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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적 시장경제의 길, 스웨덴 사민주의의 길
[논단] 세계화에도 실질적·사회경제적 민주주의 실현하는 스웨덴 모델
 
안일규   기사입력  2008/01/14 [00:25]
* 본문은 <대자보> 필진 깊은생각님의 “노무현의 ‘덫’에 걸린 이명박 시장주의”에 이어 영미식 신자유주의 개혁에 대응되는 스웨덴 사민주의 모델의 변화를 소개합니다. 본문 내용은 민주적 시장경제의 길을 제시하는 조영철 박사의 저서 <금융세계화와 한국 경제의 진로>에서 스웨덴 사민주의 모델 내용을 편집·요약하여 작성하였음을 밝힙니다. 앞으로 몇 편에 걸쳐 연재할 계획입니다.  - 기자 주

스웨덴 사민주의 모델의 변천
 
스웨덴은 빈곤문제가 심각할 정도로 가난한 나라에 속했지만 산업화가 시작된 뒤에는 풍부한 자연자원을 기반으로 급속도 발전을 했다. 산업화가 시작된 이래로 높아진 노사분규·노사갈등은 사민당이 1932년 집권하면서 노사관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으며 사민당 장기집권 아래 스웨덴 복지국가 모델의 형성과 변화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노조는 LO, 사측은 SAF라는 중앙집중적 통일조직을 확립하고 이들이 사회적 코포라티즘에 의해 거시경제 균형 달성하는 임금협약을 맺었다. 이를 통해 사민당은 안정적 경제성장을 달성하고 평등주의적 재분배를 보장했으며 복지국가를 확립했다.
 
그러나 70년대 세계경제위기를 맞으면서 스웨덴 모델의 경제적 성과가 둔화되고 탈산업화 사회를 맞이하면서 사민당의 지지기반인 노동계층이 줄고 화이트칼라층이 높아졌다. 이 결과는 노동운동의 통일성이 떨어지고 이해관계의 분화가 심화되었다. 80년대 시행된 금융자유화정책으로 부동산 거품이 불었고 90년대 초 거품붕괴로 인해 금융기관들의 부실채권이 날로 증가했다. 결국 92년 금융위기로 신자유주의 개혁을 추진했다.
 
스웨덴은 전형적인 수출의존적 소규모 개방경제로 국제경쟁력 확보가 중요함과 동시에 외부충격을 흡수할 사회복지제도의 필요성도 높다. 세계화, 고령화, 지식정보화 등의 환경변화에 적응하고 스웨덴 모델의 효율성 개선을 위해 제도개혁을 추진했지만 스웨덴 모델의 사민주의적 골격은 유지되고 있다.
 
스웨덴 사민주의 모델 특징 1. 사회적 코포라티즘
 
사회적 코포라티즘은 개인의 다양한 선호를 조정해 사회적 선택으로 연결시키는 보다 조직적이고 참여적인 조정체계로 노동과 자본은 각각을 대표하는 중앙조직(LO, SAF)을 통해 이해대립 조정과 자기 이익을 국정에 반영시키기 위해 국정 결정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국가는 이익집단에서 정책집행에 필요한 정보와 협조를 얻고 이익집단간 조정 역할과 이들의 이해관계를 국정에 반영한다. 국가와 이익집단간 참가·협의·타협의 이해조정체제로 사회적 코포라티즘에서 이익집단은 단순히 자신들만의 이익요구가 아닌 국정을 사회적 선택으로 연결하는 매게체다.
 
사민주의적 노사타협은 분배요구에 대한 노동자의 절제와 투자가 고용증대로 된다면 그 절제가 장기적으로 노동자들에게 이익임을 가정했는데 여기서 노동자는 미래소득까지 고려하며 생애 소득의 극대화를 추구하며 기업이윤은 투자로 연결되어 미래의 고용과 부가가치를 높이고 미래노동소득을 높인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현재 이윤이 자본가 소비·국외 투자·비생산적 부문에 투자와 같은 노동자의 미래소득 증대와 상관없는 방식으로 투자될 수 있다.
 
