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에 불어 닥친 한파
2007년 상반기 한국 영화계는 위기다. 2006년 개봉된 영화 중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한 영화가 대다수를 차지했고, 그 여파로 2007년 들어 새롭게 제작되는 영화 편수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투자심리가 위축돼 투자자들은 신규 투자를 기피하고 있으며 신규로 제작되는 영화도 돈줄이 막혀 제작비 감축에 돌입했다.
2006년에 제작된 108개 영화 중 13편 정도의 영화만 손익분기점을 넘겼고, 관객 수는 전년 대비 6.7%가 감소했으며, 해외 수출 역시 68%가 감소했다는 사실은 영화계에 불어 닥친 한파가 어느 정도인지를 실감나게 전해준다. 특히 2001년 이후 꾸준히 30% 정도의 수출액 증가를 기록하던 해외시장 수출 규모가 2006년 급감하면서 한국 영화의 수익원 상실은 가파르게 진행됐다. 그중에서도 일본 수출 규모가 전년 대비 6분의 1로 줄어든 게 타격이 컸다.
제작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는 상태인데 흥행 수입도, 또 해외 수출 수익도 줄어들면서 한국 영화계에는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2006년 한국 영화의 평균 제작비는 40억 2000만 원. 그중 저예산 영화를 제외하면 평균 제작비는 50억 1000만 원으로 급격하게 늘어난다. 이는 관객 147만 명 이상이 극장을 찾아야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는 금액이다. 그러나 제작비 상승과는 반대로 관객 수가 감소했다. 한국 영화 위기론은 결국 국내 관객 수 감소, 해외 수출규모 축소, 제작비 상승, 투자심리 위축 등의 요인으로 불거지게 된다.
시네마서비스의 강우석 감독은 “시네마서비스가 자금난을 겪고 있을 정도로 영화계에 돈 가뭄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이런 위기에 대해 『문화일보』 강연곤 기자는 “볼 만한 작품은 적고, 고만고만한 기획 영화가 넘쳐났습니다. 관객들이 외면한 건 당연한 일이었고요. 우회상장과 통신자본의 진출 등 막강한 ‘실탄’으로 덩치를 키웠을 뿐, 자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탓입니다. ‘돈 잔치’로 ‘헛배’가 부른 형국이지요”라고 비판했다. 격랑을 헤쳐 나가는 선장의 심정
‘돈 잔치’에 ‘헛배’가 부른 형국에 대해 2007년 1월 25일 영화제작가협회(제협) 회장으로 선출된 차승재는 비판의 날을 세웠다. 그는 “파티는 2006년에 끝났고 앞으로 2007~2009년 3년이 한국 영화의 고난의 행군 시기”라고 전망하며 한국 영화 위기의 원인을 구조적인 문제부터 관행의 문제까지 여러 가지로 진단한다. 우선 그는 해외 수출액이 감소한 원인을 한국 영화 제작사들의 ‘한탕주의’에서 찾는다.
“해외 수출의 70% 정도를 일본 시장에 의존하고 있었어요. 의존하더라도 일본 수입업자들에게 적정 이윤을 보장해줘 시장을 계속 살려 나갔으면 괜찮죠. 그런데 그걸 과당경쟁을 붙여서 마이너스 구조를 만들어버렸거든요. ‘캐시 카우(cash cow)’를 살살 달래가면서 계속 젖을 짤 생각을 안 하고 최대까지 올려 받은 거예요. 그러니 우유를 더는 못 짜내고 젖소가 죽어버린 거죠. 한탕주의예요.”
2005년 11월 26일자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한국 영화가 현재 고민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한류가 있을 때 해외 시장을 개척해서 고착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던 차승재로서는 일본 시장을 잃어버린 것이 내내 아쉬울 게다.
차승재는 해외 수출액 감소와 함께 늘어난 제작비와 영화 편수도 한국 영화계에 위기를 불러온 원인으로 꼽는다.
