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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와 조선일보, 5년전쟁 시작됐나?
조선일보의 KBS흠집내기는 보혁대결의 대리전 양상보여
 
윤익한   기사입력  2003/09/10 [17:13]

정연주 사장 취임 이후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KBS와 거대족벌신문 조선일보 사이의 갈등이 갈수록 노골화되면서 첨예해지고 있다. 갈등의 양상은 KBS가 공영성강화를 선언하면서 신설한 몇몇 프로그램을 통해 과거에 조선일보가 정권에 유착하면서 곡필한 사례를 방영하면, 조선일보가 다음날 지면을 통해 노대통령과 정연주 사장의 코드설을 주장하고 KBS의 자기반성을 촉구하는 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KBS와 조선일보는 지난 정부까지만 해도 각기 신문과 방송매체 가운데 이른바 '1등매체'라는 강한 자부심을 기반으로 암묵적인 보도카르텔을 형성, 서로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던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노무현정부 출범이후 과거와는 달리 최근 KBS와 조선의 싸움은 단순히 매체와 그 종사자들간의 자존심 대결 수준을 넘어 각자의 지지세력을 대변하는 보혁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KBS와 조선일보는 이변이 없는 한 향후 5년 동안 마주달리는 기관차처럼 긴장관계를 형성하면서 급격히 전선을 확대해갈 것으로 보인다.  

◇ KBS사장 임명 논란

▲KBS 한국방송     ©KBS홈페이지
KBS의 개혁여부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 이후 참여정부의 언론개혁 의지를 가늠할 수 있는 리트머스 역할을 했다. 1998년 KBS에 취임한 박권상 사장은 KBS 간부들 사이에 뿌리깊게 박혀있는 관료주의와 보신주의에 영합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평가속에 임기를 몇 달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 자진사퇴를 했고, KBS는 그동안 뉴스보도에서도 굵직한 사회적 현안을 피해간다는 이유로 시민단체로부터 비난의 소리를 들어왔다.

KBS노조는 박사장이 사임한 이후 후임사장의 자격요건으로 정치적 중립성과 개혁성, 도덕성, 전문성을 강조했지만, KBS이사회는 노대통령 후보시절 언론정책 고문을 맡았던 서동구씨를 새로운 사장으로 임명해 KBS노조뿐만 아니라 시민단체들로부터 강한 반발에 부딪쳤다. 결국 서사장은 KBS노조가 대정부투쟁까지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취하자 사장 자리를 내놓았다.

이에 앞서 서동구 KBS사장은 4월 1일 오후 지명관 KBS 이사장을 만나 “노 대통령을 만나‘신문 개혁을 돕는 길 아니면 도와줄 수 없다'고 하자, 며칠 후 (노 대통령이)‘방송쪽을 맡아달라’고 말했다”면서“언론개혁의 방향과 구도에 대한 내 얘기가 대통령이 느끼기에는 일관성 있고 의지가 강하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고 말한 내용이 조선일보의 특종으로 보도된 바 있다. 그러자 노대통령은 서사장 임명과 관련해 "개입한 적 없다고 했는데 오늘 보니 거짓말 한 것 같아 낯이 뜨겁다"는 말을 해 사실상 KBS 사장인선에 개입한 사실을 인정함과 동시에 서사장과 노대통령의 도덕성에도 흠집만 낸 결과를 가져왔다. 당시 이 사건을 통해  조선일보가 KBS사장 인선에 얼마나 촉각을 곤두세우며 관심을 가졌는지를 엿볼 수 있다.

조선일보는 당시 <대통령의 언론관과 KBS>(2003.4.3)사설에서 KBS 사장임명건을 대통령의 언론관 전체로 무리하게 연결지어 "(대통령이)‘권언유착’단절과 방송 독립의 다짐을 스스로 무너뜨린 셈이 됐다"고 평가했다.

정연주 전 한겨레신문 논설주간이 KBS 신임사장으로 임명된 것은 KBS의 향후 진로와 언론계에 적지않은 파장을 예고했다. 정사장은 평소 언론, 북한, 대미관계에 있어 소신있는 발언을 자주했고, 조선·중앙·동아일보를 '조중동', '조폭언론'이라고 부른 장본인이기도 하다.

따라서 정연주사장이 이끄는 KBS호는 대척점에 서있는 조선일보에 심각한 위기의식을 던져준 것으로 풀이된다. 이후 조선일보는 정사장 아들들의 병역문제에서부터 정사장이 과거에 썼던 글까지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으면서 '정사장때리기'에 열을 올렸다. 한쪽에서는 이같은 모습이 과거 최장집사건을 떠올린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KBS는 또 무슨 깃발을 드나>(2003.4.25)사설에서 "정치적 중립에 문제가 있었던 서동구 사장에 이어 또다시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다’는 것 말고는 방송일과는 별 인연이 없는 정씨를 임명한 것을 보면, 방송을 정권의 도구로 이용한 군사정권과 과연 무슨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다"면서 노대통령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또 같은 사설에서 "정연주씨는 논설과 칼럼을 통해 ‘조폭언론’이란 극렬한 용어로 기성언론 타도를 주장해 왔으며 미국 내 극단적 좌파 지식인의 목소리와 같은 색깔의 미국 비판 논조를 펼쳐온 인물"이라면서 정사장 개인에 대해서도 문제삼았다.

