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개혁의 ‘몰락’ 급조정당 열린우리당 현재 창조한국당이 ‘문국현 사당’이라 한다면 열린우리당은 창당 당시(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노무현 사당’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열린우리당은 ‘정치 개혁’이란 뜻있는 정신을 가지고 있었던 점에서 단순히 ‘문국현’이란 인물 하나만의 의미밖에 없는 창조한국당과는 다른 점이 있다. 노무현 정부가 열린우리당과 당정분리를 함으로써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의 관계를 정리해버렸고 이 결과 노무현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던 ‘노무현 사당’ 열린우리당은 막나가는 盧정권을 막지 못했다.
탄핵 이후 17대 총선 열린우리당의 돌풍은 국민들의 ‘개혁’·‘진보’에 대한 열망을 어느 때보다도 강렬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사회·경제적 개혁에는 소극적이었고 정치개혁은 그나마 힘쓰려했다. 국민들의 개혁·진보에 대한 열망과 달리 盧정권의 개혁·진보에 대한 열망은 강렬하지 못했다.
탄핵 역풍으로 '무조건' 열린우리당을 찍다보니 검증도, 실력도 없는 단순히 열린우리당 공천만 받으면 당선되는 결과가 나타났다. 결국엔 한나라당과 정체성이 다를 바 없는 ‘열린한나라’의원들이 판치기 시작한 것이다.
중도실용주의, 개혁실종 - 2004년, 열린우리당의 모습에서 자유주의 개혁세력의 몰락은 예고되었다
열린우리당이 원내 다수 의석을 확보한 후 그들이 선택한 노선은 다름 아닌 ‘중도 실용주의’였다. 이때부터 이미 민심 배반이 일어났다. 정동영·김한길 최대계파는 열린우리당 초부터 대통합민주신당이 대선에서 ‘작살’날 때까지 최대계파의 수장들로써 ‘중도 실용’노선을 제대로 걸어왔다. 개혁과 진보를 바라는 국민들의 민심과 정당을 철저히 분리하고 배제한 결과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힘이 없어 개혁 못한다’고 해서 밀어준 국민들의 결과는 열린우리당+민주노동당 162석이었다. 표 대결로만 가도 충분히 승리할 수 있었다.
그래서 2004년 국가보안법 폐지를 필두로 한 ‘4대 개혁입법’의 처리가 기정사실로 여겨졌다.(사실 이 개혁마저 못했기 때문에 사회·경제적 개혁을 포기한 열린우리당과 盧정권의 개혁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열린우리당의 존재의미 또한 없었다고 본다) 그러나 한나라당 아니면 처리 못한다·한나라당과 대화해야 한다는 게 열린우리당의 자세였다. 국민들은 분명 의석이 부족하다 해서(한나라당 아니더라도 개혁 제대로 해라고) 162석이나 몰아줬음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 ‘아니면’ 안 된다고 헛소리를 하는 것이다. 이 때 이미 열린우리당은 ‘노망’나고도 남았던 셈이다.
17대 총선의 시대정신-“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의 개혁·진보”에 열린우리당은 민주노동당을 꺼리고 한나라당을 오히려 가까이 했다.
국민들의 17대 총선 시대정신의 숨은 뜻인 (민주대연합, 진보·개혁 연합 등의 말들로 표현되는) 진보개혁세력 연합의 정신이 총선 결과로 최고조에 올랐으나 열린우리당의 이러한 태도로 급격한 하락과 진보개혁 연합의 마감을 뜻하고 있었다.
민주개혁세력의 무의미함 1. 대연정 어느 날 갑자기 盧 대통령이 한나라당을 향해 ‘대연정’을 제안했다. 당정 분리로 인해 열린우리당은 이러한 대연정에 즉각적인 입장을 보이지 못하다 노무현 사당인 스스로의 한계로 오히려 대연정에 공조하는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특히나 친노들은 노골적으로 밀어줬다.