“순 제작비 30억, 마케팅비 20억으로 평균이 50억인데 그 정도면 관객 147만 명이 이븐 포인트(even point)예요. 그런데 요즘은 100만 명 넘기가 힘들 정도로 영화 편수가 늘었거든요. 한국 영화가 한국 영화의 숫자를 뜯어먹는, 일종의 카니발리즘(cannibalism)에 있는 거예요. 배추 농사 와장창 지으면 배추 값이 폭락하는 것처럼.”
한국 영화의 제작비가 늘어난 것도 위기의 주원인이다. 그중에 제작비의 60%를 차지하는 인건비 문제, 특히 고액 개런티를 받는 스타 배우와 스타 감독들의 관행을 그는 한국 영화계에 위기를 불러온 구조적인 문제로 꼽는다. 즉 스타 권력화가 문제란 말이다. 그는 “스타 시스템이 있더라도 합리적인 구조로 적정한 인센티브가 책정되고 투자자가 적절히 가져가며 제작사도 적정한 기획 개발을 할 수 있다면 괜찮다. 수익이 나도 스타 배우와 감독에게만 수익이 간다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한다.
차승재는 “산업 전체를 공멸로 몰고 갈 제작비 구조를 유지하는 데 자신(스타)들이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면 스스로 조금 양보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화 산업이라는 “프라이팬이 아예 없어진다는, 계속 긁어 먹다 보면 결국 프라이팬이 ‘빵구’난다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협 회장으로 당선된 직후 차승재는 “격랑을 헤쳐가야 하는 선장의 심정”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에 대해 차승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난해 수익을 낸 영화가 10편 미만으로 추정되는데 이런 상황에서도 수익의 50%를 인센티브로 요구하는 감독, 20%를 요구하는 배우가 있다. 스타 시스템을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권력을 남용해 산업 자체가 흔들린다면 건전하다고 할 수 없다. 편당 7억~8억 원 받는 연기자가 있는 반면 말단 스태프는 최저임금도 못 받는다. 영화를 찍는 환경을 조성하고 자본이라는 혈액을 대서 산업을 돌리는 구실은 프로듀서가 하는데, 열악한 수익 구조에선 엔진을 돌릴 수가 없다. 그땐 어디 가서 감독이 연출하고 배우가 연기하겠나.”
그는 이러한 제작 관행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과의 단체교섭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고, 스크린 독점을 막기 위한 자율 규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그는 “제협에서 영화 1편이 차지하는 전국 스크린 수를 400개 선으로 제한하자는 결의안을 만드는 것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며 “모두의 공생을 위해 (스크린 독점을) 적절히 제한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고 “전국에 1800개 정도 스크린이 있는데 이 중 1개 영화가 20~25%만 차지하도록 하고 나머지 스크린엔 다른 영화가 걸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균형 발전에) 바람직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인간 냄새 지글지글 나는 영화’
한국 최대의 영화제작사 싸이더스FNH의 공동대표 차승재는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제작자로 꼽히는 인물이다. 2006년 4월 『씨네21』이 영화계 주요 인사 103명(응답자 7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그는 2006년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로 선정됐다. 2005년에는 『동아일보』가 영화계 인사 50명(응답자 4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최고의 영화제작자’ ‘한국 영화 수준 향상에 공헌한 제작자’ ‘인재 발굴에 가장 힘쓰는 제작자’ 등 3개 부문에서 1위에 올랐다. 이 설문 결과는 한국 영화계에서 차승재란 인물이 가진 영향력을 잘 보여주며 1995년 우노필름을 창립해 영화 제작자의 길로 들어선 이후 차승재가 걸어온 행보에 대한 평가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1995년 8월 우노필름을 세우기 전까지의 차승재의 이력은 단출하고, 또 특이하다. 1960년생인 차승재는 한국외국어대 불어교육과(81학번)를 졸업하고 남대문시장에서 옷장사를 시작하며 사회생활의 첫발을 내디뎠다. 그렇게 번 돈으로 카페를 열었고, 또 그렇게 번 돈으로 옷가게를 열었다. 20대의 나이에 그는 2억 원의 돈을 벌어들이는 장사 수완을 발휘했다. 그렇게 살아도 좋았겠지만, 그는 대학 졸업 후 6년 후쯤 영화 <걸어서 하늘까지>의 제작부 막내로 영화판에 발을 디딘다. 대학 동기인 김태균 감독과 술잔을 기울이며 영화와 연극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들어간 영화판이었다.
