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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는 예산의 피를 먹고 자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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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세상이야기] 왜 우리는 예산은 외면하면서 증오에 몰두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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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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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 기사입력 |
2009/01/26 [16: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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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 당시 행정자치부 업무보고에서 '특별교부금을 폐지해 일반 교부금에 흡수하는 개선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특별교부금이 원칙 없이 선심 사업에 쓰이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6년 노 대통령 고향 지자체는 전국 평균의 4.6배인 64억 5000만 원의 특별교부금을 받았다. 대통령 지시로 특별교부금이 없어지기는커녕 대통령 출신 지역이 가장 많이 받아간 것이다. 박팔용 전 김천시장은 2006년 언론 인터뷰에서 '비가 많이 올 것 같은 장마철이나 태풍 때는 지자체 공무원들이 허술한 다리를 찾아 모래공사를 하는 척하면서 밤에 굴착기로 다리 기둥을 들이받아 흔들리게 한다'고 말했다. 비로 다리가 떠내려가면 중앙에서 수십억 원의 재해복구비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재해복구비로 내려오는 돈이 바로 특별교부금이고, 이 돈이 내려오면 그곳 건설업자에겐 이득이 떨어지고, 그 업자와 알고 지내는 공무원은 손에 떡고물을 묻힐 수 있다. 그래서 중앙 공무원이건 시장 군수건 다들 빼내 쓸 궁리만 하고 있다. …… 특별교부금이 이렇게 엉터리로 낭비되고 있지만 국회의원들은 그걸 감시하기보다는 자기 지역구에 끌어다 쓸 생각뿐이다. 공무원노조가 조사해봤더니 특별교부금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국회 행자위(행정안전위원회)나 예결위(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속 의원들 출신 지역엔 다른 지자체의 1.5배 특별교부금이 분배됐다."1)"행정안전부가 국회 행정안전위 김희철 의원(민주당)에게 제출한 '2005∼2007 특별교부금 사업별 배정내역'에 따르면 행자부는 2005년 7115억 원, 2006년 7434억 원, 2007년 8528억여 원 등을 지급하는 등 매년 평균 7692억 원을 교부했다. 행자부가 집행한 특별교부금 내용 전체를 정부가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별교부금은 원래 재해복구 등을 위해 중앙 정부가 자치단체에 지원하는 돈이지만 역대 정권에서 관행적으로 대통령과 행자부 장관, 여권 실세 등이 선심 쓰듯 집행해왔다는 지적을 받아왔는데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실제로 2005∼2007년 특별교부금 집행 내용을 보면, 2006년에는 노무현 정부의 핵심 실세로 평가받았던 이광재 의원 지역구 강원 평창이 296억 8000만 원을 지원받아 가장 많았다. 2005년에는 당시 집권당이었던 열린우리당 정세균 원내대표(현 민주당 대표)의 지역구인 전북 장수에 가장 많은 73억 8000만 원이 지원됐다. 2007년에는 노 전 대통령 퇴임을 앞두고 그의 고향인 경남 김해가 103억 3000만 원을 지원받아 1위였다. 또 2005년 당시 열린우리당 소속 이용희 국회 행자위원장 지역구인 충북 영동이 51억 7000만 원을 받아 8위에 올랐고, 권오을(경북 안동, 34억 원) 김기춘(경남 거제, 31억 3000만 원) 의원 등 당시 야당 행자위원들 지역도 전국 시 군 구 지원액 평균인 25억 원보다 많은 지원을 받았다.