그래서 노동자가 현재 노동소득을 양보하고 자본 이윤 증대에 협조할 때 노동자의 미래소득 증대로 연결된다는 합리적 확실성이 노동자에게 보장되고 사용자 투자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과도한 임금 상승자제로 투자 수익성 전망을 보전해야 노사 타협이 가능하다. 여기서 임금과 가격안정은 노사 교섭에만 의존될 경우 임금안정이 쉽지 않기에 국가가 나서서 노사 양자 양보를 이끌며 양측을 대표하는 중앙조직을 인정하며 국정 결정과정에 참여시켜 노동시장정책·복지·경제정책에 반영하는 노사정 정치적 교환을 한다.
 
사회적 코포라티즘이 성공하려면 강력한 사용자, 노조 중앙조직과 국가가 각 구성원의 선호를 대표하며 이해관계를 정리할 수 있고 산별노조·지역노조·개별사용자들의 기회주의적 행동을 억제시켜야 한다. 시장의 불확실성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사회적 합의를 국가의 장기 프로그램으로 채택할 수 있어야 한다.
 
수출의존적 소규모 개방경제는 소수 산업부문의 특화로 이어진다. 이는 노총과 사측의 고도로 집중된 통일조직 형성과 노사정의 사회적 코포라티즘의 발전 배경이 되었다. 소규모 시장은 특정산업 충격을 흡수하기 어렵고 국가개입의 사회적 코포라티즘의 거시적 조정이 필요하다. 사회적 코포라티즘의 교섭 당사자들이 교섭결과가 국내경제에 미칠 영향을 감안해 교섭하기 때문에 외부 경제적 조건에 효율적으로 적응한다.
 
사회적 코포라티즘의 확립
 
스웨덴 노사간 사회적 코포라티즘 확립은 1906년 대타협과 1938년 기본협약으로 대표되는데 대타협의 내용에는 사용자가 노조의 단체교섭권을 인정하는 조건으로 노조는 사용자의 채용·해고·노무관리 등의 경영권을 인정했다. 32년 사민당이 집권했을 때 20%의 실업률과 노동손실일이 많았을 정도로 노사분규가 심각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파업과 직장폐쇄를 법적으로 제한하고 교섭절차에 대한 법률 개입을 검토했으며 36년 사민당 정권은 노조 활동을 이유로 한 부당해고를 규제하고 사회적 파트너의 교섭권 관련 법률을 제정했다.
 
38년 기본협약은 LO와 SAF가 사민당의 노사분쟁 해결을 위해 국가 개입을 하려는 움직임을 막기 위해 체결된 것으로 노사가 파업·직장폐쇄를 자제하고 하부조직간 분쟁 해결을 위해 각각 3인의 대표로 구성된 노동시장위원회 설치를 하며 노동시장 쟁점 협의기구를 설립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기본협약을 통해 노사 분쟁 조정 규칙과 절차 합의가 되어 노사관계는 안정화되었다.
 
52년에서 82년까지(실질적으로는 56~82년) LO, SAF는 임금인상률과 임금패턴을 중앙교섭을 통해 자율적으로 결정하였는데 실질적으로 52년이 아닌 56년부터 된 이유가 52~55년에는 하부노조가 중앙교섭을 통한 결정을 인정하지 않거나 노조원의 승인투표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는 LO(노조)가 힘이 없음을 말하며 공식적 권위가 LO보다 SAF가 높았음을 말한다. 이 기간 동안 SAF는 중앙임금협약에 반발하는 노조에 대해 직장폐쇄로 강경 대응했다.
 
