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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만 들어가면 망가져? 아부의 정치학
[강준만의 세상이야기] 지도자를 필요로 하는 집단생활 체제 고쳐야
 
강준만   기사입력  2009/06/05 [16:12]
"야만인들은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간다. 그러나 사회적 인간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매달려 살아간다.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의 판단에 기대어 자신의 가치를 생각할 뿐이다."(루소)

"인간은 허영심과 자존심을 먹고 산다고 할 수 있다. 주위를 돌아보라. 칭찬받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체스터필드)

"누구나 자신이 받은 칭찬에 기꺼이 가치를 부여하고, 그 아부가 통찰력이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사무엘 존슨)

"아부에 현혹당하지는 않을지라도 아부를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부란 자신의 비위를 다른 사람이 맞춰야 할 정도로 자신이 중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행위이기 때문이다."(랄프 에머슨)

"모든 아부를 문제시하고 아부꾼이 자신의 잘못을 알고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인정한다고 보는 태도는 인간의 본성과 삶에 대한 엄청난 무지의 결과이다. 도덕이나 법률이 아닌 경험과 비교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판단은 개인적인 친밀도에 영향을 받는다. 칭찬을 향한 소망이야말로 아주 휼륭한 소망이다."(사무엘 존슨)

"불확실한 시대에 아부가 널리 유행한다.(격변하는 시대일수록 인간은 불안해지고, 힘에 매달리고, 안정을 추구하기 때문이다.)"(몽테뉴)

- 리처드 스텐걸, 임정근 옮김, 『아부의 기술』(참솔, 2006)에서 재인용
 
미국 저널리스트 리처드 스텐걸(Richard Stengel)의 『아부의 기술』에 소개된 명언들이다. 스텐걸은 아부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들을 소개하면서 아부의 전략을 제시한다.

구체적으로 칭찬하라. 마음에 드는 부분을 애써 찾아라. 칭찬과 동시에 부탁하지 말라. 너무 멀리 나가지 않도록 체크하라. 특별한 점을 칭찬하라. 충분히 칭찬받은 사람에게 아부하는 것을 두려워 말라. 본인이 없는 곳에서 칭찬하라. 그럴듯하게 칭찬하라. 우아하게 칭찬하라. 여러 사람에게 같은 칭찬을 되풀이하지 말라. 누구나 아는 사실은 칭찬하지 말라. 칭찬과 함께 사소한 비난을 곁들여라. 상대방이 솔직함을 요구하더라도 절대 솔직하게 답하지 말라. 처음에는 약하게, 시간이 지날수록 강하게 칭찬하라. 조언을 구하라. 가벼운 부탁을 하라. 약점을 파악하고, 전혀 반대되는 자질을 칭찬하라. 무비판적인 '예스맨'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환심을 사야 할 사람에게 때론 다른 사람의 의견에 반대하는 모습도 보여주라.

쉬운 것 같지만, 막상 실천하기엔 쉽지 않은 주문이다. 엄격한 자제력과 더불어 기민한 상상력이 필요한 일이다. 아부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하겠다.

아부는 아랫사람만 하는가? 그렇진 않다. 윗사람도 아랫사람에게 아부를 한다. 물론 잘 부려먹기 위해서다. 월마트의 회장 샘 월턴은 직원을 '동료'라고 부르는데, 그렇게 불리는 사람은 기분이 우쭐하지 않겠는가. 한국의 일부 정치 지도자들이 새까만 아랫사람에게 '동지'라고 부르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겠다.


▲ 버락오바마 미 대통령     © AP통신
대중을 상대로 한 아부는 정치인의 필수 자질이다. 미국의 오바마는 연단에 오를 때마다 꼭 청중석의 누군가를 아는 척하는 제스처를 취한다. 고도의 아부 테크닉이다. 전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이 가장 잘 써먹었던 수법이다.

