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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혼다: 일본은 과거의 잘못에 사과하라
[최을영의 시사인물 포커스] 미 하원에 종군위안부 결의안 발의한 양심
 
최을영   기사입력  2007/03/17 [16:00]
“과거의 잘못에 대해 화해하는 것은 아무리 늦어도 늦은 게 아니다.”

2007년 1월 31일 미 하원의원에 종군위안부 결의안을 발의한 마이크 혼다(원 이름은 Michael Makoto Honda) 의원의 말이다. 맞는 말이다. 과거 잘못에 대해 사과하고 화해하는 것은 아무리 늦어도 늦은 일이 아니다. 더구나 그 일로 인해 아직도 고통받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더더욱 필요한 일이다.

1999년, 2005년에 이어 이번에 세 번째로 종군위안부 결의안을 낸 마이크 혼다는 일본 이민자 3세다. 이 때문에 일본계인 그가 결의안을 제출했다는 사실에 일본은 곤혹스러워 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그의 신선한 돌출행동(?)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오는 3월에 종군위안부 결의안이 미 하원 본회의에서 채택될 것인지 여부와 함께 일본의 인권침해에 대해 일본계 미국인이 사과를 촉구하고 나섰다는 사실 때문에 마이크 혼다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도 커져가고 있다.

마이크 혼다는 태평양전쟁의 피해자라고 볼 수 있다. 1941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마이크 혼다는 태평양전쟁이 발발하고 난 뒤 1942년 미국 정부에 의해 저질러진 재미 일본인 격리 조치로 부모와 함께 콜로라도에 있는 수용소로 강제 이송되었다. 이후 10년간 그는 콜로라도에서 지내게 된다. 수용소 생활에 대해 기억하는 바는 별로 없었지만 그는 후에 부모와 어른들로부터 “미국들에 의해 정든 집과 재산을 버리고 이웃 친구들로부터 격리돼 열차를 타야 했”고, “어디로 가는지, 언제쯤 돌아올지, 살아서 돌아올지 전혀 알 수 없는 악몽 같은 경험”을 전해 들었다. 교사가 됐을 때 그는 그 역사를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는 신념에 사로잡히게 된다.

▲일본계 이민 3세로 \'위안부\' 문제를 제기, 양심의 소리를 높힌 마이크 혼다 민주당 하원의원     © 마이크 혼다 홈페이지

“내가 성장해 교사가 됐을 때, 나는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과거의 잘못된 일이 왜 일어났는지, 그리고 그 일을 어떻게 막을 수 있는지를 후세들에게 가르치려면 과거에 일어난 사실을 그대로 인정하고 일어난 사실 모두를 가르쳐야 한다. 이는 미국의 헌법의 원칙이며 국제적으로는 인권협약의 기초이기도 하다.”

1953년에야 격리 생활에서 풀려난 혼다 가족은 미국의 산호세에 정착했고 부모는 딸기 소작농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마이크 혼다는 그곳에서 성장해 교육자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대학시절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주창했던 평화봉사단 활동에 참여하기 위해 2년간 대학을 휴학하고 엘살바도르에서 미국 평화봉사단의 일원으로 봉사 활동을 하기도 했던 그는 1968년 산호세 주립대학에서 생명공학 및 스페인어 전공으로 학사학위를 받았고, 1974년에는 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그는 두 곳의 공립학교에서 과학교사 생활을 했고 교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의 정치활동은 1990년대부터 시작돼 1996년 캘리포니아 주의원에 당선되면서 본격화된다. 이 시절 그는 종군위안부 문제를 처음 접하게 돼 1999년 캘리포니아 주의회에 일본이 2차대전 때 저지른 전쟁 범죄에 대해 일본 정부가 사과하고 희생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내용의 결의안(AJR 27)을 통과시켰다.

