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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대통령'후예들의 성희롱은 여전
정지환기자, 조선일보 사옥앞 '성희롱관련' 길거리 특강
언론노조, 조선 방상훈사장에게 헌법, 노동법 책 전달
 
윤익한   기사입력  2003/11/12 [19:35]

"방일영 조선일보 전 고문이 '밤의 대통령'으로 불리게 된 사연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한 요정에서 붙여준 이름이다"

안티조선 전문기자로 불리는 정지환 기자(시민의신문 사회부장)는 최근 스포츠조선 성희롱 사건과 관련해 11월 13일 조선일보 사옥 앞에서 열린 길거리 특강에서 이같은 조선일보 사주의 비화를 소개했다.

▲조선일보 사옥 앞에서 길거리 특강중인 정지환기자     ©대자보
정기자는 특강에서 '요정정치 시대'의 황태자들로부터 "권번(券番)출신 기생(妓生)들의 머리를 제일 많이 얹어준 분"이라고 불린 방 전 고문을 요정에서 만난 박 전 대통령이 "낮에는 내가 대통령이지만 밤에 보니 임자(방 전 고문)가 대통령이구만"하고 말했다고 전했다. 또 정기자는 "이런 이유 때문에 육영수 여사가 당시 방일영씨와 이후락씨를 가장 미워했다"고 말했다.

정지환 기자가 이처럼 조선일보 사주와 정권과의 은밀한 밤거래를 알게 된 것은 공교롭게도 이미 80년대 출판된 방일영씨의 회갑문집 <태평로 1가>등에서이다. 정기자는 이에 대해 "당시 정권과 조선일보가 국민들을 얼마나 우습게 보았길래, 이런 이야기들이 책으로 만들어져 나왔겠느냐"며 "지금으로서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의 족벌 세습 경영이 계속되는 지금까지도 이같은 비화가 아직도 공공연히 행해지고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또한 방일영씨와 박 전 대통령의 역사적 만남은 이후 조선일보가 정권과의 유착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면서 언론을 사적 소유물로 이용하게 되는 시작이 된 사건이라는 것이다.

정기자는 또 시민의신문 2003년 11월 3일자에 실린 스포츠조선 성희롱 피해자의 증언을 토대로 스포츠조선과 모기업인 조선일보가 과거 이같은 성희롱 사건을 어떻게 보도했는지를 낱낱이 고발했다.

▲길거리 특강 모습     ©대자보
정기자에 따르면 조선일보는 지난 86년 부천서 성고문 사건의 피해자였던 명지대 권인숙 교수에 대한 조선일보 2003년 10월 18일자 이한우 논설위원의 글을 예로 들며, "과거 부천서 성고문 사건이 났을 때, 조선일보는 '기획 성희롱'이며 '여성의 성을 혁명도구로 삼으려는 운동권의 위장취업'이라고 주장했다"며 "17년 전 자신들의 잘못은 얘기하지 않는 조선일보는 '박물관 역사의식'을 가졌다"고 말했다.    

아울러 정기자는 특강에서 성희롱을 당한 피해자들이 고졸 출신의 업무국 직원들이었다고 밝히면서 "만약 그들이 내 여동생이었거나 대졸 출신의 여기자들이었다면 과연 이렇게 침묵하고 있었겠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정기자는 "우리는 언제부터 왜 분노할 때 분노하지 못하느냐"고 말해 주위를 숙연케했다.

▲언론노조 신학림 위원장이 노동법전과 헌법전를 전달하려 하고 있다.     ©대자보
정기자의 특강이 끝난 뒤 언론노조 신학림 위원장은 "스포츠조선의 성희롱 사건에 대한 책임을 끝까지 묻고 침묵하는 스포츠조선과 조선일보에 맞서 투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언론노조는 스포츠조선의 성희롱 사건과 최근 노동자 관련 '친재벌적' 보도를 한 조선일보의 잘못을 지적하며,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에게 헌법책과 노동조합법 책을 전달했다.

앞으로도 정지환 기자의 길거리 특강은 조선일보가 과거 권력과 유착관계를 통해 급성장하게 된 배경을 둘러싼 흥미로운 비화들을 소재로 계속될 예정이다./미디어기자


정지환 기자의 길거리 특강 : 조선일보를 보면 대한민국이 보인다(1)

성희롱과 SK 사건 그리고 조선일보

(1)스포츠조선 성희롱 피해자의 증언(회식문화 혹은 노래방 문화): "(술은) 뱃속에서부터 배워서 나와야 한다"(?)

