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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만에 벗은 누명"…'오주석 간첩사건'을 아시나요?
 
박정민   기사입력  2008/10/15 [18:23]

"25년만에 긴 터널에서 빠져나온 심정입니다"

 
1980년대초 춘천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오주석 간첩사건'의 당사자 오주석(79)씨의 얼굴에 만감이 교차했다.
 
1980년 일본의 조총련계 친척에게 포섭돼 국가기밀을 탐지하고 수집하는 등 간첩으로 활동했다는 혐의로 1983년 안기부에 체포돼 이듬 해 법정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던 인물이다.
 
최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로부터 간첩사건이 국가기관에 의해 조작됐다는 결정통지서를 받아든 오씨는 "뒤늦게라도 진실이 밝혀져 다행"이라며 20여년전 기억을 되짚기 시작했다.
 
"당시 경찰생활을 그만두고 슈퍼마켓을 시작해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선진지 견학차원에서 일본을 갔었죠. 그것이 암흑같은 세월의 시작일 줄이야 당시엔 꿈에도 몰랐었습니다"
 
1980년 3월 일본 이바라기현으로 연수를 떠났던 오씨는 인근에 살고 있는 사촌을 만났다. 안부를 묻고 한국에 살고 있는 친척들의 소식이나 전하기 위해서다.
잠깐에 만남을 갖고 연수를 마친 뒤 한국으로 돌아온 오씨. 2남 3녀의 가장으로 바쁜 나날을 보낸 그에게 3년이 흐른 뒤 '악몽'이 시작됐다.
 
1983년 집에 안기부 직원들이 들이 닥친 것이다. 연행된 오씨에게 조총련에 포섭돼 국가기밀을 탐지하고 수집했다는 죄를 확인하기 위한 안기부의 수사가 시작됐다.
 
"며칠이 흘렀는지도 몰라요. 협박은 물론 발가벗겨진 채 고문을 당한 뒤 법정에 섰을 때 이미 저는 간첩 활동을 한 사람이 돼 있었죠"
 
이 과정에서 1980년 의정부에서 군생활을 하던 큰아들을 면회갔던 일도 '포섭'차원에서 진행된 일로 바뀌어 있었고 중학교 친구 7명과 70년대 중반 만든 친목 모임도 간첩활동을 위한 일이 돼 있었다.
 
오씨는 대법원까지 항소했지만 기각됐고 결국 징역 7년에 자격정지 7년을 선고받고 5년 8개월을 복역한 뒤 가석방됐다.
 
세상에 나왔을 때는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친구들은 오씨를 멀리하고 생업도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 속에 간신히 명맥만 유지할 정도였다.
 
간첩 활동을 했다는 꼬리표를 단 채 20여년을 살아 온 오씨. 그러나 누명은 반드시 벗어야겠다는 생각에 방법을 백방으로 모색하던 그는 2006년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지난 13일, 그의 말대로 '터널을 빠져나와 햇살을 보게됐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오씨의 간첩 혐의에 대해 안기부에 협박과 고문에 의해 조작된 사건이라는 결론과 함께 국가가 피해자와 가족에게 사과하고 명예회복을 위해 재심 등의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했다.
 
오씨는 "나와 가족들뿐만아니라 주위 사람 모두의 짐을 이제야 덜게 된 것 같다"며 "다시는 우리나라에서 제 2, 제 3의 오주석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오씨는 현재 변호사를 선임해 법원에 재심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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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10/15 [18:2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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