국가의 경제정책위원회는 노사정 3자 대표로 구성되었으며 노사가 여러 경제정책에 참여하여 정부가 경제정책을 집행할 때는 이미 노사가 합의되었다. 스웨덴의 사회적 코포라티즘은 노사자율성 존중과 국가정책에 노사를 끌어들여 노사가 국가경제를 고려하며 임금교섭을 하도록 유도했으며 사민당과 노조는 높은 노조 조직률과 하부조직에 대한 통제력으로 노동자들이 분배 요구를 절제하고 이로 확보된 기업이윤을 사회적으로 통제하고 생산적 자본 축적을 촉진했다. LO는 임금상승을 억제하고 기업가의 경영권을 존중했으며 생산성 향상에 협조했으며 사민당은 물가 안정화, 복지제도·노동시장정책을 통해 노동력의 안정적 공급과 공공저축을 통해 기업이윤이 생산적으로 투자되도록 했다.
 
1930년대 LO의 큰 골칫거리는 매우 전투적인 건설노조로 건설업이 국제 경쟁으로부터 보호된 산업이었다. 반면 엔지니어링 산업은 숙련된 근로자를 확보하기 위해 건설업과 임금경쟁이 불가피했으나 국제경쟁에 노출되어있어 임금인상에 한계가 있었다. 사민당 또한 농민에게 재정보조금을 지급하는 대신 노동자를 위한 공동주택 공급을 확대하고 있었는데 건설노조로 인해 재정적자가 불가피했다. 이에 농민당과의 연대 유지를 위해 건설노조 임금 인상을 억제해야 했고 노동자·농민·수출산업의 3자동맹을 통해 건설노조를 LO의 통제 하에 두는 것이다. 즉, LO와 SAF의 중앙교섭체제는 수출산업부문과 내수산업부문의 이해갈등을 해결하려는 자기조절의 성격이 포함되어있다.
 
렌-마이드너 모델과 연대임금정책
 
렌-마이드너가 있는 LO연구소는 수출의존의 소규모 개방경제(스웨덴)에서 실질임금을 높이고 복지국가를 확대하려면 국제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노동자는 생산성향상에 협조하고 임금상승은 국제경쟁력 유지 범위 내로 자제하고, 노조 조직을 지속적으로 확대하여 LO의 중앙통제적 유지를 위해 가장 취약한 노조 임금을 평균 이상으로 인상하는 형태의 임금교섭 조정을 했는데 이는 저임금 노조를 노동운동 전체의 장기적 이해에 통합시키는 것이다.
 
렌-마이드너 모델은 완전고용과 저이윤, 완만한 인플레이션을 목표로 하는 긴축적 재정 정책, 저금리 금융정책, 연대임금정책,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추구한다.
 
연대임금정책은 기업이윤과 관계없이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지급하는 임금정책으로 임금상승억제를 목표로 임금과 기업 이윤의 관계를 차단했으며 부문 간·내 임금 격차를 줄였다. 노조 임금 자제가 가능했던 이유는 (복지국가 공급서비스 공급, 연금제도, 가족수당, 의료보험, 주택보조금, 질병수당 등의) 사회적 간접임금으로 직접임금의 억제 분을 보충했다.
 
연대임금정책은 생산성 높은 기업에 유리했기 때문에 효율적인 기업에는 이윤과 투자의 확대, 발전을 가져왔지만 비효율적인 기업에는 생존을 위해 효율성을 높이지 않을 수 없었고 이에 뒤떨어진 기업은 도태되었다. 그에 물가안정을 위해 흑자재정의 긴축재정정책을 도입했는데 긴축재정정책은 총수요를 억제시키고 기업이윤에 압박을 줌으로써 비효율적인 기업에는 연대임금정책과 긴축제정정책으로 도산 위기로 내몰렸다.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의 등장
 
결국 이 두 정책으로 일어난 도산과 실업 문제로 사민당이 내놓은 해결책은 바로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었다.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은 직업훈련, 공공직업소개, 이주비용, 신규고용수당, 장애인 고용수당, 기업 내 훈련비용 지원 등이며 소극적 노동시장정책은 실업급여 지급이 대표적이다.
 
