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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향후 10년 여전히 유효한가?
'민주개혁' 약발 떨어지고 역사적 시효 끝나…'잘되는 것' 어려워
 
우석훈   기사입력  2010/05/10 [15:21]
민주당과의 인연
 
민주당에는 외부 행사에도 가보고 내부 행사에도 가보고, 자주는 아니더라도 아주 남처럼 지내지는 않았던 것 같다.

민주당 당사 안에 처음 들어가 본 것은 IMF가 끝나가고 현대에서 구조조정이 한참 진행될 때였다. 나는 어떻게든 연구원을 살려보려고 백방으로 뛰어다니던 중이었는데, 그 와중에 이계안(전 국회의원)은 현대자동차 사장으로 갔고, 연구원은 문 닫는 것은 겨우 면했지만 현대건설기술연구원의 한 구석에서 셋방살이하는 신세가 되었다.
 
가끔 폭풍우 실험 같은 거 할 때 나오는 풍동실험실 윗층에 자리를 잡았는데, 나는 그게 귀향살이라는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광화문에 있다가 용인의 경찰대학 옆으로 갔으니, 그런 마음이 들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도 어린 마음이기는 했다.
 
어쨌든 그 후 몇 달 동안 연구원을 다시 서울로 옮기기 위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시절, 민주당 당사에 처음 가봤다. 그룹 시절에서 분사된 이후 뭔가 방향을 찾아야 했고, 당시 막 집권을 했던 사람들이 정권 논리를 좀 만들어보라고 하는 청을 그냥 거절할 수는 없었다.

1년을 그렇게 버티다가, 결국은 그만두고 정부 기관으로 옮기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승진도 하게 되었고 월급쟁이로는 거의 끝까지 올라가는 부장이 되면서 팀장으로 권한도 많이 가지게 되었지만, 미우나 고우나 몇 년간 동고동락하던 동료들을 두고 나만 혼자 빠져나오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물론 학계를 통해서 민주당을 도운 것은 집권 이전부터 조금씩 했던 일이기는 하지만, 그건 참여사회연구소와 같은 시민단체라는 틀을 통해서 가끔씩 줄 수 있는 조언을 준, 정말 외곽에서 했던 일이다.
 
그래도 희망 있었던 DJ 집권 초기

DJ 집권 초기에는 재경부 관리들이 진짜 곤란함을 느끼고 있었다. DJ 정권측 인사들이 자신들을 볼 때 '모피아'라는 눈으로만 보고, 이넘들 때문에 IMF 경제위기라는, 그야말로 나라 말아먹은 역적들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일해먹기 너무 힘든 정도를 지나 공포감 마저 느낀다는 하소연을 좀 했던 것 같다.

그 시절에 그렇게 납작 엎드렸던 사람들이 요즘 유로 위기니 이런 얘기들을 할 때, TV에서 자료를 들고 발표할 때 얼핏얼핏 얼굴들이 보이니 공무원들이야말로 참 가늘고 길게 그 생명이 오래된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민주당사에 집회하러 간 것은 두 번이다. 한 번은 노무현 후보 시절 한참 후보 사퇴하라고 그럴 때 퇴근하고 밤에 1인 시위를 하러 간 적이 한 번 있었고. 또 한 번은 이라크 파병 결정할 때 '널린노래방'인가, 여튼 파병반대 때문에 민주당 당사 앞에서 릴레이로 노래 부르면서 집회할 때 갔던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 삶을 생각해보면, '화려함'으로 생각하면 DJ 시절에 내 삶이 제일 화려했던 것 같다. 그 때는 정부기관에서 내부 자료를 볼 수 있기도 했었지만, 적어도 DJ가 노벨상 탄다고 국정을 놓기 전까지는 진짜 뭔가 내부에서부터 만들어보려고 했던 흐름들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IMF 경제위기 이후 한 3년, 그 때는 한국에 진짜 희망이 있다는 그런 생각을 나도 좀 했었다.
 
노무현 집권 2년 '사기꾼들의 전성기'

노무현 초기 2년 정도를 생각해본다면…. 일부러 폄하하려고 하는 건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시기가 사기꾼들의 전성기라고 기억하고 있다.
 
영어 좀 그만 쓰라는 잔소리들을 좀 했지만 어쨌든 '로드맵'이라는 사기성 농후한 단어들이 국정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전망에 불과한 로드맵 자료들이 정책의 목표가 되기도 하였다. 그 중 가장 황당했던 로드맵은 '농업 로드맵 10개년 계획'이었다. 결정적으로 나라 망친 것 중의 하나일 거라고 기억하고 있다.

환경문제와 관해서는 '갈등 비용'이라는 단어가 당시에는 대세였다. 갈등의 문제가 아니라 진실에 관한 문제라는 목소리가 일부에 있기도 했지만, 환경이나 생태에 대한 연구보다는 갈등 현상 자체에 더 주목하는 분위기였었다.