대연정의 의미는 17대 총선의 시대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자 노무현의 개혁은 모두 ‘레토릭’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때부터 이미 열린우리당과 盧정권은 정권 재창출 생각은 없었고 노무현의 ‘대연정’소동 이후 한나라당의 (사전)선거운동원이 되었다. 이를 빗댄 표현이 한나라당 책사 윤여준 전 의원의 ‘이명박 대통령을 만든 힘 중 6할은 노무현에게서 나왔다’는 말이다.
2. 한미FTA-신자유주의, 反민주 대연정 이후 盧폭풍으로 다가왔던 것이 바로 ‘한미FTA’다. 이는 개혁세력과 진보세력의 어색한 동거에 금가게 하는 두 번째 신호탄이 되었다.(첫 번째 신호탄은 열린우리당이 민주노동당을 파트너로 삼지 않고 한나라당을 파트너로 삼았던 것)
한미FTA의 추진 과정은 반민주적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급속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한 것도 ‘열린우리당 득점, 한나라당 어시스트’가 말하듯 민주세력임을 자처하는 세력에서 추진되었다. 신자유주의 정책 추진 역시 한미FTA 추진과 마찬가지로 ‘비민주적’으로 추진했고 통과시켰으며 이 과정에서 민주노동당이 할 수 있었던 것은, 국회 밖으로 나가 ‘시위’하는 것과 국회의사당에서 의장석 앞에 플래카드 드는 것 밖에 없었다.
지난 17대 총선은 개혁세력도, 진보세력도 ‘민주’는 없었고 민주개혁세력은 反민주·反개혁 세력으로 바뀌었다. 정 그들을 개혁세력이라 한다면 ‘신자유주의적 개혁’이다. 2004년 17대 총선 이후 진보개혁 대연합의 붕괴가 시작되었듯 한미FTA와 신자유주의, 反민주적으로 무장한 개혁세력은 붕괴의 절정기에 이르렀다.
자유주의 개혁세력의 첫 심판, 대선 1. 대통합·‘도로’ 열우당 자유주의 개혁세력의 대선은 2007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열린우리당 극좌파’ 임종인 의원의 탈당(2007. 1. 22)과 한미FTA 반대단식(김근태·천정배·임종인)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여러 분파별로 분열이 논의되었다. 정동영·김한길 계열의 ‘중도’ 노선과 김근태·천정배 계열의 ‘反 한미FTA’를 매개로 한 ‘진보’신당 논의, 임종인·非민노 진보 노선, 친노 그룹으로, 자유주의 개혁진영은 4~5개 그룹으로 쪼개질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들은 대통합민주신당을 통해 다시 합치기 시작한다. 결국엔 임종인 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모두 대통합민주신당으로 합류함으로써 재건하지 말아야 할 ‘도로’ 열우당을 재건했고 이후 일부 열린우리당 출신 인사들이 통합신당의 ‘복사판’격인 창조한국당을 만들었다. (창조한국당의 주요 간부들이 열린우리당 출신 인사들이었기에 ‘만들었다’로 표현한다)
2. 손학규·노무현 2007 대선에서의 손학규·노무현의 의미는 크다고 할 수 있다. (자유주의) 개혁과 보수의 큰 경계선을 없애고 ‘들락날락’하게 만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5년 전만 하더라도, 개혁세력에서 보수세력으로 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으나 노무현의 ‘신자유주의 개혁’과 ‘反민주적 행태’를 보여준 것은 개혁->보수로의 명분을 만들어준 것이다. 보수색채를 띄고 있는 손학규의 과감한 범여권으로의 이적은 이러한 움직임(개혁<->보수)에 기폭제가 되었다.
김근태·천정배 등 이른바 ‘자칭’ 민주인사들은 손학규의 이적에 ‘꽃다발’ 갖다 주기에 바빴고 ‘민주개혁’이란 수식어를 붙여줌으로써 민주개혁의 가치까지 떨어뜨렸다. 그 결과 민주개혁의 무의미함은 더 커졌고 지금의 민주개혁의 위기는 민주개혁세력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이 만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선 막판 민주당·대통합민주신당 인사들의 자유신당·한나라당으로 이적은 보수와 개혁의 경계가 없어졌음을 의미하고 있다. ‘햇볕정책’의 전도사라 할 수 있는 친노 김혁규의 자유신당 합류도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앞으로 총선을 전후로 한 범여권 인사들의 자유신당·한나라당으로 이적이 급속화 될 가능성도 크다.