스웨덴은 타 선진국보다 노동시장정책에 많은 공공지출을 하며 소극적 수단보다도 적극적 수단에서의 지출이 많았다.

(스웨덴 94~95년 : 적극적 수단 3.00 + 소극적 수단 2.54 / 독일 95년 : 적극적 수단 1.33 + 소극적 수단 2.14 / 영국 94~95년 : 적극적 수단 0.53 + 소극적 수단 1.41)
 
이와 같은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은 한계산업에서 성장산업으로 노동이동을 추진시켰고 산업구조 조정속도는 가속화되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매우 높았는데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임금유연성과 고용유연성으로 나뉘고 고용유연성은 또 기능적 유연성과 수량적 유연성으로 나뉜다. 기능적 유연성은 직무재배치 등을 통해 기업 내 고용 조정 효과를 나타내고 수량적 유연성은 (외부노동시장의 해고와 채용) 기업 간 노동이동으로 고용이 조정되는 형태이다. 연대임금에 의한 임금균등화는 부문과 부문사이의 노동이동이 활발히 일어나고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은 기업 내 훈련까지 적극 지원함으로써 기능적 유연성과 수량적 유연성을 모두 촉진시킴과 동시에 수량적 유연성이 야기하는 마찰적, 구조적 실업을 최소화했다.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 고용 가능한 노동공급을 확대하고 노동시장의 임금상승 인플레이션 압력을 완화했다면 이전보다 좀 더 폭넓은 총수요 확대정책을 쓸 수 있으며 주어진 인적 자원의 고용 가능성을 높였다. 적극적 노동시장정책도 고용을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으며 실증연구에서도 (실업급여와 같은) 소극적 수단의 지출확대는 실업률 증대를, 적극적 수단의 지출 확대가 실업률 감소를 가져왔다.
 
지식기반사회로의 신속한 이행과 고숙련에 기반한 산업구조 형성을 위해서는 국가는 노동시장의 적극적 투자 역할을 해야 하며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은 물가안정실업률 자체를 줄여 노동시장의 인플레이션 압박을 줄이며 총수요관리정책의 효과를 증진시킨다.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에 있어서 복지국가의 역할
 
복지제도의 발전은 공공부문 고용의 확대와 시간제 여성 고용의 증가를 가져왔는데 적극적으로 경제활동한 사람에게 사회보장 수혜를 높였으며 완전고용정책을 통해 실업급여 지출을 줄였다. 높은 경제활동참가는 낮은 실업률 유지를 가져왔기 때문에 높은 수준의 사회보장을 유지하면서도 장기간의 재정흑자를 낼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스웨덴은 OECD국가들보다 (민간)자본수익률이 3~5% 낮아 (이러한 기업이윤 압박은) 투자 감소로 이어지는 걸 막기 위해 크게 증대시킨 공공저축을 주택건설, 기술개발과 산업의 경쟁력 강화 투자자금으로 저리 융자시켰고 70년대 말에는 산업보조금도 지급했다.
 
이러한 저금리 정책은 높은 인플레이션이나 가계 대출 수요 증가로 저축률의 감소로 이어졌다. 이러한 상당한 금리격차 유지는 재무부가 중앙은행을 통제하고, 중앙은행은 민간은행을 철저히 통제했기 때문이다. 스웨덴모델은 공공저축을 통해 투자자금을 확보하고 중앙은행을 통해 자금흐름을 통제했지만 투자에 대한 미시적 자금배분은 민간에게 맡겼고 국가는 거시적 조정만을 맡았다.
 
스웨덴 모델의 ‘결점’
 
스웨덴은 타 유럽국가들에 비해 전쟁으로 인한 파괴가 많지 않아 수출을 하는데 있어 선점을 할 수 있었으며 그 결과 높은 성장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60년대 후반부터 스웨덴의 주력분야 조선, 철강, 제지는 국제시장에 잠식되기 시작했고 70년대 석유파동, 한국-일본-대만으로 이어지는 신흥국가들의 추격으로 스웨덴 경제는 침체되고 스웨덴모델의 근본까지 흔들리지 시작했다.
 
