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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미국의 지구제국 건설전략 해부
부시정권의 전략적 기조와 한반도의 세계사적 역할
 
김민웅   기사입력  2003/07/29 [11:26]

1. 21세기 미국의 지구제국 건설, 그 기본 성격과 모순

(1) 일극체제(Unipolar system)를 지향하는 미국의 세계전략

▲후세인 제거에 성공한 부시의 다음 목표는 당연 북한이다.     ©인터넷 이미지
오늘날 미국의 세계전략은, 미국이 주도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세계적 완결을 의미하는 <지구제국(Global Empire 또는 Planetary Empire) 건설>을 그 기본 목표로 삼고 있다. 미국 부시 정권의 대외정책은 바로 이러한 목표에 봉사할 수 있는 일체의 수단을 무제한적으로 동원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으며, 무엇보다도 세계 최강의 군사력으로 다른 나라들을 강도 높게 관리할 수 있는 대단히 노골적인 “군사주의 노선”이 그 중심에 존재한다. 이는 한 마디로 고전적 파시즘의 존재양식과 크게 다르지 않은, 독점 대자본과 군사주의 세력의 반동적 동맹 체제를 근간으로 하는 <세계지배를 위한 제국주의 프로젝트>이자 <제국의 통제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즉, 21세기 미국의 세계전략은 미국의 주도권에 대한 일체의 경쟁과 도전, 그리고 저항을 허용하지 않는, <압도적인 일극체제(unrivaled unipolar system)>의 수립에 그 핵심이 있으며, 그 추진 방식의 특징은 “전쟁체제의 강화”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전쟁의 승리를 통해 아메리카 제국의 위력을 전 지구적으로 확인시키고, 이를 근거로 하여 <미국이 중심이 되는 세계적 지배체제(Pax Americana)>를 “인류 보편의 자연법적 질서”로 수용하도록 만드는 과정이라고 하겠다. 이로써 여타 민족국가들의 주권과 생존은 중대한 위협에 봉착하게 된다.

이는 세계 전체에 대한 아메리카 제국의 독점적 지배권 행사를 위한 피라미드형 위계질서를 형성, 유지하고 이에 다른 나라들을 미국의 이해관계에 봉사하는 하위 구조로 통합시키는 폭력적이고도 강제적인 과정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그 통합에 제대로 순응하지 않는, 핵심 고리에 해당하는 국가에 대해서는 "인류적 차원의 적(악의 축 ; the pillars of evil)"으로 규정하고 외교?경제?군사 등의 영역에서 자원을 총동원하여 고립, 압박, 봉쇄, 포위, 공격, 붕괴, 점령, 정권교체, 식민지화 등의 조처를 취하는 대상이 되게 한다.

이 거대한 제국주의 프로젝트는 따라서 미국이 선택하고 결정하는 방식을 다른 나라들과 국제법적 규약, 그리고 유엔과 같은 국제조직이 승인, 동조하고 협력하도록 하는 세계질서를 끊임없이 지향한다. 부시정권은 바로 이러한 프로젝트 추진의 최전선에 독점 대자본과 군사주의 세력의 동맹체제가 계급적, 권력적 이해관계를 더욱 의식적으로 관철하기 위해 선택하고 내세운 <국가운영위원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부시정권의 세계전략은 그 내세우는 명분이 무엇이든 부시 개인의 정치적 성향이나 정권 내부의 주요 인사들이 가지고 있는 개별적 특징과 정책사고의 차이에도 영향을 받기는 하겠으나, 보다 본질적으로는 안정적으로 배타적 지위를 확보하려는 아메리카 제국주의의 체제적 합의와 요구를 반영하는 것임을 주목해야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 통제범위와 강도가 달라진 제국주의의 새로운 단계를 비롯하여, 자신의 체제적 이해를 대리 관철할 권력구조의 수립을 위해 지배와 정복을 겨냥하는 침략전쟁을 정당화하는 논리,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여러 차원의 움직임들을 목격하게 된다. 이를 단순화 시켜 말하자면, 우선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존중하는 문명권 전체의 가치와 안전을, 냉전 시대 이후 새롭게 등장하게 된 테러라는 야만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미국의 인류사적 책임이 강조된다. 19세기 제국주의가 내세웠던 “백인들의 의무적 책임(White man's burden)" 이데올로기의 변형이다. 미국 정치 내부적으로는 공격적 애국주의를 전면에 내세워 정치적 이견(異見)의 배제 내지는 주변화를 위한 민주적 공화정의 약화, 외부적으로는 미국을 선두로 한 제국 동맹의 결속과 군사적 공격 대상이 된 지역에서의 점령정책 전개로 그 구체적인 면모가 드러난다.

(2) 위기의 돌파, 제국의 방어전략

이러한 미국의 지구제국 건설 방식은 미국 역사 속에 이미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는 제국주의 정책의 절정을 보여주는 동시에, 단기적으로는 지난 클린턴 정권 말에 경험하고 있었던 미국 자본주의 체제의 동요와 곤경, 이에 따른 패권의 약화에 대한 대응의 산물이다. 다시 말해서 1990년대 후반기에 이르러 세계적 차원에서의 자본축적 과정에 중대한 위기가 발생하고, 이로 인한 미국 경제의 주도권이 타격을 입으면서 미국의 지배체제에 대한 도전이 생기자 이를 제어하는 가운데 체제위기를 돌파하려는 제국의 자기방어에서 비롯되었다. 냉전 대결주의 전략의 논리였던 “현존하는 명백한 위협 (the present and clear danger)”의 새로운 유형 앞에서 <제국의 안보>를 재정비하겠다는 전략인 것이다.

