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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재보선 위기, 강재섭이 웃는 이유
[공희준의 일망타진] 강재섭은 이명박 ‘조커’, 당선위해 다른 출혈 감수
 
공희준   기사입력  2011/04/26 [01:11]
4월 27일의 재‧보궐 선거가 혼탁의 극치로 치닫는 양상이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의 수구신문 삼총사는 물론이고, KBS 한국방송, MBC 문화방송, SBS 서울방송의 공중파TV 트리오 또한, 선관위까지 거들고 있는 노골적인 관권선거와 불법선거를 왜곡된 양비론의 시각에서 축소보도하고 있다. 즉 한나라당이 자행한 그릇된 선거운동의 책임의 절반을 엉뚱하게도 민주당에게 덮어씌우고 있는 것이다. 아뿔싸, 깜박할 뻔했다. 반찬값 벌려고 펜션에서 전화기 돌렸을 서른 명의 강릉 아줌마들한테도 덮어씌울 기세로구나.

그런데 민주당의 선거전략 중에서 소홀하게 간과하고 넘어가기 어려운 심각한 결함 한 가지가 발견된다. 무릇 어떠한 싸움에서든 상대방을 과소평가했다가는 큰 코 다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조조의 군대가 적벽에서 전멸한 일도, 수양제의 대군이 살수에서 몰살된 일도, 그리고 과거에 핵주먹 타이슨이 무명의 복서였던 제임스 더글러스한테 헤비급권투 타이틀전에서 치욕과 충격의 KO패를 당한 것도 그 근본 원인은 적을 너무 얕본 데 있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대항마로 분당을 지역구에 출전한 강재섭 한나라당 전 대표는 절대로 호락호락하거나 만만한 인물이 아니다. 강재섭을 만만하게 얕봤다가 치명적인 불의의 일격을 당한 정치인들의 이름만 열거해도 내 말이 결코 허언이 아님을 알리라.

6공 노태우 정권의 황태자로 군림한 월계수 박철언도, 차떼기로 긁어모은 부정한 대선자금과 국회에서의 무리한 대통령 탄핵으로 다 죽어가던 한나라당을 천막당사를 지어가면서까지 살려놨던 선거의 여왕 박근혜도, 그들이 가진 통념으로는 한낱 ‘듣보잡’으로 보였을 뿐인 강재섭에게 예상 못한 뒷덜미를 잡힌 탓에 대권고지 앞에서 통한의 분루를 삼켜야만 했다.

이명박 정권 수뇌부는 강재섭의 이와 같은 저격수 본능에 주목했던 듯싶다. 아마도 그들은 강재섭으로 1석 2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게다. 1단계로는 분당에서 손학규를 꺾고, 2단계로는 박근혜를 제압한다는 작전계획을 수립했을 터. 환언하자면 손학규에게 이긴 강재섭을 그 공로를 인정해 당대표에 재기용함으로써 한나라당 경선서 박근혜를 또다시 교묘한 함정에 빠뜨린다는, 나름대로는 심모원려의 ‘그랜드 디자인’을 MB 정부의 권부 깊숙한 곳에서 은밀하게 구상했을지도 모른다. 강재섭이야말로 이명박이 경기 막판에 회심의 승부수로 내놓은 필승의 조커일 수가 있는 셈이다.

카드놀이에서 조커는 역전의 기회를 제공하는 중요한 패라고 한다. 그러기에 축구경기 같은 데서는 경기 막판에 교체선수로 투입되는 공격수를 통상적으로 조커라고 부르곤 한다. 현재의 정치적 흐름이 계속 이어진다면 친이코드로는 정권 재창출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정권 재창출은 고사하고 친이로 분류되는 인사들은 이명박 대통령 퇴임 후에 자칫하다가는 죄다 삼족이 멸문지화를 당하는, 상상하기조자 끔찍한 위험성마저 존재한다.

박철언이 강재섭에게 허를 찔리는 바람에 김영삼은 민주자유당 대통령 후보 자리를 손쉽게 차지할 수 있었다. 강재섭이라는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힌 박근혜는 엽기적인 계산법으로 이명박에게 승리를 안겨준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결과를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조커 강재섭의 확실한 골 결정력에 청와대가 기대를 거는 것은 당연한 노릇이다.

이른바 ‘엄펜션 사건’은 석연치 않은 과정을 거쳐 한나라당에 입당한 까닭에 가뜩이나 취약해진 엄기영 강원도지사 후보의 도덕성에 회복불능의 치명타를 가했다. 선거법 위반 논란을 빚고 있는 이재오 특임장관의 지원유세 독려 발언은 김해에 출사표를 던지고서 고군분투 중인, 역시 한나라당 소속의 김태호 후보에게 불리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북경의 나비가 날갯짓을 하면 뉴욕에서는 폭풍이 일어난다고 했다. 한나라당 입장에서 강원도와 김해에서의 잇따른 악재의 돌출은 오히려 분당에서는 득표력 제고와 지지층 결집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줄 전망이다. 분당에 거주하는 영남 출신의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위기의식을 자극하고 있어서다. 자신이 무심결에 발설한 ‘15년 분당사람’이라는 선거슬로건이 도리어 역풍을 불러일으켜 자승자박의 상황에 놓인 강재섭 후보에게는 싫지만은 않을 구도의 변화이자 판세의 요동이다. 그 직전까지만 해도 순조롭게 고공비행 중이던 손학규 후보로서는 미처 예측 못한 이상기류에 휘말린 셈이다.

조커가 그라운드에 등장하는 것과 동시에 팀의 전체적 전술과 대형도 수정되기 마련이다. 한나라당의 선거체제는 다른 전장에서의 출혈을 기꺼이 감수하면서까지 조커 강재섭에게 득점기회를 만들어주는 형태로 급격히 변모한 인상을 준다. 동네 바보형처럼 어딘가 나사 빠진 표정을 짓고 있는 강재섭이지만 그의 등 뒤에서 한나라당이란 거대하고 정교한 선거기계는 손학규를 짓이겨버리기 위해 착착 돌아가고 있다. 두려움을 가져야 한다. 스스로의 경각심을 일깨워야 한다. 저 무시무시한 쇳덩어리에 깔려죽지 않으려면….
글쓴이는 시사평론가, <이수만 평전>의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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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04/26 [01:1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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