노동조직에서 스웨덴모델의 핵심은 테일러주의로 (38년 기본협약으로) 사용자는 자유롭게 노동과정을 조직할 수 있으며 연대임금을 통해 기업의 이윤이 높더라도 직무 수준이 낮으면 기업은 낮은 수준의 표준임금을 지급할 수 있었기에 기업은 임금비용을 줄이기 위해 (테일러주의 촉진) 업무의 범위를 협소화시켰고 직무 수준을 낮추기 위해 노동을 파편화시켰다.
 
스웨덴은 5~60년대 포드주의적 대량생산방식으로 인적자본에 대한 기업 내 훈련투자의 중요도가 높지 않아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은 외부노동시장의 인력조정을 통해 신속한 구조조정과 생산효율성을 유지했으며 사회복지제도가 노동자의 손실을 보상해줬기에 노조 역시 구조조정에 대해 협조적이었다.
 
그러나 테일러주의는 노동 소외 심화로 노동자의 불만과 저항을 자본이 효과적으로 통제해야 했는데 구체적인 통제방법은 임금 인센티브와 감독 강화였다. 감독강화는 스웨덴 생산감독자들이 대부분 노조원이라 한계가 있었고 상대적으로 고임금 지급은 연대임금정책으로 인해 막혀버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완전고용은 자본의 노동통제력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테일러주의에 대한 스웨덴 노동자들의 불만으로 60년대 말부터 노동자의 결근율과 이직률은 상당히 높아졌다.(80년, 스웨덴 이직률 25%, 영국 2.5%-일레트로룩스)사회보장은 스웨덴이 훨씬 좋으나 노동규율 상태는 영국이 훨씬 좋음을 보여준다. 포드주의 생산방식은 인적자본 투자가 많지 않았으나 고장설비 투자가 컸기 때문에 노동자 태만·이직은 상당한 기업 손실로 이어졌다.
 
노동통제 한계로 인해 사용자들은 근로의욕 증가 방안을 찾았고 사용자 측의 주도로 이윤분배나 종업원 자본참가제도가 확산되었다. 노동자 측은 연대임금정책 훼손과 사용자 권력 강화임을 내세워 반대했다. 대기업들은 (직무재배치, 직무확대) 작업조직 개편과 성과 보상방식 도입을 통해 노동자들의 불만을 완화하고 근로의욕을 높이려했고 노조는 작업장 개혁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려 했다.
 
1973년 종업원대표 이사회 참가법, 1974년 사용자 해고 및 채용권한 대폭 제한한 <고용안정법>이 제정되었지만 사용자의 해고권한에 대한 규제 정도와 노동자의 고용보장 정도가 OECD 국가들보다 높은 건 아니며 스웨덴의 고용안정은 사용자 해고권한 규제보다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에 의해서다.
 
1976년에 제정된 공동결정법은 노동조직 문제를 경영자들의 소유에서 단체교섭 대상으로 바뀌었으며 산업민주주의 입법은 작업장 노동 소외 해결과 노동생산성 향상이 아닌 고용과 해고 문제 협의로 되었다.
 
대기업으로의 집중 심화
 
스웨덴은 대기업에 대한 경제력 집중이 높은 나라로 국제경쟁 생존을 위해 기업규모 확대가 필요했다. 사민당은 연대임금정책과 완전고용 달성을 위해 자본축적 촉진 정책을 도입했다. 소득분배가 균등한 대표적인 나라로 연대임금·누진세·사회보장제도의 재분배 기능을 통해 소득분배구조를 평등화했지만 자산소유구조는 불평등했다. 자산소유구조가 불평등함에도 불구하고 소득분배구조가 평등한 것은 투자로 연결되는 자본이 아니라 소비로 연결되는 소득에 있었고 임금소득자 계층 내 소득분배는 매우 균등했다.
 
