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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끝없는 자동차 통상압력
[김영호 칼럼] 미국차 주권침해 손길 환경-교통정책까지 뻗히고 있어
 
김영호   기사입력  2014/04/03 [12:39]

규제완화 바람을 타고 주한미국상공회의소가 최근 미국차에 대한 특혜적 규제완화를 무더기로 들고 나왔다. 저탄소차 협력금을 폐지하라고 한다. 이산화탄소 배출이 많은 자동차에는 부담금을 물리고 적은 자동차에는 보조금을 주는 제도가 미국의 대형차에 불리하다는 것이다. 2011년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재협상에 따라 미국차는 2015년까지 국산차보다 19%나 완화된 연비와 온실가스 규제를 받는다. 그 기한을 연장하라고 한다. 파노라마 선루프 안전성조사도 중단하라고 한다. 모두 16가지의 배타적 특혜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미국은 통상압력을 통해 개별기업의 이익을 대변한다. 그 선봉장은 교역상대국에 주재하는 미국상공회의소이다. 상공회의소가 주재국에서 활동하는 개별기업의 애로사항을 취합해 USTR(미국무역대표부)에 보고하면 그것을 무역장벽으로 포장해 교역상대국에 통상압력을 행사한다. 그 까닭에 미국 통상압력은 대부분이 개별기업을 위한 예외적 특혜이거나 정책변경을 요구하는 주권침해적인 성격이 강하다. 터무니없는 요구가 가장 많은 분야가 자동차이다.

1990년대 들어 한국의 수입차 시장이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다. 하지만 미국산이 유럽산에 비해 판매가 저조하여 미국이 갖가지 무리한 통상압력을 끝없이 가하고 있다. 심지어 방송사 9시 TV뉴스 시간대에 광고시간을 내놓으라고 억지를 부리기도 했다. 한국 정부가 나서서 미국차에 대한 잘못된 사회인식을 바로 잡아라, 지도층이 솔선해서 미국차를 타도록 독려하라 따위의 비상식적인 압력도 넣었다. 이 같은 반시장적 압력에 견디지 못해 정부가 미국차를 수입해서 관용차로 사용하기도 했다.

미국은 배기량이 큰 자국산에 유리하도록 관련세제의 누진제를 없애는데 통상압력을 집중해 왔다. 특별소비세제는 1977년 부가가치세제와 함께 시행됐다. 부가가치세는 소득수준에 상관없이 단일세율을 무차별적으로 적용한다. 소득격차와 상관없이 똑같이 세금을 내는 역진성(逆進性)을 보완하기 위해 고가-사치품에 높은 세금을 부과하는 특별소비세를 도입했던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통상압력에 굴복해 여러 차례 억지로 뜯어고치는 바람에 특별소비세가 없어져 버렸다.

1994년에만 해도 배기량 2000cc 이상 승용차의 특별소비세율은 65%이었다. 그 해 미국의 통상압력에 눌려 세율을 25%로 한꺼번에 40%나 내렸다. 수입관세도 미국의 통상압력에 따라 10%에서 8%로 인하했다. 당시 7,000만원 이상 고급승용차에 물리던 15%의 취득중과세도 없앴다. 세금인하로 대형차 값이 크게 내렸지만 유럽차만 날개 달린 듯 팔렸다. 미국이 또 특별소비세를 물고 늘어졌다. 1년만인 1995년 또 세율을 25%에서 20%로 내렸다. 자동차세도 대형 위주로 41.3%나 대폭 인하했다.

대형차 수요가 급팽창하기 시작하면서 시장판도가 바뀌었지만 미국차에 대한 시장반응은 여전히 싸늘했다. 그러자 미국은 1997년 10월 한국을 통상법 수퍼 301조에 따라 우선협상대상국관행(PFCP)으로 지정했다. 결국 1998년 자동차세 세액구간을 7단계에서 5단계로 축소했다. 중-대형차가 세금을 같이 부담하도록 2000㏄이상을 동일한 세액구간으로 묶었던 것이다. 세액도 200원으로 인하했다. 미국이 통상압력을 통해 길을 열심히 닦지만 여전히 유럽차가 독주하는 형국이었다.

미국이 2003년 또 특소세를 트집 잡았다. 당시 세율구간은 3단계였고 세율은 2000cc 이상 14%, 1500~2000cc 10%, 1500cc 이하 7%였다. 그것을 세율구간은 2단계로 줄이고 세율도 2000cc 이상 10%, 그 이하는 5%로 인하했다. 억대를 자랑하는 고급수입차는 세율이 10 %인데 일반서민의 생필품인 100만원대의 에어컨은 16%나 되는 엉터리 세제가 되고 만 것이다.

FTA(자유무역협정) 협상과정에서도 미국은 또 특소세 인하를 압박했다. 2013년부터 3년에 걸쳐 2단계인 세율구간을 없애고 5%로 단일화하기로 했다. 억대 수입차나 1천만원 짜리 경차나 같은 세율을 적용한다는 소리다. 결국 특별소비세제는 형해화되고 개별소비세라는 명목을 유지하는 꼴이 됐다. 자동차세도 5단계를 3단계로 축소해 중-대형차를 가리지 않고 1600㏄ 이상이면 같은 세금을 물린다. 미국의 대형차를 위해 부자감세를 단행한 셈이다. 세수감소액만도 한해 4000억원이나 된다.

대형차는 도로를 더 차지하고 더 파손하며 대기도 더 오염시킨다. 교통체증을 완화하고 지구온난화 가스 배출을 줄이려면 중과세를 통해 대형차의 수요를 억제해야 한다. 그런데 미국의 통상압력이 조세정책을 난도질한 바람에 어디를 가나 대형차가 넘쳐난다. 이제 주권침해의 손길을 환경-교통정책까지 뻗히고 있다.




언론광장 공동대표
<건달정치 개혁실패>, <경제민주화시대 대통령> 등의 저자  
본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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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04/03 [12:3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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