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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한국선 '허스토리'가 이른 것인가"
[광화문단상] 신사임당 선정, 양성평등 승리인가 가부장주의의 잔재인가
 
최방식   기사입력  2007/11/06 [15:28]
“헌법 서문에 따르면 ‘우리 미합중국 국민은 정의를 확립하고... 후손들에게 자유의 축복을 확보하기 위해 헌법을 제정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미국 연합을 만든 모든 사람, 즉 남성은 물론 여성을 포함한 것입니다. ‘자유의 축복’ 역시 여성과 여자 후손에게도 주어져야 합니다. 여자도 사람입니까? 여자도 시민입니다? 그렇다면 여성에 대한 어떤 차별도 무효입니다.”

1863 미국여성애국동맹을 결성하고 노예제 폐지와 여성참정권운동을 이끌었던 수잔 앤서니(Susan B. Anthony)가 1872년 한 말입니다. 그해 11월 5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 때 여성으로서 처음으로 투표에 참여하겠다고 시위를 벌이다가 불구속기소를 당한 뒤 전국을 순회하며 항의시위장에서 외친 소리죠.

수잔은 참정권 투쟁으로 100달러 벌금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물론 그녀는 납입 거부를 선언했고요. 검사는 추가 기소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48년이 흐른 1920년. 미국은 헌법 19조를 수정, 여성 참정권을 보장하는 ‘수잔 앤서니 수정헌법’을 만들었습니다.

‘수잔 앤서니 수정헌법’과 1달러 동전

▲ 5만원권 초상인물로 선정된 신사임당. 
여성의 평등한 참정권을 찾는 데 앞장섰던 수잔 앤서니는 다시 한 번 59년 뒤 미국인들의 관심을 끕니다. 1979년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화폐에 등장했으니까요. 1달러짜리 동전의 모델로 채택된 겁니다. 2년 뒤 바뀌고 말았습니다만 수잔이 또 한 번의 미국 여성운동 역사를 쓴 것입니다.

한국은행이 5일 한국 역사를 새로 쓴 발표를 했습니다. 2009년 상반기 발행예정인 5만원권 지폐 모델로 신사임당을 선정했다고 밝혔기 때문입니다. 고액권이 2종류가 신설되는데 10만원권에는 백범 김구 선생을 싣기로 확정했습니다.

한은은 신사임당을 선정한 이유로 우리 사회의 양성 평등의식 제고와 여성의 사회참여 긍정적으로 기여하고 문화를 중시하는 시대정신을 반영했다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교육과 가정의 중요성을 환기하는 효과가 기대된다고 덧붙였습니다.

한은은 고액권 초상인물 선정을 위해 올해 5월부터 각계 인사 10여명으로 화폐도안자문위를 구성하고 후보인물 2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 의견조사, 위원회논의를 거쳐 10명으로 압축했고, 다시 의견수렴, 정부측과 협의를 바탕으로 최종 2인을 확정했다고 부연설명을 했습니다.

한데, 한은은 이날 발표를 하면서 왠지 궁색한 해명을 하는 듯 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알고 보니 여성모델이 논란거리였죠. 여성계에서는 광범위하게 여성권익 향상에 앞장선 상징적 인물을 선정하라고 요구했지만 한은은 이를 무시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여성이 처음으로 화폐 모델이 된 것만이라도 고맙게 알라는 투였습니다.

양성평등과 신사임당 선정의 모순

▲ 여성계가 고액권 화폐 초상인물로 요구한 김만덕. 정조 때 여성으로 대성한 여성사업가다. 드라마 '대장금'에도 등장했다. 
당국과 협의라는 것도 알고 보니 여성가족부가 주도한 것으로 보입니다. 여성계가 요구한 양성평등 역할 모델에 대해 긍정적 여론이 일지 않자 둘 중 하나를 여성으로 관철시키고자 ‘화폐 여성할당제’를 촉구하며 당국과 여론주도층이 선호하는 신사임당을 밀었던 모양입니다.

