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이 신체의 건강보다 중요하다는 어긋난 생각을 지적(指摘)하고 이를 고치자고 주장하는 ‘체덕지(體德智)로 순서 바꿔 아이들을 살려내자’ 기사에 대해 카메룬에서 체육교사로 일하는 서정호 씨가 보낸 글을 소개합니다. 여기엔 공감(共感)과 함께 조건이 다른 외국학교에서 일하며 얻은 생각도 스며 있습니다. [편집자]
‘시민의 자연’에서 강상헌 선생님의 기사를 읽고 인사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외국서 일하는 체육교사 서정호입니다.
먼저 감사합니다. 또 다른 누군가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고, 체육인으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체육인이 아닌, 언론인이 먼저 이런 뜻을 보여주신 것이 좀 열없긴 하지만, 하여간 고맙습니다.
저는 한국의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잠시 체육을 가르치다가 현재는 아프리카 카메룬에 있는 인터내셔널 스쿨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체육 교사로 일하고 싶은 마음은 작지 않았지만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고자 이곳에 왔습니다. 하지만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했던가요? 역시 이곳에서도 체육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기사의 마지막 문단이 심금(心琴)을 울렸습니다. 그 말이 맞습니다. 특히 이곳에서 저는 그 사실을 더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곳의 미국, 캐나다, 카메룬, 네덜란드 학생들은 그 무엇보다도 체육 과목에 열정을 쏟습니다. 물론 이곳의 한국 학생도 열성적이죠.
가장 중요한 과정이 바로 체육수업과 방과 후 체육활동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교장 선생님이 저처럼 체육선생님입니다. 이곳에 있는 2년 동안 방과 후 체육활동을 무척 많이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감히 상상 조차 할 수 없었던 다양한 체육의 경험들을 이곳 커리큘럼 안에서 모두 경험하게 됩니다.한국의 학교에서는, 물론 노력하는 학교도 있지만, 체육수업과 활동의 부실(不實)함이 참혹합니다. 정말 슬플 정도지요.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해 교육에서 그토록 지식의 측면만을 부각(浮刻)시켜왔던 걸까요?
정치는 잘 모릅니다만, 아무래도 군중(群衆)은 ‘우두머리’를 따르지 않겠습니까. 현대 국가에서는 그 우두머리가 바로 국가이고 시민이 뽑은 정부일 터인데, 그들이 체육의 힘과 중요성을 모르는 것 같아요. 지식만이 중요하다는 ‘이념’으로 커 온 기성세대 시민들도 관성(慣性)적으로 체육을 무시하는 것이고요. 심각한 사태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저는 현재 대한민국 학교의 여러 가지 문제점(폭력, 비만, 교권붕괴, 각종 비리 등)의 주요한 원인 중 하나가 이러한 편향(偏向)된 시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고(思考)의 구조가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무(武)와 문(文)을 함께 갖춘, 균형감각 있는 인격자(人格者)를 키워내는 것이 교육자 또 체육인으로서의 저의 꿈입니다. 한국의 ‘지덕체’ 순서처럼 지식만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사회가 아닌 이곳에서는 저의 꿈이, 비록 작은 성과이겠지만, 이루어지고 있다고 믿고 최선을 다합니다.
▲ 체육시간은 체력을 증진하는 것과 함께 아이(피교육자)들의 기(氣)를 열어주는 효과를 기대한다. 생명을 약동하게 하는 것이다. 서 교사와 카메룬의 그의 학급의 체육시간. © 서정호 | |
지식보다 운동을 더 강조해야 좋은 사회가 된다는 생각을 하는 또 다른 분이 있으니 참 좋습니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바꿔나간다면 언젠가 체덕지의 광복(光復)이 오지 않을까요? 이렇게 허망하게 아이들이 투신(投身)하는 참담함을 얼른 막고 싶습니다.
표현이 쉽지 않습니다만, 운동 많이 하는 아이들, 많이 놀고 잘 놀아 마음이 너른 아이들은 이러지 않습니다. 친구를 귀하게 섬기고, 자신을 멋지게 사랑합니다. 왕따라니요? 빵셔틀이라니요? 왜 스스로 목숨을 버립니까? 누가 ‘위’고 누가 ‘아래’지요?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진정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가르쳐주고,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요? 호연지기보다 선행학습이 더 중요합니까? 누구 잘못인가요? 저 같은, 선생만 잘못인가요? 제가 아직 몰라서 그렇다고요?
이곳에서 경험하는 교육과정과 노하우를 한국의 일반 중고등학교에서도 적절하게 응용해보고 싶은 생각이 많습니다. 이상론(理想論)이라 여겨지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좋은 학교의 미래상은 이렇습니다.
대형학교, 공장식 학교가 아닌 소형학교(스몰스쿨), 도제식 학교, 대안학교를 마음에 두고 있습니다. 전교생 100명 안팎이 적절하겠지요. 그리고 학교 설립 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조건 중의 하나가 바로 체육시설로 활용될 수 있는 터의 확보입니다.
학생 시절에 마구 뛰어다니며 기쁨과 즐거움을 느껴야 합니다. 그 시기의 특권이며 바람직한 성장의 모습입니다. 좋은 어른이 될 수 있도록, 신체적인 건강과 체육활동이 주는 호쾌한 심성(心性)을 그들의 인격의 기반(基盤)에 단단히 깔아줘야 합니다. 그게 바로 건강한 신체인거죠. 또 거기에 깃드는 것이 아름다운 마음입니다.
그게 순서지요. 체덕지(體德智)란 말씀입니다. 지덕체(智德體)는 순서가 맞지 않습니다.
다음 주에 저희 학교의 졸업식이 있습니다. 이곳은 8월에 1학기가 시작하기 때문에 6월에 모든 과정이 끝납니다. 졸업생도 10명 남짓이어서 우리는 서로 정말 친합니다. 가족이지요. 마음이 통하는 기분 아시나요? 한국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시절에는 이런 기쁨과 사제(師弟) 사이의 좋은 소통(疏通)의 느낌을 갖기 힘들었습니다.
두서없는 글입니다. 이렇게 남의 글을 보고 마음이 움직여 글을 만들고 이메일을 보내는 것도 첫 경험입니다. 아무쪼록 고맙고 기쁩니다. 앞으로도 이 주제에 관한 좋은 기사 기대하겠습니다.
멀리 이국(異國)에서 일하는 저도, 체육인으로서 또 교사로서, 색다른 경험을 만나게 되면 그 때마다 연락드리겠습니다.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두루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서정호<카메룬 인터내셔널 스쿨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