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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축구협회의 공짜표가 축구장 망친다
돈내고 입장하는 고객 푸대접하는 정몽준식 축구행정
 
서태영   기사입력  2003/07/30 [10:45]

대한축구협회 누리집에 들어가 임원명단을 보면 놀라게 된다. 부회장 6명 가운데 넷이 70대이다. 젊은 기자는 축구협회의 임원진 절반 이상이 팔순을 바라보는 70대 부회장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서 놀랐다. 대한축구협회는 인적 구성상 정말 고루한 조직이었다. 공만 보고 늙으신 어른들이 팬서비스를 알기나 하겠는가. 우리는 70대 어르신들이 관중을 위해 온몸으로 봉사하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대한축구협회의 고질병은 느낌표를 주지 않는다. 물음표로 남는다. 

▲대구월드컵경기장 가는 길이 꼭 하교길 같다. "수업은 마쳤냐!"     ©서태영
지난 14일 대구월드컵 축구경기장을 향해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떼를 지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대부분 오천원짜리 표를 들고 히딩크와 박지성, 이영표, 올림픽 대표선수들을 보기 위해 경기장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이것이 적나라한 월드컵4강, 우리나라 축구산업 수준이었다. 경기장보다 넓은 관중석을 차지하는 팬들은 축구산업 발전의 견인차이다. 7만을 수용하는 대구월드컵경기장은 오천원짜리만해 보이는 중고등학생들로 간신히 빈구석을 가릴 수 있었다.

히딩크 감독은 "스포츠행사를 특정종교의 선전장화한다"는 비판을 받았던 피스컵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내한했다. 골치아픈 대회에 거액의 돈을 받고 부름받아나선 히딩크에게는 환호성만 뒤따라 다녔다. 박수갈채는 더해갔다. 올림픽대표와 히딩크의 아인트호벤팀간 친선 축구시합이 달구볼경기장에서 열린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피스컵대회 주최측은 속앓이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30억을 들여 초청한 히딩크 감독이 기어코 지하철참사와 유시버시아드로 어수선한 대구로 달려와 맛봬기축구를 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언제까지 중고등학생 관중동원하는 축구행정을 할 것인가 

▲특별한 사람을 위한 초대장은 축구를 멍들게 한다.     ©서태영
올림픽 대표팀과 아인트호벤팀의 경기 주최는 정몽준의 대한축구협회가 맡았다. 히딩크의 네한 친선경기는 정몽준회장과의 합작품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경기는 2:2 무승부로 끝났다. 친선을 다지기 알맞은 골이 터졌다. 월드컵 이후 종적을 감춘 그때 그사람들이 응원석을 메웠다. 아이들은 프로축구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진 않는다고 했다. 붉게 뒤덮힌 관중석을 태극기가 덮었다. 우리 축구문화는 관람보다 응원하는 쪽으로 발빠르게 성장해가고 있었다. 히딩크, 박지성, 이영표를 한꺼번에 보는 기쁨은 지극했다.

히딩크 감독은 선수들보다 인기가 대단했다. 이따금씩 대형화면에 등장하는 광고에 관중은 '하늘만큼땅만큼' 환호했다. 어른 아이할 것 없이 히딩크에 중독되어 있었다.

그러나 악마색(!)으로 얼굴 붉힌 관중도 적지 않았다. 급조된 행사였다고 하나, 문제 많은 피파의 하수조직인 대한축구협회의 고질병은 그대로였다. 그날 축구장은 정몽준표 옥의 티로 얼룩졌다. 

▲문화관광부장관이 참석한 친선축구대회. 지방유지들에게는 특실에 배정해서 관람하도록 했다.     ©서태영
대한축구협회의 공짜표 남발이 화근이었다. 이미 2002년 월드컵대회 때 불거진 문제였다. 당시 대한축구협회는 의원·사법·행정부의 주요인사에게 "서울~광주 왕복항공편까지 제공하며 월드컵 8강전 한국―스페인 경기의 `무료관람'을 제안한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일었다. 축구협회는 기회만 닿으면 공짜표를 돌린다. 공짜표로 예약된 좌석은 빈자리로 남을 때가 많다. 할인가라도 돈내고 들어오는 관중을 구석으로 내몬다. 엉뚱하게도 입장권 사서 경기를 관람하는 사람들보다 축구를 덜 사랑하는 사람들을 우대하는 대한축구협회다. 회장님은 특별히 축구팬-고객-을 사랑하지 않으시나 보다. 지방의 유지들은 공짜로 초대해 상석에 모신다. 이것이 구태의연한 정치행위란 걸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그런데도 고쳐지지 않는 것은 정몽준회장이 대권을 접지 않았다는 뜻일까? 이렇게 축구행정을 파행적으로 이끄는 사람들에 의해 자행되는 상거래 질서문란행위는 뾰족한 제재수단이 없다. 장외에는 경기장 안보다 더 많은 반칙이 행해진다. 축구협회가 이런 식으로 반칙을 일삼으면 축구발전은 발목이 잡힌다.