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이 유력해진 2007년 들어서는 이 대통령의 고향이자 이상득 의원 지역구인 경북 포항에 73억 5000만 원이 배정되고 정동영 전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 지역구였던 전주에도 73억 원이 지원됐다."2) 연말에 예산 펑펑 쓰는 '12월의 열병'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의원들이 자기 지역구의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목록을 당 예결위 전문위원실에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 전문위원실은 의원들에게 목록 제출을 독려하면서 이를 '절대 대외비'로 분류했다고 한다. 당측은 이 목록들을 예산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에 고스란히 건네 예산안 편성에 반영시킬 계획이다."3)"중앙 및 지방정부와 공공기관들은 연말이 되면 불용 예산을 쓸 궁리를 하느라 이른바 '12월의 열병(熱病, December fever)'을 앓는다. 감사원에 적발되거나 정부 예산낭비신고센터에 접수되는 '연말 예산 낭비 사례'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는 2004년 12월 14일부터 보름 사이에 132만 원짜리 옷걸이를 비롯해 50건의 가구 및 사무기기 구입에 7억 3700만 원을 썼다. 예산을 절약해 남기면 다음 해 예산 편성 때 그만큼 삭감당하고 '무능하다'는 소리나 듣는 공직사회 분위기에서 누구도 아끼려 하지 않는 것이다. 연말마다 벌어지는 멀쩡한 보도블록 교체, 불요불급한 장비 구입, 외유성 해외출장이 대표적이다. 해마다 비판이 쏟아지는데도 고쳐지지 않는 것은 공직자들의 의식과 예산 제도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증거다."4)"정부 어느 누구도` 국민에게 예산 낭비죄를 사과하지도, 벌 받지도 않는다. 납세자인 국민이 예산 씀씀이에 별반 관심을 두지 않는 탓이다. 올 정부 지방자치단체 예산을 합치면 358조 원. 국민 한 사람이 매월 62만 원씩 호주머니에서 세금을 내는 거라면 그제야 '내 돈' 하며 정신이 번쩍 들 것이다."5)"국회의원들의 선심성 '예산 끼워 넣기'가 18대 국회에서도 어김없이 재연되고 있다. 나라의 살림 규모가 적정한지를 따지고 정부 지출의 우선순위를 점검하는 상임위별 내년 예산안 심의 과정이 여전히 지역구 예산 챙기기 수단으로 전용되고 있는 것이다."6)"2009년도 도로 철도 관련 예산 증액분의 절반 정도가 국토해양위 소속 의원들의 지역구에 집중된 것으로 분석됐다. 단일 지역으로는 이명박 대통령의 고향이자 이상득 의원의 지역구인 경북 포항의 예산 증액이 가장 많았다. 경향신문이 23일 국회 국토해양위가 의결한 국토해양부 예산 증액분(1조 8400억 원)을 분석한 결과 도로 철도 예산이 정부안보다 144건, 1조 800억 원이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예산이 늘어난 지역 중 가장 눈에 띈 곳은 포항이었다. 국토해양위원장인 한나라당 이병석 의원(경북 포항북)이 총 7건에 743억 원으로 가장 많이 증액시켰다. 항만 부문까지 포함해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의 지역구(경북 포항남 울릉) 관련 예산 증액분(218억 원)을 합하면 포항 울릉 지역의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증액은 1000억 원에 육박했다. 도로건설 예비타당성 조사의 37.1%가 포항과 관련된 것으로 나타난 데 이어 예산 증액 과정에서도 이 대통령의 고향인 '포항의 힘'이 발휘된 셈이다. 또 도로 철도 예산 증액분 중 국토해양위 소속 의원들의 지역구로 배당된 것은 4941억 원으로 전체의 45.8%에 달했다. 건수별로는 총 53건으로 전체의 36.8%에 해당됐다. 국토해양위가 지역구 관리를 위한 '노른자 위원회'로 통하는 이유가 증명된 셈이다."7) 보도블록 다 바꾸고 나니 "감사 시∼작" "올해에도 '불용(不用) 예산 탕진병'이 심하다.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가릴 것 없이 남은 예산 쓰기에 안달이다. 멀쩡한 보도블록을 바꾸는 공사판을 지나며 국민들은 부아가 치민다. 국민들은 불황 극복을 위해 허리띠를 조여 매는데, 공직사회는 남은 예산 처리에 골몰하고 있으니 기가 막힌다. 10년이 되지 않은 보도블록은 바꾸지 못하게 했다는 정부 지침은 어디로 갔는지 국민들은 영문을 몰라 한다. 어디 보도블록뿐인가. 연말이 되자 공직사회에는 불요불급한 물품 구매가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다. 