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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했던 동아일보 장환수 기자'는 어디에
[문한별기자의 끝내기홈런] 국민의 알권리는 알까기가 아녀
 
문한별   기사입력  2003/11/14 [17:10]

장환수 기자에게.

우리는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지요. 장 기자가 최근 "순수했던 김병현은 어디에...." 운운하며 동아일보 지면에 올린 어줍짢은 기사를 읽어 본 기억이 전부군요.

▲김병현 선수     ©bk51.com
저는 그 글을 읽고 참 특이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장기자는 3년 전 애리조나 유니폼을 입고 있었던 김병현 선수가 동아일보 본사에 들렀을 때 처음 만나 잠깐 얘기해 본 기억 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하여 서두에 "우리는 서로 잘 알지는 못하는 사이"라고 고백하기도 했죠. 그랬던 장 기자가 이제와서 느닷없이 갑자기 별안간 문득 돌연 마치 이전부터 김병현 선수를 잘 알고 지냈던 사람이라도 되는 냥 "순수했던 김병현은 어디로 갔나"고 탄식하는 것은 무슨 경우랍니까? 그새 꿈 속에서라도 친해진 겁니까?

특이한 것은 이뿐 만이 아닙니다. 이어지는 글에서 장 기자는 "잘잘못은 법정에서 가려지겠지만"이라고 말을 끄집어내놓고는 곧 바로 "김 선수는 분명히 폭력을 행사했습니다"고 그를 단죄.심판까지 했습니다. 도대체 이게 뭡니까? 기자가 그래도 되는 것입니까? "카메라가 부서지고 사진기자가 다친 것은 엄연한 사실"이지만 정확한 진상과 그에 대한 판단은 엄연히 사법부의 몫입니다. 기자는 객관적인 사실만 전달하면 됩니다. 그렇지 않나요?

장기자는 또 "처음엔 걱정이 돼서 초상권에 대한 법률적 해석을 훑어봤습니다"고 했습니다. 좋습니다. 대동아일보의 기자님께서 김병현 선수를 걱정'씩'이나 해준다니 고마울 밖에요. 그런데 그 걱정이란 게 아니나 다를까 결국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권리'라는, 기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뻔한 애창곡으로 흐르고 말더군요. 제 눈엔 이게 걱정하는 체 하며 한번 더 죽이는 것으로 밖에 안보입니다.

지나가는 말이지만, 기자'들'(특히 스포츠지 기자들)은 참 좋겠습니다. '언론의 자유'를 앞세우고 '국민의 알권리'를 팔아 자신들의 후안무치한 행위들을 얼마든지 정당화시킬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그렇지요. 누가 얼굴에 성형을 했느니 안했느니, 모씨와 모씨가 헤어졌느니 혹은 핑크빛으로 변했느니, 아님 모여성가수가 속에 팬티를 입었느니 안입었느니 하는 따위를 시시콜콜 까발기는 것도 오로지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서 하는 것이겠지요. 설마하니 '언론의 자유'를 위해 숙야분려(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최선을 다하고 고민 했다는 한자성어-편집자주)하시는 거룩하신 기자님들께서 '장사속'으로야 그런 짓들을 하시겠습니까?

장 기자, '국민의 알권리'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러나 "아무리 공적 인물이라도 모든 사생활이 보호될 수 없다는 것은 헌법상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에 반하는 것"이요, 기자들이 전가의 보도로 삼는 보도가치 또한 "사회구성원이 어떤 사실을 아는데 대해 정당한 관심을 갖고, 그것을 아는 것이 사회에 이익이 되는 경우에만 부여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생각을 아니 해보셨습니까? 왜 하고 많은 네티즌들이 김병현 선수를 비난하기보다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헌신했다는 <굿데이> 기자에게 손가락질하는지에 대해서도 말입니다.

▲김병현선수 팬 싸이트     ©bk51.com
장 기자는 김병현 선수가 홈페이지(www.bk51.com)에 올린 장문의 글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고" "한마디로 실망스러웠다"고 했습니다. "그 속엔 김 선수의 분노뿐, 3년 전의 천진난만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는 게 그 이유였지요. 저는 정말이지 이걸 보고서 경악을 넘어 전율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아니, 김병현 선수가 '피터팬' 내지는 '양철북'에 나오는 오스카소년입니까? 김병현 선수가 3년 전의 천진난만함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가공할 발상은 어디서 나온 겁니까? 그러는 장 기자는 이전의 천진난만함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대인기피증, 정신이상에 인성교육이 덜되고 가진 것은 힘밖에 없어 사람 폭행하고 다니는 김병현’이라고 서두를 꺼낼 때만 해도 웃음이 나왔다"고 하셨든가요? 저는 홈피에 올려진 그 글을 읽고 가슴이 아렸습니다.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언론의 전능 앞에 무력한 약자의 절규를 보는 듯 하여 속으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얼마나 시달렸으면 첫문장에서부터 이처럼 자조적인 말을 내뱉었겠습니까? 그런데도 웃음이 나오던가요?

그러면서 장 기자는 김 선수가 한 말들 - "부모님도 모르게 귀국했으니까 팬 여러분은 너무 실망하지 마라", "(손가락 사건에 대해)어깨가 아프면서도 꾹 참고 죽으라고 던진 데 대한 배신감의 발로였다", "(국내 언론의 비판적 보도에 대해)함부로 기사 쓰는 사람들과는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 "한번만 더 그러면 가만있지 않겠다", "그래도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운동하니까 다행" 등등 - 을 죽 늘어놓으며 "반성의 뜻이 보이지 않았다'거나 "도가 지나쳤다"고 그를 거듭 비난했습니다.

