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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감이다 VS 북한은 주적, 미국은 동맹국
'인공기 소각' 둘러싼 보혁·여야·언론 갈등만 무성
조선 "무릎을 꿇은 것", 한겨레 "대승적 태도 옳다"
 
윤익한   기사입력  2003/08/20 [12:37]

▲지난 15일 서울 시청앞에서 열린 반핵반김 8ㆍ15국민대회에서 북측의 국기인 인공기를 태우고 있다.   
©민중의소리
자유시민연대 등 보수단체들이 지난 8월 15일 광복절 기념행사에서 인공기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상화를 소각해 북한이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불참을 시사하는 등 남북관계가 급속히 긴장되는 양상을 빚자 19일 오전 노 대통령이 이례적인 유감을 표명, 북한이 같은날 다시 대회에 참가하기로 해 논란은 일단락됐다.

그러나 북한이 불참시사에서 참가결정을 통보하기까지 이념적 혹은 정파적 이해를 달리하는 집단간의 갈등은 마주 달리는 기차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당초 북한이 대회 참가거부를 시사하면서 국제적 스포츠 교류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이냐는 비난의 목소리가 일었다. 또 국내 보혁세력간에는 북한의 불참시사가 누구의 책임이냐를 두고 공방이 벌어졌고 이는 정치권으로도 번져 여야가 비난성 논평을 내보냈다. 당시 보수단체의 집회에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가 참석해 한나라당의 텃밭인 대구 민심의 향배에 관심이 쏠리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북한의 대회 참가 결정 이후에도 이 사안을 둘러싼 남한 내 갈등의 후폭풍은 적지않을 것으로 보인다.

◇ 8·15 기념행사와 인공기 및 김 위원장 초상화 소각

올해 58주년을 맞은 광복절은 우리사회의 보혁갈등으로 얼룩진 하루였다.

이날 통일연대와 한총련 등 진보단체들은 종로1가 제일은행 앞에서 1만3천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반전평화 8.15 통일대행진'을 열었다. 이 행사에는 나창순 통일연대 상임공동대표, 정광훈 전국민중연대 상임대표,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 등이 참가해 꽃차, 대형 한반도기, 비둘기 모양의 평화상징 조형물 등을 이용한 집회를 열었다. 

같은 날 자유시민연대와 예비역 대령연합회 등 보수단체 회원 1만여 명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건국 55주년 반핵반김 8.15 국민 기도회'를 갖고 서울역까지 차도로 행진을 벌였다. 이 행사에는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 김용갑, 박주천 한나라당 의원, 이철승 자유민주민족회의 총재, 이철신 영락교회 목사, 독일인 의사 노르베르트 폴러첸씨 등이 참석했고, 북핵을 상징하는 길이 3m짜리 모형 미사일이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경찰은 이날 종로·시청 일대에 82개 중대 8,000여명의 의경을 배치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인형과 가면, 성조기 50점, 미탱크 모형물 2개, 미사일 모형 7개 등 불법 시위용품 62점을 회수하는 한편 해병대전우회가 차량 15대에 '파괴하자 북한핵' 등 스티커를 부착, 카퍼레이드를 시도하려는 것을 제지했다.
 
한편 이날 보수단체 회원 일부가 행사 도중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걸개그림과 인공기를 불태우는 일이 벌어졌다.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일주일 여 앞둔 상황에서 보수단체들의 이같은 행동은 곧바로 북한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북한은 17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대변인 성명을 통해 "남한 보수단체의 8.15국민대회가 북한체제를 모독했다"면서 남한 당국의 공식적인 사죄를 요구한 뒤 "초보적인 안전이 담보돼 있지 않은 위험한 지역(남한)으로 우리 선수들이 가게 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며 유니버시아드 대회 불참을 시사했다.

그러자 통일부 관계자는 “정부 당국이 보수 우익단체들의 극단적인 행동을 놓고 국가 차원에서 북한에게 공식적인 사과를 하기는 어렵다”고 답해 사실상 공식사과나 유감표명이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이틀 뒤인 19일 노 대통령은 통일부의 당초 입장과는 달리 "인공기와 김정일 위원장의 초상화를 불태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면서 유감을 표명해 사태 수습이 나서는 모습을 보였다.