1992년 그는 영화제작사 신씨네에 들어가 제작부장을 지냈고, 1995년 8월 독립해 우노필름을 세운다. 그의 첫 작품은 김상진 감독의 <돈을 갖고 튀어라>. 그리 높은 흥행 성적을 내지는 못했지만 어느 정도 제작 여건을 마련한 차승재는 이후 <비트>(1997), <모텔 선인장>(1997), <태양은 없다>(1998), <8월의 크리스마스>(1998), <처녀들의 저녁식사>(1998), <유령>(1999), <플란다스의 개>(2000), <킬리만자로>(2000), <무사>(2001), <인디언 썸머>(2001), <썸머타임>(2001), <봄날은 간다>(2001), <화산고>(2001), <결혼은, 미친 짓이다>(2001), <로드무비>(2002), <지구를 지켜라>(2002), <살인의 추억>(2003), <싱글즈>(2003), <말죽거리 잔혹사>(2004), <범죄의 재구성>(2004), <슈퍼스타 감사용>(2004), <역도산>(2004), <내 머리 속의 지우개>(2004), <남극일기>(2005), <연애의 목적>(2005), <천군>(2005), <비열한 거리>(2006), <타짜>(2006), <천하장사 마돈나>(2006) 등의 작품을 내놓았다.
작품 면면을 살펴보면 알겠지만 ― 몇몇 작품을 제외하면 ― 1990년대 중후반부터 지금까지 차승재는 웰메이드 영화를 제작해왔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일까? 영화평론가 허문영은 차승재를 두고 “한국 영화 르네상스의 중심”이라고 평한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나는 그가 1990년대 중반에 시작된 한국 영화 르네상스의 중심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물론 산업의 중심은 강우석이었고, 미학의 중심은 임권택과 홍상수, 혹은 김기덕과 이창동이 있었다. 그런데도 그렇게 느낀 것은 그가 가장 모험적인 방식으로, 그러니까 텍스트의 모험으로 (미학적 성공이 아닌) 대중적 성공을 추구하기 때문이었고, 그 시도가 대중적 신뢰라는 응답으로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 차승재 영화가 흥행할 때, 이상하게도 그것은 관객의 열광이 아니라 관객의 신뢰의 표현으로 느껴진다. …… 그는 늘 아슬아슬한 텍스트를 던졌고, 어렵사리 대중적 화답을 얻어냈다. 그 전 과정이 아찔한 스릴러의 불안과 쾌감을 선사했다. 그리고 그건 한국 영화 르네상스의 도정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현상으로 내게 비쳐졌다.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는 한국 영화를 한국 관객이 더 많이 소비하기 이전에, 더 많이 신뢰함으로써 이루어진 결과라고 생각했다.”
허문영의 평가는 앞서 『동아일보』의 설문 결과에서 도출된 ‘한국 영화 수준 향상에 공헌한 제작자’란 평가와 일맥상통한다. 차승재는 ‘관객의 열광’보다는 한국 영화에 대한 ‘관객의 신뢰’를 이끌었고, 그것은 차승재가 제작한 영화들이 조폭 코미디나, 로맨틱 코미디처럼 유행을 타고 천편일률적인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아닌 삶에 대한, 또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차승재의 영화관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인간 냄새가 지글지글 나는 영화’를 좋아한다고 고백한 바 있다.
“나는 인간의 냄새가 나는 지글지글한 영화를 좋아한다. …… 좋은 영화냐 아니냐는 그 영화가 삶의 일면을 어떤 방식으로 그려냈느냐에 달려 있다. …… 식빵을 잘랐을 때 보여지는 다양한 단면처럼 삶의 모습을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영화이다.”