스웨덴은 연대임금정책 결과 대기업일수록 초과이윤을 많이 냈고 공공저축에 의한 저리융자까지 겹쳐 자기자본 조달이 아닌 타인자본에 의한 투자자금 마련했으며 차등의결권 허용·피라미드소유 발달이 겹쳐 대기업의 소유집중이 심화되었다. 스웨덴모델은 기존 대기업의 소유집중 심화를 가져오면서 새로운 대기업의 등장은 막았다. (스웨덴 50대 기업 중 70년 이후 설립기업은 0개)
 
<금융세계화와 한국 경제의 진로>를 집필한 조영철 박사는 이에 대해 “투자자금을 주식발행이 아닌 내부유보와 주거래은행 차입에 의존하는 스웨덴은 신규기업이 투자자금을 조달하는데 불리했다는 것이다”라고 분석한다.
 
신자유주의로의 개혁
 
76년 사민당 총선 패배 후 젊은 사민주의 지식인들이 사민당 정책을 입안하는데 이들은 노조와 관련이 없고 미국 신고전파 경제학이 배경이었다. 80년대 영·미가 금융자유화 정책을 추진하고 급속한 세계화 속에 이들은 기업이윤 증대로 경제성장의 추진력을 찾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주장한다. 정책노선을 (저금리 규제를 대표로 한) 기존 금융억압에서 금융자유화, 통화주의 정책으로 자본자유화까지 이뤄졌다. 자본자유화로 국외자본의 급속한 유입은 노사타협의 근본을 흔들었다.(스웨덴의 노사타협은 앞에서도 언급되었듯 국내투자 전략에 기초되어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렌-마이드너 모델은 거대 수출기업을 거대 초국가적 기업으로 키웠으며 연대임금과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통해 실시해왔던 산업구조조정은 수출산업 육성과 내수산업 쇠퇴를 가져왔다. 쇠퇴된 내수산업은 해당 분야의 수입 증대로 이어졌다.
 
거대 수출기업이 다국적 기업으로 변하면서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많은 고용을 했으며 수출 비중의 증가는 이들의 내수부양정책에 대한 부정적 시각과 복지제도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가지게 된다.
 
노조의 분화와 중앙교섭체제의 해체
 
공공부문과 하이트칼라 수 증가는 LO와 SAF의 중앙교섭에 양극체제를, 74년 민간부문 화이트칼라노조교섭카르텔(PTK)가 LO와는 별도로 SAF와 중앙교섭 시작으로 중앙교섭체제는 다극화되었다. 공공부문은 상위-하위임금계층으로 대립되고 LO, TCO 소속의 공공노조는 저임금 근로자, 대졸 전문직 노조 SACO는 공공의 상위임금계층(전문직)을 대변한다.
 
공공부문 노조들도 고용규모 증대로 공공부문 내 저임금근로자들의 실질적 처우개선을 요구했으며 여성 시간제 저임금 근로자들이 임금투쟁에 적극적이어서 이들의 요구를 수용하여 전투적으로 임금협상을 했다. 사민당 정부는 연대임금 지지입장으로 민간부문에서 결정된 임금인상을 공공부문에 그대로 적용하는 편이었다. 화이트칼라노조교섭카르텔(PTK)은 규모가 커지자 교섭의 자율성·독자성으로 육체노동자들의 임금인상만큼 보장받으려 했으며 민간부문에서 공공부문 노조의 임금상승 주도로 스웨덴 경제의 경쟁력이 저하되었다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민간부문과 공공부문 노조 경쟁은 LO의 지도력 약화를 가져왔고 84년 SAF가 중앙교섭을 안한다는 선언과 여러 노조들의 독자적 교섭으로 이어졌다. 결국 85년 정부는 임금교섭에 개입하여 임금자제를 유도하는 소득정책을 쓰게 된다.
 
