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의언론시평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한-미 FTA 비준, 다음 국회로 넘겨라
[김영호 칼럼] 국민적 논의 거치기 위해서도 비준안 18대 국회로 넘겨야
 
김영호   기사입력  2007/10/05 [12:43]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은 국민경제-사회체제에 일대 변혁을 가져온다. 그러나 그 내용이 복잡하고 전문적이어서 국민적 관심에서 벗어나 있다. 하지만 임기마감을 앞둔 노무현 정권은 치적으로 남기려고 국회에 비준동의를 촉구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그 난해하고 방대한 내용을 파악한 국회의원이 몇 명이나 있는지 의문이다. 대선에 이은 총선이란 정치일정에 매여 17대 국회가 다루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노 정부가 한-미 FTA 비준동의를 국회에 요구하는 이유는 찬성하는 대선 주자에게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려는 전략일 것이다. 그러나 대선 주자의 입장에서는 찬반을 분명하게 밝히면 득표전략상 불리하다. 반대하면 반미로 몰려 표를 잃는다. 찬성하면 반대세력의 표가 날아간다. 한-미 FTA에 관해서는 모호한 자세를 취해 양측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일 것이다. 결국 한-미 FTA가 대선에서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은 희박하다.

 국회의원의 입장에서는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와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다. 대선이 끝나고 나면 자신이 다시 국회의원이 될 수 있느냐는 더 중요한 문제가 제기된다. 먼저 공천을 따기 위해 뛰어야 한다. 지역구에도 내려가 열심히 득표활동을 벌여야 한다. 현실적으로 의사당에 매달려 있을 심적 여유가 없다. 비준동의안 문서가 무려 2,526쪽이나 된다. 이 방대한 분량을 이해하고 파악할 시간은 더욱 더 없다.

▲한미FTA 비준을 반대하는 의원 76명의 모임인 비상시국회의 의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비준 이전에 국정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레디앙

 미국 의회 일각에서는 협상내용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쇠고기는 살코기 말고도 뼈와 내장을 수입하라, 자동차 수입물량을 획기적으로 늘리라는 따위다. 쇠고기는 광우병 문제가 걸려 있고 자동차는 세율-세액을 낮추는 이외에 별다른 정책수단이 없다. 국회가 비준을 동의한들 미국 의회가 이 문제를 들고 나와 수정을 요구할 상황이다. 민주-공화 양당의 대통령 후보를 뽑는 예비선거가 내년 2월 자동차 산업의 본고장인 미시간에서 열리는 정치일정도 변수이다.

 페루는 지난해 6월 미국과의 FTA를 의회에서 비준했다. 그런데 미국이 나서 수정하는 바람에 금년 6월 의회가 다시 비준안을 통과시켰다. 지난해 미국 중간선거에서 과반수 의석을 확보한 민주당이 주도하여 관철시킨 신통상정책에 따른 것이다. 콜롬비아도 비슷한 절차를 밟았다. 한국도 지난 4월 2일 협상을 타결했지만 미국의 요구에 따라 재협상을 벌렸다. 6월 30일 애초와 다른 협정문에 서명해야만 했다.

 한-미 FTA는 역내교역의 자유화를 뜻하는 단순한 무역협정이 아니다. 미국인한테 본토에서처럼 투자-영업행위를 보장하는 투자협정을 포함한다. 포괄적 경제통합으로서 한국경제의 미국 예속화를 의미한다. 협상과정에서 미국의 강압적 요구를 수용했으니 여기에 맞춰 법령체계를 광범위하게 개편해야 한다. 하지만 미국은 국내법으로서의 효력을 부여하지 않는다. 노 정부는 이런 문제를 국회와 밀도 있게 논의하기는커녕 충분한 정보도 제공하지 않았다. 

 한반도에 세기적 정세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획기적인 경제협력방안을 논의할 가능성이 높다. 북핵포기에 이은 북미수교도 점쳐지는 상황이다. 미국이 북한과 외교관계를 수립하면 의회는 북한에 정상교역관계(normal trade relation)를 부여한다. 이 경우 개성공단의 지위는 한-미 FTA를 떠나서 북한이 결정할 문제가 된다. 노 정부의 설명과 달리 미 의회는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인정을 사실상 거부하는 권한을 가졌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노 정부는 이 복잡하고 난해한 문제를 아주 단순화시켜 집중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소비자 혜택이 는다느니 중소기업 수출이 증가한다느니 하며 무려 165억원을 퍼부으면서 말이다. 반면에 반대광고와 반대시위를 원천적으로 봉쇄해 왔다. 협상 전에는 여론수렴과 의견청취를 무시하고 협상과정에는 국회의원한테도 정보공개를 거부해왔다. 국가의 장래를 결정하는 중차대한 사안을 17대 국회가 모른 채 동의할 수 없는 일이다.  

 내년 4월 총선과정에서 국민적 논의를 거치기 위해서도 비준안을 18대 국회로 넘겨야 한다.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분야별 청문회를 열어 국민에게 그 내용을 설명해야 한다. 또 국정조사를 실시해 책임소재도 밝혀야 한다. 생산적 토론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룩한 다음 비준안 동의여부가 결정 나야 할 것이다.




언론광장 공동대표
<건달정치 개혁실패>, <경제민주화시대 대통령> 등의 저자  
본지 고문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7/10/05 [12:43]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