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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지 Vs 이운재 … 엇갈린 운명의 승자는?
'음주파문' 이운재 탈락, 김병지 발탁…김병지 선수 재기여부 이목 집중
 
김병윤   기사입력  2008/01/07 [17:53]
6년만에 외국인지도자에게 바통을 이어받은 허정무 대표팀 감독이, 4일 예비엔트리 50명을 발표하면서 운명이 뒤바뀐 선수가 적지 않아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 중 김병지와 이운재는 대표적인 선수로 김병지는 1970년 만38세, 이운재는 1973년 만35세로, 골키퍼라는 특수한 포지션과 두 선수 모두 철저한 자기관리로 선수 생활을 계속 이어가고 있어 과연 이들의 은퇴는 언제 이루어질까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김병지는 이운재와 같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 철저한 무명 출신이다. 부산 소년의집(현: 알로이시오전자기계고등학교) - 상무를 거쳐, 1992년 울산 현대에 입단 비로소 자신의 이름 석자를 각인시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운재는 이미 청주상고(현: 대성고등학교) 재학시절 전국대회 3회 우승을 거머쥐며 스타덤에 올라섰고, 경희대학교에 진학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1993년 유니버시아드, 1994년 미국월드컵,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대표로 진가를 발휘하며 탄탄대로의 길을 걸었다.
 
제1라운드 김병지 vs 이운재
 
김병지와 이운재가 사이좋게 태극마크를 달고 한솥밥을 먹은 것은 1999년 코리아컵국제축구대회가 처음이다.
 
김병지와 이운재는 이때부터 필연의 라이벌로 자리매김 했지만 사실상 1995년 코리아컵국제축구대회 때부터, 김병지는 이운재를 뛰어넘는 활약을 펼치며 1996년 아시안컵, 1998년 프랑스월드컵 및 아시안게임 대표로 잇달아 선발되며 국내최고 수문장으로 군림했다.
 
▲ 김병지 골기퍼가 그간 부동의 대표팀 주전 골키퍼로 군림해온 이운재 선수를 제치고 허정무 감독의 부름을 받았다. 이로써 지난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에도 태극마크를 달지 못했던 김 선수의 재기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 FC서울 홈페이지

제2라운드 김병지 vs 이운재

거스 히딩크 감독은 김병지와 이운재의 운명을 갈라놓은 주인공으로 손꼽힌다. 2001년 한국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한 거스 히딩크 감독은 2001년5월 개최된, 컨페더레이션스컵대표로 이운재를 선발 김병지, 이운재의 제2 라이벌 전에 불을 지폈다.
 
그러나 2002년2월 미국에서 개최됐던 북. 중미골드컵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은 김병지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았고, 결국 2002한. 일월드컵에서 주전 골키퍼 자리를 이운재에게 내줬다. 이운재는 김병지가 떠난 대표팀 골문의 터주대감이었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2004년 아시안컵, 2006년 독일월드컵, 2007년 아시안컵 등 대표팀 골문은 모두 이운재 차지였다. 그 시간속에서 김병지는 2002년11월 브라질과의 평가전을 끝으로 테극미크와 직별을 고하고 K리그 레전드로 만족해야 했다.
 
제3라운드 김병지 vs 이운재
 
김병지, 이운재의 제3라운드는 싱겁게 끝났다. 결과는 2007년 아시안컵 도중 이운재의 음주사건이다. 대표선수로서 도저히 용납 될 수 없는 행동이었기에 이운재에게, 대표선수 자격정지 1년, 대한축구협회 주관 경기출전 3년, 사회봉사 80시간 이라는 징계가 내려졌다.
 
허정무 감독은 예비엔트리 50명을 발표하며 대표선수로서의 애국심과 사명감, 책임감을 누누이 강조했다. 이운재는 결국 이의 희생양으로 남았다.
 
자신이 쌓아놓은 명성에 스스로 찬물을 끼얹는 행위를 한 이운재 만35세라는 나이는 축구선수에게 결코 적지 않은 나이다.
 
이운재가 김병지처럼 38세라는 나이까지 태극마크에 대한 가능성을 현실로 승화시킬 수 있을는지? 그에대한 답은 오직 이운재 자신의 노력, 의지다.
 
▲ 아시안컵 음주 파문으로 징계를 받은 이운재 선수는 결국 국가대표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 대한축구협회

김병지는 예비엔트리에 포함된 것을 "나름대로 열심히 한 것이 인정을 받은 것 같아 기쁘다."라고 말했다.
 