그런데, 애초에는 자기 방어적 수세형 전략으로 출발했던 부시 정권의 대외정책은 9.11 사태와 그 직후 이어진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승리 이후 자신감을 회복, 공격형으로 전환되었다. 그 결과는 2002년 9월 백악관이 공개한 <미국의 국가안보전략(The National Security Strategy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보고서에 명시된 "선제공격 정책(preemptive strike strategy)"의 선택과, 이에 기초한 2003년 3월 이라크 침략전쟁의 수행으로 나타났다. 이는 단기적으로 볼 때에는 <자본의 자유화 전략>에 따라 통제되지 않은 투기적 자본시장의 세계적 팽창이 1990년대의 경기상승 국면을 지나 거품이 꺼지면서 부채(負債)경제가 심화, 자본축적 전략에 이상이 발생한 것과 관련이 있다. 즉, 국가권력으로부터 시장을 해방시킨다는 명제 하에 “노동에 대한 규제 강화, 자본에 대한 규제 해제”를 통해 세계화 논리를 추진해왔던 신자유주의 세력의 발언권이 위기국면에서 약화되고 이들의 퇴각이 정치적으로 결정된 1999년 미국 대선이 낳은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헌정질서 위기까지 논란이 되었던 대선을 통해, 일극적 체제의 군사적 확보를 세계전략의 기본으로 내세우는 이른바 신보수주의 세력의 소위 선거 쿠데타에 가까운 전격적인 권력 장악은 다음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즉, (1) 세계은행(World Bank)이나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와 협약, 그리고 국제적 협력 체제를 통해 미국 자본의 지위를 강화해왔던 신자유주의 노선의 한계가 드러난 것, (2) 유럽의 급속한 정치경제적 통합, 독자적 군사 블럭 조성 움직임과 중국의 성장에 따른 도전이 위협적인 수준에 이르게 된 상황, (3) 지구 온난화 문제 해결을 위한 쿄토 의정서(Kyoto Treaty)나 전쟁범죄 처리를 위한 국제형사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Court) 설립 등 미국에 대한 국제적 규제 움직임이 나타난 상황 등이다. 보수 세력의 최종 보루인 대법원의 선거판결은 바로 이러한 현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놓고 이루어진 체제적 논란과 합의의 결과였으며, 이로써 신보수주의 권력 등장은 합법성을 획득했다.

신자유주의 노선의 문제는 통제되지 않은 투기자본의 과잉에 따라 수차례의 연방정부 개입이 필요한 상황이 될 만큼 자본시장의 불안정이 가속화되었고,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 등의 기구가 반세계화 운동을 무시하기 어려워진 현실에서 개혁의 요구에 직면하게 된 것을 비롯하여, 아르헨티나를 중심으로 라틴 아메리카 등의 경제현실이 파국적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태로 확인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럽과 일본, 중국 등은 각 지역 경제의 독자적 결속력을 강화하려는 경향을 노골화하기 시작했고, 미국의 일방주의적 세계전략에 대한 국제법적 규제조처를 강구하는 쪽으로 기울어갔던 것이다.

(3) 그 전략적 핵심 과제와 딜레마

바로 이와 같은 현실 앞에서 미국 지배계급의 위기의식이 날카로워졌고, 미국에 도전하는 일련의 세계적 동향을 일거에 통제하고 제국의 위력을 새롭게 다지는 보다 강도 높은 선택이 절실했다. 이는 지난 2차대전 종결과 함께 미국의 주도적 패권체제를 그대로 온존시키고 더 나아가 냉전이후 “진영 적대전선이 소멸한 현실”에서 대적(對敵) 결집력이 떨어진 아메리카 제국의 지배질서를 재편성, 지구촌 전체에 걸쳐 전면화하는 작업이 된다.

따라서 부시 정권을 통해 등장한 이들 신보주의 세력의 지정학적 전략의 중심 과제는 매우 분명해진다. 즉, 제국 동맹 내부에서의 압도적 지위와, 제3세계 지역의 노동과 자원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는 것이 그 골자가 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도전이 용납되지 않는 세계 최강의 군사력 보유와 실제적 과시”, 즉 <전쟁정책>이 국가정책의 핵심으로 부각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부시 정권의 전쟁정책을 중심으로 한 세계전략이 처한 가장 중요한 딜레마는 평화의 시기에 전쟁의 논리와 폭력체제의 강화를 합리화하려 한다는 점이다. 2차대전이 끝난 이후 평화가 도래하자 군사경제의 활력이 무너지면서 위기에 직면한 미국 자본주의체제가 전쟁정책을 합리화하기 위해 만들었던 “NSC-68”을 통한 군비증강정책 논리의 연장이다. 평화가 충분히 가능한데 전쟁을 하려는 체제, 그래서 이에 대한 국제적 문제 제기는 끊임없을 것이며 그로 인해 미국은 무리한 선택을 하다가 그것이 결국 미국 자신이 곤경에 처하는 상황이 불가피해질 것이다.