신기술 도입에 의한 생산방식 변화는 노동력 구성에 변화를 줬는데 숙련노동자들이 신기술을 통해 화이트칼라 영역에 참여했고, LO 산하 노조 임금 상승 억제로 금속노조의 숙련노동자들은 화이트칼라와 비슷한 일을 하지만 임금은 더 낮아져 금속노조에서 TCO 산하 사무·기술직노조로 넘어가게 된다. 이탈을 막기 위해 금속노조는 임금격차 확대를 인정하려하고 LO는 축소를 요구한다. 결국 83년 엔지니어링 사용자단체(VF)가 중앙협약보다 높은 임금인상액 제시와 함께 독자적 임금협약 제시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LO 비중 감소는 중앙교섭의 LO-SAF의 약화를 가져왔고 민간-공공 노조 임금상승 경쟁에 LO는 공공부문 임금 상승 억제력이 거의 없어졌다. 결국 화이트칼라와 육체노동자, 민간-공공부문 분리는 중앙교섭체제 붕괴 요인 중 하나였다.
 
1993년 스웨덴 사용자연맹(SAF)가 일반적 고용조건은 산업 단위에서 교섭, 임금은 기업 단위에서 교섭하자고 주장한다. SAF는 이를 통해 노동자 개인에 보상하는 임금체제, 기업단위 노사관계로의 변화를 통해 노조를 약화시키려 했으며 VF의 주도기업들(수출대기업)은 기업 단위에서 화이트칼라+ 육체노동자의 단일 교섭을 하려 했다. 그러나 원자재·내수산업의 HAO와 중소기업들은 반대했고 엔지니어링 사용자단체(VF)와 금속노조가 빠진 상태에서 중앙교섭은 유지할수 없었고 결국 스웨덴 중앙교섭체제는 해체와 함께 산업별 교섭체제로 전환되었다.
 
재정적자와 공공부문 개혁
 
1978년 이후 재정적자 심화로 복지국가에 대한 비판이 일어났다. 공공부문의 비대해짐과 복지제도가 지나치게 확대되면서 자원이 비효율적으로 배분되고 스웨덴 경제의 비효율성을 증대시켰다는 주장이 일어났다. 실제로 스웨덴은 현금급여 중심의 복지제도인 독일(86년 공공부문이 전체고용의 15.8%)에 비해 스웨덴은 36.6%였다. 스웨덴의 공공부문이 큰 이유는 현금급여 중심이 아니라 공공서비스 공급에 중점을 뒀기 때문이다.
 
공공부문의 고용확대는 공공부문 노조의 권력 강화로 이어졌고 66년 이후 주요 분규의 다수가 공공부문이었다. 연대임금정책이 비효율적 경제부문을 도태시키는 것이었지만 민간부문과 달리 공공부문의 비효율적 기업은 도태되지 않았다. 스웨덴 재정적자 문제는 공공부문 노사관계와 연결되는 것이다.
 
82년 사민당 재집권 이후 재정적자와 사회복지의 비효율 문제 해결을 위해 복지지출 억제와 일부 복지를 지방정부로 이전하는 정책을 추진한다.(이 당시 지방정부는 흑자였다) 공공부문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공공부문 임금교섭의 분권화를 촉진했으며 임금결정은 지방정부와 지역노조 대표에 의해 결정되고 지방정부는 임금률 결정에서 상당한 유연성을 가졌고 공공부문 사용자(정부)는 공공부문 임금을 조직의 성과와 연계시켜 공공부문의 효율성을 높였고 80년대 후반부터 개인별 임금차등화가 공공부문에서도 점차 시행되었다.
 