"연설을 위해 단상에 오를 때 낸시 여사와 함께 청중들에게 손을 흔든 다음, 레이건은 청중 속에서 친숙한 얼굴을 발견하고(사실은 발견한 척하는 느낌이 강하지만),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그를 손으로 가리킨다. 때로는 그를 바라보도록 낸시의 옆구리를 꾹꾹 찌른다. 낸시도 레이건처럼 미소 지으며, 그를 손으로 가리킨다. 이런 행동은 실제 유권자와 가까운 친구처럼 보이게 하여, 대통령을 대단히 평범한 인간으로 만든다. …… 이 테크닉은 매우 공공연한 아부이다."

스텐걸은 "아부하고 싶은 욕망은 나쁘지 않다"며 "그래 봐야 얼마나 나쁘겠는가?"라고 묻는다.4) 그런데 문제는 아부를 받는 쪽의 위상에 있다. 막중한 책임을 진 지도자가 문제다. 지도자는 아부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사람이다. 그에게 권력이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게 아니겠는가.

"아부의 친구는 자기만족이고 그 시녀는 자기기만이다. 아부를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인다면 군주는 아부의 먹이가 되고 만다. 궁정에 아부꾼이 가득하다면 매우 위험한 사태가 초래될 수 있다. 사람이란 자신의 일에 몰입해서 만족하게 되면, 그것에 미혹되어 해충 같은 아부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서열주의가 강한 한국에선 아부의 위험은 더욱 커진다. 언젠가 김종필은 "괜찮던 사람도 저어기(청와대)만 들어가면 바뀐다"고 했다. 왜 그렇겠는가? 집권기간 내내 하루 온종일 아부의 폭포수를 맞기 때문이다. 지난 1995년 언론인 이형은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얼마 전 어떤 조찬 모임에 초청 연사로 나온 현역 민자당 의원 모씨가 매우 인상적인 말을 한 것이 있다. 모처럼 김영삼 대통령과 자리를 함께할 기회를 얻은 그 의원은 나름대로 대통령에게 진언할 몇 가지 사항을 메모해 갔었단다. 그러나 자리를 같이한 딴 사람들이 아첨 경쟁을 벌이는 바람에 진언 같은 것을 할 틈을 얻지 못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첫 번째 발언자가 김 대통령의 질소한 생활 태도를 칭찬하는 것으로 말문을 여니까 그 뒤부터는 김 대통령의 '잘하고 있는 일'을 칭찬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돌아갔다는 얘기였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될 경우 김 대통령의 정상적인 분별력이 과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것인지 적이 염려된다."

물론 이형이 우려한 대로 김영삼은 망가지고 말았다. 김대중도 그랬고 노무현도 그랬다. 세 사람 모두 처음엔 큰소리 뻥뻥 쳐놓고도 끝내 '혈육 비리'를 막지 못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특히 노무현 시대엔 '탈권위주의'·'개혁주의' 이미지라는 안전판이 있어서 당당하게 하는 아부가 공개적으로 많이 쏟아져 나왔다. 공개적으로도 그랬을진대, 공개되지 않은 아부는 얼마나 많았으랴.

지금 이명박도 똑같은 길을 걷고 있건만, 그걸 모른다. 나중에 권력 떨어지면 후회할 일만 잔뜩 골라서 하고 있다. 이쯤 되면 이건 개인 문제는 아닌 것 같다. 혹자는 대통령제의 문제라고 하지만, 그것만도 아니다. 지도자를 필요로 하는 집단생활 체제의 문제라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 본문은 월간 <인물과 사상> 2009년 6월 호에 실렸습니다. 
 
[참고문헌]
리처드 스텐걸, 임정근 옮김, 『아부의 기술』, 참솔, 2006.
송영승, 「권력의 아우성, 와글와글」, 『경향신문』, 2005년 8월 24일, 26면.
이형, 「대통령의 귀」, 『문화일보』, 1995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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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6/05 [16:12]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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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디 2009/06/07 [20:28]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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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부끄러운 줄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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