정세현 통일부장관도 이날 오후 서울 세종로청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남과 북이 기왕에 화해협력을 하자는 마당에 북한도 우리 사회의 다원성을 이해해야 하지만, 우리도 북한 사회의 특성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면서 "지난 17일 북한이  제기한  문제에 대한 우리측의 입장이 확실히 전달된 만큼, 늦기는 했지만 북측도 당초 일정대로 대구 유니버시아드에 참가, 남북화해협력 관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데 힘을  합쳐 나가기를 바란다"고 덧붙여 유감의 뜻을 분명히 했다. 

우여곡절 끝에 이날 오후 북한은 판문점 연락관 접촉을 통해 참가의사를 통보했고, 대구 U대회 하루 전인 20일 오전과 오후에 남북 직항로를 통해 김해공항으로 들어올 예정이다.  

◇ 책임론 두고 벌인 보혁갈등

광복절 기념행사를 서울 시내에서 각각 연 진보, 보수단체들은 북한의 유니버시아드 대회 불참 시사 소식이 전해지자 책임론 공방을 벌였다.

'8.15 통일대행진’행사를 준비한 통일연대는 19일 논평을 통해 “U대회를 눈앞에 두고 북녘 동포의 참여가 불투명해진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면서 “이런 상황은 도를 넘어선 수구세력의 극단적 대북 적대행위로부터 초래됐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해 보수단체를 향해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이에 대해 자유시민연대 등‘건국 55주년 반핵.반김 8.15 국민대회’측은 “북한 정권이 U대회 불참을 빌미로 8.15 국민대회 집회를 공격하는 것은 저들이 무책임하고 신뢰할 수 없는 집단임을 스스로 드러낸 것”이라고 주장해 양측은 책임을 서로에게 전가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또 진보 단체는 정부를 향해 “정부당국이 미국에서조차 의사표현의 하나로 인정되고 있는 성조기 훼손에 대해서는 미국의 처벌 요구에 굴복하고 있지만 북한에 대한 체제모독행위는 허용하고 있다”고 비난했고, 보수단체 측도 "정부가 김정일 정권의 억지 주장에 한 치도 물러서서는 안 된다”며 “만일 정부가 김정일 정권에 끌려갈 기미만 보여도 대 정부 투쟁에 나설 것임을 경고한다”고 밝혔다.

◇ 여야 정치권 반응

▲노 대통령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인공기 훼손 유감 표명     ©YTN
여야는 19일 8.15국민대회에서의 인공기 및 김정일 위원장 초상화 소각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유감표명을 두고 논쟁을 벌였다.
 
민주당 문석호 대변인은 논평에서 “지금은 분열된 국론을 모으고 국민이 화합해 지혜를 한곳으로 모아야 할 때”라면서 “남북관계의 현실과 한반도의 미래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내린 결단”이라고 반겼다.

그러나 한나라당 박진 대변인은 논평에서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남북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축제의 장으로 만들고자 하는 노 대통령의 의지는 십분 이해하지만 국내의 이념갈등에 대해선 별반 대책도 없고 사과도 하지 않은 노 대통령이 북한의 요구에 쫓기듯 유감을 표명하고 재발방지를 지시한 것은 앞뒤가 바뀐 것”이라고 비난했다. 

자민련 유운영 대변인도 “노 대통령이 북측에 유감표명을 한 것은 단호한 대응을 요구하는 민의를 저버린 행위로 용납될 수 없다”며 노 대통령의 단호한 대응을 주문했다.

그러나 당초 8·15 국민대회에서 보수단체의 행사에 최병렬 대표와 김용갑 의원 등이 참석한 점, 노 대통령의 유감표명에 대해 대변인 논평을 통해 강하게 비난하고 나선 점 등은 한나당에 부담으로 작용하는 분위기다. 또 한나라당은 북한이 참석을 결정하자 당혹스러워 하는 분위기다. 이번 대회가 한나라당의 텃밭인 대구에서 열린다는 점도 한나라당으로서는 자충수를 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분분하다.