차승재는 “1센티미터라도 지평을 넓히는 것이 내가 영화를 하는 맛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영화를 하는 재미가 결국은 지평을 넓히는 것, 즉 대중성에 몰입한 것이 아닌 창의성에 기반을 두고 영화적 지평을 넓히는 것에서 재미를 느낀다는 말이다. 그것이 오늘의 차승재를 있게 한 기반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2005년 싸이더스와 ‘좋은영화’와의 합병(그렇게 탄생한 것이 싸이더스FNH이다) 이후 차승재의 색깔이 엷어진 영화가 제작되고 있다는 사실에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영화평론가 전찬일은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인 <Mr. 로빈 꼬시기>란 영화를 보고 2006년 말부터 시작된 한국 영화계의 위기를 확실히 느꼈다며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럼에도 영화가 적잖이 당혹스럽게 다가섰던 것은 이 땅의 최고 제작자인 차승재가 김미희와 나란히 제작자로 올라 있어서였다. …… 그는 그간 줄곧 문제 인간들이 살아 숨쉬는 문제적 영화들을 제작해왔다. 그렇기에 난, 그 특유의 사회문화적․영화적 문제의식이라곤 아예 찾아볼 수 없는, 지독히도 ‘퇴행적’인 이 로맨틱 코미디의 엔딩 크레디트에서 그의 이름을 목격했을 때, 하도 당혹스러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리고는 이내, 당혹은 일말의 위기감으로 변해갔다. 차승재라는 이름이 함축하고 있는 어떤 함의 및 무게감 탓이었다.”
이런 비판에 대해 차승재는 “과거 우노필름이나 싸이더스의 이름으로 1년에 3~5편을 만들 때는 회사의 색깔을 유지할 수 있었다. 지금도 3~5편은 싸이더스스러운 영화를 만들 거다. 물론 FNH스러운 영화도 그만큼 나올 거다. 그리고 또 싸이더스FNH라는 브랜드로 더욱 다양한 영화도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감독은 선장, 제작자는 기관장
차승재는 신인 감독을 데뷔시킨 제작자로도 유명하다. 그가 데뷔시킨 감독으로는 김상진, 임상수, 허진호, 봉준호, 장준환, 최동훈 등이 있다. 시나리오 보는 안목이 뛰어나다고 알려진 차승재는 시나리오를 보고 영화화를 결정하고, 시나리오가 완성되면 간섭하지 않는다. <천하장사 마돈나>의 이해일 감독은 차승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초고를 읽은 차승재 대표가 말했다. ‘돈 냄새 나는 시나리오가 있고 기분이 좋아지는 시나리오가 있는데, 이 작품은 후자다. 기분 좋게, 한번 잘 해보자. 노력하면 200만 못 하겠냐.’ 이런 말을 해주는 제작자라니, 감동이다. 그의 구두에 불광이라도 내주고 싶다.”
‘불광’이라는 최고의 헌사(?)를 보낸 이해일 감독의 말이 헛말은 아닌 듯싶다. 어쩌면 그의 이러한 제작 태도 때문에 우리는 봉준호나 허진호, 장준환, 최동훈 등 한국 영화계를 이끄는 감독들을 만날 수 있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는 제작자로서 감독이 어떤 장점을 갖고 있고, 그것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를 중요하게 여긴다. 즉 “감독이 어떤 재능을 가졌는지를 잘 파악해, 그 재능이 십분 발휘될 수 있도록 접점을 찾아주는 역할”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는 말이다. 그는 <비트>의 메가폰을 김성수 감독에게 맡긴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런어웨이>를 봤더니 어떤 장면은 A플러스이고 어떤 장면은 F였다. A플러스는 대부분 액션인데, 컷 구성이 매우 좋았다. 그러면 성수가 잘 찍을 신(장면)들로 채울 수 있는 영화를 찾으면 영화가 A플러스가 될 것 아닌가. 그래서 <비트>를 성수에게 맡겼다.”
감독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이 제작자로 성공할 수 있는 요건이라고 봤을 때 차승재는 성공할 수 있는 요건을 갖췄다. 덧붙여 그는 사람을 잘 챙기기로 유명하다. 한 번 같이 일한 사람은 끝까지 같이 일하는 것으로 유명한 그에 대해 영화평론가 허문영은 차승재의 힘이 ‘사람 본위’의 노선에서 나온다고 평한 바 있다. 감독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그것은 ‘선장은 감독, 제작자는 기관장’이라는 차승재 특유의 감독과 제작자에 대한 위치 선정에서 기인하는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배로 보면 감독은 선장이고, 제작자는 기관장이에요. 영화를 만들고 움직일 수 있는 동력은 기관에서 제공하죠. 기름 냄새 나고 어두침침한, 표면에 잘 안 드러나지만 배 가장 밑바닥에서 기관을 돌리는 거구요. 그 배가 어디로 가느냐는 방향은 선장, 감독에게 많이 의존하죠.”