축구에 대한 간절한 열망 하나로 피와 땀을 수없이 뿌렸던 김병지는 결국 값진 태극마크를 일궈냈고,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과 철저한 몸 관리, 성실함, 긍정적 사고방식으로 또 다시 제3의 축구 인생에 꽃을 피우려하고 있다.
 
거스 히딩크 감독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한 채  태극마크와 인연을 끊었던 김병지가, 6년만에 다시 태극마크를 달 기회를 잡은 것은 분명 의외다. 그러나 김병지의 꿈 실현은 전적으로 허정무 감독 선택에 달려있다.
 
김병지, 이운재의 또 다른 선택
 
김병지와 이운재는 각기 다른 특징을 가지고 대표팀 골문을 지켰다. 김병지가 순발력과 과감성으로 승부를 걸었다면 이운재는 침착성과 판단력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그 과정에서 대표팀 골문은 어느때보다 안정성이 있었고 믿음직스러웠다. 이제 김병지와 이운재의 명. 암은 극명하게 엇갈리며 나름대로의 길을 가게 됐다.
 
한편으로는 김병지의 예비 엔트리 포함에 부정적인 의견도 없지 않다. 여기에는 이운재도 포함된다. 이유는 제2, 3 김병지, 이운재 육성에 걸림돌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약15년여 동안(1992 ~ 2007년) 대표팀 수문장은 이운재와 김병지가 번갈아 도맡아 왔다. 이 같은 현실로 대표팀 골문은 취약한 상태에 빠져있다.
 
현재 김용대(29 성남 일화), 김영광(25 울산 현대), 정성룡(23 포항 스틸러스) 등이 태극마크를 이어 달고, 김병지와 이운재의 뒤를 잇고 있지만 경험면에서 취약성을 띄고 있다. 그렇다면 김병지와 이운재는 용단을 내려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것은 바로 태극마크에 대한 개인적 소망을 버리고 후배에게 기회에 의한 발전을 모색해 주는 지렛대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진정 취약한 대표팀 골키퍼 포지션을 위하여 김병지와 이운재가 해야할 일임에 분명하다.
 
- 선수 상호간 선의의 라이벌은 기량향상의 촉매가 될 수 있습니다. -
전 군산제일고등학교축구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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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01/07 [17:5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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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객2 2008/01/08 [02:32] 수정 | 삭제
  • 1. "허정무 감독은 예비엔트리 50명을 발표하며 대표선수로서의 애국심과 사명감, 책임감을 누누이 강조했다. 이운재는 결국 이의 희생양으로 남았다." => "희생양"이란 단어를 이럴 때 쓰나요? 자신의 과오로 인해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결과였는데...

    2. 전체를 위하는 관점에서 노장 선수들의 은퇴를 촉구하는 듯한 대의명분론적 글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선수 생활의 화려한 대미를 장식하며,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으며 은퇴했던 이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선수 생활의 전력은 그네들의 다음 단계를 위한 자양분이 되고 기초 이력서가 되는 법. 허정무, 차범근, 홍명보 등의 예에서 보듯 말입니다. 님의 주장대로라면, 특히 김병지의 경우에는 그저 영원한 2인자, 불운의 천재(?) 정도로 남으라는 말씀? 오~ No, no! 아니죠, 그래선 안 되죠. 저 나이까지 자신을 유지하며 경쟁 체제 속에서 남아있을 수 있다는 것도 하나의 능력입니다. 프로의 세계에서 우리는 다만 그 능력을 존중할 뿐 아닙니까? 노장 선수들의 은퇴가 곧 노련하고 역량있는 차세대 수문장의 등장을 보장할까요? 무한 경쟁은 이미 굳어진 체제 아니겠습니까? 단순히 밀어내기식 신진의 육성이라면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만일 저 선수들이 저 나이까지 버티고(?) 있었던 것이 기득권 체제의 문제에 기인하는 것이라면, 그 체제를 고쳐야겠죠. 하지만 저 노장의 선수들을 지금껏 넘어서지 못한 후배들의 문제점 역시 고려되어야 할 겁니다. 세대의 대물림에 世(年)는 물론 중요한 요소이지만, 때론 代가 끊기기도 한답니다. 안타깝지만 그것이 자연의 순리 아닐까요? 다음 세대는 때론 그렇게 준비되기도 한다는 것.

    3. 대자보의 글들이 난리 중에 급하게 업로드 하는 것이 아니라면, 제발 문장좀 다듬어서 올리시길 바랍니다. (아, 참! '대자보'가 원래 좀 그런 면이 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