◇ 북한의 대회 참석 배경

유니버시아드 대회 하루를 앞두고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이 도착함으로써 이전에 불참을 시사한 이유와 갑작스런 참석 배경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먼저 북한이 불참을 시사한 배경에 대해서는 남한 내 보수세력의 입지를 좁히기 위한 목적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의장의 죽음과 대북특검 등 북한관련 사안마다 보수세력의 반발로 인해 남북경협이 좌초될 위험에 빠지자 북한으로서도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이어 북한이 참석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은 국제 스포츠 대회에 정치적 이유를 들어 참석하지 않는 데 따른 국제적 비난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핵문제를 둘러싼 6자회담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국제적으로 비난을 사는 것이 회담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계산이 깔린 것이다.  

◇ 언론의 보도태도

국내 신문들은 20일 이 사안에 대해 일제히 사설을 써, 신문마다 명확한 특성을 보여줬다.

조선일보는 20일 <대통령이 인공기 태운 국민 비난하나> 제하의 사설에서 "(대통령이) 유감을 표시한 것은 북한의 억지 주장에 한국의 대통령이 무릎을 꿇은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 사설에서는 "북한의 주장은 처음부터 말도 안 되는 엉뚱한 트집 잡기였다" "이처럼 당당하지도 정직하지도 못한 정부의 자세는 남북관계에 두고두고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나쁜 선례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대통령 말속에 담겨 있는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마치 우리에게 미국과 북한이 동등한 존재인 것처럼 여기는 인식이다" "북한은 엄연한 주적일 수밖에 없고, 미국은 이런 안보 위협에 함께 맞서는 한국의 동맹국이다" 등의 주장을 펼쳤다. 

중앙일보는 20일 <대통령이 나서서 사과할 일인가> 제하 사설을 통해 "북한의 남남갈등 조장전략은 일대 성공을 거두었다"고 썼다. 사설은 또 "대통령도 말했듯이 우리 정부엔 아무런 잘못이 없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왜 나서서 사과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노 대통령이 보수파를 때리고 친북세력을 북돋우는 북한전략에 힘을 실어준 결과가 됐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도 같은날 <대통령 유감표명 적절치 않았다> 사설에서 "(북한이) 정부의‘사죄’를 요구한 의도는 보혁갈등을 부추겨 또 한번 남한 사회를 흔들어보겠다는 것이었다"면서 "대통령은 인공기를 미국 성조기와 같은 차원에 놓고 보는, 참으로 사려 깊지 못한 말을 했다"고 썼다. 이밖에도 동아는 "미국은 엄연한 우리의 동맹이다" "우리의 생명과 재산이 한미동맹관계에 기초한 대북 억지력에 의존하고 있다" "대북 화해·협력이 중요하다고 해도 아직은 우리의 현실이 성조기 소각과 인공기 소각을 동일선상에 놓고 볼 상황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한편 한겨레는 <남북 성숙한 태도 긴요하다> 사설에서 "노 대통령의 대승적 태도가 큰 틀에서 옳다고 보며, 북한이 유니버시아드대회 참가를 통해 이에 긍정적으로 응답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사설은 또 "곧 베이징에서 북핵 문제를 논의하고 한반도 평화를 가를 6자회담이 열린다" "민족의 명운이 걸린 중대한 분기점을 앞두고 남북이 대화기류를 흐트리면 안 된다"는 주장을 펼쳤다.

한편 각 언론사들은 노 대통령의 '인공기소각 유감표명'에 관한 인터넷여론조사를 실시하면서 여론을 살피고 있다. 대체로 조중동의 조사에는 사설 방향과 거의 흡사하게 노 대통령의 발언이  "부적절" 하다는 의견이 많았고 한겨레는 그 반대의 조사결과가 나오고 있다.

20일 오전 12시 현재 ▷ 조선닷컴 "적절했다"(20.61%, 1.756명) "적절치 않았다"(79.39%, 6.764명)  ▷ 중앙일보 인터넷판 "적절했다"(30.28%, 2.575) "부적절했다"(68.25%, 5.803)  ▷ 동아닷컴 "찬성"(29.63%, 3.670) "반대"(68.32%, 8.463)  ▷ 한겨레 '찬성'''남북관계 U대회 고려한 태도''(62.6%, 1.656) '반대'''북한에 대한 지나친 저자세''(37.4%, 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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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08/20 [12:3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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