3. 문국현(‘CEO 대통령’)의 등장은 민주세력의 ‘민주’ 완전 해체 문국현의 여권 후보 출마는 민주개혁세력의 종말을 말하는 ‘최악’의 결정타였다. 이른바 ‘민주’와 ‘개혁’을 위협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우상 ‘CEO 대통령’ 문국현에 대해 정태인 본부장은 “CEO는 기본적으로 독재자다. 민주주의를 알 리 없다”고 평가했다.
이런 후보를 여권은 ‘진보개혁세력의 후보’라 칭하고 ‘단일화’ 못해 전전긍긍했다. 정태인 본부장의 말처럼 창조한국당에서도 독재자의 노릇을 보여주고 있다. <한겨레> 보도에 의하면 정범구 전 의원이 “정치는 여러가지 가능성을 열어놓고 해야 하는데, 문 대표는 자기와 다른 의견은 잘 받아들이지를 않는다”라고 할 정도다. 자기와 다른 이야기를 잘 받아들이지 않는 것, 그것은 기업에서 CEO로서 통할지 몰라도 한 정당의 대표로써의 역할과는 전혀 다르다.
덧붙여 文대표도 막강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공약에 내세움으로써 사실상 여권이 反민주·신자유주의 정책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보이지 않으며 이들에게서 ‘그나마’ 정신 차리길 기대하는 건 ‘코미디’로 되었다.
4. 총선에서 씨를 말려야 여권에 대한 총선 여론조사 결과는 참혹하다. 대통합민주신당이 전라도를 제외한 전국에서 ‘0석’이라는 끔찍한 결과도 나왔다. 그만큼 민주정부 10년의 결과를 참혹하게 매기는 국민들의 성난 민심이 들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과 신당은 다시 ‘대통합’을 외치고 있다. 원칙도 명분도 없는 무개념 대통합이다. 기자는 지난 대선에서 여권의 대통합을 ‘원칙과 철학없는 정치공학적 발상’으로 규정했다. 지금의 여권 대통합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성난 민심은 처절하게 밟아줄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통합신당과 민주당, 창조한국당 이른바 범여권(자유주의 개혁세력)의 종말을 가져올 것이다. 이들의 씨를 말리는 것이 진정한 진보·개혁 정치주체를 구성하는 첫 단계가 될 것이다. 죽어야 제대로 된 정치세력이 산다. 신당, 민주당, 창조한국당.
Part 2. 진보의 ‘후퇴’ 준비되지 않은 민노당·정당보다 이익집단에 가까워 한 때 민노당의 지지율은 24%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지금은 고작 3%의 지지를 받는 정당으로 추락한 것도 사실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그들은 아직 준비된 것도 없었고 현실 정치에 대한 경험도 거의 전무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분명했던 건, 24%의 지지를 받는 정당이면 분명 정권 교체를 위한 ‘인수위’ 준비를 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2004년 민주노동당, 노무현 탄핵 역풍과 함께 원내 진출은 물론이며 서민·노동자들의 진정한 지지정당으로 거듭나는 듯 했던 민노당은 준비되지 않았던 만큼 ‘인수위’를 꾸려 브라질의 룰라처럼 내각 구성을 보여주고 준비된 정당임을 강조했어야 했다. 그것이 민주노동당에 대한 국민들의 신임을 한 층 더 높이는 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때 한 일은 (국민들의 높은 지지에 감사하는 뜻으로 열심히 준비하기보다)‘정파 갈등’·‘패권주의’·‘민주노총당’이었다. 그들의 모습은 분명 정권 ‘창출’을 꿈꾸는 정당이 아닌 자기 이익 챙기기 급한 ‘이익집단’이었다.
잡탕, 누굴 믿어? 민주노동당의 사람들을 만난 뒷면 꼭 궁금증 해소보다 오히려 늘어났다. A라는 당원을 만나보면 C라 말하고, B라는 당원을 만나보면 D라고 말한다. 그럴 법한 게 여러 언론에서 NL진영과 PD진영 핵심 인사들의 대화를 보면 ‘저 사람들이 같이 있었다는 게’라 할 정도다. 같이 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같이 한 셈인데 민주노동당도 잡탕이었다.