즉, 정당성을 상실한 전쟁의 추진으로 미국의 국제적 위상이 하락하고 한편으로는 국제적 반전연대가 강화되는 것과 함께, 거짓의 양산과 무고한 민간인들의 희생을 낳을 수밖에 없다. 이로써, 겉으로는 공화정의 민주적 가치를 내세우면서 현실에서는 제국적 행동을 보이는 모순으로 파괴되는 민주주의의 위기로 인해 내부의 비판과 저항은 필연적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미국의 21세기 세계전략은 지구촌 전체에 대한 독점적 규제력을 확보하려 하고 있으나, 역설적이게도 그에 대한 반체제적 규제력 강화의 흐름을 형성하는 결과를 가져와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제국 해체의 과정”으로 들어가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미국의 지배계급은 당장에는 반동적 폭력체제의 동원으로 그 해체 과정을 막아내려 하겠으나, 세계적 차원에서 성장하고 연대하는 반체제적 대안 운동의 역량이 어떤 전략 아래 힘을 모아나갈 것인가에 따라 제국의 세계 지배 프로젝트는 중대한 전환의 고비를 맞게 될 것이다.

우리의 정전협정 50주년 체제 문제도, <전쟁을 통한 자본의 독점적 지배>를 추구하는 제국의 지배전략으로 위협받고 있는 민족국가의 주권 및 생존, 그리고 민중들의 사회경제적 권리를 지켜내는 반체제적 동력을 정치사회적으로, 그리고 국제적으로 창출하는 사안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한반도는 아메리카 제국의 폭력과 지배의 축을 흔들고 새로운 평화의 기운을 세계사적 역량으로 만들 수 있는 근거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 부시 정권의 전략적 기조

(1) 미국의 국가안보 전략 보고서과 그 기초이론

부시정권의 세계전략과 관련한 기조는 앞서 언급했던 <미국의 국가안보전략(The National Security Strategy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보고서에 명확하게 정리되어 있다. 이 문서는 냉전시대를 승리로 이끈 미국의 힘이 이제 역사상 전례 없이 강력해졌으나, 새로운 위협이 등장함에 따라 이를 사전에 제거함으로써 평화, 민주주의, 인권, 자유시장, 자유 무역 체제 등을 보호, 인류적 번영을 추구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요약된다. 이 전략보고서는 9.11 이후 미국의 변화한 전략의 요지를 담았다는 점에서 주목되는데, 지난 60-70년대의 “안보국가론(National Security State)”의 확대이자 헨리 키신저가 미국의 국가적 역량과 관련하여 언급했던 “남고 처지는 힘(surplus of power)”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이라고 하겠다.

이 전략 보고서의 핵심은 <새로운 유형의 위험>이 등장한 현실에서 “필요하다면 <선제공격행동>이 있어야 한다”는 대목으로서, 이는 단지 하나의 전략 선택으로 그치는 문제가 아니다. 이는 미국의 군사주의 노선에 대한 내외적 규제는 해체하고, 자신의 통제력은 강화하는 가운데 국제질서와 미국 내부의 정치가 재편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라는 점에서 주시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9.11 이후의 변화된 현실 때문이라고 하고 있으나 사실상 부시 정권의 세계 지배전략을 추진하는 세력들이 오래 전부터 강조해왔던 바이며, 9.11은 그러한 주장의 현실적 근거를 마련해준 계기일 뿐이라고 하겠다.

얼마 전 미 국무부 정책 기회국장 자리를 사퇴하고 <외교위원회(The Council on Foreign Relations)>의 신임 회장으로 자리를 옮긴 리차드 하스(Richard Haass)의 경우, 지난 2000년 11월 “제국 아메리카(Imperial America)"라는 제목의 짧은 논문을 발표, 이제 미국은 국제관계에서 하나의 초강대국가라는 역할을 넘어서서 세계 전체를 통괄하는 제국의 위치를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내부의 정치체제를 그에 맞게 다지는 일이 관건(Imperialism begins at home.)이라고 하면서, 군사력 강화와 정보기관의 통합을 위한 정책적 선택이 중요하다는 점을 주지시켰다. 리차드 하스가 부시 정권의 주요 정책 책임자였다는 점만이 아니라, 아프가니스탄 점령정책의 정책적 지휘자였으며 부시 제1기 정권 하에서 안보보좌관을 지냈다는 점에서 부시 정권의 정책 사고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겠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1997년에 출간된 그의 책, <주저하는 보안관, 냉전 이후의 미국 (The Reluctant Sheriff; The United States After the Cold War>에서 이미 그 골격이 정리된 바 있다. 그는 여기서 냉전 이후 통제력을 상실해버리고 있는 세계를 다시 미국의 규제(regulation) 아래 두기 위해서는 가능하면 동맹 체제를 가동하는 것이 좋겠지만, “필요하고 가능다면(if necessary and feasible)” 단독으로라도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세계 보안관으로서 이제는 주저하지 말라는 것이다. 리차드 하스의 이러한 개념들은 ”규제“가 자본에 대한 규제로만 이해되었던 신자유주의 논법에서 다른 나라들의 “일탈행위”를 규제하는 것으로 바뀌는 상황을 반영하고 있으며, 그 구체적인 규제조처로서 미국의 전략 보고서에서 “필요하다면” 선제공격 행동을 취할 수 있다는 것으로 정식화되었다. 또한, “조국 안보부(Homeland Security Department)” 창설에서도 나타나듯이 제국의 안전은 내부에서 시작한다는(Ultimately, the foundation of the American strength is at home.) 논리로 공화정의 원칙들을 제국의 목표를 위해 규제하는 체제를 지향함을 명확히 했다.