그렇담 여성계 요구는 뭐였을까요? 화폐 모델논란이 한창이던 때 여성계 안에서는 ‘여성인물을 화폐에!’라는 단체를 만들고 5명의 모델을 추천했습니다. 한국 최초의 여성사업가이자 드라마 ‘대장금’에서 유명해진 ‘김만덕’(정조 때 인물), 독립운동으로 유명한 한국의 잔다르크 유관순, 한국 여성정치의 시조격인 신라 선덕여왕, 여성해방운동의 대모 이태영, 조선시대 페미니스트 허난설헌, 여성 독립운동가 김마리아가 주인공.

여성계는 하지만 여성인물로 가장 잘 알려진 신사임당은 제외시켰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죠. 가부장 사회가 선택한 선모양처 모델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녀가 훌륭하지 않다는 건 아니었죠. 따라서 여성가족부의 움직임에 대해 반박하며 여성들의 여론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했습니다.

하여튼 한국의 여성운동이 또 하나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요구가 모두 수용되지는 않았지만 여성이 최초로 화폐에 등장한 건 분명 성과죠. 이웃 일본서도 작년 처음으로 여성 모델이 5천엔권에 등장했습니다. 메이지시대 여류소설가 히구치 이치요죠. 프랑스에선 마리 퀴리, 이탈리아에선 의학(교육)자 몬테소리가 그 시초랍니다.

한은·여성가족부는 가부장주의 세력?

물론 한국에서 화폐에 여성이 등장한 건 처음은 아닙니다. 1962년 박정희 쿠데타 정권은 백환권에 저축통장을 들고 있는 모자상(특정 인물 아닌)을 넣었었죠. 한 달도 안 돼 없던 일로 돼버리고 말았지만 말입니다. 그 취지 또한 불손합니다. 쿠데타 뒤 정통성 없는 국자정책을 홍보할 취지로 저축을 장려하려고 한 것인데 그나마 취소된 것이었죠.

화폐는 현대인의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삶의 중심 중 하나입니다. 따라서 그곳에 등장하는 모델은 그 시대(나라)가 내세우고 싶어 하는 인물과 사상을 대표하는 것이죠. 한국에서는 세종대왕, 율곡, 퇴계, 학, 벼, 문화재 등이 사용됐고 여성은 없었습니다. 양성평등 사상이 크게 확산됐으니 화폐에 여성이 등장할 때가 된 건 확실하고 축하해야 마땅하겠죠.

하지만 왜 정부는 사상 처음으로 화폐에 여성을 등장시키며 여성계의 진취적 요구를 거부한 것일까요? 여성계의 요구가 지나친 것일까요? 여성가족부를 포함한 당국의 결정이 합리적인 것일까요, 아니면 권위주의를 앞세운 가부장주의에 불과한 것일까요? ‘히(He)스토리’ 뿐인 한국에서 아직도 ‘허(Her)스토리’는 이른 것일까요?
* 평화를 사랑하는 최방식 기자의 길거리통신. 광장에서 쏘는 현장 보도. 그리고 가슴 따뜻한 시선과 글... <인터넷저널> (www.injournal.net) 편집국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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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11/06 [15:2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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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ㄹㄹ 2007/11/08 [11:59] 수정 | 삭제
  • 그 시대에 살았던 사임당이 당연히 그럼 가부장적 체제하의 사람이지 어떻게 아닐 수가 있다는 건가. 유관순은 거기에서 자유로운가.
    그게 이유가 되냐.

    그럼 화폐인물에 여성단체 페미 얼굴이라도 집어넣자는 거냐.

  • 잠깐 2007/11/07 [21:00] 수정 | 삭제

  • 신사임당이 지폐에 붙어 민폐끼치게 된 것은 이런 저런 말 더 할 것도 없이 분명하게 통탄스러울 가부장주의적 사태이다.

    그러나 그것을 논하는 이 글의 제목 또한 부적절하기 이를데 없다.
    아마 그것이 지폐에 '아들내미 잘 둔 엄마/과열 사교육의 선조' 신사임당이 박혀 나오는 사태를 막을 수 없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허스토리Herstory'라니, 지금 장난하나??
    'Herstory'라는 말 은 이를테면 영어권의 단어 'History'에 대한 여성주의적 비판을 담은 말이다. 그런데 한국말에서 역사를 '남정네의 스토리'라고 쓰던가?
    비슷한 사례 하나 더, 이를테면 여성주의자들이 하던 이야기 중에는 '성별화 되지 않은 추상적,보편적 휴머니즘에 대한 비판' 같은 주장도 있다. 내용은 물론 일정한 합리성이 있다. 그러나 그 역시 '인간'이 'man/men'으로 지칭되는 유럽어 문화권이 실제 배경이 된다. 그 배경 속에서 'women'이 'men'의 보편적 권리라는 말에 대해 '성별화 되지 않은 추상적 인간주의와 인권에 대한 비판'을 말하는 것은 아주 상식적이다.
    하지만, '남자-여자-사람'이라는 어법을 가진 사회에서 '추상적/보편적 인간주의와 인권'을 비판하는 건 한참 들은 다음에도 '부분적으로 옳은 지적도 있지만'일 뿐이다.