종북주의도 그렇다. 기자는 얼마 전 민노당 내 PD계열 혁신파 당원을 만났는데 ‘종북주의자’는 없다고 말한다. 누구는 있다, 누구는 없다. 도대체 누구 말을 믿어야 하는 건가 알 수 없다.
민노당은 어느 나라 말 쓰는가? 민주노동당 사람들이 쓰는 단어로 본다면, 못 알아듣는 단어들이 30% 이상이다. 진보라는 사람들과도 대화하기 힘든 게 민노당 사람들이다. 청소년들이 쓰는 은어를 어른들이 알아듣기 어렵듯, 민노당 사람들과 민노당 밖 진보적인 사람들과 서로 대화하기 어렵다.
진보적인 사람들도 대화하기 오죽 한데 일반인들은 어쩌겠는가. 서민과 노동자를 대변한다는 진보정당이 대중적인 언어로 다가서기 보단 자기들만의 언어(가치관)로 말하니 서민과 노동자들이 MB를 찍는 게 아니겠는가.
국민은 ‘세뇌’ 대상이 아니라 ‘선택의 주체’다 약간의 과장일지 모르지만, 민노당은 국민들을 ‘해방’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 약간 심하게 말한다면 대선에서 민노당이 보인 태도는 국민을 ‘세뇌’의 대상으로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받았다.
코리아연방공화국도 그러한 연장선상에 있는 정책이다. 국민들이 내놓으라했던 민생은 온데간데 없고 국민들이 원하는 ‘상품’을 내 경쟁하는 게 아닌 “통일하면 민생 좋아집니다”라며 자기 가치관대로 국민들에게 강제로 떠먹이려는 것이 지금까지의 민주노동당식 정치라 본다.
자기 것도 완성 못하고 새로운 진보 외칠 자격 없다 이번 대선에서도 독자출마를 선택한 한국사회당은 ‘새로운 진보’를 외쳤다. 그러나 이 구호의 속을 파보면 외칠 자격도 없으면서 외쳤다는 걸 알 수 있는데 일부정책에서 사회당 간부들 스스로 ‘아직 완성못했다’고 인정했는데 진보대연합을 통한 후보단일화까지 깨고 나올 정도인 사회당이 제대로 준비되지 않았다는 건 정치철학이 없는 정치공학적 발상만으로 독자출마했다.
당시 금민 사회당 후보가 ‘총선을 위해 출마한다’한 것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 결과는, 총선은 물 건너가고 사회당의 존폐위기까지 거론될 수준이다. 그들의 득표 0.07%는 역시 정도(正道)를 걷지 않은 결과였다.
그리고 대선에서 민노당만 공격에 치중하다보니 ‘3%(권영길)의 맞수’라는 악평과 문국현 찬가를 부르다 박정희 발언에 ‘문국현은 진보적 유권자들을 배신했다’는 망언을 늘어뜨리는 건 당연했을지 모른다.
Part 3. ‘무엇’과 ‘어떻게’ ‘레토릭이 된 진보’부터 없애라 지난 대선, 기자가 자주 한 말이 ‘레토릭이 된 진보’였고 기자의 글 중에서도 “
문국현, 정동영의 ‘레토릭이 된 진보’ ”란 글이 있었다.
범여권이 총선에서 ‘몰살’에 가까운 심판을 받을 거라 앞으로 ‘레토릭이 된 진보’를 말할 일이 크게 없을지 모르지만 진보가 잘못하면 언제든지 ‘레토릭’은 다시 살아날 것이다.
레토릭이 된 진보가 없어지기 위해서라면, 분명한 건 ‘자유주의 개혁세력’의 죽음과 진보의 제대로 된 재구성을 통한 발전이 필요하다. 두 가지 모두 ‘필수’조건이다.