도대체 뭐가 지나치다는 것입니까? 그러면 함부로 기사를 쓰는 사람과도 계속 인터뷰를 해야 합니까? 인터뷰를 하고 말고는 김병현 선수 고유의 권한입니다. 메이저리그의 특급선수들 가운데도 인터뷰를 거부한 사람이 여럿 있습니다. 그게 무조건 비난받아야 할 일인가요? 언론이 없는 말까지 지어가며 멀쩡한 사람을 병신만드는 데도 무조건 고개를 숙이고 순종.복종.굴종해야 합니까?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잘못된 보도가 나오는데도 "가만히 있으면" 그게 더 문제 아닙니까?

김병현 선수는 운동선수이기 이전에 한 인간입니다. 장 기자가 앞선 글에서도 썼듯이 "수줍은 성격 탓에 상대의 시선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얼굴도 자주 붉어지는" 마음 여린 인간입니다. 아무리 그가 공인이라지만 보도할 가치가 있는 것만 쓰고 그가 홀로 간직하고 싶어하는 사생활에 대해서는 제발 그냥 뇌두면 안되나요? 꼭 파파라치처럼 따라다니며 여기저기서 난데없이 플래시를 터트려야만 직성이 풀립니까?

장 기자는 글 말미에 "주제넘지만 한 마디만 하겠다며 "김 선수보다 더 대단한 선동렬 같은 선배가 그동안 어떻게 언론을 대하며 자신의 인생을 가꿔왔는지를 한번 살펴보라"고 충고했습니다.

저도 "주제넘지만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부상당한 부위를 치료하기도 바쁜 김병현 선수가, 지칠대로 지친 심신을 쉬기에도 빠듯한 김병현 선수가, 그리고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구질을 연마해야 할 김병현 선수가 이젠 고국의 기자들로부터 살아 남기 위해 '대선배와 언론의 함수관계'까지 연구해야만 합니까? 그건 너무 일방적인 주문 아닌가요? 반성과 개선은 전적으로 김병현 선수의 몫이고 기자들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습니까? 정말 그렇다고 보십니까?

장 기자, 독자들의 소리를 한번 겸허하게 들어 보세요. 민심(民心)이 천심(天心)이라 하지 않습니까? 하늘(天)이 언론을 질타하고 있습니다. <굿데이> 불매운동을 넘어 이번 기회에 오만한 언론들을 확실하게 손봐주자는 네티즌들의 외침이 초고속 인터넷망을 타고 들불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장 기자의 눈엔 '순수했던 김병현 선수'가 아니라 "순수했던 언론"을 애타게 찾고 있는 독자들의 모습이 아니 보이십니까?

* 필자는 언론인권센터 대외협력위원장으로서 이 시대의 바른 말글살이와 바른 사람살이를 위해 뛰고 있습니다.


[장환수 기자의 장외홈런] ‘순수했던 김병현’은 어디에…

2003/11/11

김병현 선수에게.
우리는 서로 잘 알지는 못하는 사이지요. 김 선수가 애리조나 유니폼을 입고 있었던 3년 전 이맘 때 본사에 들러 얘기해 본 기억이 전부군요.

그때 저는 참 특이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당시만 해도 김 선수는 대단히 촉망받는 스타였습니다. 하지만 전혀 거부감은 들지 않더군요. 타향생활의 외로움에 잠을 못 이루고, 그래서 전자오락으로 밤을 새울 때도 많다고 했죠. 수줍은 성격 탓에 상대의 시선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고 얼굴도 자주 붉어지더군요. 솔직히 개구쟁이 막내 동생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잘잘못은 법정에서 가려지겠지만 김 선수는 분명히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카메라가 부서지고 사진기자가 다친 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처음엔 걱정이 돼서 초상권에 대한 법률적 해석을 훑어봤습니다. 일반적으로 개인의 사생활을 허락 없이 공개했다면 분명 초상권 침해입니다. 그러나 공인에 대한 언론보도는 다르더군요.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는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으로, 공인의 사생활을 심각하게 침해했거나 허위사실이 아니라면 쉽게 제재가 가해지지는 않는다고 돼 있었습니다. 결국 이 문제가 서로 충돌할 때는 사안에 따라 법원이 판결을 내려야겠죠.

하지만 저는 김 선수가 홈페이지(www.bk51.com)에 올린 글을 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A4 용지 3장이 더 될 장문의 글이더군요. 한마디로 실망스러웠습니다. 그 속엔 김 선수의 분노뿐, 3년 전의 천진난만함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대인기피증, 정신이상에 인성교육이 덜되고 가진 것은 힘밖에 없어 사람 폭행하고 다니는 김병현’이라고 서두를 꺼낼 때만 해도 웃음이 나왔죠. 그런데 김 선수는 ‘부모님도 모르게 귀국했으니까 팬 여러분은 너무 실망하지 마라’고 했습니다. 손가락 사건에 대해선 ‘어깨가 아프면서도 꾹 참고 죽으라고 던진 데 대한 배신감의 발로’였다고 했죠. 반성의 뜻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또 국내 언론의 비판적 보도에 대해선 ‘함부로 기사 쓰는 사람들과는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러고선 ‘한번만 더 그러면 가만있지 않겠다’든가 ‘그래도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운동하니까 다행’이라고 한 것은 도가 지나쳤다는 생각입니다.

주제넘지만 김 선수에게 한 마디만 하겠습니다. 아직은 김 선수보다 더 대단한 선동렬 같은 선배가 그동안 어떻게 언론을 대하며 자신의 인생을 가꿔왔는지를 한번 살펴보십시오.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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