예산이 제 돈인 양 사무용품 비품, 심지어 전자제품 구입에 펑펑 써댄다. 한 행정기관은 복리후생비 집행 잔액 1억여 원으로 상품권을 구입해 직원들에게 나눠줬다니 어이가 없다. 이러고도 공복을 자처하는가."8)"일요일인데도 짙은 색 양복을 차려입은 30 40명이 계수조정회의가 열리는 회의실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오후 3시 반경에 의원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이들은 의원들과 눈이라도 한 번 맞추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국회가 내년도 예산을 심의하기 시작하자 국회 본청 6층은 정부 각 부처와 지방자치단체에서 나온 공무원들로 붐빈다. 이들은 사무실 앞에 진을 치고 '어떻게 됐어?'라며 흘러나오는 정보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내년도 예산이 본격적으로 심의되는 이때쯤이면 예산을 한 푼이라도 더 받기 위해 공무원들은 사활을 건 전쟁을 치른다. 특히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방의 공무원들은 전전긍긍하는 표정이 뚜렷했다."9)
"이번에 예산을 다룬 예결위원은 50명이다. 이 가운데 절반은 예산 요구서 자체를 처음 구경하는 사람들이다. 사실은 행정부에 경험이 있다 해서 누구나 예산 요구서에 적혀 있는 숫자의 이면(裏面)을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산을 모르는 사람이 예산을 다루는 것은 눈먼 사람의 코끼리 다리 만지기와 한가지다. 그나마 이 예산 초보자들은 국회의장단 선출이 늦어지면서 8월 말까지 손을 놓고 있었다. 더욱 한심한 것은 올 한 해 이렇게 '수습(修習)'을 거친 위원들 대부분이 내년이면 바뀌고 새 초보자들이 예결위원으로 들어온다는 사실이다. 지난 2년 예결위원 교체 비율이 각각 88%, 90%였다. '당신 한 번 했으니 나도 한 번 해보자'는 정당판 평등 심리는 예결위가 임기 2년의 상임위가 아니라 1년짜리 특위 형태를 못 벗어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과 일본은 예결위원을 2∼5년씩 하는 것이 관행이다. 이런 실정이니 사업별 심사는 엄두도 못 낸다. 소위(小委)에서 지역구 민원이나 몇 건 해결하고 마는 경우가 허다하다. 국민 세금이 어디서 얼마나 새나가는지도 알 리가 없다. 소위 핵심 위원들은 온갖 청탁을 수십 건씩 들고 다닌다. 작년 소위엔 사업 예산에 청탁자 이름을 써넣은 문서가 나돌기도 했다."10) 왜 예산 문제는 개혁의 영원한 성역인가?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위 10개 기사들을 읽고 나면 누구나 "예산 문제를 이대로 두면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런데 신기한 건 이건 매년 반복되는 연례행사라는 점이다. 언론도 연례행사처럼 의례적인 비판을 할 뿐 "이대론 안 된다"는 심각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는 않다.
신문을 보라. 어느 신문이건 어김없이 12월이면 보도블록 갈아엎는 작태를 비롯하여 예산 문제의 전근대성을 질타하는 비판이 무성하다. 그런데 단지 그것뿐이다. 매년 반복되는 기사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언론이 힘이 없다지만,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예산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시민운동 단체도 없다. 시민들의 호응이 없기 때문이다. 정치참여 욕구가 강한 시민들이 원하는 건 주로 카타르시스 효과다. 분노와 증오 위주다. 이들은 분노와 증오의 담론을 잘 구사하는 단체나 정치인들에게 몰린다.
왜 예산 문제는 개혁의 영원한 성역으로 남아 있는 건가? 승자 독식주의와 한탕주의 도박 심리가 결합한 탓이다. 누가 정권을 잡건 예산 배분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만들 생각은 하지 않고 "우리가 정권 잡아 우리 맘대로 쓰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산 문제가 바로잡히면 한국 사회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다. 혹 이 대변화도 두려워하는 게 아닐까? 여야(與野)를 막론하고 기득권 질서에 익숙한 이들이 대변화가 일어난 체제하에서 자신들의 기득권이 손상되는 걸 염려하는 점도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두 가지 대변화만 말해보자.