이 같은 리차드 하스의 아메리카 제국 프로젝트의 군사주의 노선은 그의 1999년 재개정된 그의 책 <개입: 미국의 군사력을 탈냉전 시기에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Intervention: The Use of American Force in the Post-Cold War World)>에 이론적으로 체계화 되어 있다. 여기서 그는 이른바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위한 인도주의적 개입을 명분으로 하여 군사적 개입이 정당함을 역설하고, 그에 따라 그 대상 국가의 “국가건설(Nation building)”전략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이 국가건설 과정에서 그는 일체의 반대세력을 제거하고 새로운 권력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점령정책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러한 정책에 대한 국제적 비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동맹체제가 필요한데, 이는 럼스펠드의 언급대로 “목적이 동맹을 규정하는 것이지 동맹이 목적을 규정하는 것이 아닌(mission determines the coalition, not vice versa.)”, 그래서 미국의 판단기준과 행동반경, 능력이 제한 없는 우선권을 갖도록 하는 방식을 추구하고 있다.

부시정권의 세계전략 사고가 극명하게 드러난 이러한 논리는 미국 외교사에 교차적으로 등장한 테오도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의 <함포외교(Gunboat diplomacy)>와 우드로우 윌슨(Woodrow Wilson)의 <달라 외교(Dollar Diplomacy)> 가운데, 그 중심이 무력 사용을 앞세우는 <함포외교> 쪽으로 이동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하겠다. <함포외교>는 최강의 제국주의 체제를 만들어내기 위해 미국의 일방적 행동과 결단을 중요시하는 반면, <달라 외교>는 세계 자본주의 질서 유지를 위한 국제적 협력 체제를 강조하는 차이가 있으며, 이러한 흐름은 민주당과 공화당의 정책선택의 경향으로 나타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이는 단지 그 제국 경영 방식에 따른 전략적 차이이지, 제국 자체를 놓고 본질적인 차별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함포 외교의 선택이 달라 외교의 포기는 아니며 기본적으로 미국이 주도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경쟁 대상이 없는 안정의 독점적 확보”를 위해 어떤 전략이 효율성을 가질 것인가가 그 논란의 내용이 된다.

(2) 부시정권의 세계전략, 그 지정학적 구조

부시정권의 세계전략은 지정학적 편제로 보면, 세 가지 위계 수준으로 나뉘게 되는데 첫째는 일본을 포함한 유럽을 미국이 이끄는 동맹체제 내부에서 주니어 파트너 지위로 유지하는 것, 둘째, 한국 등 중간급 국가들을 종속적 하위 단위로 통합하는 것, 셋째, 중동과 아프리카 등의 지역을 미국의 직접적 지배영역으로 관할하는 것 등이 된다. 그리고 넷째, 중국과 러시아 등에 대해서는 일정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미국이 주도하는 동맹체제 내부로 편입하도록 꾸준히 압력을 가하는 것이다. 즉,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서구 제국 동맹체제의 견고화와 이에 종속 의존하는 중간급 국가, 그리고 자원과 노동에 대한 강도 높은 통제력의 대상이 되는 제3세계 지역이 하나의 통합단위가 되며, 중국 등이 이에 맞설 것인지 아니면 편입되어 자신의 위치를 미국의 의사에 순응하는 방식으로 정하든지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하는 것이다. 이로써 미국 주도의 세계적 자본축적 전략의 원활한 구조 형성에 주력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위계질서 형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작업이 바로 그 기반이 되는 제3세계 지역의 자원과 노동에 대한 통제력 강화와 과시가 된다. 최근 부시 정권이 아프리카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 까닭도 바로 이러한 의도와 관련이 있다고 하겠다. 특히 중동지역의 원유 장악은 단지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제국주의적 지배정책으로서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지역의 자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기타 국가들, 특히 유럽의 독자적 노선을 규제하는 매우 중대한 고리가 된다. 이라크 침략전쟁은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유로(Euro)화를 중심으로 한 유럽의 정치경제적 결속과 군사적 독자성을 막고 미국의 동맹체제 내에 순응하도록 만드는 전략이라고 하겠다. 프랑스와 독일이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에 대한 반기를 든 것은 반전평화 운동의 연대라는 각도에서보다는, 그러한 미국의 전략 목표의 거부였던 것이다.

제1차 부시정권 시기 걸프전쟁의 전략 목표도 탈냉전의 기류를 타고 당시 경제적 통합과, 나토(NATO)와는 별도로 독자적 신속 배치군 결성 움직임을 보이고 있던 유럽을 견제하고 미국의 세계전략 구도 속에 이들을 그대로 존속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자신을 중심으로 한 결속 체제를 만들기 위해 “공동의 적”을 부각시키고 전쟁정책을 정당화하면서 제국 통솔의 주도권을 장악해나갔다. 미국의 세계전략 구도 속에서 소위 “악의 축”이란 이렇게 보자면, 그 대상 국가의 속성 자체가 악이라고 하기 보다는 제국 통합 전략에 순응하지 않은 주요 고리를 의미하는 것이 된다. “악”의 규정은 미국이 주도하는 진영의 결속을 위해 필요한, 그 고리에 대한 고립, 봉쇄 전략의 정당화 근거로 작용할 뿐이다.