▲높으신 분들이 계신 자리 앞으로는 지나다녀서도 안되고 빈자리에 않아서도 안된단다.     ©서태영
모든 공짜표가 문제일 수는 없으나, 특정 계층에게 집중 살포되는 공짜라는 이름의 초대장 문화는 털고 가야 한다. 구매능력도 있는 부유층에게 초대장을 보내고, 오지도 않을 사람을 위해 좌석을 예약해 두는 관행은 반드시 청산해야 한다. 빈자리가 있으면 입장권을 구매한 사람이 차지하도록 조치를 하는 것이 통례가 되어야 한다. 초대권 문제에 지방의 유지들까지 한몫 끼어든 모습은 쪽팔리는 일이아닐 수 없다. 축구도 문화다. 축구산업의 발전을 위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관람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전망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가진 자의 표는 일반석보다 몇 곱절은 비싸야 정상이다. 예술계에서는 공짜표 문제가 쟁점이 되었지만 축구장은 그렇지 못했다. 프로야구장엔 시작할 때부터 공짜표를 없앤단다. 대한축구협회는 한국야구위원회를 본받으라. 대한축구협회는 귀족마케팅을 배우기 바란다. 대한축구협회 사전에는 귀족마케팅이 공짜표를 살포하는 것으로 통용될지도 모를 일이다. 지킬 건 지키고 받을 건 받자!

축구경기장이 군사보호구역인가

대한축구협회의 엉망진창 축구행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매표가 끝나면 서비스는 끝나는가. 고비용의 경호원은 어린이, 여성, 노약자를 위해 배치한 것이 아니라, 지체 높으신 어른들 앞에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고용한 모양이었다. 관중석 요소요소에 철문을 세우고 쇠고랑을 채워놓고 길을 끊어놓으면 사람들은 어디로 통행하란 말인가. 축구장 관람석은 동선이 끊겼다. 그렇게 해놓고 목좋은 자리에는 경호원을 배치해 접근을 불허했다. 초대권을 받고도 관람을 포기한 사람들은 상당했다. 그 자리에 앉기 위해 먼걸음한 사람들은 "초대받은 사람들의 자리"라는 행사진행 요원의 설명을 듣고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들이 토해내는 성화는 대단했다. 아들과 함께 경기장을 찾은 이영화씨는 낡아빠진 축구행정을 고발하는 글을 한겨레 독자기자석 앞으로 보냈다.

▲가운데 전망 좋은 자리는 텅비었다. 축구장에 웬 삼엄한 경비!     ©서태영
「14일 대구 월드컵경기장에서 한국 올림픽대표팀과 네덜란드 아인트호벤팀의 친선경기가 열렸다. 나도 아들과 함께 경기장을 찾았다. 지난해 월드컵 열기를 기억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경기장을 메웠다. 월드컵의 영웅 히딩크와 박지성,이영표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왔을 것이다. 그들의 얼굴이 대형 멀티비전에 비칠 때마다 사람들은 열광하고 환호했다. 지정표가 아니었기에 관중석은 관람하기 좋은 자리부터 채워지기 시작했다. 골문 뒤편에는 붉은악마가 경기 시작 전부터 진용을 갖추고 있었고, 양팀 사령탑이 있는측면에는 좌석들이 거의 다 차 있었다. 그런데 브이아이피(VIP)석인지, 임원석인지 확실하지 않으나 100석 가량은 사람들이 드문드문 앉아 있었다. 경호가 필요한 좌석은 아닌 듯했다. 드디어 경기가 시작되고 전반전이 끝났지만, 여전히 그 자리는 많이 비어 있었다. 그 자리 주변에는 서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중에는 어린아이나 부녀자들도 많았다. 빈 자리에 그들을 앉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앉는 것을 경찰이 제지하고 있었다. 가족과 같이 여유롭게 앉아서 경기를 보는 사람들과, 힐끔힐끔 빈 좌석을 쳐다보는 사람들을 보면서 국민통합이 요원함을 느낀 것은 나만의 감상일까.」

▲관중석 곳곳에 철문이 설치되어 있다.     ©서태영
비단, 과잉경호 탓만은 아니다. 고객을 대한는 태도가 문제인 것이다. 축구가 무사들의 훈련이나 군대 스포츠에서 발전했다고 하지만 군사보호구역을 닮아있는 것은 많은 사람을 짜증나게 했다. 온통 철조망이 쳐진 축구경기장은 축구를 잘 모르는 사람의 설계작품이다. 거기는 축구시합을 할 때만 경기장이지, 평소에는 방공호가 된다. 상암은 몰라도 대구월드컵경기장은 딱 그꼴이었다. 인간이 사는 곳이 아니란다. 오래 머물 곳이 못된단다.

경기가 진행 중인데. 대구월드컵경기장의 쇠대문 담장에서 뛰어내리는 아이들은 위험해 보였다. 그날, 닫힌 철문 위를 넘나드는 어린이의 안전을 위해서 일을 하는 경호원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위험하게 쇠대문 위를 넘고 있다     ©서태영
요인 경비만 중시하는 축구장은 위험하다. 그날, 안전사고는 다만 집계되지 않았을 따름이다. 축구4강에 걸맞는 대한축구협회의 행정력을 주문하고 싶다. 축구발전을 경호원들에게 맡겨 놓아서 될 말인가.

끝으로, 지체 높으신 어른들께 부탁드린다. 축구장에서 정장 차려 입고 개폼 잡으려면 차라리 양복점으로 가라. 축구팬들에게 불편을 끼치려면 축구장을 나오지 마라. 축구경기장에 나오려면 대통령이든 축구협회 회장이든 응원복 차림으로 나오라. 그것이 축구장 예법이다. 축구에 대한 예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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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07/30 [10:4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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