진보와 개혁의 분리, 공존은 ‘끝’ 기자는 지난 연말부터 진보개혁세력이란 말을 잘 쓰지 않는다. 한 번은 기자가 말하는 진보개혁세력은 ‘중도 진보’를 두고 말하는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이는 진보와 개혁의 공존이 끝났다는 판단 때문이다.
민주개혁세력, 민주세력 등 수많은 단어들을 이제 폐기처분하고 간단하게 분리시킬 필요가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2004년을 최고조로 진보·개혁 연합(진보개혁세력)·민주개혁연합이 분해되었다고 본다.
다시 정리해서, 2004년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으로 국민들은 ‘진보개혁연합’의 결속력을 최고조로 만들어줬지만 열린우리당이 민주노동당을 꺼리면서 분리되기 시작했고 盧대통령의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발언으로 분해의 속도는 최고조로 달했다.
민주정권이 스스로 反민주적인 정책들을 채택하고 신자유주의 정책을 급진적으로 非민주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진보와 개혁의 공존은 끝났다고 본다.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고 그 추진하는 과정에 있어 非·反민주적인 모습은 진보와 개혁이 공존할 수 없음을 보여줬다.
(자유주의)개혁세력의 길은, 李나 昌에 붙어 ‘권력의 단 맛’을 느끼거나 아니면 신자유주의를 수용하되 완화책을 마련하는 수준의 정치를 하게 될 것이다. 그 예로 ‘좌파 신자유주의’의 유시민-“사회투자국가”나 김근태·천정배·최재천 계열의 정당이 되겠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도 ‘대통합’ 병에 들어 낫을 기미가 없어 유시민의 親盧신당이 그나마 자유주의 개혁세력의 명맥을 이을지 모른다.
지금까지 그들이 ‘정체’를 드러내길 강력하게 말해왔지만 그렇게 할 필요성도 없어졌다. 다가올 총선에서 그들의 죽음을 예견하기 때문이다. 다만, 진보는 이들과 어떻게 다른지 국민들에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필수’다. 꼭 해야 할 일이다)
떨거지로 남는(유시민 부류의) 자유주의 개혁세력은 ‘중도 개혁’을 대변하고 진보세력은 ‘중도 진보’로의 지지층 확대를 해야 한다. 그것이 지금 개혁진영, 진보진영이 할 일이다.(‘중도’는 보수 정당 지지로)
총선의 시대정신 : ‘17대 총선의 보석들을 살리자’ 기자가 위에서 말한 필수 과제들은 1~2년의 길고 굵은 작업들을 해야 한다. 다가올 이번 총선은 ‘자유주의 개혁세력의 죽음’과 ‘17대 총선의 보석들 살리기’다. 진보진영의 자산 임종인·노회찬·심상정 의원을 살리는 것이 17대 총선의 ‘보석’들을 살리는 것이다.
진보진영의 현실을 ‘후퇴’지만 최소한의 자원을 살려야 할 필요성이 있고 그 자원을 임종인·노회찬·심상정 의원으로 거론한 것이다. 이들을 선정한 기준은 17대 총선 의정활동에서 17대 총선의 시대정신을 제대로 실현하고자 했고 ‘진보’의 진면목을 보여 준 이들이었다. 이들을 잃는다면 앞으로 ‘진보’의 전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진보의 후퇴는 ‘전진을 위한 후퇴’(?) 李정권의 초기 1~2년은 가장 중요하다. 이 시기에 제대로 된 진보진영의 재구성이 있다면 충분히 국민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제대로 된 구축·대응에 실패한다면 진보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저 멀리에 있거나 없어질지도 모른다.
진보의 재구성에는 ‘개혁’진영 출신의 진보적 인사(임종인·김성호 전·현 의원)와 ‘진보’진영 출신의 진보인사(노회찬·심상정 의원)으로 이루어지는 ‘투 트랙(두 정당)’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초록진영의 급성장이 있다면 ‘쓰리 트랙’도 감안할 수 있다.
지금 진보의 후퇴가 분명 두세 발의 전진을 위한 일시적인 ‘일보 후퇴’인지 아니면 앞으로도 계속되는 후퇴인지는 李정권의 재앙 속 진보의 재구성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