한반도 문제도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독자적인 이해관계를 포함하면서도, 동북아시아 전체의 결속을 저지하고 중국이나 일본이 이 지역의 맹주로 역할하게 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는 작업의 사슬 가운데 하나라고 하겠다. 중동지역과는 달리 자원의 문제 보다는 지정학적 가치로서의 의미가 있는 한반도에 대한 지배적 장악이 성공하게 될 경우, 미국은 일본의 엔화나 중국의 원화가 달라 경제권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면서 장래의 기축통화로 나서게 될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으며 군사적으로도 동북아시아의 독자적인 군사적 블록화를 규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미국이 북한의 핵 문제를 거론했던 지난 2002년 10월의 상황은, 북한과 주변 국가들의 정치경제적 관계에 중대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었으며 그로써 동북아시아 전체의 대미 의존도가 떨어지면서 이 지역이 미국의 주도적 영역에서 이탈할 수 있는 조짐을 보였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즉, 미국으로서는 동북아시아 전체의 생존환경이 미국의 제국주의적 위계질서에 편입되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 것을 경계, 그간의 대북 적대정책의 연장선 위에서 “북 핵 위기”를 전격적으로 제기하여 동북아시아 자체의 독자적 결속 방식을 해체하고자 했다. 그럼으로써 미국이 제기하는 논의 주제를 중심으로 진영 편성을 하여 한국과 일본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까지 끌어 들여 북한에 대한 고립 압박 정책을 추진하려는 것이다. 미국이 선호하는 다자간 회담의 기본 성격은 바로 이 점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는 미국의 동북아시아 관리정책이며 북한을 “공동의 적”으로 상정하고 전쟁정책까지 구사할 수 있는 상황을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호주까지 가세시켜 국제법적 논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량살상 무기 이동 규제를 명분으로 북한의 움직임을 군사적으로 감시, 봉쇄하는 장치(Proliferation Security Initiative)를 만들고 있는 것은, 이러한 전략의 보조 장치를 계속 추가해나가고 있음을 뜻한다. 이 같은 장치는 북한의 군사적 반발과 대응을 가져와 전쟁발발 가능성을 높이게 된다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미국은 기존의 국제법적 질서가 규정하고 있는 규제를 벗어나, 자신에게 유리한 통제 체제를 새롭게 추진하여 전쟁의 가능성을 불사하고라도 전면적 위계질서를 확정해나가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부시 정권의 세계전략의 특징을 총괄하자면 다음과 같다. 즉, 냉전 시기에 미국의 입장을 반영하는데 의미가 있었던 기존의 국제법적 규제나 국제조직 내부의 논의구조가 이제는 자신에게 압박의 요인이 되고 있음을 주시, 압도적인 군사력을 바탕으로 단독적 일방주의를 내세워 각 지역 국가의 역할을 위계질서화하고 자신의 세계제국 체제 내부에 편입, 통합 시키는 것이다. 여기에서 동원되는 이데올로기는 “탈냉전 이후 새롭게 등장한 위협에 대한 문명권 전체의 공동대응의 긴박성”이며, 자신은 이러한 문명권 전체의 가치를 수호하는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의 사명의식을 가진 국가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체제에서 이탈하는 것은 곧 “공동의 적”이 되는 것이며, 인류사회를 위해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는 “악”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부시 정권의 세계전략은 현실에서 그 자체가 도리어 정작의 인류적 위협이 되고 있으며, 세계 도처에서 전쟁과 죽음, 폭력적 지배와 점령, 그리고 야만을 결과하고 있다. 한반도는 바로 이와 같은 거대한 폭력체제의 위협 앞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난 반세기에 이어 또 다른 반세기가 제국의 지배 아래 희생당하지 않기 위해서 폭력을 수반하는 강제적 통합 방식인 제국의 세계지배 프로젝트를 거부하고 이로부터 이탈하여 세계적 연대의 기초 위에 새로운 평화 프로젝트를 관철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고 하겠다.

3. 아메리카 제국주의 발전 경로와 이론적 논의

오늘날 미국의 세계전략은 다시 강조하건데, <제국의 지배전략>이라는 말로 압축될 수 있다. 그런데 이 <제국>의 개념은 최근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며, 미국 역사 내부에 이미 오랫동안 진행되어온 국가발전의 중심전략이다. 미국의 세계전략이 가진 근본성격을 제국주의로 규정하는 것은 오래 동안 미국 사회에서 일종의 이데올로기적 타부였다.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이 펼쳐졌던 60-70년대에도 일부 좌파운동권에서만 제국주의 논쟁이 전개되었으나, 다양한 세력이 반전운동에 참여하던 조건에서 그 같은 논의의 대중적 확산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제국에 대한 논의가 좌파에만 한정되어있던 상황에서 벗어나, 보수세력 자체가 스스로 “제국의 정책”을 강조하고 있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변화로 인해 이에 대한 논의의 분위기는 달라지고 있다.

