마감시킨 문민정부가 집권과 동시에 ‘사고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쓴 것은 문민통치의 실상이 허울뿐임을 말해주는 것일 수도 있었다. 모두 알다시피 김영삼 정권에서 일어난 재난은 육지, 하늘, 바다에다 땅 밑까지 골고루 안 미친 곳이 없었다. 대통령이 문장 수위를 한참 조정하여 국민들에게 사과 성명을 낸지 며칠이 못 가서 또 다른 재난이 터지기도 했다. 잇따른 대형 재난의 발생을 막지 못한데다 처리조차 미숙했던 김영삼 정부에게서 국민들은 이내 등을 돌렸다. 문민정부에서 시작한 재난의 일상화가 정점에 이른 것은 500여 명의 사망자를 낸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이었다. 시간이 더 흘러 지하철 화재를 초반에 진압하지 못해 참사로 번지는 사건이 일어났고, 군함 침몰로 꽃다운 해군들이 수장 당하는 어이없는 비극도 일어났다.

세월호 침몰 사건은 이전에 일어난 재난들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이 사건은 도저히 막을 수 없는 불가항력의 사고가 아니었으며, 사고가 일어났어도 피해를 줄일 수 있었으나 그렇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한국형’ 재난의 일반적 유형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사고로 이어지는 각 단계에서 어느 한 곳에서라도 제동을 걸었거나 담당자나 관리 부처가 정신을 차렸다면 대형 참사로 번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러나 이 사건의 파급력은 지금까지 진행된 것만으로도 여타 재난들과 동등한 수준에서 비교하기 힘들다. 이 재난이 국민적 통분을 불러온 이유는 희생자의 ‘순수성’과, 재난의 발생부터 처리 과정에 걸쳐 점철된 도저한 몰상식성에 있다.

희생자들 중 대다수를 차지한 이들이 어떤 비난이나 책임을 질 이유가 없는 아이들이었으며, 특히나 어른들의 말만 듣고 침몰하던 배를 빠져나올 생각도 하지 않은 착한 아이들이 죽음의 마수와 싸워볼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꼼짝없이 변을 당했다는 점은, 아이들을 지키지 못한 어른들의 죄의식을 폭발 지경으로 이끌었다. 죽은 아이의 품에서 형편이 좋지 않은 아버지가 빌려서 용돈으로 준 지폐가 꼬깃꼬깃 접힌 채 고스란히 나왔다는 이야기나, 사고 당일 안개가 잔뜩 끼어 출항 여부가 불투명했는데 결국 배가 출발하자 수학여행을 갈 수 있게 되었다며 아이들이 기뻐 날뛰더라는 등의 증언을 접한 사람들은, 착하고 순진한 아이들에게 닥친 얄궂은 운명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사신의 접근을 꿈에도 깨닫지 못하고 배가 넘어가는 순간에도 “뉴스에 오늘 일이 꼭 나올 것 같다.”라며 장난을 치던 동영상 속 아이들의 마지막 모습에 이르면, 아이들의 순진함에 목이 메는 정도를 넘어 도무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이 재난의 기이함에 몸서리치게 된다. 

이 재난은 도처에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널려 있다. 선원들부터 선박회사, 해경, 정부 당국, 청와대,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재난 대응에 책임 있는 자들이 보인 행태는 하나같이 우리가 아는 상식의 잣대로는 설명하기 힘든 것들이다. 도무지 제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사고 수습의 권한을 떠맡은 것 같은 이 자들의 공통점은, 제 자리에서 직분에 충실했어야 할 사람들이 자기 자리를 쉽사리 이탈했다는 데 있다. 선원들은 승객들을 가둬놓고 구명정에 가장 먼저 올라탔고, 해경은 배가 침몰할 당시 배 안의 승객을 구조하지 않았으며, 침몰한 후에는 구난업체를 관리하기는커녕 되레 휘둘리며 인명 구조 지휘라는 본업을 방기했고, 청와대는 자신이 재난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고 발뺌했고, 이 모든 책임의 맨 꼭대기에 위치한 대통령은 제 얼굴에 침 뱉는 행태를 보이며 국가적 재난 관리의 총책임자 위치를 스스로 놓아버렸다. 

사고 직후 정부의 수습 태도를 보며 사람들은 이 정권이 과연 온전할 수 있을지 의문을 품었다. 세월호는 혼자 침몰한 것이 아니다. 세월호가 끌고 간 박근혜 정권은 그보다 더 깊이 가라앉았다. 세월호는 다시 건져지겠지만 정권의 명운은 회복 불능 상태로 사실상 끝났다. 지금은 한 정권의 안위를 점칠 단계는 이미 지났다. 중요한 순간에 위기 대응 능력의 실상을 유감없이 보여준 박근혜 정부가 돌이킬 수 없는 치명타를 맞은 것은 분명하다. 대통령이라는 자가 털끝만큼의 양심이라도 남아있는 자라면 이쯤 해서 스스로 거취를 정하겠지만, 권좌를 지키더라도 남은 임기 내내 없는 것만도 못한 식물 대통령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박 대통령이 앞으로 무슨 일을 하더라도, “350명이 넘는 아이들을 지키지 못한 주제에” 운운하는 비아냥을 꼬리표처럼 달고 다녀야 할 것이다. 국민들이 제 손으로 끌어내지 않더라도, 눈앞에서 아이들이 참변을 당하고 있는데도 발만 동동 굴리도록 한 정부의 사고 대처나, 강력한 카리스마를 자랑하던 대통령의 명령이 전혀 통하지 않았던 구조 현장을 경험한 국민들에게 대통령은 이미 안중에 없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세월호 참사는 정부의 바닥 난 재난 대처 능력만 확인시켜 준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직분을 맡은 사람과 기관이 약속이라도 한 듯 제 자리를 지키지 않는 나라이며, 세월호 참사와 비슷한 일이 언제 자신의 일이 될지 모르는 나라라는 사실은 이 나라, 이 국가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품게 할 수밖에 없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데 필요한 기초와 뿌리가 무너진 사회는 대통령이 말한 대로 국가 개조가 진실로 필요한 때인지 모른다.
 
세월호 침몰은 한국 사회를 좀먹고 있던 기성 질서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져야 할 때임을 알려주고 있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이미 있었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는 모래성 위에 쌓아올린 고속 성장의 파탄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당시 대한민국은 한 시대가 몰락하는 징후를 깨닫지 못했으며, 성찰 없이 속도를 멈추지 않은 개발독재형 경제체제는 2년 뒤 구제금융 사태를 불러왔다. 삼풍백화점 붕괴가 해방 이후 부와 권력을 독식한 수구 세력이 빚어낸 재앙으로 진단한 것은 황석영의 소설 <강남몽>이 고작이었다.

꽃다운 아이들의 참사를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이 나라 사람들은 사고 발생과 수습에 제 역할을 방기한 범죄자들과 자신이 공범이라는 죄의식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 아픔은 오래 갈 것이며 쉽게 씻어지지 못할 것이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 이 어이없는 재앙에 대한 애도와 슬픔은 오래도록 치러져야 한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쳐서는 안된다. 아이들을 속수무책으로 잃은 이 통분을 그냥 흘려보내는 것만큼 무의미한 일은 없을 것이다. 먼 훗날 소설 속에서 현재의 우리가 시대의 종말과 전환기에 직면했음을 깨닫지 못했다는 사후약방문 같은 뒤늦은 한탄이 나오지 않도록 말이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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