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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최우수 심판수준이 이 정도라니...
심판이 두각을 나타내는 축구경기는 나쁘다
 
서태영   기사입력  2003/07/14 [15:33]

▲대구축구단 박종환 감독이 심판판정에 항의 선수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서태영
이상용. 그는 2001년 최우수심판상을 받았다. 'A학점 심판'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스포츠조선이 제정한 OB라거 프로축구대상의 심판상을 받았던 이심판은 올시즌에도 경기의 흐름을 끊지 않는 매끄러운 운영으로 '타이거풀스 한국축구대상' 심판상도 거머쥐어 2년 연속 최고의 심판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영등포공고-고려대를 거쳐 유공(현 부천 SK)과 럭키금성(현 안양 LG)에서 선수생활을 했던 이심판은 프로선수로 직접 체험했던 이상적인 경기운영을 실천하면서도, 빠르고 정확한 판단,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공평성 등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이심판은 한국프로축구연맹 심판위원회가 매긴 자체평점에서도 유일하게 10점 만점에 8점을 넘어선 'A학점 심판'이다."(장원구, 스포츠조선 2001.11.14)

당시 그는 "공정한 판정을 하기 위해 노력한 한해였다."는 수상소감을 짤막하게 남겼다. 그런 그가 불공정 심판 의혹으로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 어떤 인터뷰 글에서 그는 "심판 인생은 자존심 하나로 버텨야 하는 삶"이라고 했고, "심판의 생명은 소신과 양심"이라는데 밑줄을 좍 그었다.

"심판은 명예직인데 명예를 인정하지 않는 풍토에서 심판하려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일반인이야 그렇다치고 말이죠, 축구 선수치고 나중에 심판하고 싶어하는 사람 별로 없을 겁니다. 그만큼 고되고 욕만 많이 먹고 존경은커녕 아무 생색도 안나는 일이 심판입니다."(신동일, 「신동일이 만난 사람」)

그는 심판의 명예를 인정하지 않는 일반의 인식에 딴지를 걸었다. 나아가 "축구선수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심판을 한다고 하면, 벤치에 앉아있는 감독들부터 심판의 자질 문제를 거론하는 것이 한국 축구 풍토"라고 항변했다.

▲대구-전남전에서 객석의 심판위원장까지 잔디구장을 밟았다. 불만이 많은 경기는 흐름이 자주 끊긴다 ©서태영
그의 말처럼 12일 대구와 전남이 가진 축구시합에서 심판으로 봉사한 그는 "욕만 많이 먹고 존경은커녕 아무 생색도 안나는 일"을 했다. 유명 축구선수 출신인 그를 향해서도 감독은 물론 관중의 항의가 빗발쳤다. 그는 "현역 선수, 그것도 프로무대에서 뛰어본 경험이 축적되어 있는 심판일 때 프로구단 관계자의 거부감이 덜하다"고 했지만, 골잡이 출신에 명심판이라는 평판을 받고 있는 그에게 집단반발을 했다.

심판에게는 재판관과 지휘자와 연출자라는 3가지의 지위가 부여된다. 심판은 재판관과 지휘자와 연출자로서 삼박자를 갖출 때 권위가 선다. 권위만 내세우면 권위가 서질 않는다. 심판이 선수들보다 더 막강한 승부수로 작용한다면 축구장은 환호성보다는 야유로 뒤덮혀 버린다. 바로 12일 대구경기가 그랬다. "심판 때문에 졌다는 변명은 스포츠맨의 자세가 아니다.(이상용)" 맞는 말이다. 심판으로서 충분히 방어용으로 빼들 수 있는 말이다. 심판 이상용의 말은 대부분 심판 결과에 시비하지 말라는 식이라서 권위주의 편에 서 있음이 느껴진다 하겠다.

이날 심판결과만 두고 보면 박감독의 평소 주장처럼 심판 때문에 진 것 같았다. 이상용 주심은 이날 전반 34분 전남의 벌칙구역 오른쪽을 파고들던 대구 송정현을 전남 유상수가 발을 걸어 넘어뜨렸지만 패널티킥을 주지 않았다. 대구-전남전은 심판의 권위가 망가진 경기였다. 자연, 선수들은 심판이 공명정대하지 않은데 불만을 품고 신경을 곤두세웠다. 발이 오가는 축구시합에 주먹이 오가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경기는 험악해졌다. 법질서가 확립되지 않는 법정은 법관의 잘못이 아닐 수 있으나, 심판의 권위가 서지 않는 경기장은 경기규칙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 명확해졌다. 법은 편파성을 띠어도 축구경기의 규칙에 편파성은 없다. 문제는 그 운영자인 심판이 그렇지 못한데서 비롯된다. 그 한계를 익히 아는 우리는 무오류의 심판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축구의 재미를 더해준다고 거들기도 한다.

▲ 선수보다 두각을 나타낸 소문난 골잡이 출신의 이상용 주심     ©서태영
그렇다고 그 장면을 보려고 경기장을 찾진 않는다. 팬들은 축구와 축구선수들을 보려고 경기장을 찾는다. 심판은 그 뒷전이다. 심판의 활약이 두드러진 경기는 아무래도 실패한 게임일 수밖에 없다. 심판은 "봉사하는 마음, 축구를 사랑하는 사심없는 자세"로 심판에 임할 것이다. 대구축구단의 박종환 감독은 걸핏하면 "심판 때문에 졌다"는 말을 즐겼다. 박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심판실로 달려가, 이상용 심판에게 "너는 내가 죽여버린다. 자식보다 어린 놈의 새끼들이 겁도 없다”(한제남, 스포츠 투데이 2003.7.13)고 폭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종환 감독을 편들기 위해 발끈한 사람은 없다.

축구팬들의 수준이 경기결과에만 집착할 정도로 후지진 않다. 지금 심판을 탓하고 있는 사람들은 한국의 축구문화가 아니라 문화저력을 일으켜세운 자랑스런 붉은악마족들이다. 축구가 한참 유행탈 때 거리로 쏟아져 나온 뜨내기 관중이 아니라 축구를 지탱하는 지킴이들의 외침이라는데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심판은 선수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현장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처지에 있기에 법정의 판관보다 실수를 덜 할 수 있다. 대구-전남전에서 이상용 심판은 맹활약했다. 확실히 그는 양팀 선수 22명을 보탠 것보다 커 보였다. 그런 그는 끝내 정문으로 퇴장하지 못하고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심판의 수준이 축구의 수준이다. 선수와 관중에게 존경받는 길은 공정한 심판을 보는 것 이외의 대안이 따로 있을 수 없다.

"지난 28일 안양에서 벌어진 프로축구 안양 LG와 울산 현대의 경기. 경기가 끝났을 때 그라운드에는 19명의 선수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이날 주심인 페테르 가겔만(35)이 3명을 퇴장시킨 결과였다. 레드카드(퇴장) 한 장에 옐로카드(경고)가 무려 8장이었다. 올 K-리그 경기당 경고 횟수가 1.60, 퇴장 횟수가 0.06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날 가겔만 주심이 경고를 남발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하지만 경기 후 가겔만을 질책하는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있고 일관되게 판정했다는 칭찬이 많았다. 경기 중에 선수나 벤치에서 크게 항의하는 모습도 없었다." (강인식, 중앙일보 2003.6.30)

경기의 승패는 심판의 입술에 달려 있다. 그렇지만 한국축구는 심판의 입술에 달려 있지 않다. 축구열기가 거리로 쏟아질 때 대한민국은 신바람이 났다. 대한축구협회는 심판에게 향하는 축구팬들의 호각소리를 축구열기가 가라앉는 조짐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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