이처럼 조선일보는 자신들과 뿌리깊은 적대적 감정을 갖고 있는 노무현대통령과 코드가 비슷한 사람으로 KBS사장이 임명되는 것은 반드시 막아야할 일이었던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방송이 신문보다 매체 전파력이 큰 현실에서 KBS가 전파를 통해 조선일보를 적극적으로 공격해온다면 조선이 지면을 통해 반론을 펼친다해도 같은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 미디어포커스와 인물현대사, KBS정기개편의 숨은 뜻

KBS는 6월 말 KBS 1TV를 중심으로 한 몇몇 프로그램의 개편을 단행했다. 취임 초 공영성강화를 천명한 정연주 사장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개편프로그램 가운데는 당초 프로그램 신설요구가 적지않았던 매체비평 프로그램 <미디어포커스> 와 1970년대 노동운동가 전태일 열사 등 굵직한 사건 속에서 한 획을 그었던 인물들을 조명하는 <인물현대사>가 포함돼 논란을 빚었다.

이미 MBC에서 김중배 사장시절 <미디어비평>프로그램을 신설해 한주동안 있었던 조중동의 보도 가운데 왜곡·허위보도를 강도높게 비난하고 있어 KBS의 개혁의지는 매체비평프로그램의 신설여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미디어포커스>는 첫 방송‘KBS, KBS를 말한다’에서 KBS가 지난 시절, 정권이 바뀌어감에 따라 사과 한 마디 없이 말바꾸기를 해왔다는 점을 중점으로 다뤘다. 이날 방송은 <미디어포커스>가 타 매체를 비판하기에 앞서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과거 적절치 못한 방송을 해온 것을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자기성찰의 측면이 강하게 나타났다. 한편으론 방송 내용을 두고 조중동이 문제를 삼을 것에 대비해 KBS가 지고 있는 부채를 털고 가자는 의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문성근씨가 진행자로 나선 <인물현대사>를 두고 벌어진 논란은 문성근씨가 진행자로서 적절한지에 모아졌다. 문씨가 지난 대선과정에서 노사모 활동을 하는 등 친정부적인 전력이 있어 당파성을 가진 사람이 공영방송의 역사교양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보수언론과 한나라당에서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이상요 프로그램 책임피디는 “인물선정은 자문위원단이 하고 프로그램 내용은 PD와 작가가 결정한다”며 “문씨는 정해진 각본에 따라 움직인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KBS의 프로그램 개편을 음모론과 색깔론으로 몰아갔다. <KBS, 전국민 '의식화 교육'에 나서나>(2003.6.13)사설에서 조선은 "정연주 사장 체제의 KBS가 첫 작품으로 내놓은 개편안은 시청자 위주가 아니라 특정인과 특정 집단의 색깔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며 "공공성을 우선해야 할 1TV에 정치색이 짙은 프로그램을 편성한 것은 방송을 특정 정파 또는 특정 이념의 도구화하려는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갖게 한다"고 주장했다. 이밖에도 조선은 KBS가 역사스페셜, 장애인·국군·농어민방송을 폐지하기로 한 데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며 한나라당과 성난 네티즌의 반응을 주요기사로 전했다.

그러나 KBS는 <한국사회를 말한다 8.15기획 - 일제 하 민족언론을 해부한다 (8.16)>와 <미디어포커스(9.6) 특집방송을 통해 조선일보가 과거 적지않은 오보를 냈으면서도 한마디 사과 없이 지나갔다는 내용을 방송하면서 조선의 비난보도에 대해 물러서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이에 대해 한나라당이 추진중인 KBS 2TV 민영화 입법안 등을 포함한 방송법 개정안을 적극적으로 보도하면서, KBS의 자사비판에 정면대응하고 있다.

KBS와 조선일보가 벌이고 있는 논쟁은 언론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불신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면서 편가르기하는 양상을 띠고 있어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수구적인 논조를 유지하는 조선일보와 이와비슷한 편집방침을 보이고 있는 중앙·동아일보가 대략 하루에 700만부 가량 판매된다는 언론계의 일반적 주장에 비춰볼 때, 이들 세 신문과 하나의 사안을 전혀 다르게 평가하는 공중파 KBS를 보는 국민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실제로 KBS의 <미디어포커스>나 <인물현대사>프로그램 게시판에는 방송을 본 시청자들이 양자로 확연히 갈라져 험한 말들을 주고 받는 모습을 보여, 언론이 사회갈등을 오히려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일고 있다.

그러나 언론관련 시민단체에서는 조선일보의 정연주사장 흠집내기가 적절한 것인지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KBS에 방영된 조선일보의 과거행적이나 오보의 고발은 사실에 근거한 것이라는 얘기다. 또 공영방송의 매체비평 프로그램에 문제가 있다면 조선일보도 합리적 판단기준을 가지고 KBS의 프로그램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에반해 조선일보가 주장하는 음모론과 색깔론은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기 위한 또다른 음모론에 불과하다는 평가다.

게다가 참여정부 들어 사회의 보혁갈등이 첨예하게 맞부딪치는 시점에 KBS와 조선일보의 대결은 보혁세력들간의 전초전을 방불케한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노무현대통령이 조중동의 악의적인 오보에 강한 불만을 드러내면서 법적소송도 불사한 점을 볼 때, 언론이 자칫 정치적 이해와 목적에 연동되면서 혼란이 정치·언론계 전반을 휘감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조선일보가 KBS를 비롯한 각계에서 요구하는 과거에 대한 사과와 해명을 하고 합리적 비판도구를 견지한 언론으로 자리잡을 때까지 조선일보를 둘러싼 우리사회의 갈등은 쉽사리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KBS도 공영성과 공공성을 방기한 채 정치적, 상업적 이해에 좌지우지한다면 무엇보다 국민의 혈세를 낭비한다는 이유로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앞으로 남은 노무현 정부의 4년여 임기동안 언론이 정론의 목소리를 내면서 정권과 건전한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언론 상호간 공정한 경쟁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지는 싸움만이 능사가 아닌 언론의 사회적 소명을 언론 스스로 돌아볼 때만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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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09/10 [17:1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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