로버트 터커(Robert Tucker)와 데이빗 헤노익슨(David Henoaickson)의 <제국의 유혹, 새로운 세계질서와 미국의 목적: The Imperial Temptation, The New World Order and America's Purpose>의 경우, 탈냉전 직후 미국의 세계전략을 새롭게 짜야한다는 요구를 반영한 것으로서 부시 제1기의 제국건설 정책을 표면화하기 시작한 작업이라고 하겠다. 2000년대에 이르면 1990년대의 이러한 소극적 자세에서 벗어나, 앤드류 바세비치(Andrew J. Bacevich) 같은 자유주의적 입장에 서 있는 학자들조차도 그의 책 <아메리카 제국(American Empire>을 통해, 미국의 모든 세계전략은 결국 제국을 건설하기 위한 것에 있음을 명백하게 증언하고 있다. 즉, 최근 미국은 자신의 제국주의 전략에 대하여 보다 분명하게 속내를 밝히고 있는 셈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이러한 제국 건설의 역사는 앞서 언급했듯이 갑작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미국의 공화정 체제 형성 초기 중요한 역할을 했던 토마스 제퍼슨은 이미 “자유의 제국(Empire of Liberty)>이라는 개념으로 미국의 역사적 지위가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가를 설정한 바 있으며 공화정의 가치와 제국의 야망을 어떻게 하나로 통합시켜나갈 것인가를 구상했다. 따라서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미국의 독립전쟁은 식민지 해방투쟁의 성격을 가졌다기보다는, 영국의 제국주의 통치체제에서 이탈하여 자신의 독자적 경로를 통한 제국건설의 목표를 지닌 사건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 이전에도 이미 미국은 아메리카 토착주민들에 대한 대량 학살과 생존권 박탈, 그리고 이들의 정착지역 축소과정을 통해 “백인 우월주의(white supremacy)"와 근본주의적 기독교 논리에 따른 선택받은 자들의 사명의식을 결합시켜 “최일선의 경계선(frontier)”을 끊임없이 자신의 소위 문명권에 통합시켜나가는 “팽창주의”를 지향해왔다. 극단의 인종주의와 선악을 가르는 기독교 신학의 근본주의적 배타성을 근거로, 자신을 “선의를 가진 문명”으로, 타자를 “제거해야 할 야만”으로 인식하여 보편적 가치의 방어와 확산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학살과 점령, 지배와 통합을 정당화해왔던 것이다.

이와 같은 팽창주의적 선민의식은 1848년 멕시코와의 전쟁을 통한 영토점령의 과정에서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이라는 방식으로 유럽 제국주의의 “백인의 의무적 책임(white man's burden)”을 변형한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냈다. 이보다 앞선 1823년은, 자신의 영향권에 손대지 말라는 식의 개념으로 이후 발전하게 된 “먼로 독트린(Monroe Doctrine)"이 나오면서 미국은 아메리카 대륙 안에서의 제국의 질서를 통합적으로 구축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1860년대 북부의 자본주의 세력의 주도권을 확정한 남북전쟁 이후 미국은 동서를 연결하고 명실상부한 거대한 북 아메리카 제국의 틀을 완료하게 되며, 철강과 금융 등의 분야에서 독점 대자본의 등장과 관련된 팽창주의 정책의 기운은 1898년을 고비로 스페인과의 전쟁을 통한 쿠바와 필리핀 점령으로 본격적인 제국주의 정책으로 전환된다. 이 시기 미국은 제국주의 논쟁의 치열한 시기를 거치게 되며, 세계사 속에서 미국의 국가적 진로는 본격적인 제국열강의 대열에 합류하는 것이 된다.

1910년대에 이르면 미국은 앞서 언급했던 테오도르 루즈벨트의 <함포외교>와 우드로우 윌슨의 <달라외교>라는 방식의 전개를 통해서 미국이 주도하는 자본주의 질서의 패권을 보다 적극적으로 관철하는 양상으로 들어가게 된다. 미국의 세계전략이 제국주의적 속성을 지닌 것에 대한 비판적인 논의는 1960년에서 70년대에 이르러 심화되지만, 이미 1921년 스컷트 니어링이 쓴 <아메리카 제국(The American Empire>이나 그가 조세프 프리맨(Joseph Freeman)과 공저한 <달라 외교: 아메리카 제국주의에 관한 한 연구(Dollar Diplomacy, A Study in American Imperialism)>같은 연구는 20세기 초반에 이미 그 골격이 완성되다시피 한 미국의 제국주의 지배전략의 구체적인 면모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당시 미국의 이른바 ”명예로운 외교적 고립주의(glorious isolationism)“가 외쳐졌던 현실과는 달리 미국의 대외정책은 철저하게 독점 대자본의 이해를 관철해나가기 위한 개입주의적 군사정책이 중심이 되고 있으며 이들 대자본의 요구와 외교, 군사정책의 결합이 체제적 차원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고 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을 좌절시키기 위한 군사적 개입은 이후 반혁명 전략의 기본방침이 된다.

제1차 대전이 종료된 이후,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에게 전쟁부채의 채권이 있게 된 미국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주도권을 보다 압도적으로 장악해나가기 시작했고, 종말의 단계에 이르렀던 영국 제국주의에 대한 최종의 도전을 시도했던 파시즘 세력에 대한 승리를 통해 제국경영의 세계적 패권을 이양 받게 되었다. 소련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 진영과의 경계선을 일정하게 정리한 전후(戰後) 처리의 과정에서 미국은 자신의 통제권에 들어온 지역에서 “(1) 미국의 제국주의적 질서로부터 이탈하려는 민족주의, 그리고 자본주의가 아닌 대안체제를 지향하는 좌파세력의 제거, (2) 일부 핵심을 제거한 구 파시스트세력의 복원”이라는 전략으로 제국의 위계질서에 순응하고 그 이해관계를 관철해 낼 수 있는 국가권력을 수립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내부적으로는 좌파세력을 비롯하여 정치적 이견자들에 대한 사회적 숙청을 의미했던 매카시즘을 통해서 냉전형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세력을 제거하고, 외부적으로는 제3세계 지역의 민족해방전선 진압으로 나타난다. “한국전쟁”은 이러한 상황에서 발생한 사태로서, 제국 수호의 군사적 성격을 강화하는데 결정적인 요건을 마련하게 된다.

