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강고한 한-미 동맹을 자랑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천안함 사태처리를 둘러싸고 북한과는 대결국면이 조성되고 중국과의 외교적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러시아와도 미묘한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사태진전에 따라 한-미-일 동맹체제와 북-중-러 3각동맹이 강화되면 동북아에 신냉전이 예고되는 양상이다. 리비아와는 포교활동에 스파이 논란까지 겹쳐 단교가 우려되는 시점이다. 문제는 경제다. 외교실패가 경제교류에 타격을 준다는 점이다.
한국경제의 대외의존도는 대단히 높다. 그만큼 대외충격에 노출되었다는 의미이다. 지난해 무역의존도는 82.4%였다. 2008년의 92.3%보다 10%포인트 가량 떨어졌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지기 이전인 2007년의 69.4%에 비교하면 급상승한 것이다. 올 들어서 무역의존도가 더욱 높아져 90%를 넘어설 전망이다. 금년 1∼5월 수출이 작년동기에 비해 35.6%, 수입이 40.6% 증가했다. 올해 예상보다 높은 경제성장은 수출이 견인하는 셈이다.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안정적-균형적 외교가 중요하다.
대외의존도가 높으면서도 특정지역 편중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2007년 미국, 일본, EU(유럽연합)에 대한 수출비중이 34.5%였으나 금년 1∼5월에는 26.9%로 떨어졌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의 경제회복이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중국 비중이 2007년의 22.1%에서 금년 1∼5월 25.6%로 전체의 1/4를 넘어섰다. 중국이 부동의 최대수출시장이라는 소리다. 중국은 금융위기 이후에도 연10%의 경제성장을 구가하며 금년에는 세계2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이런 현실에서 중국과의 관계악화는 경제교류에 치명적 타격을 준다.
남북한이 대결국면으로 치닫는 사이 중국과 대만의 양안관계는 정치적 통합을 지향하며 급속히 호전되고 있다. 중국과 대만은 지난 6월 29일 관세 인하-폐지를 골자로 하는 ECFA( 경제협력기본협정)을 체결했다. 이 협정은 FTA(자유무역협정)에 준하는 수준이어서 사실상 경제통합의 효과가 전망된다. 이 협정에 따라 중국은 대만에 539개 품목, 대만은 중국에 267개 품목에 대한 관세를 2013년 1월 1일까지 단계적으로 철폐한다. 2009년의 경우 한국과 대만의 대중국 주요 수출품목 20개 중에 14개가 겹친다. 14개 품목의 중국수출 비중이 60%에 달한다는 점에서 심대한 타격이 우려된다.
양안의 ECFA는 품목수로는 2배, 이익금으로는 대만 138억4,000만달러, 중국 28억6,000만달러로서 4.84:1의 차이가 난다. 한마디로 중국이 크게 양보하는 비대칭적 협정이다. 동포인 대만의 경제적 고립을 막기 위한 희생의 의미가 있다는 중국측 설명에는 하나의 중국이란 뜻이 담겨있다. 그런데 한반도는 거꾸로 간다. 열렸던 문에 다시 빗장을 거는 형국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급속히 냉각되더니 금강산이 닫히고 개성공단도 명맥만 유지하는 형세다. 개성공단은 남한기업에 매력적이다. 임금경쟁력이 높고 지리적 근접성에 따라 물류비용이 싸다. 자유로운 의사소통도 큰 이점이다. 남북관계가 악화되는 사이 중국은 라진-청진항의 이용권을 확보하고 무산지역 등지의 광산채굴권을 획득했다.
리비아와의 단교위기가 쉽게 풀릴지 의문이다. 리비아는 이슬람 국가로서 민족적 자존심이 강한 나라다. 그런데 불법 포교활동과 무기정보 수집을 방치하다 사태를 악화시켰다. 리비아는 2007년 10월 주한 대사관을 주한 경제협력대표부로 격하시킨 바 있다. 그 원인에 대한 치밀한 대처를 방기하다 대표부 업무중단이란 사태로까지 비화됐다. 사태의 의미를 국민에게 알리지 않고 특사인 이명박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이 자원외교를 다녀왔다고 거짓말이나 하니 리비아가 신뢰하겠는가? 지난해 리비아에 대한 수출은 12억3,000달러로 한국이 네 번째 수출국이다. 건설시공규모는 20개사 92억달러로서 한국의 4대 해외건설시장이다.
천안함 침몰원인을 조사하려고 전문가를 파견했던 러시아가 그 결과를 막상 중국과 미국에만 통지했다. 이 또한 이유가 알려지지 않은 외교실패다. 1989년 공산주의 붕괴 이후 기업인들이 수교 이전에 중국, 러시아에 들어가 시장을 개척했다. 북한도 기업인이 먼저 폐쇄의 문을 열었다. 1980년 리비아와의 수교도 기업인의 경제활동이 이끌어냈다. 친미일변도의 외교정책이 교역국과 불필요한 불신과 갈등을 조장하여 경제교류에 적신호를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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