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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자금 공개, 남의 일 아냐
한겨레그림판 시사만평을 째려보마!
 
이광열   기사입력  2003/07/23 [11:03]
점입가경이다. 굿모닝 시티 분양 사기사건이 여당 대표의 뇌물 수뢰 혐의로 번지고, 다시 여당의 대선자금 문제로 번지더니, 총체적인 정치권의 정치자금 문제로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물귀신이 물귀신을 낳는 격이다.  

 

 정대철 민주당 대표 4억원 수뢰설이 불거질 때만 해도 비교적 손쉽게 민주당이 입을 정치적 타격 정도로 점쳐졌던 이 사안은, 청와대와 야당이 얽혀들어 가면서 점차 모호하고 오묘한 상황으로 치달아 가게 되었다. 특히 지난 15일 청와대가 대선자금 여야 동시 공개를 제안하면서, 정치자금 문제는, 한나라당에서 반발하며 쓴 표현처럼 “물귀신” 성격을 강하게 띠어 갔다. 이제 상황은 대선자금을 비롯한 정치자금 문제에서 여와 야가 따로 있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네 일과 내 일이 구분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지난 주 시사만화들을 살펴보는 것은 이렇게 묘하게 변한 상황을 엿보는데 도움을 준다. 색깔과 성향이 각기 다른 시사만화들은 이번에도 그 나름의 입장에서 정치판을 그려내고 있지만 보혁의 양단 구도로 갈리는 것은 아니다. 

 

▲7월16일<한겨레그림판>     ©장봉군
 노무현 대통령이 여야 동시 대선자금 공개를 제안한 지난 15일 직후의 시사만화들은 각각 대통령의 이 제안을 다른 각도로 그리고 있다. 가령 7월 16일자 <한겨레그림판>에서는 대통령의 제안을 비교적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음이 드러난다. 이 만화는 뇌물의 진흙탕에 빠져 있던 노 대통령의 “고해” 제안과 한나라당의 거절을 극명하게 대비하며 대통령이 개과천선하려 한다는 방향으로 사안에 접근하고 있다. 그렇지만 <한겨레그림판>은 대통령의 제안이 대선자금 의혹의 궁지에 몰린 끝에 선택된 정치적 돌파구라는 눈에 보이는 사실을 배제하면서 정부의 의혹 규명 책임을 외면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대통령의 제안에 다분히 물타기 의도까지 있었다는 점까지 살펴본다면, 이 만화는 그 물타기에 휘말렸다는 인상마저 준다.  

 

▲7월16일 <김상택의만화세상>   김상택
 같은 사안을 두고 <한겨레그림판>과 전혀 다른 그림을 보여주는 것은 같은 날의 <조선만평>과 <김상택의 만화세상>이다. <조선만평>은 노 대통령의 제안을 단지 “꼼수”로 단정짓고 있고, <김상택의 만화세상>은 한나라당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 ‘물귀신 작전’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들 두 만화는 <한겨레그림판>과 그 입장의 방향뿐만 아니라 지적받아야 할 문제에 있어서도 정 반대의 위치에 있다. 이들 만화의 문제는, 대통령의 제안이 지니고 있는 나름의 타당성조차 완전히 무시하려 했다는 데 있다. 그것이 “꼼수”였다 할지라도 그 배경에는 나름대로 대통령의 확고한 자신감, 즉 대선자금 문제에서 자신이 한나라당의 문제보다 크지 않다는 점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무시한다. 그럼으로써 이들 만화들이 면죄부를 남발하는 대상은 한나라당 쪽이다. <조선만평>에서 이해당사자인 야당은 아예 등장하지 않고 있으며, <김상택의 만화세상>에서는 아무 죄 없이 붙잡힌 애먼 사람으로 그려지고 있다.  

 

▲7월16일 <김용민의그림마당>     ©김용민
 반면, 같은 날의 <대한매일만평>은 한나라당도 갖고 있을 대선자금 문제를 불식시키지 않으면서도 대통령의 제안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역시 같은 날 <김용민의 그림마당>도 어느 한쪽의 편을 들지 않은 채 비겁하게 “고해성사”에 임하는 노 대통령을 풍자한다. 고해를 기다리는 국민은 이런 상황에 할 말을 잃는다. 이들 만화는 편향성을 보이지 않으면서도 비판을 적실하게 한다는 점에서 높이 볼 필요가 있다. 

 

 같은 날의 <한국만평>은 노 대통령의 제안을 ‘물귀신 작전’으로 규정한 한나라당의 반응에 대한 여론의 답변이다. 이 만화에서는 편향성도, 노 대통령의 “꼼수”에 대한 비판도 없다. 다만, 대통령이 한나라당을 끌고 들어가려 한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물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힘의 원천이 “정치 개혁 여론”이라는 점을 적시해, 야당에게 “정치 자금 투명화”의 염원을 “물귀신” 운운으로 피하지 말라는 주문을 던지고 있다. 대통령의 제안을 원론적으로 깊이 있게 보려는 시선이 뛰어난 작품이다. 

 

▲7월18일 <부일만평>     ©손문상

 한편, 7월 14일자 <김용민의 그림마당><권범철의 그림세상> 그리고 18일자 <부일만평>은 모두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자금 문제를 바라보는 한나라당의 오묘한 현재 상황을 재미있게 그려내고 있는 만화들이다. 조금씩 서로 닮아 있는 이들 만화는, 지금까지의 여야 대립구도에서 그랬듯이 한나라당이 여당의 곤란한 처지를 마냥 즐길 입장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예측 못했던 상황전개처럼, 앞으로도 정치자금이라는 이 럭비공은 어디로 어떻게 튈지 모르는 상황이다. 따라서 한나라당으로서도 그저 좋아하고만 있을 일은 아니다. 정말이지,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저자소개]

단국대 영문과 졸업. 한겨레신문 등에 만화를 투고 했다. 본 매체에 [시사만화 째려보기]를 연재하는 그는, 영화와 문학을 막론하고 다양한 분야를 섬렵하며 신랄한 비평을 하는 열성적 문화 탐식가이기도 하다. 

시사만화를 분석함에 있어 기존 시사만화비평가들이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형식/미학적 접근을 함과 동시에 글의 리듬이 솔직하고 젊다는 것이 장점이다.  

실제로 만화 창작작업도 하는 그는 작가의 환경과 실상에 대해서 잘 아는터라 간간이 보여지는 비전문가의 허투루 넘겨집는 실수의 경우가 드물다.   만화와 글로 앞날을 개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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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07/23 [11:0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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