90년대부터 공공부문 근로자들의 실질임금 상승이 ‘정체’상태인데 이는 분권화를 했지만 정부가 임금 억제를 위해 개입하기 때문이다.(예산지출은 중앙정부가 통제한다는 것) 새로운 임금체계 도입은 사용자가 임금수준을 결정하고 노동자를 해고하며 성과에 따라 보상하는 ‘유연성’ 확보에 성공했고 이러한 개혁은 ‘유능한’ 인력 확보로 이어진다. (해고가 되더라도 적극적인 노동시장정책이 있다)
 
금융위기 이후 ‘개혁’된 스웨덴 사민주의 모델
 
스웨덴 금융위기의 주원인은 80년대 금융자유화·자본자유화 정책으로 생긴 부동산 거품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으며 인플레이션 심화와 재정적자에 대응하기 위해 긴축적인 재정·통화정책으로의 변경, 수출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거시경제정책의 실수 등이었다. 91년 우파 연립정부가 집권해 급진적 신자유주의 개혁을 하자 국민들은 다시 94년 사민당 정부의 재집권을 만들었다.
 
사민당 정부는 재정적자를 줄이려 강력한 긴축정책을 추진했고 사회복지부문에서는 수급자격 조건 강화하고 급여 수준도 축소했다. 재정적자 해결에는 공공부문 효율성 개선과 임금비용을 줄이는 것이었다. 공공서비스는 소비자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 강조, 공공지출 예산 삭감을 했으며 민간부문 임금협약에 앞서 미리 공공부문의 임금상한선을 결정했다. 이러한 긴축정책 결과 98년 재정수지 흑자를 달성했고 지금까지 재정건전성을 유지하고 있다.
 
정보통신산업의 급성장은 스웨덴 경제 활성화의 핵심인데 긴축재정 기간에도 이들에 대한 지원은 줄이지 않았으며 적극적인 육성 전략을 추진했다. 80년대까지 중소기업 창업이 활발하지 못한 건 스웨덴모델의 심각한 약점이었으나 지금은 모험자본의 활성화로 벤처기업 창업이 활성화되었다.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은 정보통신산업이 필요로 하는 새로운 숙련인력을 공급하고 노사안정을 위한 고신뢰·고숙련 조직관리 변화는 스웨덴 기업들이 지식기반경제 적응에 도움을 줬다.
 
금융위기 이후 스웨덴 역시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실행했으나 모델 근본까지 해체하고 영미식 신자유주의 모델로 간 것이 아니며 노조 역시 86년부터 복지개혁에 동의해왔다. 금융위기 이후 스웨덴모델을 지키고 지속하는데 초점을 둔 개혁으로 아직도 보편적 복지제도로 유지되고 있다.
 
경제위기 극복 후 상당부분의 복지는 원래 수준으로 회복되었고(GDP대비 공공사회지출 비중은 90년대 초 금융위기로 급속히 증가해 93년 36.2%->복지제도 개혁조치 00년 28.8%->다시 공공사회지출 비중 증가 03년 31.3%) 2006년 총선에서 승리한 중도우파 연립정권 또한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아닌 복지 효율 개혁이며 사민주의 복지국가 근본을 뒤흔드는 게 아니다.
 
영미모델과 달리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 여전히 활발하게 작동되고 있고 소득분배도 가장 평등하며 노조 조직률과 사회복지지출 비중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차지하고 있다. 타 유럽국가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높은 경제성장률과 좋은 노동시장 성과는 복지국가로의 지속가능성을 보여주며 조영철 박사는 자유 시장경제에 비해 훨씬 더 높은 실질적 민주주의와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마지막으로 조영철 박사는 “스웨덴은 경제개방으로 세계화의 물결을 활용하면서도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으로 노동시장 유연성과 고용안정을 동시에 달성하는 유연안정성의 모범을 제시함으로써 성장과 평등을 동시에 달성하는 동반성장 모델의 전형”이라 말한다.
참고·편집·요약 문헌

<금융세계화와 한국 경제의 진로> 조영철 저
中 세계화와 스웨덴 사민주의 모델의 변화(p.186~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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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01/14 [00:2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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