    신사임당이 지폐에 얼굴을 들이밀어서는 안될 이유는 충분하고 남는다.
    막말로, 신사임당이 한명의 인간, 한명의 개인 자신으로서 당대의 사회에 대해, 공적으로 기여 한 것이 대체 무엇인가? 그리고 이 시대에 신사임당이 전할 메시지는 '사교육 열심히 시켜 아들내미 출세시키라'는 이야기 밖에 안된다고 말해도 전혀 지나치지 않는다. 당연히, 여자의 낯짝이 돈에 박힌다고 여성의 사회적 위치가 어쩌고 할 이야기가 전혀 못된다.
    초등학교 역사책만 뒤져도 여왕도 있었고, 여성 애국지사도 나온다. 그걸 다 제치고 '아들네미 덕으로 지폐에 오르는 것'이 '강남 엄마들'이 전위대뛰는 사교육 열풍으로 망조가 드는 나라답다고나 할까.

    그러나, 그 사태를 마주하고 기껏 생각난다는 것이 '허스토리'라는 단어라면 먼저 할 일은 글쓴이의 뇌세포를 귀국시키는 일이다.
    '페미니즘'의 번역어'여성주의'가 사회적 상식 비슷한 것이 된지도 10년을 넘는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 '신여성'과 일부 교양계층 남성의 호사를 장식하는 번역어의 신세를 정말 벗어났는가?
    아예 번역조차 불가능한 '허스토리'라는 단어를 상대하며 들 수 밖에 없는 생각이다.
    어디에서나 사회적 상태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이들은 '작업대상'이 되는 사회에 대한 '역사적 지리적 구체성'을 인식한 가운데 피아를 식별하고 스스로를 설명할 방법을 다시 창안해야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것에 앞서, 적어도 '한국말'은 되어야 할 것 아닌가?
    재주있으면 'Herstory허스토리'를 번역 한 번 해 보라?

    적어도 동아시아에서는 사람이 있고 여성과 남성이 있다고 되어 있다. 언어부터 '남성-인간'과 '모자른 남성-모자른 인간'이 있는게 아니다. 역사는 지내온 사연이지, 남정네의 스토리가 아니다.
    물론 가부장제는 여기서도 차고 넘친다. 그러나 차이는 여기에서는 가부장제를 비판하기 위해 '인간이라는 허구적, 추상적 보편성'을 덤으로 비판할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유럽어권에서 인간의 보편은 곧 '남성'이지만, 여기에서 사람의 보편은 적어도 명목상으로는 성별에 앞서는 무엇이다. 가부장제와 차별은 어디에서나 곧잘 문화의 외양을 뒤집어쓰고 작동한다. 그런데 가부장제와 차별을 해체하겠다는 사람들이 자기 해체대상이 존재하는 구체적 맥락조차 파악하려 하지 않고서 무엇이 가능할까?

    외국어 페미니즘과 그 번역어인 여성주의가 여전히 교양의 대상 정도를 넘지 않는다면, 그것은 처음부터 구체적 상황속에 쓸 수 있는 물건으로 재창조 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때문에 페미니즘은 진부해질 정도의 통속어가 되어도, 국가의 공식 지폐에서 떡하니 '여성인물'을 이유로 '신사임당'이라는 여성의 인간적 권리에 대한 상징적 테러가 자행되는 것이 막아지지 못하는 것 아니겠는가?
    (*신사임당에 대한 재해석이니 재평가니 하는 것은 '절대사절'이다. 대중적 역사-아이콘 신사임당의 의미는 스콜라적 재해독으로 바뀔 수 없는 정치적 문제에 해당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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