우선 지역주의가 해소되거나 약화된다. 한국 사회의 영원한 수수께끼 중 하나는 지방 사람들이 지방의 이익에 충실한 투표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 그런가? 물론 지역주의 때문이다. 지방 전체의 이익보다는, 자기 지역 출신이 중앙 권력을 장악하는 게 자기 지역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즉, 예산 배정에 있어서 매우 유리하다는 뜻이다. 만약 예산 분배 과정이 중앙 권력자들의 출신 지역과 관계없이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이뤄지는 시스템이 구축된다면, 지역주의 투표를 해야 할 이유는 사라지거나 약화된다. 이런 대변화를 두려워하는 자들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자기 고향 예산 챙기기에 관한 한 노무현과 이명박의 차이는 없다. 이 점에선 모든 정치인들이 다 똑같다. 그럴듯한 이념적 명분 앞에선 서로 멱살 잡고 싸우는 것 같지만, 이들은 '예산 따먹기'라는 정치의 고갱이 앞에선 하나가 된다. 우리는 본말전도(本末顚倒)라는 말을 즐겨 쓰는데, 한국 정치에서 과연 무엇이 '본'이고 무엇이 '말'인가? "독립운동하듯이, 죽을 각오로 하자" 두 번째 변화는 지방자치의 내용과 방식이 크게 달라진다는 점이다. 현 수준의 지방자치의 알파이자 오메가는 예산 전쟁이다. 전라북도 의원 김연근은 "예산 확보는 전쟁이나 다름없다. 그러기에 전북도의 모든 공직자들이 사상 최초의 4조 원 시대를 열기 위해 중앙을 오가며 치열한 사투를 펼치고 있다"고 했다. 물론 좋은 뜻으로 한 말이다. 이어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으니 말이다.
"따라서 전북도가 흘리는 땀방울만큼이나 4조 원을 어떻게 쓰느냐에 대한 고민도 신중을 거듭해야 할 것이다. 거기서 도민을 위한 민생경제와 복지수준 정도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모두의 땀방울이 만들어낸 예산을 이렇게 편성하면 내년의 민생경제는 어떻게 달라지고, 도민의 삶은 어떻게 변화되는지, 숫자(액수)로 나타나는 이면의 질서와 방향에 대한 정보를 도민들에게 제공하자는 것이다. 이럴 때 전북도가 흘리는 땀방울에 대한 도민들의 진정한 동의와 지지가 확보될 것이다."11)
다만 분명한 건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전쟁이나 다름없는 예산 확보를 위해 공직자들이 중앙을 오가며 치열한 사투를 펼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경북 상주시 서울사무소 소장 장운기는 상경 당시 "독립운동하듯이, 죽을 각오로 하자"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는 "오죽하면 그 부족한 예산 쪼개 올라왔겠어요. 절박함, 딱 그겁니다"라고 지자체의 어려운 사정을 토로했다. 전북 고창군 서울사무소 소장 이길현은 "종부세처럼 지방에 지원되는 세금이 줄어들면 정말 갑갑한 노릇"이라면서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사업이 없으니 중앙의 '정보 전쟁'에 더 의지하게 된다"고 말했다.12)
참으로 답답하지 않은가? 이 나라의 예산 분배 시스템에 재정이 열악한 지역을 배려하는 장치가 없다는 게 말이다. 그래서 그런 지역의 공무원들이 서울에 거주하면서 독립운동하듯이 죽을 각오로 로비를 해야 한다는 게 말이다. "나 중앙에 줄 있다" 지방선거에서 유권자들에게 가장 잘 먹히는 선거 구호는 "나 중앙에 줄 있다"는 '줄 과시론'이다. 줄이 튼튼한 사람이 예산을 지역으로 많이 가져올 수 있다는 걸 유권자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줄'은 아무래도 전직이 화려한 사람들에게 유리하다. 학벌도 좋아야 학연을 이용할 수 있다. 아무리 성실하고 청렴하고 유능한 일꾼이라도 '줄'이 약하면 선택받기 어렵다.