그가 중앙 정치무대에 등장한 것은 2000년 캘리포니아 제15선거구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되면서부터다. 실리콘밸리 지역에서 당선된 만큼 그는 ‘IT’ 분야를 자신의 전문 분야로 내세워 2001년부터 미 하원의 과학위원회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그는 인권 분야에서 더욱 두각을 나타냈다. 민주당 소속인 그는 일본의 전쟁범죄를 비판해 중국에서 큰 인기를 얻어왔고, 2001년 9․11 테러 이후에는 미국 내 무슬림에 대한 편견에 저항해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번 결의안도 그런 활동의 산물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마이크 혼다는 교육자로 생활하면서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한 시각도 이와 다르지 않다. 특히 “10년 전 위안부 문제를 처음 접했을 때부터 위안부 할머니들이 점점 연로해지고 돌아가시기 시작해 시급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는 2006년에 이어 2007년에 다시 미 하원에 결의안을 제출하는 열성을 보였다.

그가 이번에 민주당, 공화당 의원 6명과 함께 제출한 결의안은 2006년 레인 에반스 전(前) 의원의 주도로 제출된 결의안보다 더욱 강화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2006년의 결의안이 ‘일본 정부가 역사적 책임을 분명하게 인정해야 한다’는 선에 머물렀던 것에 비해 2007년의 결의안은 “일본에서 1993년 종군위안부에 대한 책임을 인정한 고노 요헤이 당시 관방장관의 성명을 철회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고, 일본의 몇몇 교과서는 전쟁범죄를 축소하려 한다”고 규정하고 “일본 정부는 ‘위안부의 성 노예화와 인신매매가 없었다’는 어떤 주장도 공개적으로 분명하게 반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일본 정부는 현재와 미래의 세대에 이 가공할 범죄에 관해 교육하고 국제사회의 권고를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마이크 혼다는 일본 측의 “공식 사과는 일본 총리가 총리 자격으로 공개성명을 통해 해야 한다”고 못 박았으며 “나는 매우 분명한 어조로 일본 정부의 사죄와 함께 일본군 위안부 범죄에 대한 교육을 일본 정부에 촉구”하고 “피해자들의 희망은 일본 정부가 이 같은 범죄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하라는 지극히 온당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일본의 전 총리가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된 성명을 발표한 적이 있지만 이는 일본 정부가 명확한 존경심을 갖고 밝힌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도 공식적인 사과로 여기지 않는다”며 “일본 정부는 그동안 이 문제에 대해 애매한 입장으로 호도해왔으며 최근에는 종전의 입장을 바꾸거나 교과서에서 삭제하려는 명백한 움직임을 보여왔다”고 비판했다.

한편으로 그는 “이 결의안은 결코 일본 정부를 모욕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라며 “우리는 오히려 일본 정부에 지난 1988년 미국 정부가 2차대전 중 미국 내 일본인의 집단수용 등의 조치에 대해 공식 사과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던 사실을 상기시키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번에 제출한 결의안은 2월 15일 미 하원 사상 최초로 열리는 종군위안부 청문회를 거쳐 3월에 종군위안부 결의안이 본회의에서 채택되면 그 효력이 생기게 된다. 종군위안부 청문회에는 2006년 말 낸시 팰로시(민주당) 하원의장과 마이크 혼다 의원에게 군위안부 결의안 상정을 요구하는 편지를 보낸 우리나라 종군위안부 김군자(80), 이용수(79) 할머니와 네덜란드인 오헤르너 씨 등이 증언할 예정이다.

한편 이번 결의안은 2006년 일본 측의 막강한 로비로 본회의 진출이 좌절된 것과는 달리 낸시 팰로시 하원의장이 결의안을 공식 발의한 적도 있을 만큼 결의안에 긍정적이어서 본회의 통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 만약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를 촉구하는 결의안이 통과된다면 일본이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로서 분명하고 깨끗한 사과를 할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 본문은 월간 <인물과사상>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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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3/17 [16:0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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