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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트루만쇼'는 스포츠신문이 연출한다
서세원씨의 '조폭마누라', 스포츠신문의 진실과 위선
 
양문석   기사입력  2003/05/14 [18:17]
서세원. 한국에서 유명한 개그맨 중 한 사람이며 영화제작자다. 그런 그가 자신이 제작한 영화홍보를 위해서 방송PD 등 관계자들에게 수천만원의 돈을 건넨 혐의가 불거지자 해외로 도피행각을 시작했고, 약 10개월만인 지난 4월30일 귀국했다.

이미 귀국 1주일을 전후 스포츠신문들이 서씨의 중병설을 거듭 보도해 침대차에 실려 나오는 서씨의 입국장면은 어쩌면 자연스런 광경이었다. 하지만 많은 카메라 불빛들과 마이크를 들고 가이드라인을 뛰어드는 취재경쟁으로 인해 입국장은 거의 난장판이 되었다. 텔레비전으로 이를 지켜보던 국민들은 언론의 취재태도에 눈살을 찌푸릴만했다. 아무리 범죄혐의자이지만 앉지도 걷지도 못하여 누워서 들어오는 환자에게 마이크를 갖다대며 질문공세를 펼치는 기자들을 보며 서씨에게 동정 어린 눈길을 보낼만한 장면이었다.

한데 이것은 서씨의 대국민사기극이고, 또 스포츠신문의 서씨 중병설은 조작보도일 가능성이 높다는 문제제기가 있다. 지난 9일 금요일 MBC미디어비평의 방송내용을 대충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미디어비평팀에 서씨 관련 제보가 날아들었다. 서씨가 미국에서 도피생활을 했던 지역 주민들이었다. 한국 뉴스를 보니 서씨가 침대차에 누워서 입국하는 것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며 귀국 직전 서씨가 지역 쇼핑가를 활보하고 다녔으며, 술집에서 술마시는 것을 목격했다는 제보였다. 취재팀이 급파되고 그것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취재팀은 서씨가 입원한 병원으로 달려가 서씨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처음에는 거부당했고, 미국에서 확인 취재했음을 밝히자 인터뷰에 응해 주었다. 본인이 직접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서씨 부인이 대변인처럼 이야기했다. 술 못 마신다, 진통제 맞고 보석가게에 갔다,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벌을 받겠다가 주된 내용이었다.

아프다고 누워있는 사람에게 ‘꾀병’이니 연기니 하며 구설에 올리는 것이 우리 정서상 적절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소위 책임질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 특히 어린이나 젊은이들의 관심 대상이었던 인물들이 하나같이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솔직하지 못하고 비겁하게 발뺌하거나 비굴한 모습을 자주 접해 온 우리로서는 서씨를 통해서 또다시 이런 작태를 확인했다는 점이 떨떠름할 뿐이다.

하지만 문제는 스포츠신문이다. 서세원씨 디스크 당뇨 심각, 서세원씨 잇몸 의외로 심각, 불편한 서세원씨 불면의 밤을 보낸다, 혼자 몸도 못 뒤척인다 등은 지난 달 30일 서씨가 입국하자 스포츠신문들이 앞다퉈 보도한 기사제목이다. 한데 서씨가 저질렀다고 의심받고 있는 뇌물공여 문제는 전혀 이슈가 되지 못했다. 오보든 조작이든 서씨 관련 문제는 스포츠신문이나 방송연예뉴스프로그램에 의해서 의제설정은 되었는데 의제해설의 영역에서 집중과 배제의 원칙이 잘못 작동되었다. 서씨의 건강악화설과 개인의 경제난이 해설과정에서 일방적으로 선택되고 집중적으로 부각됨으로써 의제의 흐름이 동정 분위기 조장으로 나갔다. 범죄행위에 대한 기본적인 해설내용인 사회적 파장과 앞으로 대책과 전망 등에 대한 근본적인 흐름이 철저히 배제된 것이다.  

또한 지난 주말 미디어비평으로부터 서씨의 건강악화설이 조작일 가능성이 높다는 특종보도가 나간 뒤끝의 찜찜함도 있다. 연예인 스캔들의 기미만 보여도 그것이 좋든 좋지 않든 물불 가리지 않았던 스포츠신문이 ‘침대차귀국’의 연출가능성에 대해서 한마디 언급도 없다. 그래서 미디어비평이 제시한 의혹대로 서씨와 스포츠신문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서로가 서로를 이용한 것이 사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연예뉴스프로그램과 스포츠신문이 갖는 사회적인 역할이 오락적 기능이라면, 최소한 이런 오락적 기능으로부터 받는 즐거움이 불쾌함보다는 많아야 한다. 그리고 최소한의 저널리즘 원칙 즉 진실성과 공정성은 지켜져야 한다. 한데 서씨 사건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초등학생들도 유치하게 생각할 블랙코미디를 그것도 뉴스라는 이름으로 보도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고 이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해야 마땅하다.

뉴욕타임스가 자사의 오보와 조작기사에 대해 솔직히 고백한 것을 보도하는 우리 언론들이 보인 태도는 이 사건은 단지 뉴욕타임스의 문제인양 처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뉴욕타임스의 용기를 칭찬하는 우리 언론들은 왜 스스로 그런 용기를 갖지 못하는지, 그런 용기가 정작 필요한 곳은 자신들임을 왜 고백하지 못하는지 묻고 싶다. 특히 스포츠신문이 적절한 거짓말과 적절한 홍보성 기사, 그리고 말초신경 자극기사가 우리 사회에서 용인되고 앞으로도 될 것이라는 사고를 가지고 있다면 이 또한 한국민들에게는 불행이다. 최소한 이런 경우를 접하면서 드는 생각이다. 미국민들이 부럽다. / 논설위원

* 필자는 언론학 박사로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전문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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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05/14 [18:1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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