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식민지(internal colony)’라는 말이 있다. 1970년대 남미에서 종속이론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이론이다. 식민지는 국가들 사이에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한 국가 내에서도 극심한 지역간 불평등의 형식으로 존재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그간 지방에선 이른바 ‘서울공화국’ 체제를 겨냥해 이 용어를 적잖이 써왔지만, ‘내부식민지’는 맛이 간 지 오래인 종속이론의 아류라는 멍에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많은 비판이 쏟아져 나왔는데, 국가 간 수준에서 나타나는 중심-주변관계를 무리하게 한 국가 내의 지역 간 수준에 적용시켰다는 게 그 핵심이다.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에 호의적인 고려대 최장집 교수도 지난 2001년에 발표한 「지역정치와 분권화의 문제」라는 논문에서 내부식민지론의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최 교수는 “중앙-지방 관계를 사회 전체의 문제가 놓여 있는 근본적인 모순의 소재로 인식할 때 하나의 단일한 요인을 통하여 전체 문제를 풀려고 하는 도식화나 환원주의로 빠질 가능성이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는 지역모순과 같은 말이 사회의 한 부분에 대한 분석적 기능을 넘어 어떤 근본적 모순의 소재를 표현하는 개념으로 비약하기 쉽다는 것이다. 중심부-주변부와 같은 지역적 개념으로 자본주의 사회와 착취의 문제를 해명하려고 했던 종속이론의 경우가 그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이를 원용한 ‘내부식민지’ 개념도 다른 한 예이다. … 이러한 이론들은 이론 그 자체의 문제도 문제려니와 한국사회에서 발생하는 실제의 경험적 지식들을 축적하는 것을 돕기 어렵다는 것이다.” 원론적으론 최 교수의 주장에 동의하긴 어렵지 않다. 문제는 원론과는 다른 현실이다. 과연 우리의 현실이 지역모순이라는 하나의 단일한 요인을 통하여 전체 문제를 풀려고 하는 도식화나 환원주의로 빠질 가능성을 염려해도 좋을 상황인가? 지역모순에 대한 인식이 널리 퍼져 있는가? 오히려 지역모순마저 계급모순에 종속시켜 계급모순으로 찍어 누르려는 게 현실 아닌가? 지난 2002년 김형기 경북대 교수는 「지방분권의 정치경제학」이라는 논문을 통해 지역모순이 한국사회에서 독자적인 사회모순일 뿐만 아니라 계급모순을 압도하고 있는 주요한 사회적 모순이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통렬하게 지적한 바 있다. 정치경제적 측면만 볼 게 아니라 사회문화적인 측면도 보자. 지역모순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연고주의다. 설과 추석 때의 민족 대이동이 잘 말해주듯이, 수도권 인구의 다수는 지방 출신이다. 이들의 존재가 시사하듯이, 누구건 지방에서 서울로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실제 이상으로 과장되게 인식되고 있다. 오히려 걱정해야 할 것은 ‘내부 식민지’라는 말이 지방 사람들에게 열패감을 안겨줄 수 있는 가능성이다. 즉, 그런 걱정을 한다면 모를까 지역모순으로 한국사회의 모든 걸 재단하려는 위험성에 대한 우려는 지금으로선 사치스러운 게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지방 사람들의 자존감을 살리는 노력을 병행하는 걸 전제로 해서 내부식민지론은 과도기적 용법으로서의 가치를 인정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하고 싶다. 사실 서울-지방간 발생하는 사회문화적 현상은 과거 일제 강점기 시절의 동경-경성 간 관계와 너무도 비슷해 깜짝 놀랄 정도다. 최 교수도 같은 논문에서 잘 지적했다시피, 지금과 같은 서울 집중화는 그 자체가 기득권을 갖기 때문에, 분권화는 저절로 주어지지 않으며, 지방에서의 적극적인 시민운동을 필요로 한다. 시민운동의 활성화, 즉 성공적인 지방자치와 국가발전을 위해서라도 내부식민지론이 기여할 수 있는 점에 주목해보는 게 좋겠다. * 본문은 <선샤인뉴스> 2008년 5월 18일자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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