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지방선거의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아직도 그 충격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유권자들의 이중성을 탓하는 볼멘소리를 내 보았으나 그것은 공연한 화풀이에 불과하다.
민주당이 좋아서 찍어준 것이 아니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무엇 때문에 유권자들은 10년이나 당해왔으면서 다시 민주당 정권을 선택해 주었을까.
IMF를 야기한 재벌들에게 면죄부를 준 정도가 아니라 아예 그들의 하수인 노릇을 자청하고, 대책 없는 정리해고로 멀쩡한 노동자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대규모 부동산 투기를 야기시키고, 구멍가게는 경쟁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망언을 내뱉고, 한미FTA를 앞장서 추진했으며, 의료보험 민영화를 암암리에 추진했던 그 세력들 아니던가.
민주당 외의 대안이 안 보여서였을까. 아무려면 지금의 MB 정권보다 그 때가 더 낫기 때문이었을까. 대중들은 그렇다고 답한다.
지난해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가 구속되었을 때 나는 그 점을 간파하지 못했다. 결국 법원의 무죄판결로 귀착됐지만, 세상에 그게 어디 구속될 만한 사안인가. 과거 민주당 정권에선 상상도 못할 만행이었다. 참 귀한 논객 미네르바는 무죄가 되었지만, 조선일보에 의해서 비열한 계급적 인신공격을 당하고서 그 후로 그 형안(形顔)을 발설하지 않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이명박 정권의 검찰은 재판에서 졌지만, 네티즌들에게 구속이라는 칼날의 공포를 들이대면서 입에 재갈을 물리게 하는데 성공했다. 군대에서의 이른바 시범 케이스의 유형이다.
이 사건은 자연스레 80년대 전두환의 공안정국을 떠올리게 하였다. 과거 민주당 정권 10년의 치적을 절차적 민주화의 향상이라는 점에선 이견이 없다. 절차적 민주화의 핵심은 언론의 자유이다. 누구나 생각한 대로 말할 수 있게 하는 자유는 모든 자유 중에서 신체의 자유와 더불어 가장 소중한 자유이다. 그 자유를 압살하려고 하는 이명박 정권의 반동적인 횡포에 질린 대중들이 느꼈을 공포를 생각하니 이번 선거의 결과가 이해될 만도 하다.
개인적으로 나는 민주당의 김근태 전 의원을 아직도 존경한다. 85년 엄혹한 시기에 9월 한 달 동안 남영동에서 당했던 10차례의 물고문, 전기고문으로 그는 지금도 그 후유증으로 고생한다. 남영동에서의 지옥 같은 고문을 마치고 검찰로 송치되던 그 날 아내 인재근 여사와 기적 같은 조우를 하고서 김근태가 당했던 고문은 개인의 고통이 아니라 군사독재 정권이 선량한 시민에게 가하는 일방적인 폭력으로 승화됐다. 김근태가 당했던 고문은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가장 잔인하고 비열함 그 자체였다. 그런 고문이 통상적으로 행해졌던 곳이 불과 20여년 전의 우리 땅이었다.
그 후 박종철 군 치사사건으로 전두환 정권의 고문 실상이 확실하게 알려지자 침묵했던 대중들이 들고 일어나면서 87년 민중항쟁이 시작됐다. 민주화 투쟁에 나선 그 분들 덕에 우리는 적어도 그 당시의 그런 악랄한 고문의 공포로부터 해방되었다. 내가 김근태 전 의원에게 감사하고 미안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그런 연유이다.
그런데 그 고문정국의 배경이 된 언론자유의 압살책이 이명박 정권의 미네르바 구속 사건으로 가시화되자 대중들의 선택에 어떤 여지가 있었을까.
절차적 민주주의의 다음 순서인 실질적 민주주주의를 아무리 논리적으로 설명해도 대중들은 머리로는 짐짓 이해하는 척하나 감성으로는 다시 그런 지옥 같은 공안정국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부르짖는 게다. 되레 “한미FTA를 체결하면 우리가 왜 나빠지는데”, “신자자유주의가 대체 뭐요” 하고 반문한다. 한미FTA와 신자유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자체가 대중들의 거부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현상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나 또한 그 책임의 일단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진보진영의 일원이고 보니 대중들이 미욱하다고 화풀이를 해댄 자신이 옹졸하게 느껴진다.
진보진영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용기를 내야할 시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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