창의적 혁신도 대접받지 못한다. 자치단체장의 유능도는 '줄'을 이용해 중앙에서 많은 예산을 끌어오는 걸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내부의 창의적 혁신을 무시하는 건 아니겠지만, 아무래도 이건 후순위로 밀리기 마련이다. 또 여기에도 이른바 '프랙털' 현상이 일어나 모든 지방자치 과정에서 '인맥'이 가장 중요한 능력으로 평가받게 된다. 사실 한국에서 정치적 능력이 있다는 건 곧 인맥 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창의적 혁신은 인맥 관리에나 적용될 뿐이다.
이처럼 예산 문제가 한국 정치와 지방자치의 내용을 결정한다. '예산결정론'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예산 분배 과정이 미치는 영향력은 절대적으로 크다. 자치단체장들과 국회의원들이 유권자들에게 내미는 연말 실적 보고를 보라. 거의 대부분 자신이 무슨 예산을 따왔다는 자랑 일색이다. 즉, 정치가 '예산 따오기'로 환원되고 있는 것이다. 민선 도지사와 시장이 처음 선출된 1995년 7월 이후 임명된 행정부지사와 부시장은 모두 100여 명인데, 이 중 행자부 출신이 90명을 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13)
어디 그뿐인가. '전관예우(前官禮遇)'라고 하는 몹쓸 관행도 상당 부분 예산 때문이다. 1999년에서 2004년까지 퇴직한 교육부 출신 관료 중 82명이 사립대에 법인이사(27명), 교수(26명), 직원(14명), 총·학장(7명) 등으로 취업하였으며, 이들 중 12명은 퇴직 바로 다음 날 사립대로 출근한 것으로 나타났다.14) 고위 교육 관료들이 대학 총·학장으로 영입되는 관행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유가 무엇인가? 그게 바로 예산 때문이다.15)
사정이 이와 같은데도 우리는 다른 분야에선 제법 선진적인 변화를 시도하면서도 이 예산 분야만큼은 계속 최악의 낙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애를 쓴다. 정치의 콘텐츠가 혁명적으로 바뀌는 걸 두려워하는 자들의 음모나 농간 때문은 아닐까? '증오 카타르시스'를 넘어서 앞서 무작위로 인용한 예산 문제 비판 기사들 중 보수 신문들의 것이 더 많다는 건 예산 문제에 관한 한 언론의 이념 차이가 없다는 걸 시사한다. 이 문제에 관한 한 보수 신문에 기대를 걸 수도 있다는 뜻이다. 『조선일보』 논설위원 김동섭이 아주 좋은 제안을 한 바 있다.
"미국 워싱턴의 '정부예산낭비에 반대하는 시민들(CAGW)'이 본보기가 될 수 있다. 이 예산지킴이 시민단체의 무기는 표지에 돼지 한 마리가 그려진 피그북(Pig Book)이다. 타깃은 우리 국회의 예산결산특별위원회와 같은 세출위원회로 말도 안 되는 선심성 예산이나 예산 끼워 넣기 같은, 절차를 지키지 않은 경우다. 2005년 알래스카주 상원의원은 50명의 섬주민을 위해 2억 2300만 달러짜리 '아무 데로도 이어지지 않는 다리'를 놓으려다가 피그북에 실리면서 결국 공사는 취소됐다. 작년 우리 국회 예산 심의에서 막판에 끼워 넣거나 증액한 예산이 도로건설 등 140건, 4528억 원이었다. 미 하원도 이런 막판 끼워 넣기 편법이 극성을 부리자 누가 왜 예산을 끼워 넣는지 의원 실명을 자체적으로 공개하기로 했다. 우리 국민도 정부 국회의 예산 낭비에 대항해 감시의 눈초리를 번득이며 납세자의 본때를 제대로 보여줘야 할 때다."16)
그러나 한국 유권자들은 예산 문제에 별 관심이 없거니와 각개약진(各個躍進)하느라 바빠 당분간 그런 시민운동을 기대하기 어렵다. 게다가 한국은 정보공개제도가 엉망이라 시민단체가 예산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도 어렵다. 언론이 훨씬 더 유리하다. 언론사들은 취재 시스템을 바꿔 정치꾼들의 멱살잡이나 중계해주는 정치부 인원을 대폭 줄이는 대신 '예산감시부'를 만들어라. 예산감시부 기자들의 고발과 대안 제시로 낙후된 예산 시스템을 바꾸는 데에 일조함으로써 한국 정치를 바꾸는 동시에 땅에 떨어진 언론의 신뢰를 회복해라. 그게 언론의 살길이기도 하다.