▲"하원 스포츠조선 사장을 파면하라"를 주장하는 대자보     ©대자보
○. "당하고 나니까…혼자서만 앓고 있었어요." "그 사람은 상사구, 저는 부하 직원인데…저를 벌레 취급하는 거예요." "자기네들끼리 말을 맞추더라구요." "회사에서는 노조가 명예훼손을 했다고 나와요." "(억지로 남자 상사에게 끌려간) 노래방에서 (간부가) 어깨동무를 해서 슬금슬금 피했어요. 그랬더니 끌어당겨서 안고 그랬어요. 브래지어 끈 아래 살을 잡아당기곤 했어요." "그런 일 있은 후에, 나중에 (간부가) '증거 있어' '증거 대'라고 하는 거예요." "우리가 (성희롱이라고 알린) 것이 회사를 해치는 행위라는 거예요.""결혼도 안 했는데, 설마 우리가 성희롱을 꾸몄을까요? 우리는 '진실'이고, 저쪽은 '거짓'이에요." "주위 사람이 너희가 조선일보를 이길 수 있겠느냐 라는 말을 해요." "주위 사람들이 회사 다니려면 조용히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시민의신문 2003년 11월 3일자 피해자 익명 인터뷰) 

○. 명예훼손 소송과 '기획 성희롱' 논란. ---> 권인숙양 성고문 사건(보도지침과 조선일보, 여성의 성마저도 혁명의 도구로 삼으려는 운동권. 위장취업(?)과 공문서 위조? 실정법 위반했다고 거꾸로 감옥에 갇힌 피해자. 문귀동을 아십니까? 지금 문귀동의 인권과 명예를 옹호하자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 스포츠조선 성희롱 사태,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 ---> 만약 피해자들이 여기자였다면? 만약 그들이 내 여동생이었다면? 우리는 왜 분노할 때 분노하지 못하는가? 성희롱 사건은 피해자 우선주의가 기본정신!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야 한다! 

<자료1>조선일보 2003년 10월 18일자 만물상: 여성학자 권인숙   

군사문화는 군인 특유의 요소들보다는 극단적으로 가부장적인 측면들로 인해 시민사회에 악영향을 준다. 그런 점에서 군대조직은 상명하복의 가부장제를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박물관이다. 군대의 상관은 가부장제의 남성, 부하는 여성과 짝을 이룬다. 그러니 여성학자들이 군대라는 조직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인지 모른다.

86년 부천서 성고문 사건의 피해자였던 명지대 권인숙 교수가 최근 군부대 내 성폭력 실태조사를 맡았다고 한다. ‘시대의 아픔’이라는 상투적 표현으로는 도저히 담아내지 못할 큰 상처를 입었던 권 교수다. 그가 혼자 미국 땅에서 딸을 키우며 9년 만에 당당한 여성학자로 우리 곁에 돌아와 본격적인 사회활동에 나선 것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 정신의학에서는 전문용어로 ‘예기(豫期)불안’이라고 한다. 즉 충격적인 사건으로 정신적 외상(外傷)을 입을 경우 비슷한 상황이 연상되기만 해도 당시의 충격이 재연되는 증상이다. 지난해 말 펴낸 자전적 에세이 ‘선택’에서 권 교수는 자신을 두 개의 자아로 분리시키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성폭력 피해자로서의 권인숙’과 ‘그 권양의 매니저로서의 권인숙’이 그것이다.

사실 권 교수가 말한 자아분리의 고통스러운 체험은 가부장 사회에서는 으레 정신분열로 판정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권 교수는 여성의 정치적 독립 못지않게 정신적 독립을 강조하는 현대 여성학 이론의 도움을 받아 그 같은 자기의 분열 혹은 분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내가 여성학을 선택한 것은 터질 것 같은 머리를 수습하기 위한 절박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는 거기서 출발해 마침내 자기치유에 성공하고 학문적 성취까지 이뤄냈다.