한편, 1960년대에 미국 사회과학계를 풍미했던 “발전론(Development theory)”은 민주적 근대화론을 내세우면서 실상은 군사주의 세력을 기반으로 한 제국적 질서의 하위단위를 만드는 작업의 이데올로기적 전략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의 전개과정에서 미국의 제국주의 정책에 대한 비판적 논쟁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수정주의 역사관의 영향력이 확대되었다. 미국의 대외정책이 가진 팽창주의에 대한 윌리암 애플만 윌리암즈(William Appleman Williams)의 지적은 이른바 인도주의적 개입을 정당화했던 논리에 중대한 도전이었고, 좌파진영의 폴 바란(Paul Baran), 해리 매그도프(Harry Magdoff)등이 제기한 미국 자본주의가 가진 제국주의적 본질에 대한 논란은 이 문제와 관련하여 중요한 이론적 축을 구성하게 되었다. 달라화의 과잉에 따른 문제로 1970년대에 일정한 수세기에 몰렸던 미국의 제국주의 전략은 자본에 대한 통제를 푸는 방식으로 투기적 자본시장의 급격한 성장을 가져오기 시작한 1980년대에, 레이건의 등장으로 반격의 시기에 들어갔다. 그리고 냉전지형이 종료된 이후 그 주도권은 전 지구적 규모의 국제적 협력체제의 구성을 통해 제국 동맹의 전체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달라 외교의 전통에 서 있는 신자유주의 세력에게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이미 앞서 분석한 것처럼 이들의 주도권도 투기자본의 과잉에 따른 모순의 발생과 이에 대한 세계적 차원의 도전이 일어나면서 자유주의적 명분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상태에서 보다 노골적인 군사주의 정책을 위주로 한 제국 질서의 선택으로 전략을 전환하게 된 것이다.

간략히 재정리해보자면, 아메리카 제국주의의 발생은 이미 미국의 국가건설 초기에서부터 그 맹아가 시작되었으며, 독점 대자본의 주도로 인한 자본주의 체제 구축과정에서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지배권 완결을 넘어 팽창주의적 방식으로 세계전체를 향해왔던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미국의 지배계급은 자유, 민주주의, 인권, 자유시장 등의 부르주아 공화정의 가치를 내세워 팽창적 개입주의를 대중적으로 신념화했으며, 실상은 지구 제국의 질서를 구현하는 행태를 꾸준히 지속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의 제국경영 방식은 오늘날 중대한 기로에 놓여 있다. 이라크 침략 전쟁 이후 전개되고 있는 내외적 도전의 양상이 결코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4. 제국의 지배에 대한 도전과 평화운동의 전략

(1) 제국에 대한 도전

▲부시의 위험한 전쟁놀이에 한반도가 무대가 될 수는 없다.     ©인터넷 이미지
부시정권이 이끄는 아메리카 제국의 지배에 대한 도전은 내부적으로는 (1) 부시 정권의 전쟁 논리가 거짓에 기초했다는 사실이 드러남으로써 전쟁정책의 정통성이 안으로부터 붕괴되어가고 있으며 (2) 이라크 점령정책의 과정에서 이라크 민중들의 반격과 저항이 거세어지고, 이에 따라 미군들의 희생이 늘어가자 전쟁정책에 대한 지지도가 떨어지는 것에서 우선 기인한다.

이는 모두 이라크 침략 전쟁의 실상에 대한 거짓 정보의 확산과 오도에 따른 결과로서, 새로운 전쟁을 추진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대한 압박요인으로 작용할 조짐이다. 증거 부재 또는 증거 조작이라는 방식에 의존한 전쟁수행은 대선을 앞둔 상태에서 부시 대통령 진영에게는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는 정치적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그 결과로 부시정권에 대한 대중적 신뢰를 허물고 점령정책의 경제적, 군사적, 외교적 부담이 가중되는 현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라크 침략 전쟁이 군사적 개입에 대한 여론의 제동장치로 기능했던 이른바 <베트남 증후군(Vietnam syndrome)>을 극복한 경우라고 생각했으나, 현실은 그렇게 되어가고 있지 않은 것이다.

외부적으로는 유럽 동맹 내부에서 미국에 대한 반감이 보다 깊어졌고, 중동지역에서의 미국의 지배점령정책에 대한 저항이 확산되고 있으며 세계적인 반전평화 운동이 전열을 재정비하면서 미국의 제국주의적 행태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한 탈출구로 미국은 위험부담이 높은 단독적 행위를 보강할 새로운 방식의 연대를 추구하고 유엔과 같은 국제조직의 기능을 보다 인정하는 방향을 모색하고 있으나 미국의 세계지배전략에 대한 반체제 운동의 흐름을 저지할 수 있을 만큼의 수준은 아니다. 이러한 현실은 미국의 행태를 겨냥한 국제적 규제가 강화되어가는 것을 목표로 하는 상황을 조성해가고 있다. 세계를 자신의 기준에 맞추어 통제하고자 했던 전략이 거꾸로 세계적 규제대상으로 몰려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제국에 대한 이러한 규제 장치의 힘이 아직은 충분하지 않으나 그 가능성의 문은 보다 크게 열리기 시작하고 있다고 하겠다.