나는 숨 막힐 것 같았고, 청와대에 골프장에 관한 자료들을 모아서 보고한 후에 다시는 나한테 연락하지 말라고 결국 칩거를 시작했다.
 
미국 민주당보다 우경화한 한국 민주당

민주당은 번역상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progressive가 아니라 liberal이라는 의미에서 '진보'인데, 서로 다른 두 단어가 우리나라에서 동시에 '진보'라는 단어로 사용된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지만 이 혼동스러운 사태의 본질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유럽 기준의 정치 지평을 사용하자면, 민주당은 중도 우파 그러니까 작 시락의 정치적 근거였던 민족주의적 중도 우파 정도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드골과 박정희는 위상이 좀 많이 다른 사람인데, 실제로 드골과 드골주의자들은 "우리는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라는 말을 종종 한다. 지금의 대통령인 사르코지는 정통 우파라서 드골주의자들보다는 더 오른쪽으로 가 있다. 대체적인 정치 성향만을 본다면 사르코지파가 지금의 한나라당 정도라고 한다면, 드골주의자가 DJ를 축으로 정치진영을 형성한 드골파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한다.

미국의 리버럴, 오바마를 축으로 한 민주당은 한국의 민주당보다는 훨씬 좌파 쪽에 있는 것 같다.

일본의 민주당은 생긴 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는데, 역시 오자와라는 개성만빵인 불세출의 지도자를 빼고 생각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름만 같은 민주당이지 한국 민주당과는 궤도 다르고 가는 방향도 전혀 다른, 그런 정치집단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DJ 시절에 그 집단에서는 DJ가 가장 급진적이라는 말을 사람들이 종종 했다. 오랫동안 DJ를 지켜왔던 가신 집단에 대한 비판이 담긴 말이기도 한데, 어쨌든 DJ 시절에 민주당이 화려하기는 했던 것 같다.
 
제1 야당이냐 '호남 자민련'이냐

요즘의 민주당을 보면, 두 가지 말들이 주로 왔다갔다 하는 것 같다.

하나는 "부자가 망해도 3년 간다는 말…"

정권을 두 번을 잡았으니 이제 뺏겨도 3년간은 야당 내에서도 최고 야당으로 있을 거라는 말이기도 하고, 다른 대안 세력을 세우기가 어렵다는 말이기도 한 것 같다.

또 다른 말은 "호남 자민련"이라는 말이 있다.

아직 본격적으로 지방선거가 달아오르지도 않은 시점이라서 뭔가 예상하기에는 조금 시기상조인 것 같기는 한데, 오랫동안 정치판이라는 곳에서 이것저것 기획을 하던 사람들은 벌써 이번 지방선거는 끝난 거라고 2012년 총선 혹은 대선에 대한 논의들을 시작한 게 아마 지난 주 상황이 아닐까 싶다. 한 때 충청도를 기반으로 했던 JP의 자민련처럼 '호남 자민련으로 그렇게 줄어들게 될 것이다'는 시각들이 또 한 부류가 있는 것 같다.

정치라는 게 진짜 빨라서 그런지 김진표가 떠난 수원 영통 그리고 박진이 떠난 종로구, 이런 곳들에서 7월이면 보궐선거가 열릴 것이라는데 보궐선거 구도에 더 관심을 갖는 게, 그런 게 세상 인심이기도 한가보다.
 
'잘되는 것' 전망하기 너무 어려워

96년. 아직 IMF 경제위기는 터지지 않았고, 온갖 욕을 먹으면서 정계은퇴를 번복하고 다시 복귀한 DJ가 '뉴 DJ 플랜' 같은 것을 내면서 움직이던 그 시기의 민주당 그리고 최근의 민주당을 생각해보면 참 격세지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DJ가 저런 사람들을 데리고 정치를 한 건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잘 안될 것"으로 전망을 하라면 누구든 청산유수로 A4 여러 장 분량의 '썰'을 풀 수 있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잘되는 것"으로 전망을 하라면 어지간히 강심장 아니면 꿀 먹은 벙어리 되기가 딱 좋은 게 지금 상황이 아닐까 싶다.

미우나 고우나 한국에서 박정희 세력에 맞서 처음으로 자신의 정권을 만들었던 게 민주당이니 역사적 의미를 분명히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이게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또 다른 10년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인가? 요즘은 그런 질문들을 정말 정색을 하고 해보게 된다.

'민주개혁'이라는 말도 이제 사회적 약발이 떨어지고 그 역사적 시효성이 끝나가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 요즘처럼 많이 들 때가 없다.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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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05/10 [15:2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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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라리오 2010/05/12 [01:08] 수정 | 삭제
  • 노빠는 가세요 ^^*
  • 얼라리오 2010/05/11 [14:24] 수정 | 삭제
  • 기득권으로 보수우경화된 사람들이 진보로 장사하며 한나당이 흘린 떡고물이나 챙겨먹는 민주당이야 말로
    뭐가 진보이고 뭐가 서민적인 것인지 국민을 더 우매하게 만들고 역사를 꺼꾸로 흐르게 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치발전 민주당이 죽어야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