우리는 자주 '아메바'처럼 행동하곤 한다. 당구로 비유하자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게임은 3구 쓰리쿠션인데, 자꾸 4구 알다마만 치려고 든다. 즉 예산과 같은 본질을 바꿈으로써 생겨날 대변화를 기대하는 게 아니라 바꾸는 건 하나도 없이 자신들이 미워하는 정치 세력에게 직접 비난을 퍼붓는 걸로 정치 행위를 대체하려는 정서가 일반 유권자들 사이에서도 만연해 있다.
이 점에서 한국의 정치 '빠' 문화는 한국 정치를 낙후의 수렁에 붙잡아두는 주범 중의 하나다. 모든 '빠'들이 해체해 예산감시 시민단체 요원으로 활약하는 게 옳지만, 증오 카타르시스의 맛을 본 이들이 그렇게 할 것 같진 않으니 그게 문제다. 그래도 한국 정치는 예산의 피를 먹고 자란다는 사실만큼은 잊지 말자.
[각주] 1) 「특별교부금, 공무원 돈 아니라 국민 돈이다(사설)」, 『조선일보』, 2008년 5월 29일. 2) 김민철, 「특별교부금은 '정권 실세(實勢) 쌈짓돈'」, 『조선일보』, 2008년 10월 3일. 3) 「경제 非常 예산 '나눠먹기 작당'하는 한나라당(사설)」, 『동아일보』, 2008년 11월 3일. 4) 「연말에 예산 펑펑 쓰는 '12월의 열병(熱病)' 근절해야(사설)」, 『동아일보』, 2008년 11월 5일. 5) 김동섭(논설위원), 「예산 감시, 국민이 두 눈 부릅떠야」, 『조선일보』, 2008년 11월 5일. 6) 한장희, 「의원들, '예산 챙기기' 너무하네… "내 지역구 도로가 먼저"」, 『국민일보』, 2008년 11월 20일. 7) 박영환, 「MB 고향 이상득 지역구 포항, 예산 증액 1000억 육박」, 『경향신문』, 2008년 11월 24일. 8) 「보도블록 다 바꾸고 나니 "감사 시∼작"(사설)」, 『한국일보』, 2008년 12월 3일. 9) 길진균, 「"의원 붙잡고 애걸… 말이 공무원이지 영업사원 뺨쳐"」, 『동아일보』, 2008년 12월 8일. 10) 「국민의 피와 살로 짠 예산 이렇게 심의해선 안 돼(사설)」, 『조선일보』, 2008년 12월 11일. 11) 김연근, 「2009년을 노래하기 위한 아름다운 예산 만들기」, 『새전북신문』, 2008년 11월 24일. 12) 송경화, 「지자체 서울사무소 '뛰어야 산다': "재정 열악, 정부 예산 한 푼이라도 더…"」, 『한겨레』, 2008년 11월 27일. 13) 정광모, 『또 파? 눈먼 돈, 대한민국 예산: 256조 예산을 읽는 14가지 코드』, 시대의창, 2008, 111쪽. 14) 김진각, 「교육관료 사립대행 퇴직 보너스?」, 『한국일보』, 2004년 10월 1일, A8면. 15) 강창욱, 「교육계도 전관예우: 대학들 "퇴직 교육관료 모셔라" 경쟁적 러브콜」, 『국민일보』, 2008년 12월 25일, 1면. 16) 김동섭(논설위원), 「예산 감시, 국민이 두 눈 부릅떠야」, 『조선일보』, 2008년 11월 5일. * 본문은 월간 <인물과 사상> 2009년 2월 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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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1/26 [16:48] ⓒ 대자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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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사람 2009/01/30 [06:00]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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