역사적으로 성찰해보면, 지구촌을 분할했던 제국주의 초기 단계는 러시아 혁명에 의해 도전받았으며 이후는 사회주의 국제 연대라는 틀에서 그 흐름이 반격 당했다. 그러나 이러한 반격은 전쟁을 막는데 실패하고 만다. 파시즘의 등장을 자본주의 위기의 수세적 국면으로만 파악한 인식의 착오와 공격적 애국주의의 확산에 따른 결과였다. 2차대전 이후 아메리카 제국주의 질서는 민족해방전선의 저항에 놓이게 되었고, 오늘날은 반세계화 운동의 전면적 확대와 이에 기초한 반전평화 운동의 세계적 연대를 통해서 전환의 고비를 맞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 우리의 반전평화 운동의 새로운 가능성이 발견되고 있으며 그에 따라 미국의 세계전략에 대한 명확한 인식, 이에 대한 대중 교육의 확산, 반전평화세력의 정치적?사회적 결집, 동북아시아를 비롯한 국제적 연대의 강화발전, 그리고 새로운 세계의 구상을 펼쳐나가는 노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2) 한반도, 그 새로운 세계사적 역할

한반도는 지난 50년간의 정전협정체제를 통해서 전쟁체제의 일상화를 경험해왔고, 미국의 제국지배전략의 하위 단위라는 자주권 상실의 국가적 지위를 강요당해왔다. 지난 냉전 시기의 군사주의 체제가 한반도의 현대사를 장악했던 것도 바로 이러한 미국의 제국경영방식의 소산이었다. 그 결과로 우리의 기본 인권과 민족적 생존권, 외교적 주체성, 민족 내부의 평화적 결합, 사회경제적 정의 등의 사안은 정면으로 제기하여 이를 우리 민족 전체의 당연한 권리로 내세우기 어려웠다. 모든 것은 제국의 질서 내부에서 진행해야 하는 것이지 그로부터 이탈하는 것은 스스로의 안정과 생존권을 위협하는 것으로 인식되어온 것이다. “반미(反美)운동”에 대한 사회적 이해가 바로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실상은, 그 질서 안에서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진정한 안정과 생존을 위기에 몰아가는 사태가 되는 것이 날이 갈수록 명확해지고 있다. 미국의 세계지배전략은 여타 지역의 민족들의 생존권을 주변화하고 있으며, 자신의 이해를 관철하기 위해서라면 언제든 어떤 명분을 동원해서라도 이들을 물리적 폭력의 대상으로 희생시킬 수 있고 자신의 강제적 통합전략의 문제를 제기하는 세력을 “공동의 적”으로 몰아 전쟁정책을 정당화하는 반평화적 본성을 가졌다. 따라서 이러한 질서의 산물인 정전협정체제의 지속은 폭력과 희생을 양산하는 제국의 질서 안에 우리를 종속적으로 묶어두는 장치라는 점을 인식하고, 이로부터의 이탈(de-linking)을 계획, 세계적 평화역량과 연대하여 평화체제의 새로운 성립을 구상하여 실천에 옮겨야 하는 것이다.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은 이러한 제국의 질서로부터 완만한 이탈을 기획했던 것이었으며, 노무현 정권의 등장은 그러한 기반 위에서 보다 진보적 이탈을 진행시키고 새로운 평화체제를 구성하는 것을 기대하게 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가 되고 있음에 우리의 고뇌가 있다.

오늘날, 한반도는 미국의 동북아시아 지배전략의 중대 고리라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여기에는 신자유주의 체제가 강요한 자본의 지배를 극복하는 문제, 신보수주의 세력이 강제하고 있는 전쟁의 가능성을 포함한 군사주의 정책을 철거하는 문제, 그리고 민족적 단합을 저해하는 분열정책과 이를 보조하는 이데올로기적 유산을 소멸시키는 문제 등이 다층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이는 달리 말해서, 독점 대자본의 지배체제와 이를 유지하는 군사력의 존재, 그리고 주권국가의 선택을 견제하는 아메리카 제국의 질서와 맞서는 작업을 요구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는 이미 세계적 연대를 통해서 확인되고 있는 인류 보편의 생명과 자유, 인권과 생존의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서라도 실현해내야 하는 과제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반도에서 펼쳐지는 평화운동은 (1) 아메리카 제국의 독점 대자본의 지배를 극복하는 반세계화 운동 (2) 전쟁정책을 앞세운 군사주의 노선에 대한 반전운동 (3) 민족내부의 결속을 저해하고 대결을 조장하는 내외의 적대정책을 청산할 민족단결과 공조체제의 확대를 축으로 하여 전개해나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평화운동의 면모는 제국의 지배로 인한 세계적 모순이 집약된 결과로서, 이를 제대로 풀어나갈 수 있기만 한다면 우리의 평화운동은 세계적 시민권을 획득하게 될 뿐만 아니라 제국의 지배 축을 흔드는 반전평화 운동의 중대한 보루로서, 그리고 새로운 세계적 대안체제의 발상을 할 수 있는 근거지로서 자신의 위치를 새롭게 정립해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는 한마디로 폭력을 수반하는 강제적 통합과정을 속성으로 하는 <자본의 제국>에서 이탈하여, 인류 공동의 생존이 확보되는 새로운 평화체제로의 전환을 기획하는 국제적 연대를 통해 거대 제국의 행동방식을 규제해나가는 일에 성공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한반도는 전쟁발발의 비극적 현장이 아니라 세계평화의 새로운 희망을 일구어내는 역동적인 현장으로 변화될 것이며, 이로써 고난이 곧 축복이 되는 역사의 비밀을 우리가 마침내 완성해나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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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재미 언론인, 목회자입니다.
* 본문은 7월 25일 학술단체협의회가 주최한 <정전협정 50주년 국제학술 심포지움>에서 필자가 발표한 것이며, '평화만들기'에도  http://peacemaking.co.kr/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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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07/29 [11:2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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