한동안 그는 인복은 있는데 돈복은 별로 안 따른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싸이더스만 터지면 한국 영화제작사는 다 한번씩 터진 셈”이라는 얘기가 충무로에 돌 정도였다. 그동안 만든 작품 중에는 손익분기점을 겨우 넘긴 작품이 많았고, 흥행에 참패한 작품도 꽤 있었다. 그에게 돈복을 안겨준 것은 2003년에야 터진 <살인의 추억>이라는 잭팟이었다. 이 작품의 성공으로 차승재는 서울에서 50만 관객이 드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평소 소원(?)을 풀 수 있었고, <지구를 지켜라>의 흥행부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프로듀서란 감독에게 빌붙어 먹고사는 존재가 아니다”
영화계의 위기가 닥친 이후 차승재는 영화계의 구조적인 문제점에 대해 비판해왔다. 그러나 그 비판은 제작자의 입장을 주로 대변한 것이다. 현 시점에서 제작자가 처한 입장을 그는 이렇게 말한다.
“영화를 만들어 빚지는 사람은 제작자밖에 없다. 한국 영화 르네상스를 맞아서 연기자들의 개런티가 올랐고, 감독은 개런티가 상승했을 뿐 아니라 수익 지분도 가져간다. 스탭들의 개런티도 현실화됐다. 게다가 필름회사, 장비 대여업체, 극장 모두 돈을 벌었는데, 가장 한심한 게 제작자다. 지금은 제작비 30억 원에 마케팅 비용 20억 원을 쓰면 전국 관객 147만 명이 들어야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다. 제작자는 그런 손익분기점을 갖고 제작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불쌍한 존재다. 그렇다면 거기에 맞춰서 계속 제작을 해야 하냐. 나는 그것을 끌어내리기 위해 몸부림쳐야 한다는 거다.”
비록 제작자의 입장을 대변한 것이기는 하나 앞서 언급한 전방위에 걸친 한국 영화계에 대한 비판은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밥그릇 싸움으로 매도할 수 있기도 하지만 영화 산업 자체가 위기인 상황에서 그것을 단순히 밥그릇 싸움으로만 볼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영화 제작자 차승재는 제작자로서의 자존심이 강하다. 그는 프로듀서가 스타 감독에게 이끌려가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이를테면 어떤 감독들은 제작 지분의 50%를 달라고 하는데, 나는 못한다. 어떤 선배가 그러더라. 그러지 말고 50%를 주고 붙잡아두라고. 그런데 문제는 그래도 업계에서 영향력이 좀 있다는 내가 50%를 주기 시작하면 다른 데 가서는 60~70%를 받을 수 있다는 거다. 그건 프로듀서를 다 죽이는 일 아닌가.”
차승재는 “프로듀서란 감독에게 빌붙어서 먹고사는 존재가 아니”라고 힘주어 말한다. 이 말은 지나친 자기비하일 수 있지만, 프로듀서로서의 자존감의 표현이자 자존심을 세우려고 하는 의지, 그리고 영화 제작자의 위기로도 읽힐 수 있다.
어찌됐든 차승재는 앞으로도 영화 제작자로서 계속 활동할 것이다. 그에게 소원이 있다면 스타일 구기지 않고 영화 일을 계속하는 것이다.
“나 사실 평생 영화하고 싶거든. 평생 스타일 안 구기고. 과연 차승재가 평생 영화를 하려면 어떻게 가야 맞는 길인가는 나도 몰라. 그래도 후배들을 위해 그나마 해놓은 게 있다면 나는 그거라고 생각해. 영화 같은 영화를 해도 회사가 굴러가는구나, 그럭저럭 회사가 덩어리가 되는구나, 보여준 거지.”
* 본문은 월간 <인물과사상> 5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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