귀국 후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이 투사나 운동가로 비치는 것을 사양했다. 지금 여기서 그는 ‘여성학자’ 권인숙 교수로서 이 사회와 새롭게 만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는 요즘 말많은 386이라는 괄호 속에 자신을 넣고 싶지 않은 뜻도 담겨 있을 것이다. 99년 한 계간지에 기고한 글 ‘우리 안의 파시즘’에서 “학생운동의 윗자리에서 백만 학도를 대표했던 사람들이 화려한 경력을 배경으로 정치 또는 대중 앞에 나서고 있는데 그들의 정체는 무엇인가”라고 물었던 그다. 성고문 피해자에서 군대 내 성폭력 조사를 맡은 전문연구자로 다시 선 그의 활약에 기대를 건다. /이한우 논설위원

<자료2>조선일보 2003년 10월 13일자 기사: 機內서 술마시고…만지고…더듬고  
   
여객기 안에서 불법 반입한 술을 마시고 여승무원들을 성추행한 혐의로 러시아인 선원 K(23)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K씨는 지난 11일 오전 9시30분쯤 부산발 서울행 모 항공사 여객기 기내에서 불법 반입한 소주를 마시던 중, 이를 제지하던 임모(여·26)씨 등 여승무원 2명의 가슴과 허벅지를 수차례 만지고 더듬는 등 성추행한 혐의다. K씨는 이날 오후 러시아 사할린 홈스크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인천공항 국제선편 탑승을 앞두고 있었지만, 항공사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공항경비대에 의해 김포공항 국내선 8번 탑승구 앞에서 붙잡혔다. 서울 강서경찰서는 K씨에 대해 12일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채성진 기자

(2)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는 SK 비리 사건의 기원: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낮의 대통령'과 '밤의 대통령'의 태평성대

○. SK 최종건-최종현, 조선 방일영-방우영, 카지노 전락원-유화열, 군발이 권력자 박정희-이후락... 그들간의 얽히고 설킨 질펀한 낮과 밤의 세계.......
방일영과 박정희가 처음 만난 곳도, 방우영과 박정희가 처음 만난 곳도, 최종건과 방일영이 처음 만난 곳도 요정이었다(최종건과 이후락이 사돈지간 되고, 최종현이 죽기 전까지 조선일보 사외이사 맡았던 질긴 인연의 전사 있었다).

(방우영의 육성증언) "내가 처음 박정희 대통령을 본 것은 그가 최고회의 의장 때 이후락 공보실장과 서정귀 씨 등을 데리고 방일영 사장과 함께 한 어느 술자리에서였다. 머리에 수건을 동여맨 박 의장이 한 여배우의 손을 붙잡고 밴드에 맞춰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박정희 사단장 시절 작전참모 이○○ 대령의 육성증언 "정보참모 역할은 채홍사, 박정희는 전쟁 때부터 정신○○ 상태."

'요정정치 시대'의 황태자들..... 최종건과 전락원은 방일영을 '형님'으로 모셨다. '지극하고 따스하고 멋진 방 형님'; "권번(券番) 출신 기생(妓生)들의 머리를 제일 많이 얹어준 분."

○. 박근혜 의원이 안티조선 운동에 나서야 하는 운명적 이유 있다? 왜 육영수 여사는 유독 이후락과 방일영을 미워했는가(참고자료: 조갑제의 박정희 전기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방일영의 회갑문집 <태평로 1가>, <격랑 60년-방일영과 조선일보>).

이후락은 왜 청와대 부속실에만 가면 발끝을 들고 살금살금 걸어야 했는가. 냉면 말아먹고 기녀 불러서 한 서너 시간 유쾌하게 잘 놀았기로서니? 청와대 경호원 깜짝 놀라게 만든 방일영의 "대통령 형님, 쭈욱 드십시오."

○. 방일영이 '밤의 대통령'으로 불리게 된 진짜 사연(박정희가 기생집에서 붙여준 이름).  

<자료3> "방일영 회장님을 남산으로 부르고 싶다. 남산에 있는 옛날의 중앙정보부와 현재의 안기부 못지 않게 회장님이 계신 태평로 1가에는 모든 정보와 인재들이 모여들었다. 낮의 대통령은 그 동안 여러분이 계셨지만 밤의 대통령은 오로지 회장님 한 분이셨다."(1992년 11월 방일영 고희연 당시 사원 대표 신동호 스포츠조선 사장의 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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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11/12 [19:3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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